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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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고타로의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를 통해 처음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만났다. 일본 작가들에게 붙여지는 '**월드'라는 수식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정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구축되어야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카 고타로 역시 월드라는 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소개가 꽤 흥미로웠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는 중세의 마녀사냥,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업의 구조조정, 거짓말 탐지기 등등 여러 군데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설정이 남다르다. 거기다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이 내용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연막 작용을 한 탓에, 책을 집어들면 겉보기와는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

 

 가장 큰 바탕은 안전지구로 선정된 지역의 평화경찰에 의해 적발된 반사회적 인물들이 처벌당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초반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세의 마녀사냥을 끌어들여 설명된다. 세상의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야기하는 전체의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무작위의 특정인을 지목하여 마녀로 몰고, 절대 입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마녀의 자백을 받기 위해 집행자들은 고문을 하고, 마녀는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여 처형 당하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거나 아니면 끝내 버티다 고문을 당해 죽는다는 선택지밖에 없다. 구조조정과 소설 속 '안전지구'라는 제도는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비슷한 면모를 가졌다.

 

 '지역안전을 지키는 과'와 평화경찰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해당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아우르며 시민들이 스스로를 더욱 자제하고 억압하도록 만들고, 타인을 감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사실 이런 자경활동 혹은 집단의 의심은 어느 시대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던 부조리일 것이다. 특히나 일본 작가를 통해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가혹 행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음을 문득 떠올렸을때, 단지 표현된 문장이 주는 그 이상의 이유있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중간에 헌법 9조의 전수방위에 대해 언급하며 무방비, 아름답고 허무함, 가엾음 같은 표현을 마주하면서부터는 더더욱.

 

 합리적 절차 없이 가학적 성향을 가진 평화경찰에게 주어진 이 기묘한 책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몸집을 불린다. 사람들은 타인의 공개 처형을 광장에서 즐기는 한 편, 고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고, 위험분자일지도 모르는 -어쨌든 돌아오지 못할- 주변인들이 맞이한 가정 방문의 현장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 안전지구에 등장한 진정한 불온세력/위험분자가 나타나며 이사카 고타로의 새 월드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기묘한 차림의 이 히어로는 불안한 세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독자에게 안도와 반가움을 주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한계점을 보여주며 떨치지 못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듯한 이 도발적인 작품은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그리고 토론할 수 있을만큼의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중간중간 독특한 맥락으로 던져지는 미카베의 곤충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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