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동네로 갈게 - 시-LIM 앤솔러지
강성은 외 지음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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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커왔던 동네는 그 끝에 민둥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는데, 산부터 아래 도로와 천길에 이르기까지 뻗은 길을 따라 골목골목 집들이 들어찬 꼴이었다. 도로길에서 우리집으로 오르는 만큼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좁다란 골목 안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신자는 아니었지만 어린시절에 그렇듯 때때로 계란을 주거나, 성탄절 행사를 한다고 해서 따라가보았던 그 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나름 첨탑도 올리고 예배당이 번듯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저녁이면 들리던 교회의 종소리, 정확하게는 알림음 같은 짧은 선율이었는데 그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것이 좋아 집안에 있다가도 일부러 시간이 되면 옥상 위로 올라가 해지는 풍경 속에서 퍼지던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곤 했던 기억이 있다.
표제작인 <너희 동네로 갈게 42 _김보나>에서는 '뎅, 하고 저녁 예불의 청동 종소리(43)'가, 오산하의 <모락>에서는 "저녁 예불 종이 울리(98)"고 "두부 장수의 요란한 벨 소리(99)"가 들려왔다는 오랜 동네안에서 잠들어있던 소리들이, 내 경우에는 교회의 종소리 같은 것으로 감각을 깨워냈다. 골목을 타고 멀어지던 딸랑이는 소리를 따라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뛰어나가던 시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거기에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마을의 개념이 종소리가 들리는 곳까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20"는 고명재의 <은혜와 사슴과 나란히 걷기>의 내용이 잊고 있었던 동네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동네 일기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이들과 멀어지기 위해 나는 이들을 알던 모두와 단절했다. 도시가 곧 동네였던, 나의 전주와도. 28 _고선경" 

종종 하는 말이지만 오래도록 자라온 동네가 갑갑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 동네 안에서 끈끈하게 얽혀있던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떠나서, 느슨하게 변한 것이 도리어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서울에 산 지가 더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나에게 서울은 가깝고도 멀다. 14_강성은" 고 하는 것처럼 옛 동네를 떠난지 꽤 지났지만 새 동네의 편리함이 좋아도 어쩐지 좀처럼 정은 붙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에선 어떤 것도 날 붙잡아두는 것이 없이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며 떠다니는 것만 같다. 옛 동네만이 여전히 꿈에도 나온다. 그런 마음이 고선경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28>에 잘 나와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먹먹했다. 떠나온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떠났으나 나 역시 버려진 기분, 소중한 줄 모르고 가벼이 여겼던 것들이 그곳에 놓여져 조용히 낡아버린 상실감이 선명했다. 

재미있는 점은 옛동네의 거의 모든 길을 알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심지어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다니는 길까지- 막상 다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나는 날 가는 곳만 간다. 55"는 것처럼, 어느날 놀러 온 친구가 너희 동네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아느냐며, 같이 가자고 한 곳을 도리어 나는 처음 가보았다. 굳이 이 작은 동네까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먹고 가는 음식을 동네 사람들은 코 앞에 오래두고서도 부러 찾지 않았던 것이다. 가서 먹어본 유명한 맛집의 음식은 맛있었고 친구는 동네에 살면서 그동안 왜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느냐며 놀랐다. 그러게, 너무 가까워서 그랬나봐. 하지만 그 뒤로도 굳이 이 음식점을 찾아 놀러오는 방문자들과만 가끔 가서 맛있게 먹고, 나는 다시 동네 사람 본연의 자세가 되어 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은 동네 사람만의 동네 이용법이 있는 법이다. 

반대로 동네 사람이 부러 찾아가는 동네 이용법도 있다. "피노키오 122" 분식집의 경우는 오랜 지인이 어린시절부터 드나들었다던 떡볶이집의 이름과 같아서 문득 눈에 걸렸다. 그 동네 아이들이 학교 앞 수많은 분식점 중에서 제일로 꼽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고 찾아갔다던 '그 피노키오' 분식집은, 오천원 어치라며 족히 열 명은 먹을 것 같은 양의 말간 국물의 밀떡볶이를 자랑스레 포장해오던 지인 덕분에 알게 되었다. 과연, 피노키오 분식의 떡볶이는 맛있었고 때때로 포장해오기 너무 무겁다며 괜한 너스레를 부리는 지인을 졸라 결국에 분식점이 문을 닫기까지 종종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어, 그럴 리 없겠지만 '그 피노키오'였던가 문득 남의 동네 초등학교 일대를 평정했던 전설의 떡볶이집을 입맛 다시며 추억하게 된 것이다. 

'동네'라는 주제가 특히나 마음을 건드리는 것도 있었지만, 열림원의 시-LIM 앤솔러지 "너희 동네로 갈게"는 시와 산문이 함께 실려 있어 작가의 감성과 시선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시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아주 오랫동안 마음이 일렁였다. 늘 걷던 길을, 익숙한 공간과 스치는 배경같은 주위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다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거나 낯선 동네에서 적응하며 버티는 시간을 보내왔다면, "너희 동네로 갈게"를 만나보길 추천한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 구석구석에서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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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삐딱하게 - 못 말리는 임산부
와타야 리사 지음, 김진환 옮김 / &(앤드)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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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둘이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왠지 내 머릿속에는 노인이 된 우리 두 사람이 들판을 산책하는 광경이 떠올랐어. 만약 가족이 늘어나더라도 마지막엔 결국 둘만 남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더는 바랄게 없다는 기분이 들더라. 8" 

" 죽어! 우리 애는 태어나고 이 자식은 죽어버려! 234" 

이 두 감성이 한 사람의 안에 공존하고 있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솔직하자면 구레타가 마음에 안들었다. 사사건건 원래의 유이는 안그랬는데 거칠어졌다, 달라졌다 하며 호들갑 떠는 태도도 그렇고 특히 유이가 임신 이후로 밥을 안해준다고 불평하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테스트기 두 개를 머리에 꽂은 채 평소와 다른 기세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내가 무서워서 잠을 설칠(33) 정도면 얼마나 심약한 남자란 말인가. 그런데 보라색 빡빡머리(35)가 된 유이가 등장했을땐 결국 나도 놀라버렸다. 당황스러울만해. 그 뒤로 생각해보니 갑자기 가까운 사람이 확 달라지면 놀라고 조금 무섭고 걱정되다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으면 화도 날 것 같아 조금씩 이해가 됐다. 좀 심하게 변하긴 했으니. 

'오늘부터 비딱하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구트현엑이 자동 번역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전해 온 놀란만한 소식들 때문이었다. 개중 일본의 임신 출산 관련 사회 분위기는 절망편에 가까웠다. 임신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하거나 놀리기도 하고, 입덧이나 각종 검사와 출산 시 통증을 줄이는 처치가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모성애의 영역이다' 라고 생각해 산모의 고통을 줄여주는 도움을 고려하지 않거나, 우리가 드라마에서 종종 봐왔던 출산 시 큰소리를 내거나 힘주는 소리같은 것도 주변에 불안감을 준다는 이유로 제재를 한다고 한다. 여성의 몸과 임신, 출산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상황에서 작가가 어떤 발차기를 날려줄지 궁금했다. 

게다가 '못 말리는 임산부'라는 부제를 달고 막 나가는 임산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기에 대체 어떨까, 저런 현실을 잘 비틀었을까 궁금했는데 임신 주체인 유이가 아닌 남편인 구레타의 시선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제대로 잘 전달이 될까 싶었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왜 변하게 되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때와 지금의 유이의 마음은 어떤지 종종 심약한 구레타 대신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구레타가 유이에게 성실히 당해주면서, 그러면서도 조금 더 열심히 그를 살펴보려 애쓰고, 미처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채워진다. 덕분에 첫 임신을 겪으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게 된 부부의 모습에 균형이 잡혔다. 

두 사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일이 곧 사회적인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인물의 여러 면모를 지켜보며 관계 안에서 어떻게 생각이 변화하는지 그것이 항상 같은 속도로 오는 것도,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기에 세상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늘 노력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했다. 저출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유이에게 무통 없이 자연분만을 고집하고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48)을 자연스럽고 이상적으로 여기는 생각이 남아있는 면을 보기도 하고, 시위를 거북해하는 성향(78, 137)을 드러내며 유이를 부끄럽게 여기던 구레타가 유이를 이해하고 감싸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는 순간을 보며 그 변화를 칭찬해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제목이기도 한 '오늘부터'라는 소재를 가끔 일본 만화 같은데서 봤는데, 주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새학기의 시작이나 연고가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 만나게 될 사람들 앞에서 과거와 다르게 모습을 꾸미고 행동하는 설정이었다. '오늘부터 삐딱하게'의 경우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충격이 될만한 변화를 드러내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가발을 쓰고 이전처럼 연기하는 어설픈 뻔뻔함이 보여 귀엽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본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의 작가 와타야 리사의 나름 유쾌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세상을 향한 발차기까지 아끼없이 담은 신작, '오늘부터 삐딱하게' 제법 " 괜찮, 괜찮, 괜찮킹.(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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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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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아보느라 무엇도 쓰기 어려워지는 책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달수는 독방에 갇힌다. 그는 15년 동안 방 안에서 자신이 왜 갇혔는지, 누가 자신을 가뒀는지 알아내기 위해 짐작되는 과거를 적어내린다.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 '이것은 소설인가'는 오달수를 가두었던 독방이라는 공간과 그가 적어내렸던 악행의 기록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올라 7.5층의 작은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듯 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앞에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종이가-앞으로 내가 채워 넣어야 할 빈 공간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표제작인 첫 단편 <이것은 소설인가>부터 이어지는 <묻는 남자>까지 연달아 읽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이었다. "되찾아야 할 '윤리적 관계'"를 넘어 법으로도 걸릴만한 내용들 아닌가.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마음에 맺힌 것은 빌려온 책에 대한 것이었다.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이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내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동희가 자바를 데려와 몇 년을 키웠어도, 자바를 내가 데려온 윤오의 고양이라고 여기고 있듯이.
관철이 나미의 연락을 받은 것처럼, 동희가 윤오에게 연락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떤 이야기는 십년만에 연락한 과거의 지인이 다짜고짜 책을 돌려주겠다며 일상에 끼어드는 내용으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소설이 아니겠지만. 고은규의 글들은 대체로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 블로그에 올렸다던 폭로글이 마치 동의없이 지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삼은 소설들을 꼬집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소설에서처럼 너는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이 멈추게 된다. 이미 쌓아온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서부터 되살아 올 사람을 남겨두고 싶지도 않고 떠오를 잘못을 쌓으며 살고 싶지도 않아 한동안 많은 것을 줄이고 지내왔는데도 그렇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잘했느냐며 되묻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은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이어지는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대의 주거활동은 왜 이토록 많은 잡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집을 위해 치러지는 비용이 커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의 내밀함 때문에? 거주 불능의 상태가 주는 위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떨어진 가치와 고립, 타인이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 소음와 불편을 마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일이 많다.
초반 단편들처럼 나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게 만드는 강렬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집'과 얽힌 불편함들도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내 집이라는 공간마저 내가 짊어지고 통제해야 하는 달팽이(만약 집이 크다면 거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껍질을 지고있는 동안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지는 불편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 그가 새 연인에게 묻는다.
"나 너희 집에 가도 돼?"
새 연인이 답한다.
"뭐가 어렵다고. 가자." 93 <너의 집이 좋아>" 

그 중 이 사소한 대화가 지난 달 읽은 김개미의 시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왜 집으로 온다는 거니>라는 제목인데 시집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중에 하나여서, 다른 시들과 함께 이 시를 알리고 싶어 시집을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과 타인과 나 사이에서 흐르는 여러 감각들을 깨우는 내용인데다 속으로만 담고 있던 것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었다.
집과 나 사이에 타인이 끼어드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이 달라진다. 불편하고 어색한 외부가 된다. 이것은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익명으로 머물다가는 카페같은 곳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편한 태도와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게 된다. 저기는 원래 손을 대지 않는 곳인데 구경해도 괜찮아, 거기는 외출복차림으론 앉지 않지만 괜찮아, 여기는 정리를 안했지만 열어봐도 괜찮아, 우리집은 나 한 사람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하지만 네가 놀러 오겠다면 괜찮아, 하지만 사실은 모두 괜찮으면서 괜찮지 않다. 

이 괜찮지않음을 예사롭게 넘기려는 사람들에게 책은 시선을 맞추고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이게 괜찮으신가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런 책이어서 어려웠고, 힘든 지점이 있었다. 타인의 상처 앞에서 누가, 왜, 어떻게, 어떤 상처인지를 궁금해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을 소홀히했기 때문에. 소설의 경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는, '이것은 소설인가'.


* 올드보이 2003
*단편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자바
*단편 <묻는 남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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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과 결을 담은 우리말 - 풍부한 감정, 다양한 감각, 섬세한 표현의 매력
김경집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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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의외로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의 단호함과 확신,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는 사람도 감화되게 만드는 면이 있었고, 풀어내는 단어들의 면면이 꽤 매력적이기도 했다. 이런 책들은 주제나 방향성이 있는 사전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겠지만 줄줄이 단어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책 중간중간 K-콘텐츠, K-스토리 파워 같은 것들을 두고 우리 문화가 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엮어낸 글도 있어 환기가 된다. 이 단락의 시작은 두번이나 연속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시작해서 저자가 얼마나 그 흥행을 기쁘게 여겼는지 감도 안온다. 재미있게 보고 큰 흥행에 함께 기뻐하기는 했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만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봐야하나 싶었다.
이밖에도 가수 BTS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자주 등장한다. 이 콘텐츠들이 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또 우리의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이 왜 호평을 얻는가를 그 힘의 바탕에 언어가 있었음을 연결해 풀어낸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이유도 다양한 맛이 담긴 우리말로 쓰인 대사들이 가진 미묘한 차이를 어려움 없이 이해해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자연적인 능력(36)이 있고, 이를 섬세하게 풀어낸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가끔은 좀 과한가 싶다가도, 아예 한글이 없이 영어나 일본어 표현이 남용되는 간판이나 멀쩡한 제 이름을 두고도 굳이 바꿔서 쓰는 탓에 불고기, 덮밥, 찹쌀떡 같은 말이 오히려 자리를 잃게 되는 걸 보면 이정도로 아끼고 내세워도 부족하단 생각도 든다. 

-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119)  
- 애운하다(182)
- 시식잖다(113)
- 자늑자늑하다(244)
- 드다르다(260)
- 반지빠르다(363) 

이 단어들을 알고 있거나, 보면 뜻이 어느 정도 감이 올까? 나는 사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 표현이라 따로 적어둔 것이다. 몇 해 전 청소년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적 있는데, '사흘, 글피, 기적 소리, 심심한 사과'같은 표현들의 의미를 모른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때 청소년들이 제시된 단어를 보고 이런 뜻이 아닐까,하고 유추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책을 보면서 이런 뜻일까 예상해보다 처참히 틀리곤 했다. 그래서 그때 요즘애들은 이런 단어를 정말 모르나 의아하게 여겼던 것을 반성했다. 모를 수 있고, 배워서 알면 되는거지. 책에서 소개될 단어들을 첫눈에 봤을때 의미가 대충이라도 느껴지는지 아닌지를 유심히 봤는데, 같은 묶음 안에 있어도 어떤 의미로 쓰일지 감이 오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웬만한 단어들은 보면 대충 느낌이 오겠지, 싶어서 좀 만만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꼽꼽하다(211)'처럼 꿉꿉하다의 작은말이 있을거라 생각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비슷하게는 '반주그레하다(300)'의 큰말 번주그레하다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예 몰랐던 표현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익히 기대했던 점인데, '차끈하다(256)'를 봤을때는 달리 와닿는 면이 있었다. '차끈하다'를 그냥 봐서는 느낌이 잘 안오는데 따끈하다와 연관지으면 반대로 차갑다는 뜻이겠구나 싶어진다. 최근 '식다'는 표현을 두고 뜨거운 음식의 온도가 내려가면 식었다고 하는데,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도 식었다고 표현하게 될 때가 있어 혼자 궁금해하다 용법을 찾아본 적이 있다. 온도가 내려갈 때 쓰는 말이라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면 데워졌다 따뜻해졌다고 사용해야 한다는 결과를 보았지만, 이는 미묘하게 어감이 다르게 여겨져 아직 속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했던 참이다. 마침 따/차"끈하다"를 같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났는데, 다른 독자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또 다른 재밌었던 점은 잘못된 사용을 하고 있는 표현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재밌다기 보다는 부끄러운 점이기도 한데, '어중간하다(125)'가 한자에 우리말 접미사가 붙은 혼혈어이고 이를 '어줍다' 나 '어정뜨다' 같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중간하다는 말을 잘 써와서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과,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익숙한 표현의 실체를 맞닥뜨리게 된 듯한 가벼운 놀람이 있었다. 어중간하다와 같이 묶여있는 '어지빠르다(엊빠르다)(122)'는 정도가 넘고 처져서 어느 한쪽에도 맞지 않다는 뜻이라는데, 엊빠르다를 무심결에 엇비슷하다와 비슷하게 생각했다가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잘못 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 같은 시합에서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엇빠르게/엇빨리 들어왔다는 표현을 구어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했던 것처럼 잘못된 표현이었으나 듣는 이도 대충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었던 것이 우스우면서도 신기하다.
비슷한 실수로는 '암팡지다와 옴팡지다(162)'가 있다. 작지만 암팡져,라는 말을 어리거나 몸집이 작아도 태도 단단하고 기세가 좋다는 의미로 사용해왔던 것처럼 비슷하게 옴팡지다를 써왔는데, 옴팡지다는 '아주 심하거나 지독한 데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책에 들어준 예시처럼 옴팡지게 뒤집어썼다는 말을 보니 그 차이가 이해되었는데, 이렇게 확실히 구분해서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옴팡지다 역시 암팡지다는 의미와 구분없이 잘못 써왔던 것을 깨닫게 됐다. '민틋하다(302)' 역시 맨틋/맨뜻/맨들로 대신해서 써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말을 정말 대충하고 다녔구나 부끄러움과 반성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나와 대화를 나눈 상대는 찰떡같이 뜻을 알아듣고 이어가주었으니, 저자가 왜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 섬세하게 구분하고 공감하는 미묘함이 있다는 것(36/37)을 감탄하였는지도 알 것 같다. 
인터넷에서 한글의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 표현에 대해 감탄하는 외국인 영상*을 본 적 있는데, 그때는 그저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과 그 미묘한 차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재밌고 신기해서 보고 좋아요를 눌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글의 가치와 글맛에 대해 그 사람이 더욱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겨졌다. 저자가 계속해서 의성어와 의태어의 가치에 대해 강조(189 의성어와 의태어라는 보물창고)하는 것을 보니, 당연한 것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봐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 우리말의 풍부하고 다양한 부사와 형용사는 문화와 콘텐츠 영역에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런데 언어의 경제성이 중요한 구어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안 쓴다. 그래서 그런 낱말을 만나려면 부득이 문어, 즉 글자로 만나야 하는데 독서 인구가 갈수록 빠르게 줄고 있으니 이러한 언어들이 소멸된다. 그것이 얼마나 큰 문화적 손실인지는 잃고 난 뒤에야 뼈아프게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몸에 필요한 비타민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문화의 진짜 필수영양소인 낱말을 잃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84" 

저자는 우리말의 장점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지 않아 점점 잊혀지고 사라지는 언어의 소멸에 대한 큰 우려를 표한다. 말이란 자꾸 써야 퍼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53)며 쓰지 않으면 무용한 것에 지나지 않(34)으니 죽은 언어가 되지 않도록 잘 사용되지 않는, 그러나 소중한 우리말 표현을 가끔이라도 불러내(43) 볼 것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문화와 언어의 힘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이를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보고 정책과 지원을 펼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272)도 함께 담아냈다. 당장 눈앞의 이익(경제/돈)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인 힘이 되어줄 문화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린 행보(282)를 짚어준다. 책안의 'k-데모크라시의 힘(139)' 내용은 요즘 개봉하여 주연 배우들과 관람객들마저 공격을 받고 있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평을 담고 있어 우려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맥락을 읽지 못하고 정치성향으로 피아를 구분하여 욕하고 비난하고 매도하며 검증이니, 사상, 매국이니 하는 잣대를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리는 탓에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 언어는 계속해서 생성, 변화, 소멸한다. 새로운 언어가 나오는 만큼 새로운 사고와 감각이 탄생한다. 언어는 모든 콘텐츠의 원천이다. 우리말에 널리 깔려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연구하며 그런 사유와 감각의 방식을 새로운 콘텐츠 영역에 이식하고 배양하는 것이 차별적이며 지속적인 한류의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만 바꿔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 198"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읽을수록 재밌다. 하나씩 단어와의 관계를 풀어가며 읽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 의미를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지, 의미를 짐작하는 정도인지 알고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실히 설명이 되는지 구분해가며 마주했다. 이게 저자가 말한 "낱말 만지기(233)"와 비슷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낱말 만지기'라는 개념을 지난 23년 [어른의 말.글 감각]이라는 책에서 선보였다고 하는데, 기호로서의 문자를 감각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알아보는 활동이라 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경험이라는 것을 그대로 적용한 활동이 아닌가, [어른의 말.글 감각]의 내용도 궁금해졌다. 겉만 봐서는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딱딱한 어휘집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기대 이상의 깊이와 새로운 발견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책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언어가 사라지면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도 함께 사라진다. 안 쓰면 사라진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은 "나의 언어가 곧 나의 삶이다"와 같은 값이고, "내 말과 삶에서 빚어낸 사유가 내 콘텐츠이다"와 이어진다. "말이 곧 얼이다"라는 말은 상투어가 아니라 속이 꽉 찬 말이다. 얼은 감각과 감정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거기에 사유가 담겨야 한다. 그래서 사유의 언어가 필요하다. 381" 


*2021년 3월 EBS '당신의 문해력'
*인스타그램 anssem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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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맘마의 원물 간식 레시피 - 건강한 재료로 입맛을 사로잡는 아이 간식 레시피 120
임혜나(유안맘마)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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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화력이 떨어져가는게 체감되길래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좀 더 깨끗하고 자연적인 식단으로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채소와 과일을 잘 챙겨먹으려고 하는데 매번 채소는 샐러드나 쌈으로 먹거나 과일은 생으로 또는 졸여서 잼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늘 같은 메뉴만 먹는 것 같아 좀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마침 '유안맘마의 원물 간식 레시피'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원하는 요리법을 찾아보는게 흔해서 책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가지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놓은 책으로 요리법을 참고할 수 있으니 좋았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그 재료의 내가 찾은 한 가지 요리법만 알게 되지만, 책으로 정리된 요리법을 참고하면 하나의 재료를 여러가지로 변주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요리법들 중 더 내 입맛에 잘 맞는 방식을 골라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예를들면 감자를 재료로 한 레시피만으로도 감자채소스콘(71), 3분 감자빵(92), 감자더블치즈빵(94), 감자양파스프(112), 감자식빵롤(122), 감자뚱크루아상(128), 브로콜리/치즈감자볼(148), 감자치즈호떡(172), 감자버터팝콘(194), 감자에그타르(246) 등이 있는데 생각지 못했던 요리법도 알 수 있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 밖에도 고구마나 계란, 호박, 소고기, 두부, 당근, 양파, 바나나, 브로콜리, 치즈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간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구하기 어렵거나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재료가 아니라 흔한 재료기 때문에 집에 있는 재료로도 충분히 따라해볼 수 있었다. 레시피 중에서는 마침 집에 사둔지 좀 지난 바나나가 있어서 '바나나파운드케이크259'를 따라서 만들어보았다. 오븐을 이용해서 익히는 시간을 감 잡는게 조금 어려워서 같은 재료를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도 익혀보았는데, 어떻게 만들던 은은한 단맛이 나는 순한 맛의 간식이 완성되어 좋았다. 

간식 레시피라고 하지만 채소큐브, 양파잼, 두부마요네즈, 라구소스를 만들어 식사 준비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소소한 팁도 포함되어 있다. 레시피들이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게 짧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안해본 요리도 도전할 수 있었다. 책에 '소고기소보로(44)'를 만드는 방법도 나오는데, 레시피를 따라 주먹밥도 만들어 보고 남은 소보로는 칼국수에 올리는 고명으로 김밥의 속재료로도 활용해 보았는데 맛있었다. 첫 도전이었지만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 요즘은 고구마와 단호박이 나오기 시작하니 이 재료를 활용한 레시피도 따라해 볼 생각이다. 

저자의 레시피북 기획 의도가 아이에게 원물로 직접 만든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이지만, 속이 편안해지는 간식을 찾아야 할 나이대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간소화한 조리법과 재료,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와 조리도구 이용, 부담되지 않는 맛과 성분이 큰 장점인 레시피북으로 건강한 간식, 식사대용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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