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김응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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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윤동주의 산문을 읽으며 의외의 세련됨에 몇번 놀라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고루한 부분이 있을것이란 예상을 깨고 한자표현이 어렵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잘 읽히는 편이었다. 거기에 이어지는 김응교의 해설은 자칫 여백으로 남을 수 있는 시선의 배경을 채워준다. 생활과 시대가 녹아든 사진과 설명을 읽다보면 잘 만들어진 문학관의 시청각해설 코너에 들어가있는 느낌을 준다. 원문보다 몇배는 많은 해설이라니,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읽다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지나치고 넘어갈 문제를 확장시켜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 시각을 바꿔주기도 한다.

 

 왜 이제와서 윤동주인가. 거기에 잘 알려진 그의 시가 아니라 산문인 것일까? 사실 '나무가 있다'의 출간 소식을 듣고 떠올린 것은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적 있던 윤동주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꽤 오래 전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서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내용이 인상깊게 남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해 떠올린다면 일본인들이 그의 시비를 세우고 교과서에 시를 싣는 일을 어쩐지 건조하게 바라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름다운 문인에게 그만큼의 열정도 갖지 못한 자신이 작아보였다. 시를 몇 편 안다고는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산문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드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 이것은 과단성 있는 동무의 주장이지만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라는 것이다.(p.18 종시) " 는 부분에서는 한참을 웃었다. 과단성 있는 동무라는 저분 채소 지하철 1호선 3개월 이상 출퇴근 유경험자 아니신지. 너무나 옳은 말이다. 지하철/전차가 지옥철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보다. 거기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옮아가는 것도 평범했다. '다만 방년 된 아가씨들'의 모습을 '판단을 기다'린다며 이리저리 평가하는 부분은 요즘의 감수성에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미 쓰여진 글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들에 대한 언급이 여성노동자 문제를 염두에 둔 까닭이라는 해석(p.68~)이 있어 이를 감안하고 읽었다.

 

 처음의 '종시'를 통해 윤동주의 산문이 이런 것이다는 감각을 쟀다면, 뒤로 이어지는 '달을 쏘다'에서는 좀 더 깊은 심정적 공감을 이뤄낸다. 특히 늦도록 책장이나 뒤적이다 불을 끄고 간신히 자리에 눕는 일이 잦은 탓에 초반의 고요함이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거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현생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다만 이편의 고민이 좀 더 가볍고 상스럽게 표현될 뿐이지. 게다가 누가 수업 과제 글로 이런 작품을 쓰나요, 재능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요. 지나가는 문과는 이유없이 한 대 맞고 웁니다. 그런데 이 글을 써간 학생에게 70점을 준 교수는 또 뭔지. 친일을 해서 그런가, 점수가 짜다. 

 

 이어지는 '별똥 떨어진 데'를 읽으면 드디어 제목인 "나무가 있다"는 구절과 만나게 된다.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냥 글도 쉽지 않을텐데 정지용의 동시 "별똥"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내용이라 배경 설명이 없었다면 한동안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윤동주에 정지용이라니 너무나 그들만의 리그인 것. 그런데 나열된 두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은 흐뭇하다. 마지막으로 '화원에 꽃이 핀다'까지 만나면 비로소 이 "산문의 숲"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둘은 특히나 해설의 도움이 반가웠다. 곳곳에서 만나는 아들러, 니체, 맹자 등은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저자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흐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에 비해 즐겁게 읽었다. 그를 마주한 것이 온통 '공부해야 할' 책의 한 모퉁이였기 때문인가, 학업의 속박에서 벗어나 만난 윤동주는 재밌고,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다. 무게니 속박이니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못했으면서 부담만 느꼈다고 생색이었던 듯하다. 거기에 시가 아닌 산문과의 만남이 새로운만큼 윤동주에 대해 가진 인상도 좀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전한 가이드와 함께하니 믿고 읽어본다면 좋겠다. 기대 이상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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