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6
진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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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아냐. 누가 알았겠어. 하필 그때 그게 폭발할 줄. 세상에 종말이 올 줄! 54" 

'빅 홈'의 소개글을 보고 세상의 모든 인프피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운명을 느꼈다. 전에 '만약에 오늘 아침 전쟁이 나면 네 집 앞에 제일 먼저 뛰어 가서 나는 너랑 같이 도망갈래'* 하는 가사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운석이 떨어지면, 빙하가 녹아버리면, 삶이 얼마 안남았다면 하는 만약을 노래가는 가사를 들으며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원전 폭발 이후 보호소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니! 게다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야하는 주인공, 비밀스러운 탈출까지 어떻게 '빅 홈'에 안 빠져들 수가 있을까. 

요즘 여기저기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탓에 '빅 홈'을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어느 누군가의 변덕으로 세상에 갑자기 핵폭발이 연쇄적으로 번져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지나친 비약같지만 사실 지구촌을 표방하는 평화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써 지금의 배타적이고 삭막한 국제정세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같은 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모두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것만 같은 요즘이다. 

" 이해하려 애쓸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자고 일어나 보니 지도 없이 낯선 땅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다만, 몇 가지는 분명했다. 당연한 듯 반복되던 일상이 잘못 떨어뜨린 유리잔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는 것. 부서진 조각을 아무리 이어 붙인들 원래 모양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17" 

전쟁이 끝나고 나면 금방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은 전쟁과 한발자국 떨어진 사람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쟁이 훑고 지나간 흔적이 남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일상으로의 회복'이란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상실이다. 어느 도시의 초등학교에 폭격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은 결국 그 이해관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했다. 

부서진 조각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빅 홈'의 아이들은 제 모양을 조금씩 잃었을지 언정 강하고 선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의 인물들은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위협하는 비뚤어진 인물인 필광이 마저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음이 보였다. 아끼는 것을 꽁꽁 붙들고 다니고,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운 만큼 애틋해서 읽는 내내 그래도 조금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길 응원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볼 때 흔히 하는 말로 cj감성 같은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장면에서 울어! 하고 판을 깔아놓는 것 같은 신파 요소가 들어가고 하는 그런 것들. '빅 홈'에서 기대한 것도 신파같이 눈물 빼는 내용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과 숨겨진 음모, 이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모험 같은 아포칼립스 모험 동화였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 줄은 몰랐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구나, 싶어지니 읽는 내내 보이는 모든게 안타깝고 슬펐다. 그런데 막상 헤이보다 나의 슬픔이 더 오래가다니. 신파는 싫지만 슬픔은 또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되어서 그 먹먹함도 좋았다. 

핸드폰에 좋은 기능들이 많이 생긴 뒤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빅홈'을 읽고 문득 돈이나 카드 대신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넣은 지갑을 꼭 가지고 다녀야 되겠단 생각을 했다. 지갑에 있던 유일한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헤이를 보고, 어쩌면 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수많은 기능이, 그보다 더 많은 사진이 담긴 핸드폰보다 확실한 것을 언제고 가지고 있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싹텄다. 그리고 항상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쉽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당연하고 분명하지만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일상의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넷플릭스 대신으로 성인들에게 '혼모노'가 추천되었다면, 청소년들에게는 '빅 홈'이 권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 다 읽어보았는데 어른 입장에서도 '빅 홈'을 더 짜르르하게 읽어냈다. 이런 재난물에서는 극한 상황이나 죽음이 빈번한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봤었는데 '빅 홈' 안의 너무 많은 상실은 어쩐지 조금씩 안타깝고 투명한 우울을 담고 있어 마음을 건드린다. 매번 만약을 상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난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 만큼이나 재밌는 책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 사진을 지갑이나 다이어리에 넣어둔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우울과 희망이 뒤섞인 초록을 남길 '빅 홈'을 읽어보자. 



* 전쟁이 나면 - 장범준 (2024 싱글/EP)
** 2026년 2월 28일 이란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 폭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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