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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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조금씩 어긋났던 것들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 있는 소소한 어긋남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쳐 결국은 늦어버린 약속이나, 말 그대로 길이 어긋나 서로 상대방이 늦었다며 불만을 품었던 일, 조금 늦거나 일찍 산 주식, 놓쳐버린 인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쉽고 어떤 것들은 무덤덤하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것인지, 그게 너를 열받게 할 것이라는 것인지 꽃같은 표지없이 제목만으로는 가늠이 어려웠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지고, 그 어긋남 속에서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니 그 모든 어긋남의 복기와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있었는지 모른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항상 말해왔는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 몇 편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남은터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를 읽고 나서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세이가 싫은게 아니라, 유행을 탔던 특정 스타일의 에세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혹은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여성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에세이들만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시작은 마찬가지로 불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울린 수많은 딸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쩔수가 없나보다.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20)가 나오니 눈물부터 앞선다. 필연적인 상실에 대한 불안에 오늘은 부모님과 사진 한 장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번 마음이 열리고 나니, 다른 글들도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기록해둘때 다시 볼 마음으로 표시를 해두는데 다 읽고나니 어쩐지 무용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꺼내두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밀한 경험에 대한 내용도 있고, 그래서 그런 꼭지들에 대해서 무엇이라 쓸수도 없었다. 그저 공감했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함께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를테면 초반에 금연하지 못하는 남편(32)에 대한 글은 처음에 불만을 가지면서 비난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사회초년생시절부터 밥벌이가 괴로워지면 이 일을 반평생넘게 계속한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친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불만을 품었던 부모님의 습관들에 대해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의사에 대한 이야기(273)를 읽으며 의사들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병듦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뿐인 시대에, 종종 각종 질환별 명의 목록이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저장해두기까지 한. 실제적으로 의사는 권위적인 태도로 반존대를 섞어서 사실만을 전달한다. 기대할 것은 좋은 실력이지 친절함은 아니라는 듯이. 간호사가 친절함을 기본 평가항목에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병원 벽에 붙은 간호사 친절 만족도 평가의 별점을 보면서 의사의 치료 만족도 평가는 왜 별점으로 매겨져 전시되지 않는지 생각했다. 일만 잘하면 된다면 간호사도 친절할 필요는 없을텐데. 의사의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또 전부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환자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공감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과 같아서 사람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아직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남겨둔 부분들이 언젠가 내 인생에서도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지인(204)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이미 끊긴 과거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됐을때 나는 과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일이 부조리하다.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생각하다보면 그 의미가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진다. 품이 들고 복잡한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자 늘리기 보다 정리하기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에 관계맺기는 더 쉬워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달라졌다는 말이 나을지, 여전하다는 말이 나을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의 중간중간 엽서같기도 하고, 작은 그림같기도 한 종이가 끼워져있었다. 말 그대로 끼워져있는 줄 알고 무심결에 잡아당기다 하마터면 그대로 찢을 뻔 했다. 이런 게 어디에 더 있는건가 찾아보니 과연 몇장이 더 들어가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은 아닌데, 보다보니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책의 내용도 그렇고, 작은 그림도, 90년대 시절에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온 가계부 중간중간에 끼워져있던 일반인의 수기나 작가의 에세이같은 글이었는데, 일상의 소소함을 담은 내용이 인상적이라 오래도록 간직했다가 어느사이에 잃어버린 그 책이 떠올랐다. 정식 발매된 책이 아니라 판촉용으로 나온 가계부에 실린 글이라 내 머리속의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는 글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그동안 저평가했던 에세이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할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걸까. 그도 아니면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가 대단히 괜찮은 것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읽어보길 추천한만한 이유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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