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으로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듣고 텍스트 일부를 옮겨둔다. 

큰 바위 얼굴 By Nathaniel Hawthorne (1804-1864)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큰 바위 얼굴 [Great Stone Face]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영미문학, 2013. 11., 조윤주, 이동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996897&cid=41773&categoryId=44395




"개더골드 씨가 오셨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길모퉁이를 속력을 내어 달려왔다. 마차 속에서 조그마한 늙은이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피부는 누런빛이었다.

누런 손 ― 이것이야말로 재물을 긁어모은 바로 그 손이었다 ― 마차 창문 밖으로 쑥 나오더니, 동전 몇 닢을 땅 위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볼 때, 이 위인을 개더골드라고 부르는 것도 그럴싸하나, 스캐터코퍼(Scatter copper:동전을 뿌리는 사람)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큰 바위 얼굴과 똑같다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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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책의 날'이라고 해서, 신간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우치다 다쓰루 지음 / 박동섭 옮김)의 목차를 보다가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부분을 찾아 읽고 일부 발췌한다. 

사진: UnsplashAditya Vyas


* 이 글은 앞선 우치다 선생의 강연에서 학교 도서관 사서들과 우치다 선생 사이 오간 질의응답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 계신 여러분도 실은 어떤 경향성을 가진 분들입니다. ‘치유하는 계열’에 있는 사람 중 간호사는 ‘마녀계’입니다. 의사는 자연과학 계열이죠. 이 자연과학 계열의 의사와 마녀 계열의 간호사가 공동으로 치유 작업을 하는 것이 의료의 묘미입니다.

여러분 같은 사서도 마법 계열입니다.

이 세계에는 학교의 규칙, 학교가 설정한 목표, 학교의 가치관 같은 것이 있지만 우리는 마녀라서 다른 가치관으로 일하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것과는 달라요. 거기는 결국 세속의 이야기죠. 우리는 앎의 저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요. 단기적으로 1년간 어떤 업적을 올렸는지 증거가 이러쿵저러쿵, 수치가 이러쿵저러쿵 평가가 이러쿵저러쿵 등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차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봐 주길 부탁합니다." 이렇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자 수가 어땠느니 열람 횟수가 저땠느니 하는 건 아무렴 상관없습니다. 도서관은 애당초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죠.(웃음)

여하튼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부탁은 모두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서 일해 달라는 겁니다. 교장에게 "지금 뭘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마법사라서 말이죠"라고…….(웃음) 아니, 이건 정말로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책 문화라든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교 교육을 생각한다면 학교 안에는 무조건 ‘마법사’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해리 포터 시리즈를 그렇게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보면 선생님들은 전부 미스터리한 비밀을 갖고 있죠. 작금의 학교 선생님은 미스터리한 것을 금지당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꼭 학교에서 미스터리를 담당해 주시길 바랍니다. - 도서관에 마녀가 있을 곳을 확보해야 한다 / 1장 : 도서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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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4-04-23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주년이라고 해리포터 읽는게 학교에서 유행이이라나봐요. 딸래미도 읽겠다해서 영화로만 뗐던 해리포터를 따라 시작하게생겼네요 ㅋ암튼 학교에 마법사가 있어야한다는 말은 생각지도 못한 명언이네요 !

서곡 2024-04-23 16:31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 저도 해리포터시리즈 영화만 보았습니다만 책의 팬들은 책이 훨 더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ㅋㅋ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연극대본이네요 공연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힐도 크롭이 만든 에라스뮈스 흉상 (1950) 구다(Gouda)에 있으며, 이곳은 에라스무스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다. bust of Ermasmus, made by Hildo Krop in 1950 and situated at Gouda.] By Gouwenaar -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첼시 올드 교회의 토머스 모어 조각상, 체인워크, 런던. Statue of Thomas More, Cheyne Walk, Chelsea, London. Chelsea Old Church in background.] By Tarquin Binary - 자작, CC BY-SA 2.5, 위키미디어커먼즈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은 (중략)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들보다 화려한 면은 부족했으나 기초가 튼튼하고 충실했으며, 개인의 학문적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학문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에라스뮈스와 토머스 모어 경은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맞다. 그들은 가까운 친구 사이였으며, 공통점도 많았다. 에라스뮈스보다 모어의 학식이 약간 부족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학식이 풍부했으며, 스콜라 철학을 경멸했다.

또한 둘 모두 재치와 해학을 겸비한 고도로 숙련된 저술가였다. 루터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사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이후 세상은 두 가지 면에서 그들과 같은 유형에게는 너무 폭력적으로 흘러갔다. 모어는 순교의 고통을 당했으며, 에라스뮈스는 무력감에 빠졌다.

에라스뮈스도 모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 혁명 시대 이전의 기질을 보여 주는 적절한 사례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혁명 시대 이전에는 온건한 개혁을 요구하는 태도가 널리 퍼졌는데, 극단주의자의 반동에 소심한 개혁가가 겁을 먹지 않아도 되던 시대였다. 그들은 신학이나 철학에서 스콜라 철학을 배경으로 일어난 보수적 반동사상의 특징인 체계성도 전부 혐오했다. - 에라스뮈스와 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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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인 유터로 [In Uter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942889&ref=y&cid=40942&categoryId=33045

자살한 유명인의 이름을 댔다. 다이앤 아버스, 헤밍웨이 일가, 메릴린 먼로, 실비아 플라스,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불쌍한 커트 코베인.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울었던 횟수를 셌다. 흐르는 시간의 초를 셌다.시간이 이런 식으로 영원히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시간은 그럴 것이다. 그 무한성이 꾸준히, 그리고 일제히, 내가 있든 없든 영원히 펼쳐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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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 즈음 읽었다고 북플이 알려준 '내 휴식과 이완의 해'(오테사 모시페그)로부터

Relaxation Time - Jacek Yerka - WikiArt.org


[동면 후엔 혐오와 상처에서 깨어날까] https://v.daum.net/v/20200327203628388

어느 날에는 누군가가 이스트 77번가 보도의 갓돌에 내놓은 책 무더기를 집으로 가져와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한 권도 빠짐없이 읽었다. 미국 음주운전의 역사를 기록한 책. 인도 요리책. 『전쟁과 평화』. 『마오 II』. 『더미에게 물어봐! 이탈리아어』.

내 미래라는 관념이 갑자기 또렷하게 다가왔다. 즉,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거기 서서 숨을 쉬고 내 몸 주변의 공기를 고요하게 유지한 채 무언가─아마도 어떤 생각─를 포착하려 하면서 그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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