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과 결을 담은 우리말 - 풍부한 감정, 다양한 감각, 섬세한 표현의 매력
김경집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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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의외로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의 단호함과 확신,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는 사람도 감화되게 만드는 면이 있었고, 풀어내는 단어들의 면면이 꽤 매력적이기도 했다. 이런 책들은 주제나 방향성이 있는 사전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겠지만 줄줄이 단어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책 중간중간 K-콘텐츠, K-스토리 파워 같은 것들을 두고 우리 문화가 세계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엮어낸 글도 있어 환기가 된다. 이 단락의 시작은 두번이나 연속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시작해서 저자가 얼마나 그 흥행을 기쁘게 여겼는지 감도 안온다. 재미있게 보고 큰 흥행에 함께 기뻐하기는 했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만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봐야하나 싶었다.
이밖에도 가수 BTS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도 자주 등장한다. 이 콘텐츠들이 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또 우리의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이 왜 호평을 얻는가를 그 힘의 바탕에 언어가 있었음을 연결해 풀어낸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이유도 다양한 맛이 담긴 우리말로 쓰인 대사들이 가진 미묘한 차이를 어려움 없이 이해해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자연적인 능력(36)이 있고, 이를 섬세하게 풀어낸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가끔은 좀 과한가 싶다가도, 아예 한글이 없이 영어나 일본어 표현이 남용되는 간판이나 멀쩡한 제 이름을 두고도 굳이 바꿔서 쓰는 탓에 불고기, 덮밥, 찹쌀떡 같은 말이 오히려 자리를 잃게 되는 걸 보면 이정도로 아끼고 내세워도 부족하단 생각도 든다. 

-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119)  
- 애운하다(182)
- 시식잖다(113)
- 자늑자늑하다(244)
- 드다르다(260)
- 반지빠르다(363) 

이 단어들을 알고 있거나, 보면 뜻이 어느 정도 감이 올까? 나는 사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 표현이라 따로 적어둔 것이다. 몇 해 전 청소년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적 있는데, '사흘, 글피, 기적 소리, 심심한 사과'같은 표현들의 의미를 모른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때 청소년들이 제시된 단어를 보고 이런 뜻이 아닐까,하고 유추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책을 보면서 이런 뜻일까 예상해보다 처참히 틀리곤 했다. 그래서 그때 요즘애들은 이런 단어를 정말 모르나 의아하게 여겼던 것을 반성했다. 모를 수 있고, 배워서 알면 되는거지. 책에서 소개될 단어들을 첫눈에 봤을때 의미가 대충이라도 느껴지는지 아닌지를 유심히 봤는데, 같은 묶음 안에 있어도 어떤 의미로 쓰일지 감이 오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웬만한 단어들은 보면 대충 느낌이 오겠지, 싶어서 좀 만만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꼽꼽하다(211)'처럼 꿉꿉하다의 작은말이 있을거라 생각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비슷하게는 '반주그레하다(300)'의 큰말 번주그레하다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예 몰랐던 표현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익히 기대했던 점인데, '차끈하다(256)'를 봤을때는 달리 와닿는 면이 있었다. '차끈하다'를 그냥 봐서는 느낌이 잘 안오는데 따끈하다와 연관지으면 반대로 차갑다는 뜻이겠구나 싶어진다. 최근 '식다'는 표현을 두고 뜨거운 음식의 온도가 내려가면 식었다고 하는데,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도 식었다고 표현하게 될 때가 있어 혼자 궁금해하다 용법을 찾아본 적이 있다. 온도가 내려갈 때 쓰는 말이라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올라가면 데워졌다 따뜻해졌다고 사용해야 한다는 결과를 보았지만, 이는 미묘하게 어감이 다르게 여겨져 아직 속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했던 참이다. 마침 따/차"끈하다"를 같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났는데, 다른 독자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또 다른 재밌었던 점은 잘못된 사용을 하고 있는 표현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재밌다기 보다는 부끄러운 점이기도 한데, '어중간하다(125)'가 한자에 우리말 접미사가 붙은 혼혈어이고 이를 '어줍다' 나 '어정뜨다' 같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중간하다는 말을 잘 써와서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과,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익숙한 표현의 실체를 맞닥뜨리게 된 듯한 가벼운 놀람이 있었다. 어중간하다와 같이 묶여있는 '어지빠르다(엊빠르다)(122)'는 정도가 넘고 처져서 어느 한쪽에도 맞지 않다는 뜻이라는데, 엊빠르다를 무심결에 엇비슷하다와 비슷하게 생각했다가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잘못 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 같은 시합에서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엇빠르게/엇빨리 들어왔다는 표현을 구어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했던 것처럼 잘못된 표현이었으나 듣는 이도 대충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었던 것이 우스우면서도 신기하다.
비슷한 실수로는 '암팡지다와 옴팡지다(162)'가 있다. 작지만 암팡져,라는 말을 어리거나 몸집이 작아도 태도 단단하고 기세가 좋다는 의미로 사용해왔던 것처럼 비슷하게 옴팡지다를 써왔는데, 옴팡지다는 '아주 심하거나 지독한 데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책에 들어준 예시처럼 옴팡지게 뒤집어썼다는 말을 보니 그 차이가 이해되었는데, 이렇게 확실히 구분해서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옴팡지다 역시 암팡지다는 의미와 구분없이 잘못 써왔던 것을 깨닫게 됐다. '민틋하다(302)' 역시 맨틋/맨뜻/맨들로 대신해서 써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말을 정말 대충하고 다녔구나 부끄러움과 반성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나와 대화를 나눈 상대는 찰떡같이 뜻을 알아듣고 이어가주었으니, 저자가 왜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 섬세하게 구분하고 공감하는 미묘함이 있다는 것(36/37)을 감탄하였는지도 알 것 같다. 
인터넷에서 한글의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 표현에 대해 감탄하는 외국인 영상*을 본 적 있는데, 그때는 그저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과 그 미묘한 차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재밌고 신기해서 보고 좋아요를 눌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글의 가치와 글맛에 대해 그 사람이 더욱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겨졌다. 저자가 계속해서 의성어와 의태어의 가치에 대해 강조(189 의성어와 의태어라는 보물창고)하는 것을 보니, 당연한 것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봐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 우리말의 풍부하고 다양한 부사와 형용사는 문화와 콘텐츠 영역에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런데 언어의 경제성이 중요한 구어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안 쓴다. 그래서 그런 낱말을 만나려면 부득이 문어, 즉 글자로 만나야 하는데 독서 인구가 갈수록 빠르게 줄고 있으니 이러한 언어들이 소멸된다. 그것이 얼마나 큰 문화적 손실인지는 잃고 난 뒤에야 뼈아프게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몸에 필요한 비타민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문화의 진짜 필수영양소인 낱말을 잃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84" 

저자는 우리말의 장점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지 않아 점점 잊혀지고 사라지는 언어의 소멸에 대한 큰 우려를 표한다. 말이란 자꾸 써야 퍼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53)며 쓰지 않으면 무용한 것에 지나지 않(34)으니 죽은 언어가 되지 않도록 잘 사용되지 않는, 그러나 소중한 우리말 표현을 가끔이라도 불러내(43) 볼 것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문화와 언어의 힘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이를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보고 정책과 지원을 펼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272)도 함께 담아냈다. 당장 눈앞의 이익(경제/돈)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인 힘이 되어줄 문화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린 행보(282)를 짚어준다. 책안의 'k-데모크라시의 힘(139)' 내용은 요즘 개봉하여 주연 배우들과 관람객들마저 공격을 받고 있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평을 담고 있어 우려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맥락을 읽지 못하고 정치성향으로 피아를 구분하여 욕하고 비난하고 매도하며 검증이니, 사상, 매국이니 하는 잣대를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리는 탓에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 언어는 계속해서 생성, 변화, 소멸한다. 새로운 언어가 나오는 만큼 새로운 사고와 감각이 탄생한다. 언어는 모든 콘텐츠의 원천이다. 우리말에 널리 깔려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연구하며 그런 사유와 감각의 방식을 새로운 콘텐츠 영역에 이식하고 배양하는 것이 차별적이며 지속적인 한류의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만 바꿔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 198"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읽을수록 재밌다. 하나씩 단어와의 관계를 풀어가며 읽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 의미를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지, 의미를 짐작하는 정도인지 알고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실히 설명이 되는지 구분해가며 마주했다. 이게 저자가 말한 "낱말 만지기(233)"와 비슷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낱말 만지기'라는 개념을 지난 23년 [어른의 말.글 감각]이라는 책에서 선보였다고 하는데, 기호로서의 문자를 감각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알아보는 활동이라 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경험이라는 것을 그대로 적용한 활동이 아닌가, [어른의 말.글 감각]의 내용도 궁금해졌다. 겉만 봐서는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딱딱한 어휘집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기대 이상의 깊이와 새로운 발견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책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언어가 사라지면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도 함께 사라진다. 안 쓰면 사라진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은 "나의 언어가 곧 나의 삶이다"와 같은 값이고, "내 말과 삶에서 빚어낸 사유가 내 콘텐츠이다"와 이어진다. "말이 곧 얼이다"라는 말은 상투어가 아니라 속이 꽉 찬 말이다. 얼은 감각과 감정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거기에 사유가 담겨야 한다. 그래서 사유의 언어가 필요하다. 381" 


*2021년 3월 EBS '당신의 문해력'
*인스타그램 anssem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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