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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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자면 중국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없었다. 요즘에야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놀랍도록 달라진 중국의 발전이나 부유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큰 금액을 제시해 어느 기업의 기술을 빼갔다던지, 세계 대학 순위가 달라지고 있으며 이공계열에 대한 투자를 무섭게 한다던지 하는 뉴스를 접하곤 하지만 전에는 그저 미감과 위생이 부족한 메이드 인 차이나의 나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구도 면적도 비할 바 없는 규모의 중국이 긴 침묵을 깨고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 더이상 관심없이 있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 듣고 미묘하다고 생각했던 말이 한국의 특징 중 하나가 일본은 꼭 이겨먹으려 들고 중국은 무시한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되는 분위기가 있어서였다. 실제로 친일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될만큼 많고, 역사적으로도 지금까지도 중국을 무시할만한 입지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심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에 대해 파악해야 할 때다. 장기적인 집권과 통제가 가능한 사회에서 자원 집중과 정책 지원으로 짜여지고 있는 성장과 발전이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나아가 국제 질서에 어떤 변화를 줄지 두려운 마음으로 욕심많은 이웃의 행보를 주시하게 된다. 

전에 중국의 새로운 최첨단 감시망 천왕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치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 놀랐던 적이 있다. 중국으로 인해 손실되는 우리의 정치, 경제적 안보만 걱정했는데 중국이 대비하는 안보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대비(28)하는 전시 수준에 가깝다(총동원 체제25)는 내용은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내부를 조이는 감시와 고발로 솟아나오는 불만을 외부를 향하도록 돌려 결속을 강하게 만드는 소수민족 탄압과 홍콩, 대만(110)에 대한 압박, 서방 진영에 대한 경계가 다수의 중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내부적으로 혐오와 분열이 커지고 있다는 것에 비하면 성공적인 통제 수단으로 보였다. '중국이라는 역설'이 한때 돌았던 중국군 쿠데타설을 근거 없음(85)으로 시진핑 실각설을 환상(91)으로 일축하고 있다면 중국 내부에서 끓고있는 압박에 대한 반발, 자유를 경험한 젊은 세대의 조용한 저항(62)은 어떤 식으로 뻗어나가게 될지 궁금해졌다. 오히려 이 시진핑 실각설을 앞장서 내세운 국내 스피커들이 '중국 선거 개입설'로 대표되는 혐중 극우 세력과 연결(98)되어 있다는 점이 이 가짜 뉴스가 가진 문제점, 혐중 정서와 현실 회피를 통한 음모론 확대(103)를 드러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반대로 중국 내에서 한국의 상황, 지난 123내란과 계엄의 배경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246)이 놀라웠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당시 윤석열 정권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지 낙관했고, 이에 동조하는 극우 세력에 대한 문제도 뿌리뽑지 못한 채 잠실과 강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음모론을 퍼뜨리고 혐오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사회의 불안은 우리나라에서도 쉬었음 청년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있지만 중국의 청년 세대 현실 또한 만만치 않다는 기사* 역시 종종 보았다. 이미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된 상황에서 AI기술과 로봇 기술의 상용화를 통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자리의 대체(209)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로 인한 불안과 불만을 공포와 감시로 통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새로운 세계 패권 질서를 세우는 것으로 내부의 동요를 외부로 돌리고 구심점을 강화한다. 지난 홍콩 사태 이후로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베네수엘라 침공 등으로 붕괴된 국제 질서와 날선 분위기 아래 '중국도 대만을 침공할까?(164)'는 상황이 궁금했는데 책에서도 대만의 입지(149/180)가 희토류 수출 통제 전략(137)과 함께 미중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되는 것이 자주 등장해 앞으로 이 두 키워드를 관심있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처음 중국에 대해 '관심없음'이라 말했던만큼 가지고 있던 바탕이 부실했음에도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낯선 용어들도 많고 중국 내 정세에 엮인 인물들도 접하게 되지만 파고든다기보다 큰 틀을 잡는다는 느낌으로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전에 박노자의 <야만 시대의 귀환>*을 읽으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세계 패권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에 위기감을 느꼈는데 '중국이라는 역설'은 미중 사이의 우리를 고민하기 앞서, 중국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입지를 제대로 다져야 하는 예민한 시기이다. 내부적으로는 탄핵이 반복되는 등 정치적인 불안정, 사회적 갈등의 심화 같은 문제들을 극복해나가고 일본, 호주, 중동 등 잠재적 위험을 품고 있는 지역끼리의 연대를 통해 대외적인 견제를 영리하게 해나가기 위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 빠진 혐중과 무관심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중국 국영 비즈니스 뉴스 매체 이차이(Yicai)가 중국신고용연구센터의 데이터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유연 고용 노동자 수는 2025년 2억 8,000만 명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무려 3억 2,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추정치가 적중한다면 올해 중국 도시 지역 고용의 40% 이상을 경제 근로자가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제조업과 화이트칼라 부문이 일제히 고용을 축소하면서 갈 곳 없는 청년들과 실직자들이 대거 임시직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결과다. 실제 국가통계국(NBS)에 따르면 학생을 제외한 16~24세 청년 실업 률은 16.3%, 25~29세 실업률은 7.4% 수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야만 시대의 귀환> 박노자. 한겨례출판.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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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알아야 지구를 떠날 수 있지 - 우주시대를 살아갈 십대의 생물학 ㅣ 십대의 교양 1
김동석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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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래'를 떠올렸을때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는 AI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이다. 실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AI는 어쩐지 밀접하게 다가온 친근한 도구로 여겨지는데, 우주는 어쩐지 손에 닿지 않아 멀게 느껴진다. 지구에 두 발 딱 붙이고 버티며 살아갈 작정이지만, 벌써부터 인류는 달로, 화성으로 지구 너머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인류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될지도, 지구의 수명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지구 인생,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주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두는게 좋지 않을까. 오래오래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모두 우주로 떠나게될지도 모르니, 우주에 대해 호기심과 환상만이 가득한 '우알못'과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십대들을 위한 우주생물학 교양 쌓기, '이 정도는 알아야 지구를 떠날 수 있지'를 읽어보았다. 

외계인과 외계생명체의 구분(21)을 그어주는 순간,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가 떠올랐다. 맞다, 로키는 땅콩모양의 커다란 머리통과 작은 키에 팔다리를 가진 형태로 생기지 않았다. 로키는, 로키였다. 하다못해 우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면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책에선 친절하게도 우주생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35) 소개도 해주었는데, 앞으로 맞이할 우주시대에는 우주로 나가는 것이 보편/상용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해보기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소행성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것(95)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왜냐면, 그동안의 빈약한 상상으로라도 소행성의 이동 속도에 대해서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하늘을 바라볼때면 별들의 움직임을 지구를 기준에 두고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자전과 공전 같은 움직임이 어떤 조건이 될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봐도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우주선을 타고 행성 간 이동을 하는 '워프'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 이렇듯 지구와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풀다 보면,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이 넓은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모든 해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과학은 우리를 그 답에 점점 가까이 데려다 주고 있습니다. 108" 

우주생물학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로 나아가 외계 생명체를 찾는 동시에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 어떻게 생명이 시작하고 진화해 왔는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둘이 같은 궁금함에 뿌리를 두고 있고, 미지의 영역을 품고 있으며, 언제든 새로운 발견을 통해 기존의 가설이 다시 정립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아직 우리가 모르는, 다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우주에도 지구에도 많은데, 이렇게 조금씩 풀어지는 우주 공간의 망연함이나 원시지구의 생태계의 신비에 대해 접하게 되면 왜인지 모를 두려움이 생겨나기도 한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이 정도는 알아야 지구를 떠날 수 있지'는 익숙한 <곰 세 마리> 동화를 통해 친절한 접근을 이어간다. 원제가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라는 영국 동화(159)였는지 이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이 동화 속의 소녀 이름을 따서 "생명체가 살기에 '딱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영역(160)"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배웠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도 나왔던 '와우 신호(wow signal)'에 대해 직접 사진 자료(196)로 확인할 수 있었던 친절함도 이 책의 장점이었다. 이런 접근을 통해 알게 된 정보는 앞으로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좋았다. 

또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그동안 지구 최강의 생명체를 이름조차 언급하고 싶지 않은 바퀴벌레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곰벌레'가 꼽힌다(127)는 것이다. 인류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남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그보다 곰벌레나 우주곰팡이, 빗해파리가 더 주목받는다고 하니 세상이 그렇게 잔혹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좋았다. 가끔 우주에서의 대소변 활용법(74)에 대한 전망처럼 거리를 두고 싶은 내용들도 있었지만, 멀게 느껴졌던 우주가 한층 가깝게 여겨지는 친절한 우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초등고학년은 조금 이를 것 같고 중학생 독자들에게 추천해줄만하다. 아무래도 우주생물학을 염두에 두려면 이 시기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물론 우주생물학을 재미있게 접하고 싶은 어른까지 폭넓은 층의 독자에게도 충분히 그 매력이 전달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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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가 바다를 건너면 - 국경을 넘나든 음식으로 보는 한중일 세계사 ㅣ 우리학교 사회 읽는 시간
남원상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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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겹게 싸워댔다. 우리를 우리로 묶는게 어색할 정도로 싸웠고 싸운다. 역사부터, 언어, 운동 경기의 내용, 사람들의 외모, 냄새, 피부색, 유행의 시발점, 연애방식, 문화, 서로 너네한테 관심이 있니 없니 하는 문제로도 싸우고 있다. 그만큼 오래도록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면이 라멘부터 시작했느니 면의 시작이 중국이니 하는 말들은 너무나도 유명해 이제는 시비를 붙여오는 일도 적고, 만두와 교자, 만터우, 딤섬 같은 음식들은 어느 나라를 가던 대체로 호불호없이 모두 맛있게 즐길 수 있을 정도다. 같은 뿌리를 둔 음식이 바다를 건너가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바다를 건너서라도 전해질만큼 '맛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느낀 음식들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어떤 음식이 '원조'인지를 두고 싸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각각 다르게 전부 다 맛있다며 다양하게 즐기는 방향으로 식문화의 폭이 넓어진 듯 하다. 

'돈가스가 바다를 건너면'의 출간 소식을 들은 날은 점심으로 중식을 주문해 먹었었다.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주문해 서비스로 군만두까지 챙겨 먹으면서 문득 이 음식들은 각각 어떤 이름과 맛으로 퍼져나갔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탕수육은 꿔바러우와 덴푸라로, 짬뽕은 차오마멘(초마면)과 나가사키식 짬뽕으로, 짜장면은 작장면과 모리오카 쟈쟈멘으로 굉장히 비슷하거나 같은 뿌리를 가졌다고 할 수 없을만큼 다르기도 했다. 특히나 짜장면은 한국에서 중화요리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음식이지만 한국음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른 맛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음식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왜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는지 알고 먹는다면 음식을 더 맛있고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서비스로 받은 군만두(만두 117) 역시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음식이라 더욱 기대되었다. 책도, 바삭하게 튀겨 낸 군만두의 맛도. 

책을 읽기 전에 메뉴를 살펴보며 이 음식에 대해 어떤 정보를 알고 있을까 점검해보았는데, 일본에 비해 중국은 어떤 음식이 영향을 받았을까 떠올려보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다. 대부분 음식이 중국에서 흘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음식과 현재 모습이 더 비슷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거나 여행을 더 많이 다니며 교류한 빈도가 높은 탓인듯 했다. 제목에 있기도 한 '돈가스'의 경우에도 종종 난제가 되는 경양식 돈가스와 일식 돈가스 중 더 선호하는 것을 고르기처럼 익숙하게 금방 떠오르고 비슷한 맛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돈가스를 떠올려보면 뭐가 있을까, 바로 생각나지 않는다. 비슷한 것으로는 대만의 파이구판이 있고, 생김새로는 치킨을 넓게 펴 튀긴 지파이도 비슷해보인다. 양념치킨 역시 일본의 가라아게는 금방 떠오르는데 유린기, 지파이는 한 박자 늦게 그나마 이게 좀 비슷한 것 같아 보인다. 호떡이나 만두, 탄탄면 같은 음식 이야기를 통해 균형을 잃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한중일은 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같지만 젓가락이 쇠인지 나무인지가 다르고, 밥그릇을 들고 먹는지 내려놓고 먹는지가 다르다.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는지, 찬을 한데 두고 덜어먹는지 따로 받는지도 다 다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점이 끈끈해 피곤하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한데, 잘 알아두어 언젠가 또 벌어질지도 모르는 인터넷 원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지식의 바탕을 만들어두길 바란다. 생각해보니 과거 음식들의 교류는 주로 전쟁과 엮여 있었다. 슈니첼은 아편전쟁 후 중국에 전해졌고(70), 빵 안에 단팥을 넣은 단팥빵(113)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해졌다. 몽골과의 전쟁(179) 이후로 소주, 설렁탕, 두부같은 음식이 들어와 현지화 됐다고 하니, 요즘처럼 평화롭게 여행을 하고, 인터넷에서 말다툼을 하며 서로 문화를 교류하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음식은 과거에만 건너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교류되고 있다. 요즘도 계속해서 그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각국의 음식들이 알려져 점차 현지화 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고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가장 크게는 열풍과도 같았던 탕후루, 이제 새로운 중식 강자로 자리잡은 마라탕과 양꼬치 같은 음식이 있다. 타피오카를 넣은 밀크티 같은 경우는 유명 브랜드의 지분을 한국에서 인수하는 일도 있었다. 한식 역시 명란이나 게장, 조미김 등이 일본으로 퍼져나갔고, 삼겹살 같은 한국식 고기구이, 심지어 두쫀쿠 같은 디저트의 유행은 한국에서의 열풍이 퍼져나가 원재료값의 폭등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만 이런 교류 과정에서 오히려 멀쩡한 명란을 멘타이코라며 일본어를 역으로 가져와 쓰는 가게들이 많아진 것은 아쉽다. 찹쌀떡이 버젓이 있는데도 모찌를 붙이는 것, 샌드위치를 굳이 산도라고 하는 것은 지겹다 못해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아마 이런 불편함 때문에 계속 시비가 사라지지 않고 붙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사보다 음식 자체에 좀 더 집중해 읽기는 했지만, '돈가스가 바다를 건너면'을 읽다보니 이런 세계사라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든다. 선택과목으로 고르고 싶어진다. 요즘은 수학여행으로 외국도 간다던데 여행을 떠나기 전 이런 배경 지식을 쌓아두고 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학교 도서관에 이런 책이 하나씩 있다면 음식 이야기를 읽는 겸 은근슬쩍 동아시아 세계사를 함께 접할 수 있으니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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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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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정말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읽었다. 책에서 주장한 작가와 예술의 분리, "예술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광채는 작가의 도덕적 흠결은 물론이고, 보는 사람의 삐딱한 편견마저 모조리 녹여버린다. 45"는 문장에서, "인공물이 지배하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작가만을 요구하기에 진정한 예술은 더욱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44"는 문장에서 저자가 대체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세상의 그 모든 규율과 도덕, 양심, 정신의 뿌리 같은 것들 위에 예술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결과물이 좋다면 배경은 흐린 눈으로 지워내고 그 가치에 집중해 수용해도 되는 것일까? 도덕성 요구하는 것과 진정한 예술 사이에는 어떤 반비례가 존재한다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적(112) 사고방식이겠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희생되는 것이 있다면, 선을 넘어 자행되는 행위가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마땅히 거부와 배척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 '사람다움'보다 상회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난 6월에 종료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전시가 감당해야 했던 논란과 비판은 이에 대한 응답이라 여겨진다. 

읽는 동안 이것은 가짜 예술이다,하고 고발할 수 있는 범위의 결과물은 어떤 기준을 두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바타>를 가짜 예술(93)로 드는 것은 얄팍하지 않은가. 일반 관객마저 이런 오락 영화를 예술의 범주로 두지 않는다. 다만 로만 폴란스키나 김기덕 같은 감독들의 영화가 그 '모호함'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를 진짜 예술로, 또 찾아볼 가치가 있는 영화로 목록 위에 남겨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남성의 사고를 거쳐 내놓은 영화에 남성이 올려놓은 평가로 추앙받는 과거의 산물들에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는가 싶다. 마찬가지로 왜 인공물, 특히 교훈적 인공물, 공익광고 같은 것들에서 '진짜 예술의 경지'를 논하는지 알 수 없다. 메시지와 함께 누구의 이목이라도 집중시킬만한 의미와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아바타와 마찬가지로 마약, 술, 음주운전을 규제하는 인공물에서 누구도 모호한, 왜 안되는가/나쁜가에 대해 논쟁적으로 사고할 여백을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인식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주입되지 못하는 판에 '진짜 예술'이 되어 개개인에게 직접 사고하고 판단할 여지를 둘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름다움에 대해 숨을 헐떡이게 만드는 면(126)이 있다 했는데, 전에 사람은 어떤 것에 경이로움/압도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했을때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품게 되는 경외/두려움(116)을 꼽은 적이 있어 공감됐다. 다만 생각이 갈리는 부분은 마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재해와 같은 폭발, 압도적인 위력의 파괴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원자폭탄 투하를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강력한 충격을 남긴 '미적 사건'(241)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자행되어 온 식민지배, 말살 정책의 치밀하고 집요한 파괴와 죽음을 두고도 같은 감상을 가지고 있을까? 오히려 이런 의문에 대해 <아바타>처럼 선과 악으로 구분 지어 도덕적 정답을 향해 질주(94)하게 만든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폭탄이라는 사건이 '인간을 이전보다 더욱 소외(251)'되게 만드는 인류에게 더 깊은 상처일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더 치명적이고 깊은 상처일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 그렇다면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성질이 사실 인간의 뇌에 담긴 고유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지닌 거대한 힘이 인간을 통로로 삼아 발현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창의성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188" 

예술을 행하는 주체자가 일종의 통로(186)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작가들이 많은 후기로 언급하고 있다. 작품에 몰입하게 되었을 때, 어느 순간 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나 정해놓은 흐름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작품의 흐름과 결말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게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경험의 순간들이 '통로'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 겸손의 표현일 뿐인지 궁금해졌다. 이 통로의 개념이 연결되어 예술이 가진 예언적인 힘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 내포된 보편적 가치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사회 현상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꿰뚫어보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지하 생활자의 수기>가 20세기 허무주의를 예견 200)은 동의하지만-그런 것들이 결국 걸작이 되고 고전이 되는 것이고-, 영화 속 출입 금지 구역이 10년도 안되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현실이 되었다거나(201) 한 록밴드의 파멸적 노래 가사가 911테러로 재현되었다(202)는 류의 신탁설로 예언적인 힘을 강조하는 방식은 전체적인 내용까지 의심하게 만들만큼 아쉬웠다. 

책의 내용에 의문을 품으며 읽는 동안 나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는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 계속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나의 판단일까, 이런 의문이 필요한 영역이 맞을까, 예술이 작가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존재(45)라면, 예술은 도덕적 잣대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어도 통로일 뿐인 예술가는 마땅한 판결을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 과정에서 작품만 남고 통로는 지워져 아무런 기록도 영광도 얻지 못한다면 '진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을까도 궁금했다. 왜 도덕적 흠결에 대하여 이렇게 집요하게 의문을 가지게 될까 생각해보니, 사회 전반에서 추구하는 다른 가치를 위해 도덕을 버렸을 때 그 사회와 문화는 천박하게 무너져내렸다. 예술은 '도덕적 가치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가치를 무시하면 결국 천박해지고 마는 아이러니 앞에서 막혀 방황했던 것 같다. 아쉬움도 품고 있었지만 이 '투박한 흠집이 결국 균열(173)'을 품고 있었으니 괜찮은 도발 아니었나 싶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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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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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기대가 높은 작가의 신간이라 책을 앞두고 야무지게 읽어야지,하는 각오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혼모노>를 읽었을 때 마치 장면이 보이는 듯 해 영상으로 만들어지기 좋은 이야기라는 감상이 먼저 찾아왔었는데, 기담집인 '인비인'에 작가의 그런 장점이 잘 녹아있다면 얼마나 무섭고도 재미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참 보는 입장마저 민망하게 하던 속내는 <혼모노>에서 더 진하게 느껴졌다면 '인비인'은 읽고나면 소금으로 입을 헹구고 삼베주머니에 팥과 결명자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 눈을 씻어내고픈 생각이 드는 불온함이 컸다. 단순히 기담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괴하거나 섬뜩한 소재를 끌어온 것이 아니라 '인비인', 인간 아닌 인간으로 기술의 산물, 영적인 존재 그리고 사람일 수도 있는 시대와 현실을 담아내려 장기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오독의 소지를 다소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독자의 몫으로 확장될 감상의 여지를 닫을 수 있는 작가의 말이 매 단편 뒤에 이어지는 것도 그 의도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로 보였다. 다만 그것이 답으로 받아들여질지 질문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왜 이 답과 질문에 대한 의식을 하게 되었냐면, 책을 읽다 뭔가 걸리는 듯해 보니 중간을 조금 넘긴 부분에 엽서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뭘까,하고 들여다보니 한면은 사람 형상인데 사람은 아닌 덩어리(34)들이 나뭇가지에 얽힌 그림이었다. 주변엔 온통 벌레 같은 것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요즘 슬슬 러브버그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탓에 엽서에도 그게 반영되었나 싶게 러브버그 떼로 보였다. 엽서의 뒷면에는 '사랑하는 독자님께'로 시작하는 짧은 인사말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 작가가 어느 독자에게서 전해들었다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말*은 메가박스 상영관 통로에 종종 붙어있는 문구였다. 워낙 인상적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역시 그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둔 적도 있어 익숙했다. 그 문장을 전해들었다는 말에 '인비인' 단편들 안의 주요 인물 직업을 영화 감독으로 두곤 했는데 영화관을 자주 찾지는 않으신가 싶었다. 어쩌면 씨지비나 롯데시네마를 주로 이용할지도 모르고. 넷플릭스 보는 대신 <혼모노> 읽으면 된다는 말로 큰 반향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확고한 넷플릭스 이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요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위기에 처한 메가박스중앙의 상황이 궁금해지는 책이 '인비인'이다. 

"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연했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비슷한 외양이, 깨끗한 두루마기와 수치를 모르는 태도가 견딜 수 없었다. 79"
처음 시작엔 조급하게 왜색이 짙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을수록 큰 오해였고 문제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작가구나 싶었다. 특히 요즘 사회 전반으로 수치를 모르는 군상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듯해 심란하던 차에 이렇게 대놓고 '예민하고 어렵겠지만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하는 면이 좋았다. 너무 내면으로 골몰해 들어가지 않고, 말초적인 관심만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는 균형이 보인다.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특유의 감각과 이런 소재, 이런 주제로 틈틈이 써왔다는 기담집을 흡족하게 읽고 나니 그가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어졌다. 예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1999>를 읽고 난 뒤에 느꼈던 강렬한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어리둥절해진다. 소속. 내게 소속이 있던가. 한참 고민하는데 큐가 말을 잇는다. 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186 윤회 (당한) 자들"
이 단편을 쓸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쓸모를 느끼기 위해 서울의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일이 생길 것이란 걸 알았을까. 수치(79)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있고, 그 소속이 그들의 무지성에 가까운 비논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조롱과 혐오마저 오락거리로 소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하다못해 학생들마저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해 혐오 표현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하던 날에, 저들 스스로가 주변의 어른들마저 아무도 이를 지적하거나 계도하지 않은 채 함께 단단해져 갔다는 현실이 참담하고 차가웠다. '인비인'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지, 모여 있을 곳을, 제 쓸모를 그런데서 증명하는 행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다시 어제를 모욕하고 오늘은 기만하며 내일은 훼손하는 게 아닐까. 

의도와 다르게 감상이 뻗어나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내놓은 문장 안에 현실을 꿰는 시각이 담겨 있어 가능했던 감상일테다. 기담집을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은 것도 있지만 현실도 괴담 같아서 자꾸만 서로 얽혀갔던 것 같다. 또 보고싶겠지, 다음이 기다려지겠지 싶은 작가의 매력과 재미가 넘치는 신간 '인비인'이었다.


 *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때 비로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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