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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가진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다. 가지지 못한 자의 체념은 직업, 연애, 결혼, 내 집 마련 같은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쉬웠지만 가진 자들은 다른 이보다 더 가지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앞에 놓인 벽 마저도 긁어낸다. 그것이 무엇이든, 더 가진 자는 덜 가진 자의 결핍까지도 빼앗아 자신의 깃을 치장하는 것에 쓰려고 드는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살면서 가난을 말하고, 아이들이 있을 공간을 빼앗으면서 스스로의 서투름에는 00린이라는 미숙함을 붙인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경시가 만연하면서도 세상이 여성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며 페미니즘을 차별의 언어로 변질시켰다. '너 페미야?'라는 말이 사상검증으로 쓰이는 세상에서 페미니스트인 사람을 향한 폭언과 공격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차별 당하고 있다고 믿는 굴절이 궁금했다.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읽는 것은, 누군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혐오하며 낄낄거리면서 서로 책을 돌려볼 것이다 여길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기가 싫어질 정도로 역겨운 여성혐오에 대한 내용들이 줄을 바꾸기가 무섭게 따라붙어, 오히려 미간을 너무 찌푸리고 있지는 않은가 확인하며 역겨움을 참아내는 일이 더 많았다. 신음소리를 흉내내고, 멸칭을 만들고, 딥페이크로 성범죄를 한다는 내용 자체도 문제적이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갈수록 어린 나이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부추긴다. 동시에 여성을 이끌거나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성을 진짜 남성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성폭력이나 교제폭력은 결국 '권력'의 문제다. 여성을 지배하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49"
이상하게도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하고 비난하면서도 욕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여긴다. 물론 여성이 마땅히 주어져야 할 보상의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왜곡된 인식이다. 공부를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집을 사는 어려운 인생의 경로를 열심히 따라간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저런 노력들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그에 걸맞는 이성을 얻을 수 없는지 불만을 품는다. 여성을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내 삶의 보상으로 마땅히 주어져야 했을 것으로 본다는 문제적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의 가장 큰 피해이자 차별점이며 업적인 군대에 여고생의 위문편지(186)를 보내는 것마저 노고에 대한 위로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상이 탄생시킨 참사인 것이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 불만이 더 나아가서 나온 것이 '퐁퐁'이라는 역겨운 망상이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여자들은 성형하고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밥이나 먹으러 다니면서 키 크고 잘생긴 외모가 전부인 남자와 가볍게 만난다. 그러다 나이 먹으면 문란하게 남자를 만났던 과거를 뒤로 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나같은 남자의 돈만 노려 이용하려고 결혼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가상의 상대를 욕망하면서, 자신은 타인이 바라는 욕망의 대상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들에게 여자는 당연히 어려야 되는데 거기엔 마땅히 임출육 때문이라는 정당한 이유가 있고, 잘 꾸민 예쁜 여자가 좋은데 수수하고 못생긴 여자는 사랑을 못받아서 페미니스트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어린 여자들은 영악하고, 적당한 연령대의 여자들은 돈을 노려 접근한 가해자이고, 자신은 희생적인 피해자로 본다.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인데.'
" 사랑을 이다지도 불평등한 행위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사랑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사랑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린 것은 누구인가. 87"
과거의 여성들은 출생부터 물리적으로 지워지는 행위를 당했다. 요즘의 판도는 다르다고 하는데 여성만을 선택적으로 지웠던 것에서 모든 출생을 지워가고 있는 형태로 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지우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집게손이나 페미용어 같은 프레임(192)을 씌워 페미를 색출해내는 일이 마녀사냥처럼 이뤄졌다. 지난 계엄에 저항하기 위한 응원봉 물결에 남성의 존재도 있었는데 그건 왜 빼먹느냐(88)는 호도 앞에서 새로운 힘의 물결과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준 2030 여성의 연대(135/259)를 지웠다. 여전히 여성들은 지워지고 있다. 지우는 것을 넘어 소외된 남성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달래주자는 챙김 앞에서 밀리고 잊혀진다. 살아남았던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밀리고 희생해왔던 것처럼 사회 안에서 같은 기능을 강요당한다. 동시에 자신은 지워지면서 출생률은 올리라는 요구(210)를 받는다.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읽으면서 더 생각해 볼 문제도 발견할 수 있었고, 잊었던 문제들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경시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성인 남성들에 대한 시선 처럼 반가웠던 주제들도 있지만, 어떤 주제 특히 자아가 비대한 젊은 정치인(114)과 함께 분석된 토론 발언과 능력주의로 포장된 기득권의 논리는 더는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피로했다. 솔직히 남녀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는 편인데, 저자가 경험했듯 무엇도 통하지 않게 경직된 사람들의 날선 공격 대상이 될 것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좀 더 표현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저자의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오히려 이번 책이 가장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고 보인다. 진실을 냉정히 말해봤자 혐오당했어요, 차별이에요, 징징거릴뿐 그 안의 본질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던 것일까. 이런 변화의 시도가 어떤 반응을 가지고 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독서율을 보라, 그들은 그냥 안 읽는다.
특히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조용하게 지나갔던 여성의 날**을 추모하며 여성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세상 모든 아무날을 기념해 과자를 팔고, 초콜릿과 사탕을 팔아 돈을 버는 모든 기업들이 조용한 가운데,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출판업계가 거의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