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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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출은 휘파람만 분다. "아파트 슈퍼 앞에 횡단보도 있죠? 거길 건너는데 기분이 좀 이상한 거예요. 옆을 봤죠. 비둘기가요, 저랑 같이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아니 무슨 비둘기가 횡단보도로 이족 보행을 해요. 완전 귀여웠던 거죠. 그런데요, 어쩐지 좀 슬프기도 했어요. 마음 한구석이 그랬어요. 할아버지, 신이 있다면요, 신도 우리를 볼 때마다 그런 마음 아닐까요?" -p.293 " 

 

 언제부터인가 나이먹는 일이 시시했다. 때때로 내 나이가 몇이더라 기억이 가물할 적도 있다. 서른 어쩌고 하는 의미부여가 서른이 되기 전에는 크게 다가왔는데, 서른이 되고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아이들에겐 스물이 가장 강렬하겠다. 적어도 스물이 되면 안됐던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운전하기 술마시기 담배피기 클럽가기 같은 것들을 해도 된다. 해도 될 때 하면 막상 재미도 없지만 스물이 되면 변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서른은 없다. 김광석의 노래 말고는 주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서른이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서른, 서른하나 싶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마흔이고 쉰이고 환갑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살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도 그래서 기대가 없었다.

 

 서른이 뭘 어쨌다고.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이란 말을 어르신들이 들으면 웃겠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작 서른 어쩌고로 나이타령하는 뻔한 내용이겠거니 악독한 마음을 품고 대충 책을 들었다. 학교 안다니겠다는 남다른 성격의 미지가 나올 때도 '따돌림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상처가 있겠지' 넘겨짚고, 영오를 보면서 '일하는데 전화하고 참견하는 꼬맹이랑 진짜로 대화가 하고 싶을까' 의심했다. 이처럼 내 마음이 악독했는데, 자꾸 읽으면서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까 감동을 받았다. 끝내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얽혀있어서 다행이야, 하고 안심하며 책을 덮었다.

 

 호석이 죽고 난 뒤에 남긴 수첩으로 시작된 이 로드무비는 영오, 강주, 보라, 덕배 네 사람이 무덤 여행을 떠나며 절정을 이룬다. 거기에 미지가 두출을 찾아 범수와 강화도로 향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로드무비라고 했더니 진짜 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진정한 로드무비를 구현해냈달까? 꽁하니 마음만 차가워져서 때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습게 여겼었는데, 줄여서 '서른셋'을 읽으며 언제 어디서고 겹겹이 쌓이는 인물간의 관계성을 지켜보고 있자니 냉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거기에 나도 알고싶은 김밥의 비밀은 미지가 챙기고, 보라이모는 네일보다 먹방 찍으면 대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인방송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길.

 

 소설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요즘 나오는 책들은 구정물 튄 자국만 남은 청춘에 몰입해서 싫어'라든가, 내면과 일상 범주에 갇혀있어서 별로'라는 생각만 갖고 있던 것 같다. 그런 것들 안에서도 이렇게 '좋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만한 책을 만나게 된다. 영오가 수첩안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니, 너무나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좋았다. 사는게 그렇지 못하다면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너무 어둡고 절망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가슴이 답답해서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일들은 현실에 가득 쌓여있는데, 가끔은 뉴스조차도 보기 싫어진다. 그러니 부정적 소식에 지친 분들이여, 문학에서 오아시스를 찾으시라.

 

 간만에 좋은 느낌을 남기는 이야기를 만났더니 가슴 안에 쌓여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환기시킨 기분이 들었다. 목공소 앞 목련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이 봄도 맞을만 하겠다. 내 마음도 따뜻해져서 봄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른셋'을 권할 것이다. 읽어보시라,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보면 외롭고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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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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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책이 아니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라고 띠지를 둘러 알리고 싶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그 자체로 사람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미술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떤 것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압도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벽 앞에 놓여진 것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앞에서 이 책 안에서 만나게 될 내용도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렬하고 세련된 외양안에 대하기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었다.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인데 미술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이다. 알려는 주는데 독자를 향해 아는 척은 하지 않는 톤앤매너도 매력적이다.

 

 처음 대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 책의 판형이 우리가 머리속으로 책을 떠올렸을때 연상될 법한 표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을 끈다. 이 한권의 책 안에 미술가 30인의 삶과 작품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두께까지도 평범하다니. 30명이라니, 말이 30명이지 300쪽도 되지 않는 책안에 주목할만한 작품까지 실어서 그들을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책을 떠올리는 머리속은 도떼기 시장처럼 번잡하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커튼콜 뒤에서 호명되는 개성넘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간결하다. 이들을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려 애썼다는 티가 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깊게 들어가기엔 너무 깊고, 살짝만 파기엔 뭐가 뭔지 감도 안오는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명료한 정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안에 기본적이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는 인물과 만날 경우엔 이 책에서의 만남이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버스 운전 기사님들이 맞은편에 오는 같은 회사 차량에 짧은 손인사만을 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다른책으로의 환승이 필수다.

 

 아마 대학 교양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간다면 좋을듯한 느낌이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할일이 없다면 이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길. 중고교 미술교과서에서 주관식 문제 정답 정도로 출제 될만큼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서 재회한 낯익은 인물들은 다 대학 강의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 대표작 정도만 눈에 익히고 들어가도 '니들은 대체 000도 모르고 뭐하다 대학 들어왔냐'는 핀잔은 안듣게 될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만 단점은 합격 발표 들을 때 쯤 너무 할 것도 놀 것도 많아서 할일 없어서 이 책을 사 읽는 젊은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일까.

 

 30명이나 되는 미술가에 대해 훑어보려니 컨베이어 돌리는 것처럼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초심자를 위해 나온 접근하기 좋은 배리어 프리 한국 현대 미술사 책이니 감사하고 읽을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컨베이어는 너무하니 회전초밥집의 레일 보듯이 다음 작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으로 읽도록 하자. 신기하게도 더 오래된 시대의 인물들은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때때로 미술관을 찾아간다 했는데도 참 무심했다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 이제라도 눈도장을 찍어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다.

 

 추천하는 대상으로 예술 문외한의 대학생을 꼽았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다채로우려면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가 정도는 있어야겠다. 없는 것보다 본새나고 좋지 않은가. 백남준 작가도 싱거운 인생을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p.194)" 예술을 했단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나혜석을 좋아하면 조금 더 간단해질 일이다. 나혜석 한 사람만 관심을 두면 좋아하는 작가도 미술가도 한번에 생긴다.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상의 친구 구본웅을 좋아해도 괜찮을 일. 한시라도 젊을때 미리미리 교양서로 읽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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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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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돈 드릴로의 책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유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힘이 있는 작가라는 인상이 남았다. 사실 '제로K'를 읽는 내내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 사이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는데, '제로K'가 보여주는 미래적이고 전위적인 이미지들 사이로 일상적이고 내면적인 현실의 단편이 섞여들어가 마지막에서야 하나의 단단하고 분명한 소실점을 이루는 형상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에 집중해서 한참을 정신없이 파고 들어가다 마지막에서야 이미 지나온 궤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뒤돌아봤을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단단해지는 묘한 경험이었다.

 

 이야기는 어느 날 제프리가 아버지 로스의 부름으로 '컨버전스 프로젝트' 센터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신체 냉동 보존을 앞둔 로스와 그의 새 아내 아티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고고학자인 아티스는 불치병에 걸려있는데 죽음을 앞두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까지 몸을 냉동 보존하는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수수께끼의 장소에서 삶의 쉼표를 선택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결정을 마주한 제프리는 혼란과 상처로 뒤덮여 고민한다. 이런 선택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궁금증과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윤리적 물음, 왜 이런 선택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황과 분노, 조소와 체념으로 섞여 표출된다. 

 

 제프리는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집착적으로 상대방을 살펴보며 출신지를 가늠해보고 그 사람에게 어울릴 이름을 짓는다. 처음엔 다인종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미국인의 습관인가 했지만 타인의 근간, 뿌리를 찾는 집착적 버릇은 제프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로스는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과거, 아내-매들린-와 아들을 버리다시피 살았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을 언젠가 서가에서 책의 제목을 읊어주던 순간마저 기억하는 제프리와는 다르게, 로스는 아들이 함께했던 것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시간으로 갖고 있다. 두사람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벌어진다. 아버지의 부재가 제프리를 뿌리없이 흔들리며 살아가게 만드는데 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 때문일까 제프리와 연인 에마의 관계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갖지 못한다. 에마와 전남편 사이에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적당한 거리 두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제프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잃는다. 어머니는 죽음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자발적 냉동 보존으로, 연인은 제대로 붙잡아 보지도 않고 끝맺음의 말도 없이 이별한다. 그리고 때로 연인이 살던 거리를 산책하며 "그녀의 거리에서 내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 했던 가능성을(p.273)" 떠올릴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제프리가 의미없는 삶을 중지시키고 그 너머의 확신을 갖고 시도하려는 로스를 설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버지가 없는 시간 속에서 혼자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야 했던 제프리 앞에 다시 나타난 로스는 거의 다른 사람과 같다. 가족을 버리고 훌쩍 떠났던 그가 아티스를 만나 이제 그녀가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어 냉동보존기술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삶도 그녀의 시간과 함께 봉인하길 결정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마지막을 제프리에게 맡긴다. 이 와중에 다시 남겨지는 제프리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티스를 따라가려는 아버지를 말려보려 하지만 이 시간에 로스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의미있는 것은 없어보인다. 자신이 아닌, 자신이 남겨둘 것들 중에서 바라는 것을 골라 가지라는 로스의 권유에 제프리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어진다. 제프리가 고르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뿐이리라.

 

 제프리가 겪는 상실과 절망에 공감가는 한 편, 냉동된 사람들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거의 냉동인간들은 기술 부족을 이유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먼 미래에 기술이 발전했을때 보면 지금의 기술로 냉동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 냉동된 사람들은 무의식의 상태로 정신까지 함께 냉동될까? 꿈꾸는 것과 같은 의식이 있다면 자신의 의식 안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몸안에 갇힌 식물인간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의식이 있다면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어떻게 할까. 문득 냉동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냉동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무 의식없이 평온하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완벽한 은둔자'라는 단편이 있다. 뇌만 용액에 담겨진 채 생명을 유지하는 귀스타브 루블레 박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육체적 활동을 버리고 정신만 남은 그는 하염없이 생각만 계속하는데, 그의 뇌는 오랜시간 동안 보존되고, 끝이 기약되지 않은 영원한 사고의 세계에서 그도 그의 뇌의 존재도 잊혀진다. 냉동된 사람들의 여정도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깨어나더라도 자신 외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낯선 세계에서 발굴된 과거인일 뿐이고 -이는 아티스의 직업인 고고학자를 연상시킨다-, 깨어나지 못한다면 먼지쌓인 채 보관된 루블레 박사의 뇌와 다름 없다. 혹 냉동인간이라는 실험에 도전했다는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얻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본다면, 과연 어떨까.

 

 다만 누구보다 죽음을 중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삶을 사랑해서 집착적으로 좇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먼 후에 깨어나더라도 지금 자신이 사랑했던 삶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가고 난 후일텐데. '제로K'를 읽으며 누구나 죽음이 달갑지 않겠지만 삶에서 죽음이 왜 필수적인 것인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읽기 편하지는 않지만, 인상적인 주제와 이미지가 매력적인 책이다. 

 

 "아버지의 회사 경력이 가진 광범위한 힘이 있다. 컨버전스라는 최후의 땅이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반발 혹은 보복인 삶 속에 숨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영원히 로스와 아티스의 그림자 속에 서 있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감명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이 죽은 방식이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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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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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도 그렇지만, 내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책은 30, 나 자신이 70. '에로틱 세계사'라는 제목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있는데 없다. 한 문장에 한번씩 섹스, 페니스, 음경 같은 말이 꼭 들어갈 정도로 오픈되어 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지루하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코스모폴리탄을 샀던 이후로, 미용실 잡지에 손가락을 끼워 페이지 표시를 해놓고 읽은 코너가 있었던 이후로, 성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된 텍스트를 맞이하여 지루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그걸 해낸다. 에로틱은 죄가 없는데 세계사 라는 부분이 문제였을까.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많이 알아서 지루함을 느낀걸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니 내가 알면 얼마나 뭘 안다고 싶기도 하고, 솔직히 tmi인 정보가 쉴새없이 주어지는 내용이라 그게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그 판에 박힌 학교 성교육 수업도 수업 안하고 놀며 때울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이고 즐거웠는데, '에로틱 세계사'는 정년 퇴임을 십년전쯤 한 노교수가 연 특별 강의를 수강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피임법(p.35)이 실제로 효과가 좀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피임법이라 하면 콜라나 커피를 마셨더니 피부가 까만 아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90년대식 유머같은 허무맹랑한 방법일거라 생각했는데. 인류 문명의 기원이 외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문득 떠오르며 고대인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고 갑니다. 또, 여성의 성욕/성감이 남성보다 아홉배 강하다(p.55)는 부분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여성의 육체를 버리고 남성을 선택한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생리, 임신, 출산의 문제로 봤다. 여성의 신체가 아홉배 더 섹스를 즐길 수 있다더라도 테이레시아스가 여성의 몸으로 산 7년 동안 아이도 몇 낳고 매춘부로 살았다고 하니, 공백이 없고 오르가슴에 도달하기에 간편?한 남성의 육체로 돌아가길 꾀하는 편이 좀 더 경제적이지 않았을까. 최근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여성의 생리에 대해 과거와 현재 삶의 양식을 비교하여 설명한 글을 봐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이견 받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와핑'이라는 행위가 관음과 자극을 위한 역겨운 의도가 아닌 근친에 의한 유전적 방어를 위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누이트들의 스와핑(p.131)은 전통적인 '램프 불끄기 놀이'를 끝낸 뒤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내를 빌려준 남편의 성을 이름으로 붙여준다는 것이다. 상대 남자의 성을 공공연히 이름으로 쓰는 자식을 키우다니. 이누이트들의 저런 문화가 가능했다면 종족보존은 개인이 아닌 종의 보존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더 크다. 그렇다면 현대의 스와핑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현대의 스와핑에서도 상대방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그들 부부는 상대남성의 성을 따 아이 이름을 짓고 자식으로 잘 키울까. 유전질환을 막기 위한 필요의 이유가 아니라면 스와핑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이유는 뭘까. 문득 스와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간음하지 말라(신 5:18)는 기독교적 결혼관과 불교의 '10선도' 등의 계율을 따르며 생긴 학습된 견해는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는 뒤의 모수오족(p.138)의 섹스 파트너 공동체, 카사노바의 수녀 여자친구(p.193), 미공군의 스윙어 클럽 (p.269)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서는 상상의 간통으로도 교수형(p.173)을 당할 정도로 시선이 달라진다. 성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것이다.


 읽다보니 과거와 현재 동안 수많은 성행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부분은 있지만, 한번 존재했던 행위가 금기시됐다고 해서 사라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의 행위들도 그러할까. 과거에는 자행되어 왔으나 현재에는 아예 사라진 문화나 행위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스킨쉽에 후진은 없다는 명언이 인류사의 큰 흐름에도 적용되어 아로새겨져 내려오고 있다니. 모든 연인들은 그 점을 잘 기억하고 단계를 소중히 하도록. 내용 자체는 괜찮기 때문에 아마 성/섹스에 대한 내용이니깐 흥미진진하고 재밌겠다는 고정관념 섞인 기대를 버리고 읽는다면 좀 더 나을 것이다. 과연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섹스는 어떻게 그 모습을 달리하며 이어져왔는가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알고 싶은 학구적인 눈으로 책을 읽기를. 왕년에 잡지 좀 읽었던 우리들은 다음월 호 잡지를 읽는 편이 더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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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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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예쁘고 가볍다. 한편으로는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목이. 환기도 할겸 요즘은 종종 카페를 찾아 책을 한권씩 읽곤 하는데, 이 책은 어쩐지 민망했다. 제목이 어쩐지 나를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고, 기껏해야 '뒤돌아 메롱'만 날리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세상에 대들 의욕이 없고, 인간관계 파탄 내기는 식은 죽 먹듯 경험하고 살았는데도. 그러니까 난 그렇게까지 소심한 사람은 아닌데! 하다가 오히려 그걸 신경쓴게 더 소심한가 싶지만. 거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류의 책이 아니라 더욱 내 필요에 의한 선택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다. 자존심이 있지. 엄밀히 따지면 '이제 너는 노땡큐' 해서가 아니라 '다 꺼져 이것들아' 같은 느낌으로 살아서 친구가 없습니다.

 

 사실 소소하게 공감될 법한 일상의 상황, 관계들에 대한 내용이라 킬링타임으로 가볍게 읽기엔 좋다. '자니?', '지금 어디야?' 같은 전 남친 시리즈나 휴게소에서 라면먹다 남친이랑 헤어진 친구 얘기는 웃긴다. '상행위'에 음란마귀 낀 눈도, 미역 50g이 20인분이 된다는 것, 스타벅스 다이어리 같은 얘기도 심지어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 나눈 얘기라 더욱 공감이 된다. 나 역시도 매년 다이어리를 모았는데, 말 그대로 쓰진 않고 모으기만 해서 어느 순간 현타 맞고 (지난해 디자인도 별로여서) 끊었다. 그런데 친구가 문득 3월이 되어서야 '작년 스벅 다이어리 또 받았어?' 하고 물어와서 '아, 혹시 내 인생을 보고 가서 썼나' 새삼스러웠다. 다만 이 정도 얘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많이 본 내용이라 식상하다. 굳이 또 꺼내서 모아놓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심술궂은 생각이 든다.

 

 가장 공감됐던 것은, 바로 오늘 동네에 있는 큰 마트에서 과자 1+1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접수했다. 아침을 잘 챙겨먹고, 양치를 하고, 눈곱이나 좀 뗀 다음 마트에서 하나둘 모은 쇼핑백을 네개 챙겨 전장으로 떠났다. 십만원 어치의 과자를 반값에 사서 쇼핑백에 구겨 담아 돌아오면서 승전의 기쁨을 무게로 만끽했다. 집에 돌아와서 과자를 쌓아놓으니 서재 겸 팬트리로 쓰고 있는 작은방이 더 작아졌다.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싶은 이 행사를 위해 오랫동안 시물레이션을 해왔는데, '쇼핑 욕심 (p.99)'를 읽다가 문득 '이게 아니었나' 싶어졌다. 유통기한이 반년 정도 남은 십만원어치의 과자를 먹는 일은 누가하는 걸까. 그리고 그 사람은 십년정도 한결같이 다이어트 중인 인물일텐데. 벼락같은 뒤늦은 깨달음을 뒤로하고 다음 1+1 행사는 정말로 진짜 딱 10개의 과자만 사기로 생각해둔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길티플레져 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내 스타일 아닌데, 솔직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읽다보면 웃긴다. 40대의 연애는 진짜 그럴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느물대는 중년의 불륜 연애는 왜 이다지도 드라이하고 산뜻하지 못한 전설을 남길까, 나는 연하남에게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누나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는 것과 살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해줘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쪼잔하고 구구절절 구질한 생각을 종류별로 하면서 낄낄대는 시간을 조금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끝에는 올 겨울이 오면 가끔 만나는 친구 주머니에 슬쩍 천원씩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그건 정말 괜찮은 내용이었다. 자신이 아직 어리고 무르다고 느껴진다면 '노땡큐'에 익숙해지도록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아니라면 재미로 한번쯤 읽어봐도 나쁘지 않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싸이월드 다이어리 감성? 혹은 파워블로그의 일상글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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