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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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로는 장편을 읽은 게 오랜만이었다. 사실 한동안 뭔가를 읽지 않았다. 한동안이라고 해도 한달이나 이주 정도 되려나. 날이 점점 더워져서,는 핑계이고 스마트폰 중독 때문이다. 급기야 최근들어서 말하다 단어가 도통 떠오르질 않아 "그게 뭐였더라?"만 댓번 하고마는 일이 생겼다. 이러다 영영 장편은 못 읽게 되는거 아닌가 싶은 불안에 잠길 때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을 만났다.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장편에 400쪽 정도 되는 분량이 두려웠다.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보다가 뇌가 망가져버리면 어떻게 된다던데 어떻게 된다더라? 스마트폰 하다가 본 내용이라 많은 정보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요지의 내용의 글이었는데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맙소사. 내가 만약 아로니아 공화국에 한자리 차지한다면 스마트폰 사용 제한을 강력하게 주장하겠다.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네.

 

 어쨌든 나의 중독 고백은 이쯤하고,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으로 돌아가본다. 우선 다행이도 꽤 짧은 시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읽는 중간에 일상이 끼어들어 공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번 잡으면 백여쪽의 분량은 훅 읽을 수 있을 재미가 충분했다. 처음에 유명한 사람들이 써놓은 추천사를 보고 이게 뭔 내용이래 재미없을 것 같아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스포일러 밟을까봐 그냥 넘겼겠지만, 이 마음조차 조금이라도 분량을 줄여 읽으려는 수작인가 싶어 '어머, 이것도 스마트폰 중 증세 아니야?'하고 마음속 경각심을 떠올려 읽기로 했다. 굳이 읽고 시작한 것 치고는 읽기 전에 별 도움 안되는데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보니 좀 낫다. 발상이 좀 엉뚱해서 과정을 보고 난 뒤에야 확실한 느낌이 오게 된 것이다.

 

 장편 못 버틸까봐 염려했던 중독자의 걱정을 씻어준 것은 고마운데, 사실 어딘지 모르게 꿈꿈하다. 이 꿈꿈함은 첫째로 재밌게 느꼈던 문체에서 온다. 얼마 전에 읽었던 성석제의 단편집에서 봤던 혹은 박민규, 김중혁의 소설들을 떠올리게 한다. 읽으면서 아는데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 문체는 상황과 인물들을 세세하면서도 집요하게 설명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 사건, 인물들과 허구를 넘나들며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실제감을 준다. 사건이 이어지며 어디까지나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내용이 전개된다. 이래저래 썼지만 사실 뭔가 병맛을 느끼게 하는 재미가 있다. 이게 가장 깔끔한 설명이 되리라.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재밌긴 하지만 또 이런 스타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물론 내용에 깊이 빠져들기 전인 초반에 했던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림 일대를 삥뜯고 다니던 김강현의 미약한 시작을 낄낄 거리다 끝내 아로니아 공화국의 대통령 로아 킴이 된 건국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그럴싸하게 믿게 되는 거다. 

 

 다른 하나의 꿈꿈함은 젠더적 문제인데 좀 긴가민가 하다. 한번 더 읽어야 정체가 밝혀질 것 같다. 워낙 예민한 문제니 말을 아끼고 싶은 이유도 있다. 330쪽에 있는 아로니아 시민 선발 조건이 슬슬 떠오른다. 장마철이니 꿈꿈함은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보면 이 소설은 꽤 재밌다. 나름 왜 써야 했는가에 대한 의식도 담겨있고, 읽고 난 다음까지 확실히 "재밌게 읽으셨다면 다들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세요" 하고 광고하는 것처럼 '한일공동개발구역 JDZ' 상기시켜주는 마무리까지 한다. 시키는대로 좀 찾아봤는데 "제발 관심 좀 가져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안그래도 더운 여름 열불나는 상황이 줄줄이 딸려나와 분노하게 됐다. (왜 일본이 싫고 한국 정부가 무능한가)의 전형적인 예시가 아닐까. 게다가 '7광구'라는 영화는 또 뭔지...말을 줄입니다... 

 

 책 한 권 재밌게 읽어놓고 뒤늦게 찾아오는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다, 작가의 인품에 새삼 놀랐다. 이 얼마나 평화적인 '한일공동개발구역 JDZ'에 대한 관심 유발과 문제 제기인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워리어가 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유머와 희망을 잃지 않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다니. 여기, 저기를 향한 답답한 마음을 욕지거리로 승화하여 표출하지도 않고. 다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좋겠다. 내가 그랬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한일공동개발구역 JDZ'에 대한 문제에 정말 무지했고 무관심했다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흥하게 된다면 더 많은 관심이 모여 방안을 촉구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을 통해 뜻밖에 문학이 가진 기능과 힘을 엿봤다. 괜찮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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