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독특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소재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시간'은 그 사용 빈도가 높은 만큼 생활에 밀접하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몇몇의 에피소드 들은 익숙한 내용이다. LP에 이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CD 한 장의 용량이 어떤 계기로 정해졌는지에 관한 내용이나, 저 유명한 "베트남, 네이팜 탄, 소녀"의 사진 등이 그러하다. 익히 알고 있던 혹은 전에 생각해본적도 없던 내용이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가? 과거-현재-미래라는 흐름,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정해진 일과, 상대적으로 체감되는 동일한 시간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단순히 떠올리는 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다. 덕분에 초, 분, 시, 일, 월, 년의 시간 흐름을 의식하고 의심하게 됐다. 시간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단위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어딘가 불편하다. 마치 숨 쉬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다 갑자기 의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2018년이 벌써 3월까지 됐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며 시간의 흐름에 무덤덤했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책을 읽으며 흥미롭기도 하고 시간이라는 소재의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마침 백화점에 들렀다가 무심코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이끄는대로 들어가 피부나이 측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쩌면 익숙한 체험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소하고 어딘지 얼떨떨한 일이었다.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상자같은 기구를 잠시간 얼굴에 대고 있자 사진이 찍히고, 피부상태에 대한 평가가 뜬다. 피부결, 주름, 유수분, 기미 등의 상태를 나이로 환산하여 알려준다. 이를테면 피부결은 20세, 주름은 35세, 기미는 40세와 같은 식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알 수 없을 빈약한 테스트임에도 눈에 들어오는 나이라는 측정값은 무시할 수 없이 다가왔다. 어리진 못할 망정 제 나이와 비슷하게 나온 값들도 억울한데, 나이보다 많이 나온 항목에선 충격을 받고 열심히 설명해주는 상담사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라며 급작스런 공황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득 읽고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떠올렸다. 가벼운 쇼크 상태에 빠져 내 얼굴, 피부에서 발견한 과거-현재-미래의 나이들. 그 '거의 모든 시간'들을 되짚어보다 불쑥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젊음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이 1월을 매우 싫어했고 1월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나는 1월은 하나의 표식일 뿐이며 1월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50)"

 2017년 12월 31일의 나보다 2018년 1월 1일의 내가 하루만큼 더 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하루가 1년의 나이를 가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주는 부담감은 지나치다. 더욱이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거나, 서른 아홉에서 마흔이 되는 등의 변화가 있다면. 차라리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 모든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간사하여 시간으로 인해 얻은 수많은 편리를 쥐고서 고작 피부나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며 시간의 파괴와 종말을 꿈꾼다. 시간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얻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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