The Masque of the Red Death - Wikipedia

The Mask of the Red Death, 1883 - Odilon Redon - WikiArt.org





바깥세상에서는 역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는데도, 프로스페로 왕자는 사원에 숨어든 지 여섯 달이 다 되어갈 무렵, 성대한 가장 무도회를 열어 쾌락이 넘쳐나는 광경을 연출했다.

시계 종이 울리는 동안, 잔뜩 흥겹게 춤을 추던 사람들은 창백해졌고, 나이들어 침착한 사람들은 환상이나 명상에 사로잡힌 듯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하지만 종소리의 울림이 완전히 멎으면 가벼운 웃음소리가 다시 온 방 안에 퍼져 나갔다. 연주자들은 스스로 신경과민이었고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서로 마주보았으며, 다음 시계 종이 울릴 때는 절대로 이런 마음을 갖지 말자고 서로 낮은 소리로 맹세했다. 하지만 60분이 지나, 3천6백 초의 시간이 지나 다시 시계 종이 울리면 한 시간 전과 똑같은 정적과 전율과 명상이 찾아오고야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도회는 흥겹고 성대했다.

밤은 더욱 깊어갔다. 핏빛 창으로 진홍빛이 흐르고, 벽에 비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사람들을 흠칫흠칫 전율케 했다. 어쩌다 실수로라도 검정 담비 양탄자 위로 발을 들여 놓는 사람의 귀에는 흑단 시계 종소리가, 다른 방에서 흥겨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장중하게 들렸다.

검은 방을 제외한 다른 방들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곳에서는 삶의 심장이 뜨겁게 뛰었다. 무도회는 소용돌이치듯 계속 되었고, 드디어 밤 12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멎었다. 왈츠를 추던 사람들도 조용히 멈춰 섰다.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시계 종소리가 12번 울리는 동안 무도회를 즐기던 사람들 중에서 생각이 깊은 사람들에게는 좀 더 많은 생각이 좀 더 오랫동안 떠올랐다. 그리고 시계 종소리의 마지막 메아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새로운 가면을 쓴 존재를 알아차렸다. 이 새로운 존재에 대한 수군거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 불안과 놀라움 그리고 공포와 혐오감이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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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n Profile with Flowers - Odilon Redon - WikiArt.org


Flowers, c.1903 - Odilon Redon - WikiArt.org


Composition with Flowers - Odilon Redon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501 위대한 화가, 2009. 8. 20., 스티븐 파딩, 박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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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독서에세이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중 케이트 쇼팽 편으로부터 발췌한다. https://www.newsmin.co.kr/news/31292/ 참고.

Library Walk New York City By Lesekreis - Own work, CC0


[네이버 지식백과] 각성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2007. 1. 15., 피터 박스올)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자, 아이들의 부재를 구원처럼 여기는 엄마, 젊은 총각들의 구애를 받는 아내라는 여성은 기존의 관념에서 당연히 부도덕한 인간이다.

처음엔 이 소설에 ‘고독한 영혼A Solitary Soul’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으나 최종적으로 ‘각성’이 되었다.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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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1-15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 각성 좋아해요!! 감동적이었던 ㅠㅠ 아라영의 책에 언급되는군요.

서곡 2023-01-16 10:54   좋아요 1 | URL
네 ㅎ 저는 읽을 땐 기대보단 재미 없다 싶었는데 생각 나는 작품입니다 미미님 한 주 잘 시작하십시오!!

페크pek0501 2023-01-16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독한 각성, 인 거군요...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 제목 좋네요.

서곡 2023-01-16 13:30   좋아요 1 | URL
네 ㅎ 그쵸 ㅋ 오후가 되었네요 페크님 월욜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비체들의 반란과 마녀 풀

루이즈 글릭 - 개기장풀 Witchgrass by Louise Glück • Read A Little Poetry https://readalittlepoetry.com/2005/09/29/witchgrass-by-louise-gluck/


["살아남기 위해 당신의 찬사는/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들판을 만들 것입니다"라는 '개기장풀'의 외침은 정원에서 늘 뽑혀 나가는 잡초가 그에 굴복하지 않고 이 세상을 새롭게 재편하겠다는 호기로운 선언이다.]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1123010003047 (정은귀)

By Harry Rose (macleaygrassman) CC BY 2.0


By Matt Lavin - CC 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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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15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치그라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특별해보이는데, 사진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평범해보여요.
미국이 아니라 어느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잘읽었습니다. 서곡님, 따뜻한 밤 되세요.^^

서곡 2023-01-15 21:21   좋아요 1 | URL
마녀 빗자루를 닮아서 이름이 .... ㅎㅎㅎ 네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시길요!
 

Girl with Tulips, 1910 - Henri Matisse - WikiArt.org


https://www.newsmin.co.kr/news/38220/ 노는 여자가 안전할 때까지 (이라영)




겨울이 깊어 갔고, 팬지 씨앗과 튤립 구근 뭉치들이 6번가의 꽃가게들을 어지러이 채웠다. 갑자기 바람이 몰아쳐 햇살을 하늘 높이 날리고, 꽃장수 바구니의 보라색과 노란색 꽃잎들을 구겼다. 루의 공연은 막을 내렸다.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풋내어린 아마추어다운 풍미로는 스타 자리를 맡아 뉴욕 관중의 변덕에 떠는 겨울을 헤쳐 나가기 역부족이라는 것을 증명한 무대였다. 쇼가 떠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아마 그녀도 눈총 따가운 공연계를 떠나 보다 평화로운 가정생활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봄이 왔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느 배편으로 떠나시나요?"가 인사말 노릇을 하는 계절이었다. 나는 5번가 어느 모퉁이에서 루와 마주쳤다.

"오, 안녕?" 루가 외쳤다. "언제가 출항이에요?" 회색 망토가 동화 속 삽화처럼 그녀 뒤로 활짝 펴졌고, 서늘한 해가 그녀의 의상 주위로 금속 조각들을 뿌렸다. - 재능 있는 여자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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