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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평점 :
자신을 돌아보느라 무엇도 쓰기 어려워지는 책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달수는 독방에 갇힌다. 그는 15년 동안 방 안에서 자신이 왜 갇혔는지, 누가 자신을 가뒀는지 알아내기 위해 짐작되는 과거를 적어내린다.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 '이것은 소설인가'는 오달수를 가두었던 독방이라는 공간과 그가 적어내렸던 악행의 기록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올라 7.5층의 작은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듯 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앞에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종이가-앞으로 내가 채워 넣어야 할 빈 공간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표제작인 첫 단편 <이것은 소설인가>부터 이어지는 <묻는 남자>까지 연달아 읽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이었다. "되찾아야 할 '윤리적 관계'"를 넘어 법으로도 걸릴만한 내용들 아닌가.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마음에 맺힌 것은 빌려온 책에 대한 것이었다.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이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내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동희가 자바를 데려와 몇 년을 키웠어도, 자바를 내가 데려온 윤오의 고양이라고 여기고 있듯이.
관철이 나미의 연락을 받은 것처럼, 동희가 윤오에게 연락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떤 이야기는 십년만에 연락한 과거의 지인이 다짜고짜 책을 돌려주겠다며 일상에 끼어드는 내용으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소설이 아니겠지만. 고은규의 글들은 대체로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 블로그에 올렸다던 폭로글이 마치 동의없이 지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삼은 소설들을 꼬집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소설에서처럼 너는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이 멈추게 된다. 이미 쌓아온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서부터 되살아 올 사람을 남겨두고 싶지도 않고 떠오를 잘못을 쌓으며 살고 싶지도 않아 한동안 많은 것을 줄이고 지내왔는데도 그렇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잘했느냐며 되묻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은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이어지는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대의 주거활동은 왜 이토록 많은 잡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집을 위해 치러지는 비용이 커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의 내밀함 때문에? 거주 불능의 상태가 주는 위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떨어진 가치와 고립, 타인이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 소음와 불편을 마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일이 많다.
초반 단편들처럼 나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게 만드는 강렬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집'과 얽힌 불편함들도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내 집이라는 공간마저 내가 짊어지고 통제해야 하는 달팽이(만약 집이 크다면 거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껍질을 지고있는 동안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지는 불편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 그가 새 연인에게 묻는다.
"나 너희 집에 가도 돼?"
새 연인이 답한다.
"뭐가 어렵다고. 가자." 93 <너의 집이 좋아>"
그 중 이 사소한 대화가 지난 달 읽은 김개미의 시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왜 집으로 온다는 거니>라는 제목인데 시집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중에 하나여서, 다른 시들과 함께 이 시를 알리고 싶어 시집을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과 타인과 나 사이에서 흐르는 여러 감각들을 깨우는 내용인데다 속으로만 담고 있던 것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었다.
집과 나 사이에 타인이 끼어드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이 달라진다. 불편하고 어색한 외부가 된다. 이것은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익명으로 머물다가는 카페같은 곳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편한 태도와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게 된다. 저기는 원래 손을 대지 않는 곳인데 구경해도 괜찮아, 거기는 외출복차림으론 앉지 않지만 괜찮아, 여기는 정리를 안했지만 열어봐도 괜찮아, 우리집은 나 한 사람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하지만 네가 놀러 오겠다면 괜찮아, 하지만 사실은 모두 괜찮으면서 괜찮지 않다.
이 괜찮지않음을 예사롭게 넘기려는 사람들에게 책은 시선을 맞추고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이게 괜찮으신가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런 책이어서 어려웠고, 힘든 지점이 있었다. 타인의 상처 앞에서 누가, 왜, 어떻게, 어떤 상처인지를 궁금해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을 소홀히했기 때문에. 소설의 경계에서 빠져나와 이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주는, '이것은 소설인가'.
* 올드보이 2003
*단편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자바
*단편 <묻는 남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