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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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는 독특하다. 오래된 이의 고문을 옮겼다고 해서 다로 고루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여타의 소설보다 잘 읽힌다. 워낙 문장을 늘어지지 않도록 잘 옮겨놨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담백해서 읽기에 좋았다. 언뜻 제목을 봤을 때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에세이 책이 떠올랐다. 내심 왜 제목이 굳이 비슷하게 나왔을까 염려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장의 온도"를 읽으면서 제목이 비슷한 것이 마뜩치 않을 정도로 깊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혹 그 에세이를 읽고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문장의 온도"를 읽어보길 권한다.

 

 "문장의 온도"안에 수록된 문장들을 이덕무의 문집에서 한정주씨가 꼽아 번역해서 옮긴 것이다. 옮겨진 문장들이 어디서 왔는지 일일이 함께 표시해놓았기 때문에 확인하며 읽을 수 있다. 옮긴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1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2 내 눈에 예쁜 것, 3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곳, 4 세상에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않겠다, 5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얼어붙은 세상을 녹인다, 6 온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 총 여섯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구분해놓았다. 때문에 관심사에 따라 어떤 부분은 단조롭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깊이 공감하게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3번과 4번, 6번 단락을 읽을 때 가장 흥미로웠다. 3번과 4번 단락은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읽으면서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특히 3번 단락에서 '세상의 기이한 일들 (p104)', '자연의 다양성 (p113)', '평양의 싱크홀 (p115)' 같은 내용들은 읽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어 읽으면 흥미로울 것이다. 4번 단락의 내용들은 지금과 가치관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나의 생각과 입장은 어떤지 찬찬히 정리해보게 된다.

 

 6번 단락은 글과 책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뤄서 관심있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 '책을 빌렸다면 (p324)' 중 "무릇 서적이 있다면 비록 좋아하고 아낀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는 운장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내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랬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빌려준 책이 깨끗히 돌아오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임을 탓하는 동춘 선생의 일화가 함께 소개되어 새로운 관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예전 어느 면접 자리에서 받았던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아마 거의 마지막 질문이었을텐데, 그동안 읽은 책이 몇 권 정도 되는 것 같으냔 질문이었다.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이 떠올라 애매하게 다섯 수레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답을 했더니, 한 수레에 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느냐고 또 물어왔었다. 결국 잘 모르겠다고 말았는데, 면접을 보고 난 다음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계산법이 되었든, 지금의 추측이 되었든 아마 죽기 전에는 다섯 수레의 책을 다 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내용이 작위적이지 않고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다. 에세이같지 않으면서도 고문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세련됨이 보인다. 에세이 특유의 잠시간의 찰나, 센티멘털에 빠진 감상들에 대해 이리저리 늘어놓지 않았고 한문으로 점철된 숨막힘도 없다. 에세이 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만한 내용이다. 속 안의 정갈함을 그대로 옮긴듯한 표지도 인상적이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덕무가 남겨놓은 "문장의 온도"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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