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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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것들은 더하는 것보다 덜해나가는 과정이 더 많다는 것을 마주할때면 그만 마음이 암담해진다.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지금은 얻었어도 나중엔 덜어내야 하는 값이 된다니, 인생을 맨몸으로 왔다 또 맨몸으로 가는 것이라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진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부모님 연세 즈음의 분들이 병원을 찾는 소식이 늘었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까지 암에 걸렸던 일처럼 '아프다'는 것이 아주 괴롭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고통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에게 그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서 심지어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어른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조차도 사실은 늙음과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집 짓기'를 읽으면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관을 쓰게 되는거 아닌가, 아버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이비드가 겪은 주변 사람들의 "암과 종양의 연대기(295)"는 시종일관 마음을 가라앉혔다. 특히 친구인 존의 죽음은 " 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189) "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저자가 느꼈을 타격과 상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첫 달의 두 번째 화요일에 오는 이메일 알람을 삭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갔다.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과정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부분은 때로는 위트있고 섬세하여 꽤 마음이 가게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슬픔으로 감싸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유쾌했던 부분은 '허멜 장례 회관'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2000달러짜리 화장용 관을 구경하려고 했을 때 폴이 " 헉, 안에 누가 있어! (96) " 라며 농담을 했을 땐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 내가 관심있어할 만한 어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것은 아닌지 기대하기도 했었다. 아마 폴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어떤 감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의 미국 남성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다. sns에 올려둔 책 사진 밑에 좋은 책이라며 댓글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미국적인, 차고와 공구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교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었나 보다. 라고 짐작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식으로 인터넷에서 본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여, 때때로 일상에서의 부모님 사진을 찍어둔다. 이전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지만 언젠가 가장 보고 싶을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며 최대한 몰래, 자연스럽게 찍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를 준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담겼는데 최근 지인에게도 권유해보았다가 그의 부모님께서 '죽은 사람 사진 두고 봐서 좋을 거 없다'는 말을 하셨다는 듣고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여전히 때때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중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남은 이별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 이라고 오은 시인이 남겨둔 문구를 다시 본다. 나눌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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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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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조금씩 어긋났던 것들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 있는 소소한 어긋남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쳐 결국은 늦어버린 약속이나, 말 그대로 길이 어긋나 서로 상대방이 늦었다며 불만을 품었던 일, 조금 늦거나 일찍 산 주식, 놓쳐버린 인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쉽고 어떤 것들은 무덤덤하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것인지, 그게 너를 열받게 할 것이라는 것인지 꽃같은 표지없이 제목만으로는 가늠이 어려웠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지고, 그 어긋남 속에서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니 그 모든 어긋남의 복기와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있었는지 모른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항상 말해왔는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 몇 편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남은터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를 읽고 나서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세이가 싫은게 아니라, 유행을 탔던 특정 스타일의 에세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혹은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여성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에세이들만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시작은 마찬가지로 불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울린 수많은 딸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쩔수가 없나보다.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20)가 나오니 눈물부터 앞선다. 필연적인 상실에 대한 불안에 오늘은 부모님과 사진 한 장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번 마음이 열리고 나니, 다른 글들도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기록해둘때 다시 볼 마음으로 표시를 해두는데 다 읽고나니 어쩐지 무용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꺼내두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밀한 경험에 대한 내용도 있고, 그래서 그런 꼭지들에 대해서 무엇이라 쓸수도 없었다. 그저 공감했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함께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를테면 초반에 금연하지 못하는 남편(32)에 대한 글은 처음에 불만을 가지면서 비난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사회초년생시절부터 밥벌이가 괴로워지면 이 일을 반평생넘게 계속한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친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불만을 품었던 부모님의 습관들에 대해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의사에 대한 이야기(273)를 읽으며 의사들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병듦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뿐인 시대에, 종종 각종 질환별 명의 목록이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저장해두기까지 한. 실제적으로 의사는 권위적인 태도로 반존대를 섞어서 사실만을 전달한다. 기대할 것은 좋은 실력이지 친절함은 아니라는 듯이. 간호사가 친절함을 기본 평가항목에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병원 벽에 붙은 간호사 친절 만족도 평가의 별점을 보면서 의사의 치료 만족도 평가는 왜 별점으로 매겨져 전시되지 않는지 생각했다. 일만 잘하면 된다면 간호사도 친절할 필요는 없을텐데. 의사의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또 전부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환자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공감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과 같아서 사람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아직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남겨둔 부분들이 언젠가 내 인생에서도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지인(204)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이미 끊긴 과거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됐을때 나는 과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일이 부조리하다.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생각하다보면 그 의미가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진다. 품이 들고 복잡한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자 늘리기 보다 정리하기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에 관계맺기는 더 쉬워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달라졌다는 말이 나을지, 여전하다는 말이 나을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의 중간중간 엽서같기도 하고, 작은 그림같기도 한 종이가 끼워져있었다. 말 그대로 끼워져있는 줄 알고 무심결에 잡아당기다 하마터면 그대로 찢을 뻔 했다. 이런 게 어디에 더 있는건가 찾아보니 과연 몇장이 더 들어가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은 아닌데, 보다보니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책의 내용도 그렇고, 작은 그림도, 90년대 시절에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온 가계부 중간중간에 끼워져있던 일반인의 수기나 작가의 에세이같은 글이었는데, 일상의 소소함을 담은 내용이 인상적이라 오래도록 간직했다가 어느사이에 잃어버린 그 책이 떠올랐다. 정식 발매된 책이 아니라 판촉용으로 나온 가계부에 실린 글이라 내 머리속의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는 글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그동안 저평가했던 에세이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할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걸까. 그도 아니면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가 대단히 괜찮은 것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읽어보길 추천한만한 이유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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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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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악한 자를 위한 휴식은 없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 둘 다 잠을 자지 않았다. (384) "

 

 이 문장을 읽을 때 쯤, 시간은 새벽을 지나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사악해졌다. 사실 순식간이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순수운동' 아래에서 순수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으리라. 어떤 내용인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에는 읽기 어려웠다. 웬만한 고어물들도 아무렇지 않게 보는데, 단지 문장이 주는 스트레스가 그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가족- 남편과 아들마저도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되는 진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그만 읽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를 연상시킨다. 오히려 '스텝포드 와이프'가 좀 더 세련된 방식이랄까, 칩을 이식하고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영화에서는 짖음방지기를 찬 사람이 전기자극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으니. '스텝포드 와이프'와 강아지 짖음방지기의 조화로 탄생한 소설같다. 하루에 정해진 단어만큼만 말할 수 있고, 그 이상 말을 하면 카운터를 통해 전기 자극을 받게 된다. 단어 개수가 늘어날수록 자극의 강도도 커진다.는 카운터의 기능은 말을 빼앗는다는 것과 사람을 동물과 같이 취급한다는 -심지어 동물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벌과 고릴라의 언어(412)에 대해, 12년 동안 언어없이 자라난 소녀에 대한 다큐멘터리(451) 등을 꺼낸다. 언어가 인간에게 얼마나 필수적인지, 언어가 있다는 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 영장류들과도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그리고 원래 가졌던 것을 빼앗긴 세대와 빼앗긴 채로 자라나는 세대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패트릭과 진의 딸 소니아는 인지 언어학자인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하루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놀라운 성과를 보인다.(145) 어린 소니아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상으로 가르쳐온 진의 교육도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언어와 인간존엄의 상실을 꾸준히 연관시킨다.  

 

 로렌조의 등장은 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자 그녀의 권리였던 투표를 포기하던, 무슨 일이 벌어지던 손을 놓고 있던 진이 행동하기 위한 계기가 만들어지는 요소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성들의 '순수운동'으로 억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과 아들마저 증오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진이 그만은 특별히 다르게 여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가 외국인이고, 순응하는 패트릭과는 달리 용기있어 보인다는 점들도 진이 " 목소리보다 잃을 게 훨씬 많(196) "음에도 불륜을 저지른 것에 이해가 갈만한 부분은 없었다. 게다가 그 난감한 상황에서 네명의 아이들과 새 생명을 함께 아우르기 위한 패트릭의 결말은, 음. 책의 최대 약점이 아닐까싶다.   

 

 세상이 워낙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다보니,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의 내용도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겨지지 않았다. 책 속의 '현대 기독교 철학 입문'의 내용을 말 그대로 반길 사람들이 현실에도 존재할 것이고, 그 내용을 반대로 바꿔서 남성에게 거는 제약으로 만든다면 그 또한 반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불안정한 때를 틈타 느닷없이 돌출되는 인간의 광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휴지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로 사재기를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니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권리의 행사를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이 "82년생 김지영"처럼 화제가 되고 도마에 오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때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 책은 그보다 더할텐데.

 

 초반의 내용들 중에서 스티븐의 언행처럼 읽기에 거북한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물 흐르듯이 쭉 읽혔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가 궁금해서 계속 뒷장으로 넘어갈수밖에 없었다. 설정이 과격했던 것에 비해 후반부의 내용은 생각보다 인도적이고 미온적으로 마무리지어져서 의외였다. 뒷심이 약하다고 해야할까, 저자가 언어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건가 싶어졌다. 이 정도 반항은 몇 나라의 독재정권이 그러하듯 지역을 봉쇄하고 탱크 끌고가서 군부대로 제압해버리면 진압될 일인데. 그랬다면 영원히 고통받는 독자가 되었겠지만, 어쨌든 마무리와 몇몇 부분은 좀 아쉬웠다. 색다른 정신적 고통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신선한 설정이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핵심이겠지만 한국 독자들은 일제강점기의 민족말살정책이 떠올라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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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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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처럼 벽과 밀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때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그 유명한 분단선을 꼽는다. 원래는 하나였던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은 38선. 국경을 나눠놓은 선이 어디에는 없겠냐 하겠지만 한 나라 안에서 갈라진 이념에 따라 이만큼 서로간의 왕래를 막아놓은 선은 없다.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쌓아놓은 국경조차도 이보다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가로막힌 선은 곧 장벽이다. 땅의 가운데에 벽이 세워진 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절과 상실이 사회의 분열과 사람들의 냉담의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립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라, 어느 순간 피로해졌다. 대립이 있기에 도리어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이웃국가에서 몸소 보여준 탓에, 대립이 사라진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립은 종종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 마음을 괴롭혔다.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성별의 갈등이 치열했다. 이는 범죄와 사회구조, 복지, 소비, 문화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여혐, 남혐이라는 말이 생겼다. 맘충과 노키즈존, 틀딱, 김여사, 개저씨같은 혐오 표현이 세대를 갈랐다. 나와 생각이, 지위가, 성별이, 연령이, 심지어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지 찍어먹는지에 따라서도 편을 가른다. 나는 찍먹.

 

 그래서 '벽이 만든 세계사'를 봤을 때 이런 대립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만연한 것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느끼게 만드는 혐오의 심화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고대 기록물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하는 말이 써있는 것처럼 세상의 분열이 심각한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변화해왔던 과정으로 봐도 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럼 대립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하여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대한 염증과 불안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서문에서 저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유로 들어 책을 소개했기에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책내용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위해 책배를 보면 언뜻 사진을 여럿 실은 에세이가 아닐까 싶게 첨부된 이미지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세계의 벽에 대한 내용이라 여행 관련 책이라 생각될만큼 각지의 벽에 관련된 사진 자료들이 많다. 세계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좀 어렵거나 역사적 내용이 많이 들어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염려됐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저자의 역량이 튼튼해 읽기 좋았다. 만리장성은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는 잘 몰랐던 이야기라, 토끼장벽은 인터넷에서 본 적 있어서 초반부터 쉼없이 읽혔다.

 

 '코뮌 장벽'에 대해서부터는 관심있던 주제들과 가까워져서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프랑스의 '코뮌 장벽' 부분을 읽으면서 농학농민혁명과 광주를 떠올렸다. '게토'는 일제강점기를, '베를린 장벽'은 38선을. 세계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닮아있고, 우리의 역사도 세계사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벽이 가져다 준 장점 중 하나로 비무장지대가 훼손되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특이점까지. 책은 요즘 국제사회가 '세계를 하나로'라는 표어를 허울삼아 다국적 기업이 배불릴 시절을 지나 글로벌같은 것은 벗어던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까지 큰 흐름을 다루고 있어 읽다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금도 대립중인 지역과 난민 문제들 외에 대부분의 벽들이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결말을 보며 복잡한 마음은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대립을 통해 생겨난 벽들이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를 잃거나 교훈으로 남았듯이, 지금의 대립과 벽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다만 그 과정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피로해지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인도주의적 태도를 잃지 않고 해결해야할 복잡한 문제일테니.

 

 책을 읽는 도중에도 갑자기 발생한 코로나 전염병 문제로 한중일, 거기에 베트남까지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수위가 불안만큼 치솟고 있었다. 서양권에서는 동양에 대한 인종차별적 테러도 심심치않게 보였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조용히 심화되던 사이비 종교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런 때에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타 가짜 뉴스를 내보내고 분열을 조장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전 정권의 마지막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몇번이나 탄핵을 화두로 올리는 보수진영을 보며, 청원에 서명한 50만의 일부를 보며, 자유 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에 서명한 180만 일부를 떠올린다. 5천 1백만의 인구 중 2.8%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조ㄱㅌ 전 자한당 최고위원의 발언을 떠올린다.

 

 "쌓아 올릴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를 생각할만큼 이 첨예한 대립은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벽을 만드는 것은 저편과 이편으로 나누어 같음을 강조하고 다름을 배척하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들의 공통점도 그러하다. 나와 추구하는 것, 생각이 같은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등을 돌리다 못해 혐오하게 되는 현상을 과거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움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다른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은 깊이있게 생각하고 변화시켜 보고 싶다면, 최근 대두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고 싶다면 '벽이 만든 세계사'를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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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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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앉아 시집을 읽고 있으니 어딘가 어색했다. 때때로 시집을 한두권 챙겨읽는데, 시집을 읽고 있자면 어쩐지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붐비는 전철안이든, 소란한 카페에서든 시집을 읽는다는 행위는 당신도 떠올릴 수 있는 오래된 이미지의 전형이라 지금은 도리어 어색했다. 마치 갈라파고스화 '되어가는 기분이다'.

 

 겨울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평소만큼의 기운을 내지 못했다. 혼자있는 동안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것이 습관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소리가 빠져나간 공간을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럴때는 시집이지, 하고 시집 한 권을 읽기로 했다. 젊은축에 속하는 시인의 시는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길어지지 않는 분량의 시들이 편한데 조금 벅차게 읽었다.

 

 반복되는 시어들 사이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문장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시집을 다 읽고나니 허무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정해져있는 것은 없지만 시를 그렇게는 읽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욕심이 생겨 몇번을 더 뒤적여 읽어보아도 아, 역시나 시는 어렵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겨놓은 조각을 이리저리 맞춰보느라 애썼다.

 

 내가 시를 쓴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럴 깜냥도 없지만 아무래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버린 속내를 가리고 싶을 것이라 짐작해보았다. 시집을 다 읽고, 커피잔을 비우고는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벽에 거꾸로 걸어 말려놓은 꽃다발을 떼네어 버렸다. 오늘이 아니면 또 한동안은 버리지 못할 것 같았다. 빈벽을 때때로 바라보며 감상을 남긴다.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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