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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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처럼 벽과 밀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때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그 유명한 분단선을 꼽는다. 원래는 하나였던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은 38선. 국경을 나눠놓은 선이 어디에는 없겠냐 하겠지만 한 나라 안에서 갈라진 이념에 따라 이만큼 서로간의 왕래를 막아놓은 선은 없다. 미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쌓아놓은 국경조차도 이보다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가로막힌 선은 곧 장벽이다. 땅의 가운데에 벽이 세워진 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절과 상실이 사회의 분열과 사람들의 냉담의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립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라, 어느 순간 피로해졌다. 대립이 있기에 도리어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이웃국가에서 몸소 보여준 탓에, 대립이 사라진 세상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립은 종종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 마음을 괴롭혔다.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성별의 갈등이 치열했다. 이는 범죄와 사회구조, 복지, 소비, 문화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여혐, 남혐이라는 말이 생겼다. 맘충과 노키즈존, 틀딱, 김여사, 개저씨같은 혐오 표현이 세대를 갈랐다. 나와 생각이, 지위가, 성별이, 연령이, 심지어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지 찍어먹는지에 따라서도 편을 가른다. 나는 찍먹.

 

 그래서 '벽이 만든 세계사'를 봤을 때 이런 대립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만연한 것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느끼게 만드는 혐오의 심화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고대 기록물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하는 말이 써있는 것처럼 세상의 분열이 심각한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변화해왔던 과정으로 봐도 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럼 대립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하여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대한 염증과 불안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서문에서 저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유로 들어 책을 소개했기에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책내용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위해 책배를 보면 언뜻 사진을 여럿 실은 에세이가 아닐까 싶게 첨부된 이미지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세계의 벽에 대한 내용이라 여행 관련 책이라 생각될만큼 각지의 벽에 관련된 사진 자료들이 많다. 세계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좀 어렵거나 역사적 내용이 많이 들어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염려됐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저자의 역량이 튼튼해 읽기 좋았다. 만리장성은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는 잘 몰랐던 이야기라, 토끼장벽은 인터넷에서 본 적 있어서 초반부터 쉼없이 읽혔다.

 

 '코뮌 장벽'에 대해서부터는 관심있던 주제들과 가까워져서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프랑스의 '코뮌 장벽' 부분을 읽으면서 농학농민혁명과 광주를 떠올렸다. '게토'는 일제강점기를, '베를린 장벽'은 38선을. 세계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닮아있고, 우리의 역사도 세계사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벽이 가져다 준 장점 중 하나로 비무장지대가 훼손되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특이점까지. 책은 요즘 국제사회가 '세계를 하나로'라는 표어를 허울삼아 다국적 기업이 배불릴 시절을 지나 글로벌같은 것은 벗어던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까지 큰 흐름을 다루고 있어 읽다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금도 대립중인 지역과 난민 문제들 외에 대부분의 벽들이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결말을 보며 복잡한 마음은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대립을 통해 생겨난 벽들이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를 잃거나 교훈으로 남았듯이, 지금의 대립과 벽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다만 그 과정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피로해지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인도주의적 태도를 잃지 않고 해결해야할 복잡한 문제일테니.

 

 책을 읽는 도중에도 갑자기 발생한 코로나 전염병 문제로 한중일, 거기에 베트남까지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의 수위가 불안만큼 치솟고 있었다. 서양권에서는 동양에 대한 인종차별적 테러도 심심치않게 보였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조용히 심화되던 사이비 종교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런 때에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타 가짜 뉴스를 내보내고 분열을 조장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전 정권의 마지막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몇번이나 탄핵을 화두로 올리는 보수진영을 보며, 청원에 서명한 50만의 일부를 보며, 자유 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에 서명한 180만 일부를 떠올린다. 5천 1백만의 인구 중 2.8%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조ㄱㅌ 전 자한당 최고위원의 발언을 떠올린다.

 

 "쌓아 올릴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를 생각할만큼 이 첨예한 대립은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벽을 만드는 것은 저편과 이편으로 나누어 같음을 강조하고 다름을 배척하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들의 공통점도 그러하다. 나와 추구하는 것, 생각이 같은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등을 돌리다 못해 혐오하게 되는 현상을 과거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움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다른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은 깊이있게 생각하고 변화시켜 보고 싶다면, 최근 대두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고 싶다면 '벽이 만든 세계사'를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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