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살림법 - 초보 혼족을 위한 살림의 요령, 삶의 기술
공아연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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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의 일이다. 지인이 갑자기 상담을 요청해왔다. 이제 막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인은 목표로 하고 있는 곳에서 통근하기 부담스러운 조건이라 독립을 고려하고 있었다. 한번도 혼자 생활해본 적 없는 예비 사회초년생이자 초보 혼족을 두고 통근할 것인지 독립할 것인지 조언을 구하는 무구한 눈망울 앞에서 독립하여 산다는 것/자신의 살림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맵고 짠내나는 일인지 설명해야 하는 일이 막막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이야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절에서 맛보기로나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하여 혼자 산다는 것은 사실 매우 높은 난이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로망이라는 것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섬세하지 못하고 재주가 변변찮은데다 손도 느린 탓에 내 살림을 꾸리기 어려웠던 경험치가 만렙이라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것은 지옥 불구덩이에 기름통 들고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식의 겁을 주는 에피소드만 풀어주었는데, 마침 로고폴리스의 신간 '1인 가구 살림법'을 보게 되어 유용한 팁을 얻고 위협 아닌 조언을 해줄만한 눈도 생겼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들을 다 꼽기 어렵지만 특히 혼자 먹을 음식을 해본 적이 없어 음식을 한 번 하면 최소 4인분 정도의 계량을 해야 준비가 된 것 같아 다 먹지 못할 대량 생산이 된다. 한번 먹은 반찬은 두번 식탁에 올려먹기 싫은 탓에 해놓은 음식을 어쩌지 못하고 상해 버린 일이 생기고 나니 나중에는 굳이 음식을 해서 먹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게 된다. 인터넷에서 흔히 올라오는 자취식단들을 보면 참치캔과 조미김 계란, 라면, 3분 요리로 대표되는 레토르트 식품들의 돌려막기 식 조합이 흔한 이유도 통감하게 된다. 실패없는 맛, 남지 않는 분량, 설거지의 간소화 등이 벗어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때문에 가장 관심있게 본 부분이 '3장 혼자를 기르는 건강한 싱글 식탁'의 내용이었는데,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소소한 정보를 곁들여 가장 기본적인 내용부터 설명해주고 있어 접근 레벨이 낮으면서도 유용하게 느껴졌다. 들깨가루가 오리고기에 곁들일 소스에 활용된다는 팁이나 양파가 바퀴벌레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라는 충격적인 정보가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천히 쌓여가는 빨래를 버티고 버티다 몰아서 하려면 습하게 비 내리던 날씨로 잘 마르지도 않고, 꿉꿉한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아 골치 아팠던 문제가 종종 있었는데, 빨래를 금방 말릴 수 있는 팁이나 세탁조 청소법 같은 내용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청소도 마찬가지로, 쓸고 닦아야 하는 곳이 넓지 않은 집에도 이렇게 많았던지 조금만 소홀한 곳엔 먼지와 곰팡이가 금새 자리잡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름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는데 단호하게 부담을 줄이고 도우미 업체를 이용하는 것도 생활을 자리잡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고 제시한 부분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안정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을 법한데 과감히 업체를 이용하고 밥만 짓고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소량으로 사서 먹는 방법을 제시하라는 조언이 실생활에 현실적으로 맞춘 조언이 된다.

 

 또한 막연히 떠올리는 청소, 인테리어, 식사, 보안 같은 분야 뿐 아니라 수리보수, 재정, 무려 구충제 복용이 포함된 체크 리스트 등의 다양한 내용도 세분화되어 정리해놓았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보안/응급상황 들에 대해서도 점검해보게 된다. 줄눈 시공법이나 살림을 늘리지 않는 법에 대한 내용도 의외성을 준다. 읽다보면 완벽하게 정리된 집에서 낭비나 게으름 없이 꼼꼼하게 잘 생활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내용의 반의 반만이라도 실천하며 지낼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겠지만. 다만 또 하나 긍정적인 면은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 손이 잘간다는 것이다. 가까이 두고 마치 잡지 보듯이 훑어 읽거나 대리만족하며 실천하지 못할 계획을 세우면서 읽기 좋은 내용이다. 혼자 살지 않더라도 신혼부부처럼 새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두루 활용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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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9-2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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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전에 스스로가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요즘들어 부쩍 결혼과 관련된 소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급변하는 결혼관에 따라 오히려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인지, 주변에 맞춰 유독 많이 접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3포세대, 초식남, 비혼, 졸혼 같은 말들이 시대를 아우르는 와중에 결혼과 관련된 내용의 소설들이 등장한다는 게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결혼은 현실'임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때, 제목에 결혼과 소설을 매치시킨 점도 현대의 나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애매하게 보였다. 게다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지금 우리가 읽고 공감하기에 충분한가 되짚어보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만큼 '결혼이라는 소설'은 현시대의 고민과 현실을 자극하는 요소를 충분히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약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무색하리만큼 곳곳의 문장들에서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매들린, 레너드, 미첼의 관계가 다소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류의 느낌을 주지만 그들의 각자의 개성을 각기 다른 전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꽤 흥미로운 장치이다. 매들린의 전공인 영문학을 통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보이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시선이 매들린에게까지 연결되고, 종교학을 전공하는 미첼이 '착하지만 쉬운', 그리하여 매들린으로부터 하여금 매력을 느낄 수 없도록 그려지는 점들이 캐릭터와 그들의 성향에 따른 전공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현실성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가장 즐거웠던 점은 어떤 지점에서 정확히 마음에 걸리는 문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첼이 클레어에게 느끼는 분노는 부분적으로 잘못 겨냥된 것일 수도 있었다. 진짜로 그를 미칠 듯이 화나게 한 여자는 매들린일지도 몰랐다. 디트로이트에서 지낸 여름 내내 미첼은 매들린이 다시 애인 없이 혼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뱅크헤드가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한다는 생각이 미첼의 사기를 북돋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매들린이 뱅크헤드와 사귀었던건 잘된 일이라고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인간관계망에서 레너드 같은 녀석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는 철이 들어야 했고, 그 점은 미첼도 마찬가였다. -p.367 순례자들 /결혼이라는 소설 1"

 

 그 첫번째로 미첼의 태도를 통한 남성적인 시선- 남성의 시선에 담긴 오류를 발견한 장면이었다. 그가 클레어와 래리를 피해 나오면서 그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가 대상화 한 여성으로 하여금 느낀,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분노가 다른 화살을 통해 제 삼의 여성에게 돌려져 표출됐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그가 개별적으로 선택하여 만들어간 관계에 대해 자신과 '함께하기 전에' 거쳤어야 할 과정처럼 합리화 했다는 점이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매들린-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의 불필요한 관심과 대상화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가치 평가 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때문에 매들린을 향한 미첼의 감정이 단지 매력없이 착한 청년의 순수한 감정으로만 여겨지지 않게 된 부분이다.

 

 "그 후에 그들은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숨을 돌렸다. 매들린이 장난스럽게, 행복하게 말했다. "내 짐작에는 네가 나아진 것 같아." 그 말에 레너드는 일어나 앉았다. 그의 머리는 더이상 온갖 생각으로 들끓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내려가 무릎을 꿇은 채 레너드는 커다란 그의 두 손으로 매들린의 두 손을 잡았다. 자신의 모든 문제, 그러니까 연애, 재정, 전략상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막 알아낸 참이었다. 하나의 묘수는 마땅히 또 다른 묘수로 이어지는 법이다. "나랑 결혼해 줘." 그가 말했다. -p.169 묘수 /결혼이라는 소설 2"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낙담을 하게 되었는데, 현실로 표출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마치 결혼하고 싶은 이유로 '생활이 안정되기 때문에'를 꼽는 이들에게 심신의 안정을 원한다면 차라리 클래식을 들으세요'하고 충고해주는 실전 Q&A의 답변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가진 현실적인 문제들을 덮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부정적인 입장이라 더욱 그러했다. 결혼은 내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생활로 나를 차원이동 시켜줄 도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로 나를 차원이동 시켜줄 퀘스트가 된다면 몰라도. 물론, 저런 순간의 강렬한 열망 혹은 착각 없이 결혼을 결심할 수 없다는 면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무모하고 실재적으로 충동적인 저 결정은 묘수가 아닌 악수가 되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토록 곱씹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가장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대목이 저 레너드의 청혼 장면이었다.

 

 그 뒤를 잇는 부분은 매들린이 겪게 되는 '결혼의 현실'이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앞서 꼽았던 장면이 그대로 그들 결혼생활을 좀먹고 끈끈하고 어둡게 뒤덮어버리는 문제덩어리가 되어 잠식해나간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미첼이 매들린을 두고 "그녀는 철이 들어야 했"다고 평한 부분이 주제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녀 뿐 아니라 레너드 역시 같은 실수를 만들어간 공범인 것이다.  

 

 "레너드와 함께 냉방이 되지 않는 그의 아파트에서 보낸 길고 무더운 여름과 그 후 필그림 레이크의 숙소에서 보낸 두 달은 매들린에게 "조울증 환자와 결혼했다."라는 게 어떤 것일지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게 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화해가 모든 어려움을 보이지 않게 가려 버렸다. 레너드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일종의 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레너드가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으면서, 그리고 특히 그들이 케이프 코드로 옮기고 나서 오히려 악화된 것처럼 보이면서, 매들린은 질식할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레너드가 그의 무덥고 후텁지근한 원룸형 아파트까지 함께 가져온 것 같았고, 그곳이야말로 그가 정서적으로 살고 있는 곳이서 그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그 무더운 심리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레너드를 완전히 사랑하려면 매들린도 그가 길을 잃고 헤매는 캄캄한 숲 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헤매야 할 것 같았다. -p.283 그리고 이따금 그들은 몹시 슬퍼했다 /결혼이라는 소설 2"

 

 사랑은 달콤한데 사랑해서 한 결혼은 왜 달콤하기만 하지 않은 것일까. 에 대한 답이 바로 이 문장 속에 들어있다. 미성숙 혹은 완전히 해결되거나 이해되지 않은 문제들로부터의 도피로 인한 관계의 종말. 사랑이나 사랑의 종착지로 그려지는 결혼이 문제의 답이 되지 않음을, 되려 문제를 수면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삶은 계속되고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의 궤를 그리며 살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문득 "같이 울기 위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울 때 너는 왜 없을까?" 하던 신달자의 싯구가 떠오른다. '결혼이라는 소설'과 함께 '내가 울 때 너는 왜 없을까'를 읽어본다면 이들의 관계가 좀 더 함축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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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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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잠깐만요." 존이 한 걸음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오늘 그 책에 굉장히 좋은 구절이 있었어요. 무척 마음에 들어서 적어뒀어요." 에이바가 잠자코 기다리는 동안 존이 안주머니에서 예의 그 몰스킨 수첩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한 장을 찢어냈다. "여기요." 그가 말했다. 에이바가 그걸 읽어보고 뭐라 감상을 말하기도 전에 존이 고개를 끄덕하고 인사를 하더니 걸어가버렸다. 에이바는 도서관 문 위에 달린 전등 아래로 걸어가 존이 적은 글귀를 읽었다.

'돌이켜봤을 때 즐거운 과거만 생각하라.'

"존?" 에이바가 캄캄한 허공에 대고 존을 불렀다. 그는 가고 없었다. 에이바는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p.96 2장 1월 에이바"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는 와중에도 기혼자의 삶이란 무엇인가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미용실의 두꺼운 잡지 속의 자극적인 문구처럼 - 혹은 그저 사실 그대로를 옮겨놓은 건조한 글일지라도, 결혼해서 애인 없으면 바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책속의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결혼 생활을 다룬 최근에 접한 모든 책들이 전부 이를테면 불륜- 외도- 바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끔찍함에 몸부림치면서도 이런 반응이 물정 모르는 이의 나이브함으로 비춰질 것인가 염려스러워진다. 촌스럽기는, 내지 남에게 헛된 첨언하길 즐기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마치 '너도 ~나이먹어, 결혼해, 아이낳아 등등~ 봐' 라는 진절머리나는 관용구의 등장이라던지. 

 

 에이바의 삶은 파괴되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정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엄밀히는 부부관계가 파탄난 것이다. 에이바의 남편은 과거 데이트 상대였던 "델리아 린드스트롬, 뜨개 그라피티 작가. 게다가 남편 도둑"과 바람을 폈다. 에이바가 그 사실을 안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며 에이바와는 이혼하고 싶다고 요구한다. 에이바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하고, 아이들 역시 산산조각 난 가정의 모습처럼 제각기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다. 남겨진 에이바의 삶은 파괴되어 버린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혼자남겨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상처입히고 또한 수치스럽게 만든다. 정상적인 삶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친구 케이트를 통해 북클럽에 들어가 책을 읽고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시도한다.

 

 "에이바는 선량하고 친근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남편이 떠난 뒤 새로 얻은 악습인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는 짓도 하지 말아야지. 친구를 사귀어야지, 아니 적어도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p.22 1장 12월 에이바"

 

 그녀의 바람은 소박했으나, 쉽게 무너졌다. 전남편과 그의 새애인이 아직도 그녀가 사는 도시 곳곳에 출몰했고, 오랜 결혼생활 끝에 단단히 얽힌 인간관계가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렌체로 떠났던 그녀의 딸 매기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에이바가 자신의 삶에 버거워하는 동안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한 매기는 낯선 남자를 따라 학교를 자퇴하고 파리로 간다. 나이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 그가 주는 대로 약을 하고 구속된 채 폭력에 노출되는 무분별한 삶에 빠져든다. 에이바와 매기의 위태로운 시간들이 교차되면서 또하나, 에이바의 삶을 뒤흔든 과거의 사건이 드러나게 되는데- 어린시절 여동생과 엄마가 차례로 목숨을 잃은 경험이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갑자기 나타난 행크라는 인물의 등장에 위화감이 드는 점이 있지만 읽으면서는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수많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과거의 사건은 어딘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정신없이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다소 동화같은 결말이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편으로, 좀 더 현실적인 결말이 있었다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모든게 다 좋아지도록 마법처럼 끝맺음이 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전남편 짐이 에이바의 변화를 인지하고- 또 바람핀 *들이 그러하듯, 문득 뒤돌아 본 지나온 자리가 멀리서 보니 또 아름다웠음을 깨달은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는 부분이었다. 이미 에이바는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없다"고 짐에게 말해줄 수 있을만큼 극복했다는 점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가 가면서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에이바를 쳐다봤다. 에이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래전 에이바가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함께 긴 밤을 보내고 나서 헤어질 때 지었던 그런 표정이었다. 아니, 그 후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멀리 가야 하는 바람에 하루 이상 떨어져 지내야 했을 때, 그 이별이 너무 심각하고 견딜 수 없게 느껴졌을 대. 아니면 아이들이 아직 어린 아기들이었을 때 그가 출근하며 단 일분도 아기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때 짓던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었다. 그런 표정은 그가 델리아 린드스트롬을 만나기, 아니지, 에이바가 생각을 수정했다, '다시' 만나기 시작하기 훨씬 전에 사라졌었다. -p.371 9장 9월 에이바"

 

 책속에서 또 다른 책들을 만나며 에이바는 천천히 변화하는데, 사실 다른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때문에 '내 인생 최고의 책'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에 대한 도움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책들은 에이바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작은 장치로 이용되었고 크게는 가상의 책 '클레에서 여기까지'를 극적으로등장시키기 위한 받침이 된다. 이는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더불어 많은 독서가들이 꿈꾸는 듯한 독서모임의 모습을 그려넣듯이 묘사했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다소 씁쓸했다. 에이바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요소들이, 어머니의, 남편의, 딸의 부적절한 관계들이라니. 그리고 그런 부적절함 속에서 에이바는 엄청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생의 죽음에서도 자신의 죄책감을 채 덜지 못했던 어린 소녀가 어머니의 자살-부재를 참아내야 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가정이 남편의 외도 인정과 이혼 요구로 손쓸 새도 없이 망가져야 했고, 그로 인해 딸은 상처받아 괴로워하며 약물에도 손을 댔다. 이들과 전생애적으로 얽힌 에이바가 자신의 중심을 세우려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녀를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이 '풍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준다. 어쩌면 그녀처럼 극복할 수 있고, 최악의 결말을 벗어나 다행히도 잃어버렸던 이들까지 제자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어찌되었든 재미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결말까지도 만족스러울수도 있을 것이니 가을을 맞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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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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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일자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아내가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지만 그렇게 계속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짐짝 같은 테루오, 무능력한 테루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빨갛게 달군 쇠처럼 내게 와닿았다. 부끄러워서 외출도 하지 않았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내 자신이 두려웠다. 형편없는 놈 아닌가? 내 나이 이제 서른 살이다. 숨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p.227 19 테로오의 고백, 2년 만에 귀가"

 

 많은 젊은 세대들이 특히나 이 부분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세대에 한정짓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에 대입하던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실패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돌아오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공감을 살 것이다. '증발자'의 사정을 다 이해하기 어렵고, 다른 체계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 이 차이를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 판단하려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바로 저 단락을 읽으며 약간이나마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증발'은 다름을 이해하지만 인정하기에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회의 또 하나의 이면을 생생한 시선으로 가리킨 책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나쳤던 주위의 인물들로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뉴스와 통계를 보며 실종자와 자살자에 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전까지는 증발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했다. '인간증발'은 자신의 존재를 생활 모든 기반에서 마치 소멸된 것처럼 없애버린 "사라진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낯선 사회 현상과 직면하기 위해 잡은 '인간증발'안에서 오히려 현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10만명의 일본인들과 그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일본 사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공감이자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사라질 한국인들을 향하여' 권하는 조심스러운 경고였다.

 

 "알 수 없는 규칙, 격식, 장벽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일본 사회에서 어두운 부분들을 조사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일본에서는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면 배척을 받는 것 같다. 통역을 구하는 간단한 일도 신경 쓸 일이 많다. 처음 이메일을 교환할 때는 대부분 분위기가 좋다. 통역 비용, 통역 가능 시간, 업무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렇다. 그러다가 '인간증발'이라는 주제를 꺼내면 어김없이 모든 것이 멈춘다. 많은 일본이 통역사들이 장례식 같은 피치 못할 사정을 내세우며 거절한다. 드물지만 솔직하게 할 수 없는 사정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와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 주변에 이 불편한 문제를 질문해야 하는 곤란함 때문이다. -p.101 9 지옥의 캠프"

 

 인간이 증발한다. 매년 스스로 자신을 감추고 사라져가는 10만명의 일본인들에 대해 왜 프랑스인 저자가 주목하여 글을 썼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먼저 의아했다. 그리고 어쩌면 일본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됐다. 문득 윗세대에게 특히 '진리'처럼 통용되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약 10년 정도 앞선 사회문화현상을 보인다는 썰이 떠올랐으므로. 같은 동양 문화권이기 때문에 특히 유사성을 보이는 면도 있겠지만, 저탄생, 고령화 같은 사회문제들이 그러하듯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진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 또한 유사한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증발'은 생각 이상으로 집요했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는 이 르포르타주는 한 존재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넓고도 깊게 따라붙어 보여준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막연히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전'시킨 사람들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 노숙인으로 산다던지, 자신의 생활 기반을 전부 버리고 연락 두절한 채 무연고의 지역에 흘러들어간다던지 하는 자체적 증발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간증발'안에는 자살자, 귀농인, 히키고모리, 가출자, 납북자, 실종자 등등 여러 이유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라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증발 문제는 터부시되고 있지만 연간 자살자 수 3만 3,000명, 즉 매일 집계되는 자살자 수가 90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이라면 새어나가지 않는다. 새어나가는 것은 수도꼭지나 하는 일이다." 재즈 연주자이자 작가였던 보리스 비앙이 했던 농담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보리스 비앙의 철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라진다. -p.128 11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 "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증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던 것에는 자신의 내면에도 관계라는 사회망 안에서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고립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최근의 관심사가 미니멀 라이프와 연관되어 삶을 더욱 단순화하는 것에 있는데, 그 중 한가지 압박이 인간관계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증발'에서도 불현듯 느껴지는 타인과 관계의 무게를 자각한 순간 모든 것을 놓아두고 사라져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아마 이 제목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을 연상했는지에 따라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불안-욕망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판단에는 객관적인 사실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관점도 포함되니까.

 

 관심을 가지기엔 내용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번쯤 읽어두면 좋을 내용이다. 사회 현상과 인터뷰, 사진 등의 구성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부담스럽지 않고, 읽기 편한 글로 쓰여졌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고령화, 고독사와 같은 문제들이 일본의 신간에서 우리의 사회문제로 다가온 것이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간증발'에 대해서도 미리 읽어둔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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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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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고타로의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를 통해 처음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만났다. 일본 작가들에게 붙여지는 '**월드'라는 수식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정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구축되어야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카 고타로 역시 월드라는 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소개가 꽤 흥미로웠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는 중세의 마녀사냥,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업의 구조조정, 거짓말 탐지기 등등 여러 군데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설정이 남다르다. 거기다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이 내용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연막 작용을 한 탓에, 책을 집어들면 겉보기와는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

 

 가장 큰 바탕은 안전지구로 선정된 지역의 평화경찰에 의해 적발된 반사회적 인물들이 처벌당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초반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세의 마녀사냥을 끌어들여 설명된다. 세상의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야기하는 전체의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무작위의 특정인을 지목하여 마녀로 몰고, 절대 입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마녀의 자백을 받기 위해 집행자들은 고문을 하고, 마녀는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여 처형 당하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거나 아니면 끝내 버티다 고문을 당해 죽는다는 선택지밖에 없다. 구조조정과 소설 속 '안전지구'라는 제도는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비슷한 면모를 가졌다.

 

 '지역안전을 지키는 과'와 평화경찰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해당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아우르며 시민들이 스스로를 더욱 자제하고 억압하도록 만들고, 타인을 감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사실 이런 자경활동 혹은 집단의 의심은 어느 시대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던 부조리일 것이다. 특히나 일본 작가를 통해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가혹 행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음을 문득 떠올렸을때, 단지 표현된 문장이 주는 그 이상의 이유있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중간에 헌법 9조의 전수방위에 대해 언급하며 무방비, 아름답고 허무함, 가엾음 같은 표현을 마주하면서부터는 더더욱.

 

 합리적 절차 없이 가학적 성향을 가진 평화경찰에게 주어진 이 기묘한 책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몸집을 불린다. 사람들은 타인의 공개 처형을 광장에서 즐기는 한 편, 고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고, 위험분자일지도 모르는 -어쨌든 돌아오지 못할- 주변인들이 맞이한 가정 방문의 현장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 안전지구에 등장한 진정한 불온세력/위험분자가 나타나며 이사카 고타로의 새 월드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기묘한 차림의 이 히어로는 불안한 세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독자에게 안도와 반가움을 주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한계점을 보여주며 떨치지 못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듯한 이 도발적인 작품은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그리고 토론할 수 있을만큼의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중간중간 독특한 맥락으로 던져지는 미카베의 곤충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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