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스터 타이거 (반양장) ㅣ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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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파라면 세상도 파래?" 
"나는 그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요." 
...
설날 널을 뛸 때, 단옷날 그네를 탈 때, 제 시선 아래 훤하게 트이던 세상을 계손향은 사랑했다. 그리하여 노월 또한 제가 사랑한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길 바랐다. 그대와 나는 같은 세상을 본다 하였으니. 88" 

책을 읽으면서 올해 초에 봤던 [광장]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광장]은 북한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 서기관으로 파견 온 보리와 교통보안원인 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차가운 겨울의 평양 거리를 배경으로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거리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으로 산책을 대신하고, 같은 식당 안에서 다른 테이블에 각자 마주 앉아서 식사를 대신하고, 늦은 시간 혹은 다리 밑의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1883년 미국에서 온 사절단 노월과 조선 한양의 기생인 계손향 사이의 연애담이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인이 낯선 시대, 노월과 계손향도 다른 외모를 가진 노월을 신기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며 함께 거리를 걷는다. 친구인 영월마저 계손향이 노월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폄하하고 비난하는 시선을 보낼 것이 염려되어 항상 주의를 준다. 이런 편견과 평가의 시선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영월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서로의 마음을 나눠야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닮은 모습을 그린다. [광장]의 두 사람은 결국 감시자들에게 관계가 발각되어 보리의 체류 기간 종료를 고지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별을 안고 있었지만,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현실 앞에서 보리는 복주에게 함께 떠날 것을 청한다. 마찬가지로 [안녕, 미스터 타이거]의 노월 역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이 고향에 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노월과 보내야하는 것을 아는 계손향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 월이의 목소리가 닿은 귓바퀴가 아직 간질간질한데, 월이의 손길이 닿은 손등이 아직 훈훈한데, 세상은 불 꺼진 듯 온통 적막하다. 사람이 난 자리가 이렇게 크다. 고작 한 사람 자리가 너무 크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 세상이다. 229" 

시대과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이국의 남성과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조선/북한의 여성이 주인공인 것, 외모부터 사고방식, 서로의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배경과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차가운 현실 앞에서 겪게되는 좌절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차별과 통제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왜 노력하고 꿈꾸어야 하는지 함께 느끼게 된다. 

노월과 계손향이 15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보리와 복주같지 않았을까.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지나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세상에서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는 차별도 금지도 통제와 편견도 없는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사랑만 할 수 있을까. [안녕, 미스터 타이거]와 [광장] 문장과 영상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표현을 만끽하며 조심스럽게 키워나가는 투명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니 꼭 함께 즐기고 비교도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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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ㅣ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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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한 영혼은 어디로 갈까?" 225"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의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일까 다시 읽었다. 항상 같은 계절에 머무르는 숲, 생명이 살지 않은 숲에 죽었으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찾지 않은 여우가 살고 있다. 여우는 한쪽 눈을 잃고 귀도 상했으며 털도 고르게 남아있지 않아 사고가 났던 때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있는, 보기에 따라 무서운 혹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여우의 이름은 클레어.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 머무르며 길 잃은 영혼들이 가야할 곳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영혼들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 있는 문들 중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문을 찾아가야 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동쪽은 쾌락계, 즐거움을 추구하던 이들이 간다. 서쪽은 초록빛의 발전계로 노동과 봉사와 노력을 사랑한 이들이 간다. 북쪽, 평화계는 연푸른빛이다. 안식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간다. 그리고 진홍빛의 남쪽은, 고통계다.
클레어가 머무는 오두막에 길 잃은 영혼이 찾아오면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맞이해 영혼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살펴 더이상 길을 헤메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길을 잃은 영혼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를 갈구하며 특유의 갈증(22)으로 괴로워하는데, 길잡이인 클레어의 도움으로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문으로 가게 되면 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갈증에 시달리며 클레어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클레어는 이 일에 매우 전문가이다. 

" 클레어는 브릭베인의 쉰 목소리를 떠올렸다. 절대 죽은나무숲 밖으로 나서면 안 된다. 너한테는 여기가 제일 안전해. 94" 

상처입은 외모 때문에 다른 동물과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며 괴물이라 불리는 클레어는 늘 외롭다. 너무 괴로웠던 때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가족도 곁에 있어주지 않은 채 혼자였다는 것이 클레어를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상처받았다. 클레어는 버섯밭에서 키우는 각색의 버섯들과 특별한 '선장'에게 의지하며 길잡이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클레어가 너무나 싫어하는 오소리의 영혼이 오두막을 찾았다. 그리고 멈춰있던 클레어의 시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읽히지 않는 영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오소리의 영혼은 어느 방향으로 보내도 다시 돌아온다. 오소리의 영혼이 갈 곳 없이 헤매는 동안 클레어는 오소리의 이름이 생강촉새라는 것을, 그에게 항상 쓸모없다고 질책하는 아빠와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교활하고 못된 오소리를 싫어했지만 생강촉새는 달랐다.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챙겨주었다. 생강촉새가 오소리답게 오지랖 넓게 군 질문과 행동들은 클레어의 마음을 두드렸다. 클레어의 멈춰진 세상은 생강촉새와의 만남으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쓸쓸하면서 따뜻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 우리가 눈 앞의 작은 것들에 매여 머물러있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클레어를 보면서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기 전에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해보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상처가 남긴 흉터만 기억하다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주려고 했던 존재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강촉새는 클레어를 두드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얽매어있는 클레어에게 질문하고, 클레어가 아끼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일깨워주고, 싫어했던 오소리와도 진짜 친구가 되도록 다가온다. 그리고 클레어가 미뤄왔던 길을 가도록 해준다.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를 읽고 아이들이 클레어에게 어울리는 문은 어떤 것인지, 어디에 도착했을지 생각해보고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문으로 가고 싶은지 골라보는 독후활동을 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 버드 세이버 활용 예시를 함께 찾아보고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내용이 적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동화였다. 마지막까지 감동과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독자를 사로잡는 죽은나무숲의 오두막에 기꺼이 방문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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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매트 존슨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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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였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교외 지역도 보였다. 그 너머로는 숲의 녹색 지붕이 보였다. 고속도로가 신경망처럼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강줄기가 곡선을 이루며 도심지의 고층 건물 사이를 휘돌아 흘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42" 

어느날 갑자기, 아니 어느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본인 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낯선,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왜, 누가, 어떻게 이들을 이주시키는 것일까? '뉴로어로크'의 존재와 그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너무나 거대하고 이해되지 않아 읽을수록 궁금증이 커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으며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했다. 처음엔 우주와 외계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그 뒤엔 삶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다른 세상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음에도 층을 나누고, 맹목된 규칙과 믿음을 만들어내는 이기심과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벗어남으로써 얽매임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드는, 멀어짐으로써 다시 살피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 질문,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상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 우주와 외계 존재가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만큼,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할까. 우주의 어느 행성, -목성의 115여개 위성 중 하나인 에우로파(16)-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고, 심지어 세차장, 칙필레(137)가 있는 '진짜' 도시의 형태 그대로 구현해두고 그 안을 인간으로 채우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쪽에게 과연 의미가 될까? 우리에게나 경악과 흥미를 주는 것이지,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에게 있어 이런 사건은 그저 여흥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가 개미굴을 관찰하거나 벌집을 찾아 꿀을 얻는 것처럼, 길 한편에 난 꽃을 반대로 옮겨 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을수록, '왜'를 생각할수록 지구에서의 인간이 우주에서는 타 생명체들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더 두려워하고 의심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답을 몇 가지 얻는다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고요. 그 답은 더 많은 질문만을 불러올 겁니다. 해답 없는 수수께끼라고요. 그걸 신경 쓰느라 남은 평생 정신이 나가버리거나 아니면 흐름에 순응해서 최대한 이 상황을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곳 주민들처럼 사세요. 받아들여서 자기 삶을 꾸리라고요.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들 모두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겁니다. 87" 

두번째 질문, 순응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 앞에 놓여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지는 것은 태어남과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인다. 거두어짐과 태어남은 선택의 여지없이 존재하게/태어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전자가 지구에서 새로운 시작점으로 옮겨왔음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머리 강사의 조언을 우리 인생과 겹쳐보면 존재와 근원에 대한 질문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어울려 살아가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이것이 진실을 외면한 도망침이었을때, 아무리 진짜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갔을지라도 거짓과 기만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과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세지가 된다. 삶에는 순응하되 거짓에는 질문하고 저항하고 선택해야 한다. 

" 상륙한 순간부터 마음속 짐이 떠내려가는 것 같더라니까. 내 모든 스트레스, 모든 초조함, 모든 학자금 대출, 모든 신용카드 영수증이...... 그냥 흘러가버린 것 같았거든. 내가 여기 도착한 순간에 말이야. 거짓말은 안 할게.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몽롱하기도 했지. 그래도 지금까지 행복했어. 그러니까, 진짜로 행복했다고. 난생처음으로 말이야. 그건 장담할 수 있어. 처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으니까. 233" 

세번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고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해방감. 우리는 가끔 어떤 것들에 얽매인다. 그건 자신의 신념일수도, 돈이나 옷, 작은 액서서리에서 LP나 조립식 장난감, 캐릭터 상품처럼 물질적인 것들일수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기지개를 핀다는, 걸음을 걸을 때 오른발부터 내딛는다는 사소한 반복행동일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얽매이는 긍정적인 것들이고 나쁘게는 빚이나 책임져야 하는 책무(내가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나 싶은 업무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돌봐야 하는 가족일수도 있다. 이 얽매임은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될 것 같은 압박이나 강박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자신의 삶에 발 붙이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많은 인물들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졌을 때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죽음의 5단계'*를 거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에이다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대해 말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았을 때, 너무 소중해서 절대 버리거나 잃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허무하게 놓쳤을 때 처음엔 충격을 받고 괴로웠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절대'라는 것도 없고, 그것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일 없이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무엇에 그렇게 얽매여있었나 가벼워지는 기분도 들었던 것이라 에이다의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읽는 내내 대체 무엇이, 어떻게, 왜 하는 질문과 생각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뉴로어로크' 자체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고, 거두어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의 사회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진실을 직시하고 진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과 순응하는 수많은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라진 사람들과 숨겨진 비밀에 대해 마음껏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놀라며 읽어보면 좋겠다.


*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과 죽어감]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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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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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인 메모리엄]을 두고, '잔혹한 참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서사시' 중 사랑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간질간질했다. "전쟁이 아니었어도 네가 나에게 키스했을까?" 둘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길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키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도 전쟁이 났기 때문에 키스를 했을 것이란 자학적인 질문을 했을까. 하지만 1914년 영국의 한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의 첫 장을 펼치며 마주하게 된 학교 교지 '더 프레슈티언'의 부고와 추모란을 시작으로 시선은 사랑에서 '잔혹한 참호'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적게는 16살에서 대부분 스무살 안팎인 청년들의 이름과 나이가 소속연대나 전투지와 함께 적혀있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청년을 향한 압박이 얼마나 컸던지 군복을 입지 않고 길을 나가면 낯선 사람이 하얀 깃털*을 건네며 "왜 당신들은 전선에 있지 않죠?(40)"하며 압박을 주고 조롱을 하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동조한다. 가족들마저 아버지의 직장, 여동생의 결혼 등 사회적 평판을 위해 열아홉도 채 되지 않은 아들에게 참전을 강요한다. 부고를 알리는 신문에는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전달합니다.(471)"는 문구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죽거나 운이 좋으면 어딘가 부상을 당해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생면부지의 타인을, 아끼는 가족을 몰아내려는 사회의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아 이상하고 무서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집단 내에 비이성적인 광기를 이용해 혼란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전쟁의 그늘 아래에서 시달리는 동안 사랑을 하는 두 소년의 마음 속에도 늘 폭풍이 있었다. 엘우드와 곤트가 어린시절 기숙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보여주며 기숙학교의 묘한 분위기를 함께 드러낸다. 기숙학교 내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성과의 관계를 두고, 서로 짐작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재학중에 잠시 빠질 수 있는 한때의 엇나감으로 치부한다. 졸업하고 나면 이 어린시절의 치기는 묻어두고 정상적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는 어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편의 길이다. 곤트는 '남들처럼' 이 보편의 길을 가고 싶지만 스스로의 성향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에게만큼은 쉽게 닿지 않으려는 엘우드를 의식하는 순간순간, 엘우드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한때의 엇나감이나 어린시절의 치기로 치부될 수 없음을 느낀다.
엘우드와 곤트의 성향 때문인지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 다수가 동성애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보편인지 과장인지 읽으면서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기숙학교의 분위기나 심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보다 더 동성애에 경직되어 있던 시대였음이 곤트가 자신의 성향에 대해 더 압박을 느끼고 엘우드에 대한 마음을 숨기려는 요인으로 다가왔다. 엘우드 역시 곤트를 의식하고 있었는데 동성과의 관계에 불편함을 보이는 곤트를 살피며 마음을 주지 않는 가벼운 관계들을 만들고, 곤트는 엘우드가 가볍게 맺는 관계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금새 저버리는 것을 보고 한순간 가까워졌다 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 다가가길 멈춘다.
이들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 듯 보이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긴장감을 유지하다 입대라는 큰 변화와 함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옥스퍼드에 가서 고전학을 공부(38)하고 싶었던 소년은 겁쟁이로 남지 않기 위해, 졸업을 하면 엘우드도 곤트의 여동생 모드와 결혼을 하고 다른 이들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을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괴로움에, 독일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가해지는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파괴적인 충동으로 입대 신청을 하게 된다. 총탄이 오가는 전선에서 너무나 쉽게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 실수로 같은 편에게 총을 쏘게 된 곤트의 신경이 극에 몰렸음을 알게 된 엘우드도 그의 곁에 있어주기 위해 입대를 한다. 
" 곤트에게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엘우드도 함께 겪고 싶었다. 130"

[인 메모리엄]은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래와 내장이 섞여들어가 썩어 터져나가는 모래주머니, 얼굴에 튀는 누군가의 피와 살점, 죽기 전에 경련하는 뇌의 움직임, 손실된 팔과 다리, 턱 같은 신체의 일부, 제대로 된 철모조차 없이 전선으로 밀려나는 병사들의 죽음. 내 옆의 누군가가 죽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 곤트와 엘우드는 멈췄던 발을 서로에게 내딛는다. "곤트는 겁쟁이였으니,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곤트는 그처럼 무모해질 수 있었다. 233" 전쟁이 아니었다면 서로에게 키스를 하지 않았을 두 사람이 숨기고 속이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어야 할만큼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정신없이 흐름을 따라가느라 감정선을 다 챙기기 못해 겉돌고 숨기기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쉬웠는데, 감상을 정리하며 다시 부분 부분을 살펴보며 읽으니 처음에 다 짐작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금 더 세밀하게 보이는 듯 해 느낌이 달랐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을 지루함 없이 두번쯤 반복하게 되는 몰입, 다시 볼수록 새롭게 눈에 걸리는 미묘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매력을 더하는 책이었다. 너무나 의식되어서 오히려 나다울 수 없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가장 깊숙한 곳에 두고 혼자서만 아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면, 손에 잡힐 듯한 마음이 닿으면 망가질까 바라만 봐야했던 때가 있었다면 [인 메모리엄]의 전쟁 속에서 일어나던 폭풍을 애틋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흰깃털단(the Order of the White Feather)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여성 단체가 남성의 자원입대를 촉구하기 위해 겁쟁이의 상징인 흰 깃털을 주며 조롱·수치심을 유발한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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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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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나이 멸칭이 지겨워지면 새로운 나이 멸칭을 만들어 특정 세대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행태, 계속해서 낙인찍을 나이대를 찾는 행태, 이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나이대는 다 제각각의 멸칭을 갖게 되었다.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이 멸칭으로 조롱하는 사회, 지독한 연령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65" 

한동안 아무데나 다 붙여 쓰던 '00린이(79)'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엔 그 표현이 어떤 일을 시작한 초보나 아직 숙달되지 않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새롭고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마주치다보니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생활에서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이유로 노키즈존이니하는 혐오와 배제를 앞세우면서, 본인의 서툼과 부족함은 어린이라는 이름을 가져다붙여가면서 이해와 포용을 바라고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거나 큰소리를 내는 걸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스스로를 두고 00린이라며 '응애' 농담처럼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 폭력적으로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려고 하면 먼저 인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과 그림부터 준비해둔다. 학군 좋은 거주지는 찾지만 그 학군에서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교육단계는 민원을 넣는다니, 대체 어느 쪽이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나이를 앞세워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나보다 늙었거나 어린 상대를 향한 혐오와 무시를 너무나 쉽게 일삼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어린이 탐구 생활]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나이 묻는 사회] 역시 이런 의문과 불편함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 같아 흥미를 품고 읽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가 하면 첫 만남에 상대방에게 가장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서로의 행동양식이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쌍둥이에게까지 손위아래를 묻는 일(301)이 예사로운 사회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고백하자면 누군가 쌍둥이라고 하면 누가 손위인지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그게 대체 왜 궁금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학습해 온 '위치 찾기'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나이로 대접받으려 하면 그저 도태된 꼰대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나이 묻기와 위치 찾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이값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다. 무엇을 물어도 좋을지 어떤 것을 궁금해하면 좋을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요즘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 듦과 늙음이 같은 말로 간주되는데, 나이 듦과 늙음의 관련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나이 듦이 곧 늙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진정한 여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이다'라는 왜곡된 통념이 반복된다. 여성 노인은 탈성화된 존재이자 할머니로만 간주된다. 250"
나이가 주는 멍에는 사소하면서도 광범위하다. 마흔이 넘으면 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 양갈래 머리는 몇 살까지 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들에 인터넷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나이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떤 머리 모양을 하는지도 제 나이에 걸맞는 것이 있다며 저마다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며 내심 그런가?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 늙었더니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서 외출할 때 전과 다르다는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는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지 않으면 가까운 집 밖도 잘 나가지 않았는데 나이들고는 그냥 막 나가게 되었다. [나이 묻는 사회]를 읽다 나이 든 여성은 탈성화된 존재로 간주된다는 문장에서 스스로가 느끼고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책은 '나이'라는 핵심어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이는 혐오를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나와 다른이를 구분하여 혐오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거기에 '재미'라는 껍데기를 붙여 멸칭을 유행어처럼 소비하는 사회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스스로에게 붙은 멸칭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타인을 향한 혐오는 0린이, 급식, 틀딱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와 관련된 다양한 멸칭들 중에서 내 연령대와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스스로가 거부하려고 해도 이미 그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을 향해 타인이 씌우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시도는 오히려 더 추한 발악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 흐름은 영포티가 초기 좋은 의미로 사용(62)되었다가 어느 순간 나이에 맞지 않는 겉모습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변질된 것과 비슷하다. 

이 나이에 대한 공격은 주로 어리고 늙은 사람들, 생산성과 자기관리(115)를 주요 가치로 두고 이에 취약한 연령층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생산성 높은 젊은 세대마저도 쉬었음 청년층,'노력이 부족한 세대(145)', MZ세대라는 밈으로 혐오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혐오가 어느 세대가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특수성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전 세대를 아울러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한정된 파이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경쟁 상대로 여기는 탓에 심화된 갈등과 충돌이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고착된 연령주의가 존중과 우대의 형식으로 기능하던 과거에서 비하, 혐오, 경멸로 전락해버린 연령차별주의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이에 대한 굳은 생각이 아직도 자리잡기 어려워보이는 '만 나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두살의 나이에도 서열을 구분짓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연령주의가 완화된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이런 문제들도 유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와 구분짓지 않는 연습이 필요함을 의식하면서, 이런 변화는 '어른'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주는 틀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변화를 시작하자고 하니 모양이 재밌어졌지만, 차별하기 위해서 나이를 이용하지 않고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나이를 파악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받침으로 사용되는 '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나이/늙어감을 의식하면서도 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러 방면으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있었다. 

*토머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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