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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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주의하게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초크맨의 인상은 조금 이상하게도, 지금 배가 고파서일지 모르겠지만- 땅콩버터를 발라 살짝 겉을 구워낸 토스트를 먹는 것 같다. 알러지만 없다면 누구나 알고 좋아할 것 같은 기호성. 크게 베어먹듯 덥석덥석 단숨에 읽어나갈 것 같은 몰입도.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 파운드를 쓰는 영국 배경인데도, 미국의 정키함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오후에 집어든 책을 저녁까지 읽는 도중에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에 머리속이 조금 시원해졌을때 문득 떠올린 생각이 '스티븐 킹의 느낌이 나는데'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얽힌 사건의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과, 마을의 구성원들을 훑듯이 소개해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거실로 돌아와 탁자에 놓아둔 책을 보니 띠지에 스티븐 킹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단 말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이제 막 초크맨으로 첫 책을 내놓은 작가가- 누구라도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봐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이것도 예단이 되려나. 어쨌든, 초크맨은 꽤 괜찮다. 피넛버터 샌드위치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듯이.

 

 하얀 분필로 그려진 그림, 백색증의 외지인, 연달아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을 두고 '초크맨'이라는 살인마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에디 먼스터,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 다섯 친구들이 어린시절 겪었던 사건이 30년 뒤에 서서히 밝혀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흰 분필로 그려진 표식을 따라가다 보면 토막난 소녀의 몸이 차례로 발견된다. 소녀를 죽이고 흰 분필로 절단된 신체 위치를 표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다섯 아이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분필은 색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 누군가 아이들을 불러내고 숨겨진 시체를 찾게 만들었다. 언뜻 불가사의한 존재같기도 한 초크맨의 정체를 분필로 사인을 주고 받는 놀이를 알려준 핼로런 선생이 아닐까 쉽게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흰 분필로 그린 그림처럼 온몸이 하얀 백색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요소들로 그를 의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가 따르는 에디의 시선이 그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일까 아닐까.

 

 장르소설은 그만의 색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층이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작품들을 좀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독자의 눈치도 빨라진다. 작가가 뿌려놓는 간단한 밑밥을 물지 않도록 주의하며 책장을 넘긴다. 작가가 읽은만큼, 혹은 고민하는 만큼 안에 숨겨진 악의와 거짓을 뚫어보려 노력한다. 독자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정보를 의심하고, 인물을 재며 읽어내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할 수 없이 교묘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맞닿은 동기로 벌어졌을때 감탄하며 책을 덮는다. 그럼에 있어서 초크맨은 다소 헐거운 연결고리가 눈에 띈다. 특히 메탈 미키가 연관된 사건에서 설명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에디가 그랬듯, 메탈 미키에 대해서 작가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을 아우르는 재미라는 요소가 전체적인 만족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단단히 지탱한다.

 

 주말의 하루쯤은 전기세도 아낄 겸 텀블러와 책을 들고 대형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혀 한나절을 보낼만한 책이다. 평소에 장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만한 밀도다. 간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책을 읽었는데,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 '그것 It'을 재밌게 봤거나, 평소 추리, 스릴러, 스티븐 킹의 작품 등을 좋아했다면 즐겁게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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