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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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것들은 더하는 것보다 덜해나가는 과정이 더 많다는 것을 마주할때면 그만 마음이 암담해진다.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지금은 얻었어도 나중엔 덜어내야 하는 값이 된다니, 인생을 맨몸으로 왔다 또 맨몸으로 가는 것이라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진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부모님 연세 즈음의 분들이 병원을 찾는 소식이 늘었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까지 암에 걸렸던 일처럼 '아프다'는 것이 아주 괴롭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고통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에게 그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서 심지어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어른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조차도 사실은 늙음과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집 짓기'를 읽으면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관을 쓰게 되는거 아닌가, 아버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이비드가 겪은 주변 사람들의 "암과 종양의 연대기(295)"는 시종일관 마음을 가라앉혔다. 특히 친구인 존의 죽음은 " 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189) "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저자가 느꼈을 타격과 상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첫 달의 두 번째 화요일에 오는 이메일 알람을 삭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갔다.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과정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부분은 때로는 위트있고 섬세하여 꽤 마음이 가게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슬픔으로 감싸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유쾌했던 부분은 '허멜 장례 회관'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2000달러짜리 화장용 관을 구경하려고 했을 때 폴이 " 헉, 안에 누가 있어! (96) " 라며 농담을 했을 땐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 내가 관심있어할 만한 어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것은 아닌지 기대하기도 했었다. 아마 폴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어떤 감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의 미국 남성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다. sns에 올려둔 책 사진 밑에 좋은 책이라며 댓글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미국적인, 차고와 공구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교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었나 보다. 라고 짐작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식으로 인터넷에서 본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여, 때때로 일상에서의 부모님 사진을 찍어둔다. 이전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지만 언젠가 가장 보고 싶을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며 최대한 몰래, 자연스럽게 찍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를 준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담겼는데 최근 지인에게도 권유해보았다가 그의 부모님께서 '죽은 사람 사진 두고 봐서 좋을 거 없다'는 말을 하셨다는 듣고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여전히 때때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중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남은 이별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 이라고 오은 시인이 남겨둔 문구를 다시 본다. 나눌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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