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파도 트리플 35
이서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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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주인공은 아주 오래 전에 먼 미래의 지구를 구했던 영웅이었다. 근 30년만에 스크린에서 마주한 그는 중년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군인으로 살아오면서 마주한 수많은 죽음을 두고 그는 질문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죽음의 대상은 나일수도 있고 내 옆의 누군가일수도 있다. 죽고 사는 일은 우연에 가까운 순간에 좌우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선을 넘은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 그리움, 신을 흉내 내는 놀이 같은 불온하고 불경한 경계를 그려내는 '방랑, 파도' 역시 비슷한 질문을 한다.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으며, 확고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생에 대하여 기꺼이 바다에, 땅 위에, 하늘의 이 편과 저 편으로 선을 그어가며 생과 몰의 간극을 가늠한다.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진 인연과 갚지 못한 해원, 사는 것처럼 묶여있고 자유로운 것처럼 죽은 사람들이 오래된 마을에 얽혀있다. 

" 나는 묻고 싶었다. 종종 굽어살피시는지. 이곳을, 이 어둑한 곳을. 그러나 거대한 존재는 내 슬픔을 주워주지 않는다. 거둬 가주지도 않는다.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슬픔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51" 

세 이야기가 마치 순서가 흐트러진 한 이야기나 다름없이 얽혀있었다. 담요 위에 늘어놓은 패를 이리저리 섞어 세 몫으로 나눠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 달리보이기도 하고, 끊어진 것 같았던 흔적이 이어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백이나 반이나, 혹은 지애나 지환이나, 향자나 미자나, 혜란이나 소녀나, 최씨나 최형원이나 모두가 그 위에서 섞였다 짝이 되었다 다시 흩어져나가는 화투패처럼 알 수 없는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한 판 놀려졌다. 어떨 때는 서로 묶여 점수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맞지 않아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뜻밖에 어그러져 그대로 묶인 채 멈춰있기도 하면서.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배워도 모를 규칙 앞에서 이렇게 뒤집힌 내 패도 언젠가 날 수 있을지 자꾸만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판이 어떻게 끝이 날지 숨죽이며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 불행한 사람은 불행으로 인해 고통받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사실로 인해 한 번 더 고통받는다. 불행한 사람이라는 낙인은 고약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가지각색의 이유로 각자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신의 불행을 능숙하고 훌륭하게 감추는 요령을 고요히 단련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고백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으며 고급 도자기처럼 집 안에 고이 모셔두고 아주 정성스럽게 갈고 닦는다. 누군가 이걸 알아채거나 눈치채지 않도록 비밀스럽고 신중하고 교묘하게. 106" 

한 동네 안에서 어느 집 사정이 어떤지 들여다보듯 알고 지내던 시절부터 오래도록 자라왔던 탓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듯 해도 다 알고, 소문이 비밀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 갑갑하고 싫었던 때가 있었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산다는 것도 그것과 비슷해보였다. 요즘은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내 집에 어떤 불행을 도자기처럼 모셔두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두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자유롭고 편하냐고 하면 그보다는 어딘지 섭섭하고 심심한 마음이 더 잦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모르는 불행과 아무도 관심없는 낙인 마저도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단절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우리 생은 서로가 얽혀 한 판 위에서 이리저리 섞여 패가 맞듯 부딪혀가며 싸우고 놀아야 그제야 점수도 나는 것 같다. 문구점 노인의 부인에게서 향자에게 그리고 소녀에게로 전해지는 이 놀이는 이렇게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방랑, 파도'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점은, 방금 스스로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나갈 수 없게 되는, 점차 과거의 기억만 남기고 가까운 것들은 잊어버리는, 평생 사방이 물인 곳에서 한번 물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했던 것을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가는, 소중히 하던 것을 기꺼이 '너 가져라'하고 내주어도 괜찮을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부는 바람에 긴 치마폭이 흔들리는 것, 구름이 바다 위를 지나가는 것, 해초가 비밀스럽게 흔들리는 것, 모래가 바닷물에 적셔드는 것, 우리가 늙어가는 것. 99"처럼 자연의 여상한 흐름 안에서 당연한 이치에 따라 늙어가고 또 죽는 일을 자연스럽게 상상해보게 만든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릴 흔드는 파도 같기도 하구나, 위를 타고 휩쓸리면서 사는구나.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서 생을 지나보낸다는 것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 이야기를 위해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163)'는 것을 그토록 오래 속으로 쌓아왔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짧지만 삶에 대한 울림을 남기는 깊이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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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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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누군가가, 심지어 내가 나를 믿기 전부터,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그 누군가가 그저 내 엄마일지라도. 74" 

언젠가부터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 느껴지는 것들은 시작하기 어려워졌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그런 씁쓰레한 느낌을 오히려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해진 불행을 향해 가는 듯한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져 괴로웠다. 우리의 오귀스트에게 쌓여가는 약간의 불운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황망한 생의 종착점 같은 것들이 미묘했다. 어쩐지 '오라질, 운수가 좋더라니'*하던 나쁜 결말의 암시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에바의 이야기를 볼 때도 자꾸만 머뭇거리던 그 망설임이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될까봐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도 에바의 삶은 그만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오귀스트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 에바의 삶이 쓰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낮의 불운' 안에서의 모든 주인공들은 서로의 궤적이 아주 잠시 겹치거나 때로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렇게 한알씩 꿰어지는 구슬처럼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줍다보면 내 주변의 사람들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진다. 내가 보고 있던 상대방의 단면을 통해 내렸던 판단과 단절이 아쉽고, 타인의 내면에 담겨 있을 깊은 우주를 기대하고 궁금해지게 만든다. 사람에 대한 이해하고 싶어지는 마음, 새삼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읽고 보고 쓰고 그려내는 이유가 아니었던가 깨닫게 된다. 

" 라셸은 우리 안에 거하는 악이 개인적이면서도 일반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떤 이들이 원래부터 능숙한 고문관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녀는 이 남자가 괴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순간도 의심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도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91"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래의 남자와 철조망 소녀'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반짝이지 않는 크리스마스트리 꼬마전구(46)'같은 소녀이지만,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를 끌어안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야기 안에서 소녀는 두 사람 몫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는 경쾌함이 마음에 들었다. 살의를 멈추고 목숨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도도 없었지만 그저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 순간 가장 반짝이는 빛이 되지 않았던가.  

'타는 듯한 수치심을 일찌감치 배워야했던(139)' 젤리의 그 날, 잊을 수 없는, 처음 택시를 탔던 날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불행한 결말이 정해져있는 것처럼 암시를 하는 전개를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했는데, 젤리의 이야기는 올랭프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던 사람 중 한명이 된 것처럼 그 갑작스러운 동요, 차가운 당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충격을 받았다. 차라리 미리 알았더라면, 하고 바랄만큼. 

" 나는 젤리를 믿는다. 차 안에는 플라스틱 나부랭이들, 아기 카 시트, 뜯어보지도 않은 우편물이 있고 조수석 바닥에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이 나뒹군다. 빈 캔과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가 글로브박스 안에 있고, 트렁크 안에는 파란색 크라프트지에 싸인 정체불명의 생일 선물이 있다. 그리고 젤리의 마음은, 왜 아니겠는가, 언제나 파란색 크라프트지에 싸인 그 미지의 생일 선물과 비슷할 것이다. 소중하고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엇, 그렇지만 망가지지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그 무엇과. 156" 

하지만 이 비정한 불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래 깔려있는 작은 다행을 더듬어보게 만든다. 한 사람의 온 생을 관통하는 할퀴어 불거진 끔찍한 상처를 들이밀면서,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어린 동생까지 떠맡겨 오게 된 변수를 두고, 동시에 이것이 삶이고 어떠한 벌이나 유감 때문이 아니라 때로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임을 이해하게 한다. 베로니크 오발데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한낮의 불운'이 짧지만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은 전보다 소설을 적게 읽게 되었는데, 도파민과 짧은 영상에 중독되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손바닥 안의 화면을 들여다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면, 보고 싶고 기대되는 뭔가를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면, 우리가 바라고 기다려왔을지도 모르는 삶의 이야기를 '한낮의 불운' 안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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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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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다. 가지지 못한 자의 체념은 직업, 연애, 결혼, 내 집 마련 같은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쉬웠지만 가진 자들은 다른 이보다 더 가지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앞에 놓인 벽 마저도 긁어낸다. 그것이 무엇이든, 더 가진 자는 덜 가진 자의 결핍까지도 빼앗아 자신의 깃을 치장하는 것에 쓰려고 드는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살면서 가난을 말하고, 아이들이 있을 공간을 빼앗으면서 스스로의 서투름에는 00린이라는 미숙함을 붙인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경시가 만연하면서도 세상이 여성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며 페미니즘을 차별의 언어로 변질시켰다. '너 페미야?'라는 말이 사상검증으로 쓰이는 세상에서 페미니스트인 사람을 향한 폭언과 공격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차별 당하고 있다고 믿는 굴절이 궁금했다.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읽는 것은, 누군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혐오하며 낄낄거리면서 서로 책을 돌려볼 것이다 여길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기가 싫어질 정도로 역겨운 여성혐오에 대한 내용들이 줄을 바꾸기가 무섭게 따라붙어, 오히려 미간을 너무 찌푸리고 있지는 않은가 확인하며 역겨움을 참아내는 일이 더 많았다. 신음소리를 흉내내고, 멸칭을 만들고, 딥페이크로 성범죄를 한다는 내용 자체도 문제적이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갈수록 어린 나이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부추긴다. 동시에 여성을 이끌거나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성을 진짜 남성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성폭력이나 교제폭력은 결국 '권력'의 문제다. 여성을 지배하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49" 

이상하게도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하고 비난하면서도 욕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여긴다. 물론 여성이 마땅히 주어져야 할 보상의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왜곡된 인식이다. 공부를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집을 사는 어려운 인생의 경로를 열심히 따라간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저런 노력들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그에 걸맞는 이성을 얻을 수 없는지 불만을 품는다. 여성을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내 삶의 보상으로 마땅히 주어져야 했을 것으로 본다는 문제적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의 가장 큰 피해이자 차별점이며 업적인 군대에 여고생의 위문편지(186)를 보내는 것마저 노고에 대한 위로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상이 탄생시킨 참사인 것이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 불만이 더 나아가서 나온 것이 '퐁퐁'이라는 역겨운 망상이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여자들은 성형하고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밥이나 먹으러 다니면서 키 크고 잘생긴 외모가 전부인 남자와 가볍게 만난다. 그러다 나이 먹으면 문란하게 남자를 만났던 과거를 뒤로 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나같은 남자의 돈만 노려 이용하려고 결혼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가상의 상대를 욕망하면서, 자신은 타인이 바라는 욕망의 대상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들에게 여자는 당연히 어려야 되는데 거기엔 마땅히 임출육 때문이라는 정당한 이유가 있고, 잘 꾸민 예쁜 여자가 좋은데 수수하고 못생긴 여자는 사랑을 못받아서 페미니스트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어린 여자들은 영악하고, 적당한 연령대의 여자들은 돈을 노려 접근한 가해자이고, 자신은 희생적인 피해자로 본다.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인데.' 

" 사랑을 이다지도 불평등한 행위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사랑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사랑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린 것은 누구인가. 87" 

과거의 여성들은 출생부터 물리적으로 지워지는 행위를 당했다. 요즘의 판도는 다르다고 하는데 여성만을 선택적으로 지웠던 것에서 모든 출생을 지워가고 있는 형태로 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지우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집게손이나 페미용어 같은 프레임(192)을 씌워 페미를 색출해내는 일이 마녀사냥처럼 이뤄졌다. 지난 계엄에 저항하기 위한 응원봉 물결에 남성의 존재도 있었는데 그건 왜 빼먹느냐(88)는 호도 앞에서 새로운 힘의 물결과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준 2030 여성의 연대(135/259)를 지웠다. 여전히 여성들은 지워지고 있다. 지우는 것을 넘어 소외된 남성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달래주자는 챙김 앞에서 밀리고 잊혀진다. 살아남았던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밀리고 희생해왔던 것처럼 사회 안에서 같은 기능을 강요당한다. 동시에 자신은 지워지면서 출생률은 올리라는 요구(210)를 받는다.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읽으면서 더 생각해 볼 문제도 발견할 수 있었고, 잊었던 문제들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경시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성인 남성들에 대한 시선 처럼 반가웠던 주제들도 있지만, 어떤 주제 특히 자아가 비대한 젊은 정치인(114)과 함께 분석된 토론 발언과 능력주의로 포장된 기득권의 논리는 더는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피로했다. 솔직히 남녀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는 편인데, 저자가 경험했듯 무엇도 통하지 않게 경직된 사람들의 날선 공격 대상이 될 것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좀 더 표현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저자의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오히려 이번 책이 가장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고 보인다. 진실을 냉정히 말해봤자 혐오당했어요, 차별이에요, 징징거릴뿐 그 안의 본질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던 것일까. 이런 변화의 시도가 어떤 반응을 가지고 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독서율을 보라, 그들은 그냥 안 읽는다. 

특히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조용하게 지나갔던 여성의 날**을 추모하며 여성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세상 모든 아무날을 기념해 과자를 팔고, 초콜릿과 사탕을 팔아 돈을 버는 모든 기업들이 조용한 가운데,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출판업계가 거의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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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
박찬욱 지음, 이윤호 그림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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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만나 근처 서점에 들렀다가 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이 매대에 놓여진 것를 보고 반가웠다. 솔직하자면 지인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이 들어 괜히 책을 들어 이리저리 들춰보고 있었는데 몇걸음 떨어진 서가에서 나타난 지인이 나보다도 먼저 반갑다는 듯 나도 방금 그거 보고 있었어 하고는 사실 헤어질 결심을 더 좋아하긴 하는데 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이 새로 나온 것을 보니 스크린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의 디테일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 한번 쭉 넘겨보고 온 참이라고 한다. 그 기세에 눌려 나 이 책 있다고 자랑하려다 삼키고 그래 마침 나도 확인하고픈 요소들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상하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내 책보다 서점 매대 위에 올려진 책은 어째서 더 탐이 나는 것일까. 애착은 내 책에 가기는한데 매대 위의 책은 갑작스러운 욕망을 자극한다. 집에서 확인해보면 될 것을 당장이라도 들춰 방금 떠오른 궁금증을 해결해버리고 싶어진다.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 편안히 읽어볼 수도 있는데 그 자리에 선 채로 살짝 틈만 내어 궁금한 페이지의 내용을 재빠르게 확인하고 덮어두고 싶다. 지금 당장 읽고싶다. 그 순간 경험한 욕망의 자극, '어쩔수가없다'와 잘 어울렸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의 욕망을 말하고 있으니까. 그때 확인하고 싶었던 장면은 치위생사로 일하던 미리와 환자로 온 지인이 만나는 부분이었다. 

스토리보드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영화적 기법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그 순간 어떤 장면을 만들고 싶었는지, 그걸 무엇이라 지칭하는지. 이를테면 만수가 정원에서 새벽 동안 삽질을 하는 장면에 " 1) 매직아워. 만수, 쉼 없이 삽질하다가- 멈추고 하품. 카메라 전진- 만수 프레임아웃시키면서 틸트업- 별빛이 스러진 하늘, 희붐하다. 디졸브- (358)" 이 설명이 마치 화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컷 그림과 함께 디테일을 잡아 준다. 무엇을 봐야하는지, 왜 찍었는지. 이 영화를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처럼 친절하다. 

순서, 장소, 시간, 내용, 그림, 설명까지 스토리보드북 안의 구성은 영화의 모든 장면들과 다름없이 세세하다. 얼마나 세세한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장면마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목소리로 다시 재생되는 듯하다.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겼던 장면들도 종이 위에서는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다. 특히 손예진 배우가 분한 미리라는 인물을 볼수록 스스로가 무의식 중에 미리의 비중을 작게 축소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놓쳤던 부분이 많았다. '설마'하고 생각했던 지점들이 하나씩 충격을 주며 다시 끼워맞춰지는 과정을 겪고 나니 인물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스크린 위에서 찰나의 장면으로 흩어진 것을 종이 위에서 다시 더듬어본다. 이때 느꼈던 묘한 위화감, 의심, 질문이 의도되었던 것인지 혹은 그를 위해 안배된 것들을 놓쳤던 것인지, 지나친 억측인지 어떤 장면들은 몇번이고 돌아보았다. 그렇게 보고서도, 지인과 한참을 이야기하고서도 '아, 결국은 잘 모르겠다'고 털어내고만 부분들도 있지만 지난 2025년의 기대작이자 문제작이었던 '어쩔수가없다'를 덕분에 끝까지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천천히 감상을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한 즐거움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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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6
진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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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아냐. 누가 알았겠어. 하필 그때 그게 폭발할 줄. 세상에 종말이 올 줄! 54" 

'빅 홈'의 소개글을 보고 세상의 모든 인프피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운명을 느꼈다. 전에 '만약에 오늘 아침 전쟁이 나면 네 집 앞에 제일 먼저 뛰어 가서 나는 너랑 같이 도망갈래'* 하는 가사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운석이 떨어지면, 빙하가 녹아버리면, 삶이 얼마 안남았다면 하는 만약을 노래가는 가사를 들으며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원전 폭발 이후 보호소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니! 게다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야하는 주인공, 비밀스러운 탈출까지 어떻게 '빅 홈'에 안 빠져들 수가 있을까. 

요즘 여기저기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탓에 '빅 홈'을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어느 누군가의 변덕으로 세상에 갑자기 핵폭발이 연쇄적으로 번져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지나친 비약같지만 사실 지구촌을 표방하는 평화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써 지금의 배타적이고 삭막한 국제정세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같은 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모두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것만 같은 요즘이다. 

" 이해하려 애쓸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자고 일어나 보니 지도 없이 낯선 땅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다만, 몇 가지는 분명했다. 당연한 듯 반복되던 일상이 잘못 떨어뜨린 유리잔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는 것. 부서진 조각을 아무리 이어 붙인들 원래 모양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17" 

전쟁이 끝나고 나면 금방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은 전쟁과 한발자국 떨어진 사람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쟁이 훑고 지나간 흔적이 남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일상으로의 회복'이란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상실이다. 어느 도시의 초등학교에 폭격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은 결국 그 이해관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했다. 

부서진 조각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빅 홈'의 아이들은 제 모양을 조금씩 잃었을지 언정 강하고 선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의 인물들은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위협하는 비뚤어진 인물인 필광이 마저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음이 보였다. 아끼는 것을 꽁꽁 붙들고 다니고,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만큼 애틋해서 읽는 내내 그래도 조금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길 응원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볼 때 흔히 하는 말로 cj감성 같은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장면에서 울어! 하고 판을 깔아놓는 것 같은 신파 요소가 들어가고 하는 그런 것들. '빅 홈'에서 기대한 것도 신파같이 눈물 빼는 내용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과 숨겨진 음모, 이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모험 같은 아포칼립스 모험 동화였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 줄은 몰랐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구나, 싶어지니 읽는 내내 보이는 모든게 안타깝고 슬펐다. 그런데 막상 헤이보다 나의 슬픔이 더 오래가다니. 신파는 싫지만 슬픔은 또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되어서 그 먹먹함도 좋았다. 

핸드폰에 좋은 기능들이 많이 생긴 뒤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빅홈'을 읽고 문득 돈이나 카드 대신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넣은 지갑을 꼭 가지고 다녀야 되겠단 생각을 했다. 지갑에 있던 유일한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헤이를 보고, 어쩌면 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수많은 기능이, 그보다 더 많은 사진이 담긴 핸드폰보다 확실한 것을 언제고 가지고 있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싹텄다. 그리고 항상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당연하고 분명하지만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일상의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넷플릭스 대신으로 성인들에게 '혼모노'가 추천되었다면, 청소년들에게는 '빅 홈'이 권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 다 읽어보았는데 어른 입장에서도 '빅 홈'을 더 짜르르하게 읽어냈다. 이런 재난물에서는 극한 상황이나 죽음이 빈번한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봤었는데 '빅 홈' 안의 너무 많은 상실은 어쩐지 조금씩 안타깝고 투명한 우울을 담고 있어 마음을 건드린다. 매번 만약을 상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난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 만큼이나 재밌는 책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 사진을 지갑이나 다이어리에 넣어둔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우울과 희망이 뒤섞인 초록을 남길 '빅 홈'을 읽어보자. 



* 전쟁이 나면 - 장범준 (2024 싱글/EP)
** 2026년 2월 28일 이란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 폭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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