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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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은 게 언제였지. 나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청소년 도서는 가끔 챙겨보려고 하는 편인데, 동화책을 읽은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을까. 너무 좁은 표본이지만, 주변에서 동화책 읽으며 재미있어 하는 아이를 본 적이 너무나 오래다. 한 십년 전 쯤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끔 재밌어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투브 영상을 보는 것을 더 많이 봤다. 나이든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있는 어린이의 성숙함을 넘어선지 오래인 초등학생들 뿐 아니라, 유모차에 타고 있는 어린 아기들도 핸드폰에서 나오는 영상에 귀신같이 반응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쉽다.

 

 그런데 새삼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이라는 파격적 제목을 단 동화의 출간 소식에 동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른이지만 너무 오래 동화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섬세한 선과 바랜듯한 색감으로 표현된 삽화도 마음에 들고, 출간되기까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쏘아진 신호를 잡아 천천히 풀어놓은듯한 시간차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출간되지만, 요즘의 감성이 아닌 동화가 나오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제목의 동화는 그런 기대를 잘 충족시켜 주었다. 묘하게 시니컬한 부분들이 끼어들곤 하지만 그 뿌리에는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잘 쓰여진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지만,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도 어린아이 뿐 아니라 어른까지 전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년과 왕자, 그리고 그의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내용이라 가볍게 모험을 떠난 소년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왕자를 구하고 부귀를 얻어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는 흐름을 떠올렸다. 그런데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 닭의 이름이 '전염병과 기근'일 때부터 비버섬의 이름이 왜 비버섬인지에 대한 사소한 논쟁이 끼어들 때부터 이 알 수 없는 동화가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요상한 내용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딸에게 들려준다고?' 칼데곳 수상자인 필립과 에린의 손에서 재탄생한 이 동화는 확실히 만만치 않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웃음을 주다 어떤 부분에서는 동화적 허용을 가볍게 이용해버리곤 한다.

 

 조니가 주주꽃을 먹은 뒤로 겪는 일들은 환상적이라 기대했던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속으로 잠시 씨앗이 큰 넝쿨이 되어 자라는 것은 아닐까, 꽃을 먹다니 조니는 채소도 잘 먹는 소년이네,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어린시절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길 좋아했는데, 아주 오랫만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는 일을 상상해봤다. '클로디아의 비밀'을 읽은 뒤로 한참동안 어느 박물관의 어디에 숨어야 들키지 않을까 고심하거나, 사람들이 동전을 던진 분수대를 골똘히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만약 주주꽃을 먹는다면, 어떨까. 다들 책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뭘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책에서 조니가 보여준 마음은 꽤 순수하고 따뜻한 것이어서 동화를 읽는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지치고, 관계가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을 알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봐야 겠단 생각을 했다. 새삼 돌이켜보니 상대를 판단하고, 낙인찍고, 용서가 적었던 시간을 보냈다. 아마 왕과 올레오마가린 왕자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가장 싫은 캐릭터의 모습이 가장 나와 닮아있다니. 금방 잊혀지는 부질없는 다짐이지만 남에게 더 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아이들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인간관계, 인연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그 꼬맹이들이 다 이해할까 싶지만 만나서/놀아서/친해져서 좋았던 친구를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의미있겠다. 주변의 꼬맹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지만 몇 번 책을 선물로 주었는데, 원치 않는 선물을 가져다 안긴 탓에 아이들이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엄마의 눈치를 보며 고역으로 해내는 것을 보고는 이 눈치 없는 선물을 그만 하기로 했었다. 아이들은 왜 동화를, 책을 안 좋아하는 걸까. 아쉽다. 때로 동화의 가치를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크게 보는 것 같다. 아마 이미 뭔가를 잃고 난 뒤라 그렇겠지. 간만에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을 즐겼다. 모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과 함께 환상적인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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