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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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소재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시간'은 그 사용 빈도가 높은 만큼 생활에 밀접하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몇몇의 에피소드 들은 익숙한 내용이다. LP에 이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CD 한 장의 용량이 어떤 계기로 정해졌는지에 관한 내용이나, 저 유명한 "베트남, 네이팜 탄, 소녀"의 사진 등이 그러하다. 익히 알고 있던 혹은 전에 생각해본적도 없던 내용이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가? 과거-현재-미래라는 흐름,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정해진 일과, 상대적으로 체감되는 동일한 시간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단순히 떠올리는 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다. 덕분에 초, 분, 시, 일, 월, 년의 시간 흐름을 의식하고 의심하게 됐다. 시간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단위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어딘가 불편하다. 마치 숨 쉬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다 갑자기 의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2018년이 벌써 3월까지 됐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며 시간의 흐름에 무덤덤했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책을 읽으며 흥미롭기도 하고 시간이라는 소재의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마침 백화점에 들렀다가 무심코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이끄는대로 들어가 피부나이 측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쩌면 익숙한 체험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소하고 어딘지 얼떨떨한 일이었다.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상자같은 기구를 잠시간 얼굴에 대고 있자 사진이 찍히고, 피부상태에 대한 평가가 뜬다. 피부결, 주름, 유수분, 기미 등의 상태를 나이로 환산하여 알려준다. 이를테면 피부결은 20세, 주름은 35세, 기미는 40세와 같은 식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알 수 없을 빈약한 테스트임에도 눈에 들어오는 나이라는 측정값은 무시할 수 없이 다가왔다. 어리진 못할 망정 제 나이와 비슷하게 나온 값들도 억울한데, 나이보다 많이 나온 항목에선 충격을 받고 열심히 설명해주는 상담사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라며 급작스런 공황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득 읽고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떠올렸다. 가벼운 쇼크 상태에 빠져 내 얼굴, 피부에서 발견한 과거-현재-미래의 나이들. 그 '거의 모든 시간'들을 되짚어보다 불쑥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젊음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이 1월을 매우 싫어했고 1월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나는 1월은 하나의 표식일 뿐이며 1월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50)"

 2017년 12월 31일의 나보다 2018년 1월 1일의 내가 하루만큼 더 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하루가 1년의 나이를 가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주는 부담감은 지나치다. 더욱이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거나, 서른 아홉에서 마흔이 되는 등의 변화가 있다면. 차라리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 모든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간사하여 시간으로 인해 얻은 수많은 편리를 쥐고서 고작 피부나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며 시간의 파괴와 종말을 꿈꾼다. 시간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얻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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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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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라는 분류에 속할만한 책은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다른 분류의 책들을 읽어보자 싶어서 이것저것 읽어보았더니, 단편이어도 문학이라는 세계가 낯설었다.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인 '한정희와 나'는 수상작인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로 시작한다. 뒤를 잇는 쟁쟁한 작가들의 후보작들까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회문제/현실들을 꼽고 있다. 작가들이 시대와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작품안에 담아냈다는 점은 좋지만, 그것들이 다소 적나라한 분위기를 띄고 있어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지목하는 글인듯해 아쉬웠다. 좀 더 견고한 세계의 구성이 아쉬웠는데, 아무래도 장편이 아쉬운 시점이었던가 보다.

 

 수상작 '한정희와 나'를 읽고 한동안 얼떨떨했다. '무엇이 어떻단 말이야'라는 의문이 남았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p37)" 이란 말의 그늘 아래서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과 해서는 안 되는 말들(p37)"이 무엇이었을지 감을 잡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나쁜 아이 같이 순화된 표현으로 시작되는 물렁한 말에서 어떤 독설이 이어졌을지 잘 가늠되지도 않고, 그런 말이 나왔다 한들 그 정도는 이미 정희도 분위기로 읽었을 수준의 속내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생각됐다. 면전에서 들으면 얼굴이야 굳히겠지만. 묘사된 정희의 모습에선 그저 "x발, x나 유세떠네."하고 뱉어내버릴 잔소리쯤 아니었을까.

 

 다만 그것이 모든 관계를 무너뜨릴 역할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특히 집착적으로 의식하는 '환대'라는 것에 얽혀있다는 점이다.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죄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과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p33)" 

 이 부분에서 '환대'가 가지는 의미가 죄와 사람, 복수 같은 것들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어린 나이에 낯선 집 한 귀퉁이에 짐을 풀어야 하는 정희가 안타깝고, 집에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 환대를 해줘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환대는 반갑게 맞아 잘 대접할 뿐이지 누군가의 잘못을 희석하거나 분리해야할 당위를 주진 않는다.

 

 덧붙여 이미 마석에서 정희가 오게 되었을 때 혹 과거 아내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절대적 환대'라는건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희석되어 버린다. 때문에 그를 의식해서 되갚는 식의 '절대적 환대'를 내주어야 할 의무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희를 맡게 되는 사정을 읽다보면 그들 내외, 특히 자신이 정희에게 해야만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환대 자체는, 부채와 동정으로 얼룩진 양심의 조각일 뿐 그 아이를 향한 진짜 환대였던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읽고나니 딱 한 개의 고리만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정희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아쉬웠던 그 한 개의 고리가 현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한정희와 나'보다는 자선작으로 뒤를 잇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도 그렇고, 권여선의 '손톱', 김애란의 '가리는 손', 최은영의 '601, 602' 등이 더 인상적이었다. 특히 권여선의 '손톱'은 습관적으로 생활비를 헤아리는, 푼돈 쿠폰을 모으고 모아 최저가를 검색하는, 먹고 싶은 메뉴보다 가성비를 고려하는, 한달 생활 영수증을 모아 '스튜핏과 그레잇'을 평가받아야만 하는 젊은 세대의 궁핍함을 잘 드러냈다. 생각보다 페미니즘과 다양성에 관련된 내용이 드물었던 것 같다. 18회 작품집에는 더 많은 작품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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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천재가 된 홍 대리 - 딱 6개월 만에 중국어로 대화하는 법 천재가 된 홍대리
문정아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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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던 일과 어학은 밀접하게 얽혀있었다. 매일 출근하던 길에 언젠가 커다란 간판 하나가 솟아나더니 문정아 중국어 학원이 생겼다. 어학 쪽에서 가장 주류를 이루는 영어, 그리고 뒤를 이은 일본어 구도를 제치고 중국어가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 변화로 나타날 때였다.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이다. 문정아 중국어는 중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으로, 그 즈음 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여러 광고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에 익어 알게되었다. 그가 이미 각종 어학원들로 포화 상태인 곳에 당당하게 들어선 어떤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전에도 중국어를 배워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일과 병행하려고 하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학원을 끊었다가 제대로 다니지 못했었다. 특히 한자와 성조. 한자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자도 외워야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와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가 다르다는 것에 당황도 했었다. 성조의 어색함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한 번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를 책으로 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다행히 압박감이 느껴지는 문제집이나 전형적인 어학교재 스타일이 아니라, 책을 읽듯이 술술 읽어넘기며 볼 수 있었다. 이 점이 홍대리 시리즈가 가진 장점인듯 하다.

 

 

 

 처음 읽어볼 때는 스토리 위주로 읽어넘겼다. 그리고 다음은 어플을 다운받아 자료를 들으며 어설프게나마 따라하며 실제적인 챕터가 나오는 부분들만 보았다. 빽빽한 한 권의 내용이 다 단어와 문장, 문법들로 되어 있었다면 부담스러웠을텐데 오히려 공부하게 되는 분량이 좀 적은 건 아닌가 싶을만큼 스토리 구성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다. 읽다가 때때로 중국어 공부 분량이 나오면 '드디어 나왔구나'하고 반길만큼. 보통은 공부하다가 잠깐 첨부된 읽을거리를 반기게 되는 구성이 많은데 정반대의 반응이 나오게 되니 어떤 부분은 좀 어렵다고 생각되도 의욕이 꺾이지 않고 유지되었다. 

 

 단어나 문장이 나오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 가벼운 건 아닌지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하게 중국어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해주는 점이 좋았다. 노래를 들으며 공부할 수 있는 사이트나, 메신저 앱에 대한 소개도 있고, 뉴스기사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도 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흥미를 잃지 않고 다양하게 중국어를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해주는데, 책 속에서 중국의 신조어 관련하여 설명된 내용은 우리의 신조어들에 해당하는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본문에 있는 내용 뿐 아니라 책 뒷편에 첨부된 마법의 문장 300 종류의 내용도 부록으로 함께 공부해볼 수 있다. 부록은 일상, 비즈니스, 여행과 관련된 간단한 회화를 접해볼 수 있는 구성으로 실전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다.

 

 

 이 책만을 통해서 공부를 하려고 생각하기 보다는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계기가 되는 점이 더 컸다. 더많은 기본기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학습서나 온오프라인을 통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문정아 중국어가 어떤 접근을 통해 학습자들의 관심을 끌고 중국어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책으로 접하는 내용도 그동안의 노하우를 잘 살려 학습자의 눈높이를 맞춘다고 생각되는데, 실제적으로 저자의 강의를 들어본다면 더 큰 효과가 있겠구나 짐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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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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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는 독특하다. 오래된 이의 고문을 옮겼다고 해서 다로 고루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여타의 소설보다 잘 읽힌다. 워낙 문장을 늘어지지 않도록 잘 옮겨놨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담백해서 읽기에 좋았다. 언뜻 제목을 봤을 때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에세이 책이 떠올랐다. 내심 왜 제목이 굳이 비슷하게 나왔을까 염려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장의 온도"를 읽으면서 제목이 비슷한 것이 마뜩치 않을 정도로 깊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혹 그 에세이를 읽고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문장의 온도"를 읽어보길 권한다.

 

 "문장의 온도"안에 수록된 문장들을 이덕무의 문집에서 한정주씨가 꼽아 번역해서 옮긴 것이다. 옮겨진 문장들이 어디서 왔는지 일일이 함께 표시해놓았기 때문에 확인하며 읽을 수 있다. 옮긴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1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2 내 눈에 예쁜 것, 3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곳, 4 세상에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않겠다, 5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얼어붙은 세상을 녹인다, 6 온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 총 여섯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구분해놓았다. 때문에 관심사에 따라 어떤 부분은 단조롭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깊이 공감하게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3번과 4번, 6번 단락을 읽을 때 가장 흥미로웠다. 3번과 4번 단락은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읽으면서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특히 3번 단락에서 '세상의 기이한 일들 (p104)', '자연의 다양성 (p113)', '평양의 싱크홀 (p115)' 같은 내용들은 읽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어 읽으면 흥미로울 것이다. 4번 단락의 내용들은 지금과 가치관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나의 생각과 입장은 어떤지 찬찬히 정리해보게 된다.

 

 6번 단락은 글과 책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뤄서 관심있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 '책을 빌렸다면 (p324)' 중 "무릇 서적이 있다면 비록 좋아하고 아낀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는 운장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내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랬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빌려준 책이 깨끗히 돌아오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임을 탓하는 동춘 선생의 일화가 함께 소개되어 새로운 관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예전 어느 면접 자리에서 받았던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아마 거의 마지막 질문이었을텐데, 그동안 읽은 책이 몇 권 정도 되는 것 같으냔 질문이었다.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이 떠올라 애매하게 다섯 수레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답을 했더니, 한 수레에 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느냐고 또 물어왔었다. 결국 잘 모르겠다고 말았는데, 면접을 보고 난 다음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계산법이 되었든, 지금의 추측이 되었든 아마 죽기 전에는 다섯 수레의 책을 다 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내용이 작위적이지 않고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다. 에세이같지 않으면서도 고문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세련됨이 보인다. 에세이 특유의 잠시간의 찰나, 센티멘털에 빠진 감상들에 대해 이리저리 늘어놓지 않았고 한문으로 점철된 숨막힘도 없다. 에세이 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만한 내용이다. 속 안의 정갈함을 그대로 옮긴듯한 표지도 인상적이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덕무가 남겨놓은 "문장의 온도"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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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월급쟁이 부자들 - 투자의 고수들이 말해 주지 않는 큰 부의 법칙
성선화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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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 윤택해지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한다. 여러 신문기사로 접한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로또 판매량이 하루 평균 104억원 어치나 팔리는 등 판매량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로또와 같은 복권은 경기가 나쁠수록 소비가 늘어나는 불황형 상품이다. 체감 경기는 팍팍한데다가 계층 사이의 박탈감이 갈수록 더해지면서 로또와 같은 일확천금의 한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던 것은 아닐까. 최근 엄청난 이슈가 된 가상화폐 시장도 그러하다. 투자가 아닌 투기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가상화폐 역시 일부 사람들의 전설적인 수익률 신화가 퍼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길 소망하는데, 다산북스에서 출간한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은 그 제목만으로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월급쟁이인데 100억을 버는 일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과 함께, 읽기 전에는 과연 이 책의 내용에 공감이 가거나 흥미가 생길만한 부분이 있을까 싶었다. 투자라는 것도 매우 생소하고, 흔히 하는 생각으로 뭐라도 해보려면 그에 맞는 자금이 필요한 일인데 그조차 거리감이 들었다. 극히 일부일부를 제외하고는 주식도 가상화폐도 결국 개미들은 휩쓸리다 나가떨어져 버린다고 하지 않나. 투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거기다 100억이라는 빅넘버의 월급을 제시한다해도 의심스러울 뿐 딱히 체감되는 것은 없었다.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처음 받았던 인상보다 더 애매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처음 읽기 시작하는 들어가는 말부터 난감했다. 대체투자 시장에서의 성공에 대해 말하면서 금수저가 아니어도 괜찮다, 흙수저도 가능하다.고 진입장벽의 여지를 주며 강조한다. 읽어보니 언뜻 희망적인 것 같지만 이어지는 내용이, 개인의 수저보다는 일명 스카이로 통용되는 명문대를 나오는 것이 플러스 됨을 "업계가 원하는 지적 수준"이라는 표현으로 우회하여 표현했다. 새삼, 반발심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명문대를 간다는 것도 결국은 집안 비율이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저자가 모를까. '개천에서 용난다도 이젠 옛 말' 이라고 공공연히 사용되는데.여기에서 이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회의감이 들었다가 문득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말이 떠올랐다. 간절함. 어쩌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감을 얻거나 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조차도. 처음 짐작으로 그냥 덮어버리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보던 시선을 접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마음을 덜어내고 읽으니 회의감이 들었던 처음보다는 조금 나았다. 100억짜리 월급쟁이가 어디있냐고 의심했던 것과는 달리 어떤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싶은 묘한 기대감이 있었나보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모두가 100억 부자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비록 실패를 하더라도 그 노력의 결과가 언제 어디서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p. 116 1부 100억 월급쟁이 부자의 DNA "


 1부에서 나오는 내용은 다소 전형적이다. 처음에 제시됐던 정장근 대표의 다섯가지 꼴과 같은 내용은 세련됨이 좀 지난 프레젠테이션 내용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를 이어서 기본이 될만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몇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런 형식은 거의 반복적으로 계속되어 2부까지도 이어진다. 어떤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1부와 2부에서 나오는 기업이나 인물에 대한 예들은 크게 눈길을 끌지 않고 지나가지만 3부에 들어서면 왠지 호흡이 달라진다.


 3분의 내용은 관조적으로 이 사람은 이런 일을 겪었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되는 것처럼 흥미를 자극한다. 3부의 부제가 일상생활 속 대체투자인만큼 좀 더 실제적으로 와 닿는 예들이 사용되어서 그런 것 같다. 마스크팩에 대한 이야기나, 전지현이 모델로 나오는 치킨업체에 대한 이야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광고하는 스테이크 메뉴의 상황,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 숙박업소 예약 어플 등 티비 광고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접하고 실제로도 딱 해당 브랜드와 제품을 내가 이용해본 적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업체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마치 어느 하루 패밀리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메뉴로 식사하고,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를 마시며, 어플로 예약한 숙박업소에서 하루 머물며, 치킨을 배달해먹고, 잠들기 전에 팩을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정을 짤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다들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을 읽으며 기대했던 감상과는 거리가 먼, 달을 가리켰는데도 그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것 같은 감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받침으로 삼아 어떤 성공을 이뤄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100억을 벌면 좋겠지만 모두가 100억을 벌수도 없고 벌어야하는 것도 아니니, 그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누군가의 인센티브가 100억이라는 말에 전두엽까지 전해지는 찌릿한 충격을 받은 저자니, 그에게는 이 법칙을 유용히 이용하여 큰 부를 얻는 게 목표였으리라. 그리고 같은 목표로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법칙들이 그 나름의 도움이 될 것이다. 업계에서 요구되는 지적 수준을 잊지 마시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업체는 어떻게 성공했지, 어떤 난관에서 벗어났을까 하는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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