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기존의 나이 멸칭이 지겨워지면 새로운 나이 멸칭을 만들어 특정 세대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행태, 계속해서 낙인찍을 나이대를 찾는 행태, 이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나이대는 다 제각각의 멸칭을 갖게 되었다.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이 멸칭으로 조롱하는 사회, 지독한 연령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65" 

한동안 아무데나 다 붙여 쓰던 '00린이(79)'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엔 그 표현이 어떤 일을 시작한 초보나 아직 숙달되지 않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새롭고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마주치다보니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생활에서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이유로 노키즈존이니하는 혐오와 배제를 앞세우면서, 본인의 서툼과 부족함은 어린이라는 이름을 가져다붙여가면서 이해와 포용을 바라고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거나 큰소리를 내는 걸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스스로를 두고 00린이라며 '응애' 농담처럼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 폭력적으로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려고 하면 먼저 인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과 그림부터 준비해둔다. 학군 좋은 거주지는 찾지만 그 학군에서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교육단계는 민원을 넣는다니, 대체 어느 쪽이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나이를 앞세워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나보다 늙었거나 어린 상대를 향한 혐오와 무시를 너무나 쉽게 일삼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어린이 탐구 생활]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나이 묻는 사회] 역시 이런 의문과 불편함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 같아 흥미를 품고 읽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가 하면 첫 만남에 상대방에게 가장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서로의 행동양식이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쌍둥이에게까지 손위아래를 묻는 일(301)이 예사로운 사회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고백하자면 누군가 쌍둥이라고 하면 누가 손위인지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그게 대체 왜 궁금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학습해 온 '위치 찾기'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나이로 대접받으려 하면 그저 도태된 꼰대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나이 묻기와 위치 찾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이값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다. 무엇을 물어도 좋을지 어떤 것을 궁금해하면 좋을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요즘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 듦과 늙음이 같은 말로 간주되는데, 나이 듦과 늙음의 관련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나이 듦이 곧 늙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진정한 여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이다'라는 왜곡된 통념이 반복된다. 여성 노인은 탈성화된 존재이자 할머니로만 간주된다. 250"
나이가 주는 멍에는 사소하면서도 광범위하다. 마흔이 넘으면 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 양갈래 머리는 몇 살까지 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들에 인터넷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나이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떤 머리 모양을 하는지도 제 나이에 걸맞는 것이 있다며 저마다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며 내심 그런가?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 늙었더니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서 외출할 때 전과 다르다는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는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지 않으면 가까운 집 밖도 잘 나가지 않았는데 나이들고는 그냥 막 나가게 되었다. [나이 묻는 사회]를 읽다 나이 든 여성은 탈성화된 존재로 간주된다는 문장에서 스스로가 느끼고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책은 '나이'라는 핵심어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이는 혐오를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나와 다른이를 구분하여 혐오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거기에 '재미'라는 껍데기를 붙여 멸칭을 유행어처럼 소비하는 사회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스스로에게 붙은 멸칭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타인을 향한 혐오는 0린이, 급식, 틀딱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와 관련된 다양한 멸칭들 중에서 내 연령대와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스스로가 거부하려고 해도 이미 그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을 향해 타인이 씌우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시도는 오히려 더 추한 발악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 흐름은 영포티가 초기 좋은 의미로 사용(62)되었다가 어느 순간 나이에 맞지 않는 겉모습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변질된 것과 비슷하다. 

이 나이에 대한 공격은 주로 어리고 늙은 사람들, 생산성과 자기관리(115)를 주요 가치로 두고 이에 취약한 연령층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생산성 높은 젊은 세대마저도 쉬었음 청년층,'노력이 부족한 세대(145)', MZ세대라는 밈으로 혐오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혐오가 어느 세대가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특수성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전 세대를 아울러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한정된 파이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경쟁 상대로 여기는 탓에 심화된 갈등과 충돌이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고착된 연령주의가 존중과 우대의 형식으로 기능하던 과거에서 비하, 혐오, 경멸로 전락해버린 연령차별주의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이에 대한 굳은 생각이 아직도 자리잡기 어려워보이는 '만 나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두살의 나이에도 서열을 구분짓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연령주의가 완화된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이런 문제들도 유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와 구분짓지 않는 연습이 필요함을 의식하면서, 이런 변화는 '어른'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주는 틀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변화를 시작하자고 하니 모양이 재밌어졌지만, 차별하기 위해서 나이를 이용하지 않고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나이를 파악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받침으로 사용되는 '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나이/늙어감을 의식하면서도 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러 방면으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있었다. 

*토머스 홉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동이란 뭘까, 아니 그 전에 나에게 노동이란 뭘까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소원이 뭐냐하면 통일과 세계평화를 주입받은 대로 출력해냈지만, 로또라는 일확천금의 꿈이 세상에 퍼진 이후로는 로또 당첨을 통한 노동해방을 떠올렸다. 나만 이렇게 세속적인가, 하면 요즘은 덕담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로 하듯이 노동, 일한다, '생업'이란 것이 전과는 확실히 다른 세태이긴 하다. 이 변화가 굳이 요즘만을 뜻하냐 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조차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평생직장'이란 말을 실현하기엔 너무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찌되었든 생에서 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좀 덜 벌더라도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선택이 유연히 받아들여 지기도 하고,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과 함께 노동하지 않는 삶이 보편화 될 것을 기대하게도 되었다. 실제로 AI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국민배당금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노동의 현장에서 인력이 배제되어 가는 이 변화의 흐름이 과연 축복이 될까. 일한다는 것에서 돈벌이 외에 또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생업'의 눈을 빌려보고 싶었다. 

일에 대한 원망과 배척을 쉽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신성성을 담고 있었나보다. '생업'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직업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또 어떨 땐 닫으며 평가를 하고 있었다. 모든 생각을 전부 다 동의하게 된 것은 아니더라도 읽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이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신을 업으로 하는 타투이스트 황도(147)의 인터뷰에서는 순간적으로 가장 먼저 문신은 의료인이 하는 게 아니면 불법이 아니었던가 떠올렸다. 지난 25년 9월 문신사법이 통과(154)되었다는 것을 보고는 평소에 관심있게 알아보지 않았던 것을 타인을 판단하는데 끌어다쓰려고 했구나 싶었다. 드러내놓고 타인을 돕는 일, 힘든 일인데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일, 보통 의지로는 계속 해나가기 어려운 일로 보이는 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책없이 열린 마음으로 읽고는 젊어보이는 사람들, 술과 문신이 잦은 빈도로 언급되는 내용들은 일 외의 다른 잣대로 꼬아보았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강석경(177)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노력하면 변한다며 도저히 안 바뀔 듯한 어르신도 달라진다던(185)' 내용이 나오는데 안의 굳은 마음도 이런 깨달음을 통해 달라지겠지, 달라져야지 싶었다.  

'생업'에서 노동의 현장을 만나게 될 것이란 기대는 했지만 거기에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일'이 겹쳐지게 될 것은 예상치 못했다. 직업 자체가 사람들을 먹이는 농부, 급식 노동자, 요리사, 배달 노동자 같이 먹는 일에 관련된 것들도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는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안에도 요즘은 뭘 먹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이 자신을 살렸는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김치김밥, 치킨, 황도, 요아정, 돼지갈비, 김치찌개, 소주, 막걸리 같은 음식들이 각자의 삶과 얽혀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일 이야기가 되고 사람이 사는 일 이야기로 번진다. 처음엔 '먹고 사는 일'이 생과 업에서 각각 겹쳐지는 것이 재밌었는데, 읽다보니 가장 편하고 가까운 방식으로 각자의 삶이 가진 무거움은 줄이고 거리는 좁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 기민하고 탁월하다 여겨졌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질문하는 사람이 차린 식탁 위에서 한솥밥 먹는 것처럼 마음 열고 정붙이게 되는 과정이 은근하다. 신간들을 보면 '은유 추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래서 그렇구나 싶었다.  

" 강석경은 아들에게 고맙다. 엄마로 살았던 20년 세월은 동준이가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그렇게 가면서 던져놓고 간 이별의 상처가 크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이 결코 다가가지 못하는 삶의 또 다른 영역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동준이가 만들어주었다.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삶의 진리. 그건 그가 요양 보호사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193"
가장 인상깊게 읽은 것은 요양보호사 강석경(177)의 인터뷰였다. 네이버에서 기부 캠페인을 하는데 기부를 할 수 있는 콩이 모이면 항상 '노인' 기부처를 찾아 기부를 한다. 환경, 동물, 아이들 같은 분류로 나눠져 있는 기부처들 중에 사람의 마음이 닿기 가장 어려운 것이 내 딴에는 노인이었다. 모두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어려울까 생각해보니 노인이란 생각이 들어 꼽았는데, 책에서도 노인을 돌보는 일 중 대소변 처리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라며 잘 대해 드려도 느닷없이 니까짓 것들이, 하고 고약한 말들, 어이없는 무례(181)를 분출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징하면서도 찡한 마음을 갖게 한 것도 그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일이 힘들겠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 삶의 굴곡이 품은 진리를 포용한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간이 따뜻하고 빛나게 보였다. 

배우, 싱어송라이터, 유튜버처럼 잘 알려진 사람들도 '생업'안에서 만날 수 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더 관심이 가고 익숙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반가운 마음도 잠시, 신기하게도 지금도 시청과 광화문 같은 거리에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책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진, 정체성과 사연을 가진 사람이라도 '생업' 안에서는 다양한 직업 중 하나를 가진 인터뷰이로 자연스럽게 묶인다. '생업'의 의미가 먹고 사는 일에서 삶으로, 삶에서 다른 사람 마저도 먹이고 살리는 생의 업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명하고 힘들고 돈을 많이 벌고 같은 잣대가 사라지고 그저 존중과 배움만 남게 된다. 그저 돈과 노동으로만 '생업'을 바라보았던 처음의 독자도 함께 사라지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동지가 된다. 어딘가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바라건대 ㅣ 소설, 잇다 7
강경애.한유주 지음 / 작가정신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조합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떠올리며 '바라건대'를 읽었다. 사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전에 읽어보았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던 '소금'과 '원고료 이백 원', '지하촌' 같은 단편들이 이 내용이 어떻게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었지 싶게 어느 샌가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강경애 작품 속에서 그저 살아나가는 것이 괴로움과 얽혀 고통과 매한가지나 다름없는 군상은 자잘한 충격과 짙은 불쾌감을 주었다. 보고있기에 괴로운 가난, 빈대와 파리가 들끓고 헐벗은 아이들이 고름과 오줌을 입에 넣는 집, 좌절과 압박을 못이겨 분풀이로 일삼는 폭력 그리고 태어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너무나 쉬운 죽음들이 도처에 널린 삶은 세상에 대한 연민을 얼마나 더 쌓아야 거부감을 밀어내고 박애의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몰래 애를 낳고도 미역국을 좀 먹어봤으면 하고 그도 아니면 끓인 물이라도 마셔봤으면 하는 본능적인 욕구, 생 파뿌리를 캐다 씹어내는 삶의 끈질김. 모든 것을 탁 놓고 죽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밥을 먹어야겠다, 밥을 먹고 나니 전과는 또 다른 기운이 돎을 깨닫는 모습은 욕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자 그 욕구로 인해 살아내는 삶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남편도 두 아이도 잃고 젖을 먹여돌보던 남의 자식이 그리워 울면서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약함이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된다. 이 극복은 모든 것을 놓으려 할 때, 잃었다고 여겼을 때 매번 제 곤궁함을 알면서도 밥을 챙겨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일자리를 챙겨 보살펴주는 이웃(용애 어머니)이 함께 돕는다. 

이웃의 극복을 위해 도와나서는 박애를 두고 강경애는 '원고료 이백 원'에서 좀 더 분명한 어조로 강조한다. 다만 부인이 벌어 온 원고료 이백원을 두고 뺨을 때리고 한밤에 부인을 쫓아내던 남편과 이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받아줄 데가 없을 것만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잘못을 비는 부인의 모습, 물질의 쓰임을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쓰겠다는 그 숭고한 정신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다는 것이 현재와의 단차가 느껴지는 점이 있다. 지금보니 그 불같은 화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분풀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버려질까봐 두려워 떨면서 돈 벌더니 남편을 우습게 안다며 손을 들었던 남편을 이해해주던 모습에선 전에 몰랐던 아쉬움도 있지만 과거의 사정을 현재의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피로함을 그에게 토할 것이 아니었다.(27)'* 

장애를 가진 탓에 동네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동냥을 하러 다닐 밖에 달리 제 구실을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는 칠성 역시 수없이 꺾였어도 미래를 그리는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칠성의 희망은 때로 열망이 숨겨지지 않을만큼 강렬해서 보고있기 애처로와 불쌍한 마음과 앞날이 캄캄한(154) 생각이 들어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두고 보는 것으로 호위(224)를 대신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봉염네를 집에 들여주었던 호위(64)처럼. 강경애의 글이 삶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적나라하고 수치스러운 밑바닥을 몸에 들러붙은 것처럼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면 한유주의 글은 삶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 바라봄으로써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의 안위를 살피게 되는 마음, 마치 잠든 듯한 저 편의 여자를 지켜보고, 인천을 가야 하는데 수원행을 탄 아이를 신경쓰고, 가방을 든 채 휘청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묻는다. 

강경애의 인물들의 삶과 한유주의 인물들의 시선에는 시공간이 불러오는 단차가 어지러울 정도로 크게 가르고 있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가진 온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이 차고 각박한 냉소 위에 올려졌을때 어딘가에 있을, 있다고 믿으며 버티게 해줄 박애의 온도를 가리킬 이정표가 '바라건대'안에 담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세계가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답을 내리며 책을 덮었다.


* " 그 순간 봉염의 머리에는 선생님이 하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불평을 어머니에게 토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딸만 그르게 생각하고 덤비는 그의 어머니가 너무도 가엾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봉염이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없으면 딴 남은 그만 두고라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한테까지라도 저런 모욕을 받누나'하는 노여운 생각이 들며 이때까지 가난에 들볶이던 불평이 눈등이 뜨겁도록 치밀어 올라온다.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버펄로 키드 ㅣ 미래그림책 200
라스칼 지음, 루이 조스 그림, 밀루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세상은 앞만 보며 달려갔고, 지나간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누구도 무엇도, 그 힘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지요. " 

'버펄로 키드'를 앞에두고 이미 세상에 없는 새 카우아이오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토착새인 카우아이오오는 오오과 종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은 새로 1987년 마지막으로 발견된 수컷 오오의 짝을 찾는 울음소리 녹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0년 카우아이오오는 공식적으로 멸종 선포 된다. 이 마지막 오오가 남긴 울음소리 녹음은 '다시는 오지 않을 암컷을 부르는 소리' 코멘트와 함께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참담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한다. 한때 박제사였던, 그리고 '버펄로 키드'로 남은 잭 본햄의 이야기는 남획되어 멸종 위기에 처했던 북아메리카의 커다란 들소 버펄로를 두고 몸길이 약 20센치 남짓의 카우아이오오와의 닮은 점을 찾게 만들었다. 

버펄로가 멸종되기 전에 잡아 박제를 만들어 보관하려고 길을 떠나온 박제사가 버펄로와 함께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목격한 수많은 뼈의 무덤과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버펄로의 몸을 통해 박제사는 새로운 박제 대상에 대한 흥분과 기대의 마음 대신 생명에 대한 의미와 소명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늙고 커다란 야생 버펄로와 마주하게 된 순간 그 눈에서 확신을 얻게 된다. 동물의 그 눈,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떠올리다보니 아프리카에 갔을 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을 맞이하던 얼룩말을 본 기억이 났다.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던 몸을 가르는 독특한 털 무늬보다 더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건, 파리가 날고 축축한 눈물이 고여 핏발이 선 얼룩말의 눈이었다. 한 생명과 강렬한 조우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자연이 그 앞에 선 인간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나보내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던지고서야 박제사는 버펄로 키드가 되었으리라. 

'버펄로 키드'는 마지막 버펄로가 울음소리를 남기기 전에 그 심각함과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낸 아름답고 강렬한 생명력을 품은 그림책이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지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에게도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버펄로 키드'를 읽는 동안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는데 함께 읽어보고 사라진,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숭고함과 가치를 깨닫고 자연과 생명의 끈질긴 회복력이 주는 놀라움과 감동을 더불어 느껴본다면 좋겠다. 

" 마지막 나무가 쓰러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면 
사람들은 그제야 알게 될 거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 시팅 불"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글 / 프레데릭 백 그림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20170912 프레시안 전홍기혜
** 우디앨런 근황에 순이 프레빈에 관심 UP “동거했던 배우 미아 패로우 양녀…치명적 스캔들” 20130830 아시아투데이
우디 앨런 “한국서 거리의 고아였던 순이, 나와 결혼 후 꽃 피워”
20160505 아시아투데이 
*** 대리모의 출산일에 '출산 연출'사진을 찍은 매건 트레이너
10명 동시 대리모 출산으로 논란을 일으킨 갈립 오즈터크
인도, 우크라이나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대리모 산업에 내몰려 공장과도 같이 대리 출산을 행하고 있는 현실 - KBS1 세계는 지금 20120602
“한국서 아이 입양해오던 미국, 이제는 전세계 대리모 출산 천국” 20140707 경향 
**** 美입양 한국아동 수, 17년만에 다시 부끄러운 세계 1위… 왜? 20111121 조선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오명 벗을까…변화하는 '해외입양' 20230511 복음기도
국가·지자체가 입양 체계 관리…아동 수출국 오명 벗을까? KBS 9시뉴스 202507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