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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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겠다 -프리드리히 니체"

 

 나에게는 걷는 친구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걷고 쓰는 자로 칭한다. 책세상의 신간인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였다. 비록 최근 그는 발달한 서울 시내의 따릉이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어 페달을 '굴리는' 일이 조금 더 잦아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그만큼 걷기에 익숙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본 적이 없다. 게다가 다행이도(?) 날이 추워진 관계로 다시 따릉이에서 내려와 걷는 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과 상통하게도, 옆에서 본 그는 성숙한 사고를 가진 작가이다. 그렇다면 정말, 걷는다는 행동에는 사유의 진척을 보조하는 어떤 기능이 숨겨져있는 것일까. 걷기와 사유의 사이에 존재하는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면, 절친한 친구인 그가 오래도록 걷고 걷는 길 위에서 바라보고, 발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이 이중의 움직임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데 이 움직임은 대단히 특이하다. 스스로를 거역하고, 자기 자신에 맞서서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는 움직임이다. 아니, 항상 스스로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자신을 연장하고 지탱하고 영속시키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줄곧 불균형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다시 균형을 잡는다. 불안정한 가운데 안정적이다. 우리는 불균형을 키우고 기획하고는 거기에 정착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동한다. 이처럼 걷는 방식이 우리의 특징이다.

 이제 이해했다. 반복할 필요 없다. 더는 그 생각을 말자.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생각을 하라고 제안하겠다. 그 명백한 사실을 파고들라고 말이다. 걷기는 촉발되다가 모면되고, 시작되다가 바로잡히는 작은 추락이라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더 명료하게 들여다보고 탐문해서, 늘 계속되고 늘 저지당하는 추락의 조짐으로 나아가는 이 방식이 무엇을 내포하는지 탐구하고 싶다.  p15-16 서서 나아가기"

 

 사실 다른 부분들보다는 도입부에 있는 '걷기'에 대한 관점이 크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로봇산업이 발달하면서 종종 더 인간다워진 로봇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이족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일본 혼다의 '아시모'나 국내 카이스트의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의 '휴보' 같은 것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소 어색한 그들의 걸음을 떠올리며 이 아름다운 연속적 행위인 걷기를 인간처럼 구현해 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불균형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자기파괴적 행동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로봇이 할 수 이을 것이라 생각치 않았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문득 이족보행 로봇을 찾아보았는데, 미국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의 영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거의 인간과 흡사한 백덤블링까지도 구사하는 로봇의 영상을 보며 그 전까지 한계를 두었던 로봇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그리고 더불어 그만큼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루어졌음을 연관지어 떠올렸다. 이 둘이 접목된다면 인공지능을 가진 이족보행 로봇은, 우리의 철학자들처럼 '걸으며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걷기와 사유에 대해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세세히 파헤쳐 낼 것 같았던 처음의 시작에 비해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자 이름난 철학자들과 걷기를 연결시켜 나열한 내용이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웠다. 걷기라는 큰 주제로 모을 수 있는 철학자들의 소재를 실 하나에 묶어 나란히 잘 꿰어낸 목걸이같은 구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소 가벼운 내용으로, 그보다는 걷기와 사유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소재들을 가져왔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만 "18 남몰래 절뚝인 디드로"와 같은 부분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때로 인상적이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아쉽게 느껴졌던 가벼움도, 철학적 내용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걷는 자는 아니다. 길눈이 밝지 않아 목적한 곳을 찾아가려면 온통 그것에 집중해서 정신없이 걷는 편이다. 때로 익숙한 귀가길을 걸어가보곤 하지만, 길 위에서 걷는다는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걷는 동안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나는 이동수단 위에 얹혀져 옮겨지는 순간에야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타입인 것이다! 열심히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읽어놓고 밝히기에는 적절치 않은 고백이다. 지하철은 바깥의 풍경이 단절된다는 점과 특유의 양보문화 때문에 자리에 앉아 어떤 생각을 이어나가기 편치 않은 편이고, 근래 들어서야 선호하게 된 것이 버스다. 그 전까지는 버스 노선의 복잡함과 목적지에 정시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가끔씩 버스를 이용하면서부터 그 안에서 '자리에 앉기만 한다면' 지나가는 풍경을 배경삼아 몇시간이고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저자 로제 폴 드루아가 강조하는 걷기적 인간이 현대문명과 만나 변화된 것이 태워진 인간형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한 공간 안에서 정체된 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걷기와 실려감/태워짐 사이에는 앞으로 나아가며 사유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 안에는 목적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걷는 인간과 태워진 인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걷기는 오직 걷기만을 위한 행위가 존재한다.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걷기 위한. 이는 걷는 시간을 통해 머리 속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의미가 크다. 반면, 목적지가 없는 드라이브는 생각을 비워내기 위한 의미가 크다. 이 차이는 실제적인 "작은 추락"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고에서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엉뚱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름 관심있게 책을 읽은 시간이었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읽고 파생된 사고들을 정리해놓았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철학자'에 더욱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 점 유의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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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만 나가서 산책하고 싶네요.

테일 2017-12-01 23:00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올해 처음으로 눈이 오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춥지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
 
기적의 리미널 씽킹 -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데이브 그레이 지음,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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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인 '리미널 씽킹'이라는 말이 매우 생소했다. "'리미널'이라는 단어는 '문턱'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리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문턱을 "경계, 한계, 또는 가장자리"의 의미로 보고 리미널 씽킹을 "경계에서 생각하기"로 정의한다. "경계는 바뀌고, 재고되며, 재구성되고, 재편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이의 경계, 익숙한 것과 색다른 것 사이의 경계, 낡은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의 경계,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통해 타인에게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이끌어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꾀하는 것이다. 언뜻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쉽게 말하자면 다방향으로 시선을 옮겨 문제를 바라보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혁신적 사고를 하자는 의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책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는 점은 아집을 버리고 관용적 시선을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첫 예로 나왔던 맹인과 코끼리 우화부터 90년대 초의 저자의 이직 경험에 관한 내용들은 자신이 보는 것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이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구 "문제는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는가'이다"를 인용하며, 자신이 본 것, 경험한 것의 아집에 빠지면 스노글로브 속 세상에서 창조된 자기 폐쇄적 믿음 거품에 둘러싸인 것과 같으며 이는 맹인이 손으로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어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다. 처음 어색했던 것에 비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고, 읽어보면 보편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어 부담없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제안들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 중에 가족 치료와 관련된 예시가 있는 "실천 6 일상의 틀을 깨라" 단락은 다소 아쉬웠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생긴 예를 들고 있는데, 귀가가 늦고 자신의 방을 정리하지 않는 반항적인 아이와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시 안의 부모는 그들을 단속하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내며 훈육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모든 상황 자체가 "일상의 틀"로 구조화 되어 문제가 악화될 뿐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취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반응을 보이면 아이 역시 문제 행동을 멈추고 달라진 반응를 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소 이론적인 예시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와이파이 장치를 꺼버린다는 해결법은 오히려 반항심을 더 키우는 행동 아닐까 싶었다.

 

 자기 계발이나 성공법이 담긴 내용의 책들을 읽을 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기적의 리미널 씽킹'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나간 편이다. 책의 구성이 한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 폰트가 약간 크고 첨부된 표나 간단한 그림들이 중간중간 개념을 단순화 시켜주면서 가독성을 높여주었다.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이 크게 새롭거나 획기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이 느껴질때 혹은 활력을 위한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다. 책의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책에서 내세우는 9가지 실천을 통해 역지사지의 태도를 훈련해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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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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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협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 것일까. 였다. 책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첫번째 사례는 이미 이륙 준비에 들어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노력한 학생의 이야기다. 닫힌 탑승게이트 앞에서 실랑이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조종석의 기장 근처로 가서 그들을 간절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으로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기장의 탑승 허가가 떨어져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륙 준비중인 비행기를 세웠다고 하니, 엄청 대단해보이는데 사실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종종 경험해볼 수 있는 유형이다.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따라가 문을 두드려 탄 경험이 있다면 느낌이 올 것이다. 이 부분에서 '협상'의 범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 첫 예에서부터 이는 협상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인정에 호소한 일방적인 부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학생이 도착지에 내려서 기장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우린 좋은 협상을 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이 적합한 표현이 될까? 예시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은 아닌지 아쉬운 시작이었다.

 

 이 책에서는 협상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고려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 열두 가지의 전략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내용이고 특히, 첫번째 목표에 집중하라는 부분에서 언급한 회의 준비 내용은 크게 공감되었다. 한 안건을 가지고 회의에 참여하는 공동체 인원들이 서로 목표를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회의는 장거리가 되는데, 회의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는 커녕 서로의 이견을 가다듬는 일에만 진을 빼는 상황이 생긴다.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일이라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보통의 내용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미리 준비하여 대비하라는 위주의 조언을 한다.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하는 한 편, 때로 인정에 호소해서 해결되는 일들의 예를 뒤엎고, 타인에 대한 인정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예도 있었다. "한 학생이 밤 11시 5분 전에 맥도날드에 가서 감자튀김을 샀다. 그는 감자튀김이 눅눅한 것을 보고 새걸로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점원은 5분 뒤면 문을 닫는다며 거절했다. 학생은 말없이 카운터 한 쪽 끝에 있는 광고지를 들고 다시 점원 앞에 섰다. 유인물에는 언제나 신선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맥도날드 맞죠?" 점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광고지에 언제나 신선함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네요. 문 닫기 5분 전에는 신선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는데요?" 결국 학생은 새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p.92 제 4강 표준과 프레이밍에 대하여" 의 내용을 보며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호소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대의 감정과 상황은 철저히 배제하라는 내용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책에서 강조하는 협상법이 아닌 제목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법에 가깝다.

 

 10강에 이르면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도,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어지럽힐 만한 취업준비 사례들이 나온다. "나는 면접에서 까다로운 면접관을 만났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에게 "면접 볼 때가 그나마 그 사람이 제일 친절한 것"이라는 일침을 놓는다"는 내용이나, "나는 해마다 수백 개의 이력서를 받아본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흔적이 보이는 이력서는 드물다.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탓이다."는 내용들은 약간은 꼰대스럽다. 게다가 14강의 원하는 서비스를 얻는 법으로 가면, 서비스업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읽기 곤혹스러운 진상 사례들도 마치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끼워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호감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나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다면, 그 예로 제대로 된 컴플레인을 못해서 잘못나온 메뉴을 억지로 먹어 후회된 적 있다면, 불량품을 사놓고 교환, 환불을 하는 일이 망설여져 그냥 방치해둔 적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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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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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남 오빠에게'를 받은 택배 포장을 풀면서 속으로 '드디어 이 불온서적이 내 손에 들어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시대에 이를테면, 불온서적이란 것을 정한다면 페미니즘의 필터에 걸리는 책들이지 않을까. 워낙 입장이 분명히 갈리는 쟁점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 오빠에게'를 밀어넣어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궁금했던만큼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싫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지 않고서 밖으로 표출되기 어려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깝더라도-가족이더라도- 평소의 생각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욱이 가까울수록 더 알고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다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이어지는 단편들은 고통스럽게 읽었다. '불편'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일부 여성들을 희화화하고 비꼬며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린 탓에 대체될 다른 표현을 쓸까 생각해봤지만, 정말이지 불편한 요소들이 줄지어 나오는 내용에 읽는 것이 고역스러웠다. 묘사된 인물과 상황들은 지극히도 보통의 평범한 것들이었는데도, 지금 종이위에 인쇄된 글로 마주하니 수동적이고 어리석게 받아넘겨온 부조리들로 점철된 후회와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오빠에게'를 밀어넣는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느낀 부조리와 괴로움을 의식하면서도 고작 소설 책 한 권조차 책상 위에 놓기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잘못되었다, 입맛 좋을대로 해석한다, 이기적이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여자들이 내세우는 비논리다. 이런 말들이 이 책 한 권을 들고 거리로 나가 어디서든 책을 읽을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너도 00이었어?" 라는 이상한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때로 자신이 느낀 것조차 진짜 그렇게 느껴도 괜찮은 것인지 검열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가끔 '현남 오빠'가 해줬던 것들 중에서 '그래도 이건 괜찮네'하고 평가하던 자신도 있었으니까.

 

 문득 '이방인'이나 '화성의 아이'로 내용이 흘러갔을때는 이어진 고통들에 비하는 자극이 왜 더 주어지지 않는 단편들이 나올까 의아했다. 좀 더 공감하고 분노하고 싶었다. 결국은 또 수많은 여성들이 읽겠지만, 여기 미지의 인물로 그려진 현실의 단면이 있음이 명시된 단편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의 평화'나 '현남 오빠에게'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올만한 자극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들 작품들이 가진 의도 역시 충분히 공감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에피소드라 생각하고 있었던 '라이카'에 대한 내용은 특유의 처연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추모곡과 함께 감상하기를.

 

 솔직히 말하자면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적 감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고조되어 마지막에 표출된 분노와 경멸은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같이 병맛스러운 에피소드들과 가까운 이의 연애사정을 듣고 참견하고 싶어하는 심사가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작품이 나와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상황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더 괜찮게 느껴진다. 아직 '82년생 김지영'이나 '딸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는데, 곧 짬을 내어 읽어보고 싶어졌다. 더 큰 자극을 기대하는 중독자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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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인문학 - 조선 최고 지성에게 사람다움의 길을 묻다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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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풀어진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긴 연휴가 일상을 잠깐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도 아닌 것만 같다. 그동안 버릇처럼 해오던 일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껏 풀어짐에 기대어 얼마간을 지나보내고 나니 이제서야 퍼뜩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아침에 본 일기예보에서 주말 즈음 눈이나 비가 올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짧고도 어설프게 한 계절을 지나왔구나 싶어졌다. 어쩌면 가을을 탔으리라.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인 저자 한정주의 신간 '율곡 인문학'은 율곡의 "자경문"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고 있다. 각 장은 입지, 치언, 정심, 근독, 공부, 진성 그리고 정의로 구분되는 7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 안에서도 소주제들이 나뉘어져 있어 설명이 지리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자칫 생몰을 늘어놓는 위인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화들은 그의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는 정도의 에피소드로 기능해서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다.

 

 전에 유시민 선생이 방송의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강릉의 오죽헌을 찾아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부각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마침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두 인물이 3장 정심의 구방심공 [어지러이 흩어진 마음을 다잡아라] 부분에서 나왔을 때 주의깊게 읽었다. 특히 이이가 자경문을 쓰게 된 배경 중에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정신적인 방황을 한 4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이이의 생에서 신사임당이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했다.

 

 특히 이와 비교되는 일화로 6장 진성의 전력어인 [사람을 정성껏 대하라] 부분에 그의 서모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위인전을 읽으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내용만 알았지, 서모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이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사임당에 비해 부족한 롤모델이었다면 그는 어디에서 빈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인물을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율곡의 삶을 위인전으로 읽던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이제 다시 살펴보니 그가 가진 기량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자경문"은 그가 20세 때 지었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성숙도가 과거와 지금이 다르다고는 하나, 그 나이에 이미 스스로의 삶에 있어 그 방향을 정하여 세울 수 있었다니 뛰어난 인재로 평가될 만하였다. 또한 퇴계와의 접점이 짧아 두 학자가 동시대에 활동할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은 책을 읽으면 2-3일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긴 시간을 더디게 보내면서 '율곡 인문학' 역시 더디게 읽었다. 그동안 항상 인문학이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사전에 정의된 말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나름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과 기대했던 인문학의 범위를 '사람다움의 길'로 끝맺기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배움을 확장시키지 못한 자신의 소양탓으로,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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