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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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찾아갔다. 좀 멀고 위치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위치도 한적하니 좋았다. 낡고 오래된 동네를 지나서 긴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축구장 옆으로 아직 새것 티를 벗지 않은 도서관이 나왔다. 출입문 옆으로 보이는 통창에 여유롭게 대충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책 한 권 읽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읽은 것이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였다.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는 얼마 전에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도서 소개로 몇번이나 제목을 본 적 있었다. 도서관 서가 신간 추천도서 코너에 새책으로 꼽혀있는 걸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읽으려고 든 것은 아니고 전부터 궁금했던 '체리새우'가 대체 뭘까, 그것만 확인해보려고 들었는데 맙소사 그냥 다 읽어버렸다. 제목도 그렇고 주인공 인물 설정이 좀 유치하고 전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술술 읽히고 읽다보니 점점 재밌어서 다른책을 더 고르지 않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다른애들이랑 생각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나. 나름의 가치관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 다른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 와 같은 위치에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청소년 물에서 좀 흔한 설정이다. 이런 인물들이 주로 주인공이 된다는 건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일반적 성향이기 때문이라는건데 꼭 특별함으로 묘사된단 점이 의문이다. 진짜 책 읽으면 별종으로 보는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묘사되는 주인공은 책 읽는 타입의 일반적 성향인가.

 

 시작부터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닌데, 인물간의 관계변화를 천천히 바라보는 과정이 매력적이어서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다현이보다 은유라는 인물이 조금씩 보여주는 성숙되고 열린 자세가 호감이었다. 친구 무리에 휩쓸리면서 자잘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무려 심부름까지 해주는 다현이의 모습이 처음엔 별로였지만 한편으로는 다현이를 통해 십대 생활이라는 고단함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십대때에는 친구 무리라는게 세상의 전부였었지.

 

 '체리새우'를 다 읽고는 청소년 특히 소녀들의 우정에 큰 매력을 느껴서 내친김에 그동안 보려고 생각만하고 미뤄뒀던 '우리들'이란 영화도 봐버렸다. 확실히 두 작품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 알 수 없는 미묘한 공감대와 애틋함을 느꼈다. '체리새우'도 괜찮지만 그보다 '우리들'이 좀 더 거칠고 투명한 세계와 감정을 보여주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기 때문에 아주 몰입하며 봤다. 책 '체리새우'도 추천, 영화 '우리들'도 강력추천한다. 궁금했던 두 작품을 한번에 보게 된 계기가 되어 도서관 방문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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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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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 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은 오히려 편안한 태도로 '그래 한 번 들어보자'할 수 있었다. 만성적 낚시글로 이미 면역력이 생기고도 남았음이다. 오히려 저정도의 이야기는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대놓고 웃으며 들을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아닌가. 그런데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읽은 내용들은 '수위가 괜찮은가'싶은 걱정이 들었다. 단순히 "옆집 문을 열었는데 옆집 총각이 자고 있었다" 뭐 이런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걱정되는 수위는 사회에 용인되는 정도의 허락된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는가였다. 자고로 페미니즘 발언이란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으실 수위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은근히 해야하는거 아닌가. 아니면 *페미, *충, 메** 되는거 아닌가. 저런 딱지 하나쯤 이 책 읽은 나한테도 가져다 붙이는 거 아닌가. 포스트잇처럼.

 

 솔직히 몇몇 글들은 저절로 나오는 욕같은 추임새를, 추임새같은 욕을 삼키며 읽었다. 나도 나이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드라마보며 몰입해서 욕하는 것처럼 문장으로 그려진 여자들을 향해 꼰대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달싹였다. 진짜 가짜 구분을 못해서 그런걸까, 과몰입을 해서 그런걸까. " 이거 다 소설이야 "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소설인 척 하는 진짜여서 그런걸까. 절대 인정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 사람은 안다. 이건 진짜라고. 저 유명한 재연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에서 '이거 다 방송국 놈들이 시청률 올리려고 일부러 자극적으로 쓰는거야'라는 순진한 의심론자들을 향해 '실제 사연은 더한데 방송용으로 순화해서 내보낸거에요' 했더랬지. 이 방문자들이 '이거 순한맛이에요' 하고 말한대도 오버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ㅍ자만 봐도 질색하면서 피해의식이란 말과 피곤하다는 말을 애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전부터 궁금했었던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에서 서비스해주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본 것이 며칠 전이다. 덕분에 '새벽의 방문자들'은 조금 묵혔다 읽게 됐지만 어쩐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이 더 괜찮은 흐름같이 느껴졌다. 영화는 가출청소년들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순화하여 사실대로 보여준다. 이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가. 그런데 그렇다. 현실은 뭐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어떤 방면에서든 더할 것이고, 영화는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담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화면을 통해 보이는 주인공 소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려는 시도는 고역이다.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절반은 담배를 피고 욕을 하는 장면이고 나머지는 침뱉고 맞고 때리고 술마시고 성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채워져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반응이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난 반응과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진짜 저래?'

 

 대부분은 재밌게 읽었다. 아마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ㅍ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읽고 난 다음 친구를 만나 자기 인생에서 발견한 좀 '모잘랐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썰을 풀고 한참을 웃거나 질색팔색 소름 돋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현관 모니터에 박제될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도 떠올릴지 모른다. 읽으면서 공감도 되고 재밌었는데, 다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말이 괜찮은건지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여류작가란 말도 안쓰는데. 너무나 이르지만 앞으로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방문자들이 새벽, 아침, 낮, 밤, 오후 언제든 또 찾아온다면 좋겠다. 아직도 남아있다던 그 이야기를 마저 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겠지. 앞으로 교보문고와 출판사에서 책에 참여한 작가들과 순차적으로 북토크를 갖는다고 하니 책을 재밌게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신청해서 가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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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마음 - 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가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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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도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외부로 향하는 기본적인 에티튜드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이런 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다 뻔하지 않나 회의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틀렸다. 우선 책의 편집이 괜찮았다. 목차를 보면서부터 나름 눈에 더 들어가게 하려고 신경을 썼구나 싶었다. 어디선가 봤던 명언들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좀 고루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조가 명료한 편이라 읽기에는 좋았다. 부담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바람에 익숙한 글귀들이 공감을 끌어내기엔 더 좋지, 하고 납득해보기도 했다. 페이지 전체를 할애해서 사진과 색을 많이 썼다는 점이 단조로움을 없앤 것 같아 좋았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며 내 주변에 어떤 인물이나 사건과 매치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읽었더니 재밌었다. 이런 유형은 전에 같이 일했던 누구와 비슷한 것 같고, 이런 태도는 저번에 누가 보였었지, 아니면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대했었나 떠올려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특히나 자신이 무심결에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차가 쌓이니 윗사람도 많지만 함께 이끌어가야 할 아래 동료들도 생긴 탓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던터라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며 읽었다. 점점 윗사람보다 아랫사람 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많아서 책임감, 공감성, 예의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도움도 받았다.  

 

 특히 칭찬에 대한 카테고리가 마지막 부분에 따로 나올만큼 칭찬을 하고 받는 것이 자주, 중요하게 언급된다. 최근 들어서 느낀점인데 요즘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방이 '감사합니다.' 라고 하거나 '네, 그런 얘기 많아 들어요.' 하고 대답해오는 일이 많다. 예전에는 '아니에요.' 라고 하거나 '좋게 봐주셔서 그렇죠.' 같은 대답이 익숙하게 돌아왔었다. 으례 그렇게 대답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처음 상대방이 수긍하는 대답을 했을 때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내심 겸손하지 않은 응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책에도 나왔듯이 자신있는 태도(51)를 가지는게 자신을 남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데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천천히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도 바꿔가는 중이라 공감하며 읽었다.

 

 조금 엉뚱한 질문일 수는 있지만 리더가 되겠다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떠한가. 혹은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신뢰가 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능력도 없으면서 그조차도 안하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마치 선장이 되겠다며 배를 모는 법을 읽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선장이 배를 모는 법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그러니 혼자 몰래 읽기를 추천한다. 때로 노력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져야 더 깊은 인상을 주지 않던가. 마치 물 위의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발을 젓고 있는 것처럼. 속은 어떨지 몰라도 자기 자신과 그룹의 목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확신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리더에게로 마음이 움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도 요구받는 자리라 생각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지인은 일터에서 믿을만한 리더를 만난 것 같았다. 조직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고, 단기/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여 실행하도록 조직원들을 움직인다. 노동의 가치에 맞는 분배를 하고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솔선하여 일하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가끔 밥벌이에 대한 얘기를 나눌때면 전해듣는 말인데, 마치 그린 것 같은 리더의 모습이었다. '리더의 마음'같은 책을 읽으며 에이, 이런 리더가 어디있어.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대다수는 불운하게도 일 시키고 책임을 묻고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직원 복지나 쥐어짜고 낡은 사내구조를 개선할 생각도 없는 리더의 밑에서 일을 하지만, 실제로 리더의 역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싶다. 나도 지인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유니콘처럼 생각했겠지만,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않고 좋은 리더를 만나게 되길, 혹은 스스로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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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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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킴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정말 '들으면 알만한', '내노라하는', '유명한' 수식어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은 유명한 가수들의 춤선생님이자, 노래의 안무를 담당한 댄서다. 소녀시대, 선미, 트와이스, 24시간이 모자라, TT 등. 책을 두른 띠지에는 '춤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춤이었으니 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다. 삶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이런 주제들도 결국은 다 같은 방향을 향해 있으니 이건 리아킴의 이야기이자 춤에 대한 이야기다.

 

 춤같은 일에는 담을 쌓고 사는터라 건너다보듯 읽었다. 어렴풋이 갖고 있는 선입견, 춤추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돈을 잘 못 번다던데 관절쓰는 춤을 많이 추면 나중에 고생한다던데 하는 고루한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책에서 만난 그녀는 성공했고,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있을만큼, 매일 아침 사과와 생강, 시금치를 간 주스를 마시며 자기관리를 한다. 내가 아무렇게나 떠올렸던 생각들처럼 누군가도 내 삶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리아킴에 대해 읽으며 다시 머리속으로 말을 건넨다. '반갑습니다, 제가 오해했네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책의 흐름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이 왜 들어가있지, 싶은 부분도 있고 좀 더 확실한 주제로 잡아 묶였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도 있었다. 특히 가수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안무를 짰던 일들이 들어간 4장이 그랬다. 아이돌들에 대한 얘기와 자신에 대한 얘기가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여자아이돌와 남자아이돌을 가르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굳이 넣었어야 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춤추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본인도 비슷한 틀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게 참 많이 아쉬웠다.

 

 계속 이유를 찾으며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뭘까, 하고. 쉽게 이유가 어딨어, 꼭 이유가 있어야만 나오나.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싶었다. 이만큼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을때에는 꼭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역사적 사명이라도 가진 그런 거창한 이유가 나오진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찾아 헤맨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리아킴이 이루어낸 성취들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더 가깝다.

 

 " 연습실 한쪽 다용도실.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나는 왼쪽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둠속에서도 싱크대, 작은 냉장고, 선풍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수도세, 전기세, 연습실 관리비가 떠오른다. 이번 달 연습실 월세는? 생활비는? 지난달보다 수강생이 줄었으니 레슨비도 줄 것이고. 대회에서 탄 상금은 밀린 공과금과 카드값 메우는 데 써야 하고.... 복잡하다.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그때를. (p.102) "

 

 리아킴이 세계 대회에 나가 챔피언이 된 3일 뒤의 이야기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 바라던 성취를 이루고 난 뒤를 생각하지 못한다. 목표와 그것을 향해가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거기에 집중해 그 뒤에도 인생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게 된다. 그런 시기를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까만 단발머리'에서 만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고 매우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대회 성적 부진, 서툰 인간관계같이 그녀가 삶에서 겪었던 어려움으로 꼽은 일들보다 빛나던 순간은 짧고 현실은 계속된다는 사실. 삶이 눅눅하고 팍팍해질 때 가끔 그때 그 빛을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는 저 마음이 공감됐다.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여전히 리아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몇 페이지에 걸쳐 실린 그녀의 사진들처럼 단편적이고 짧은 순간의 모습만 조금 엿본 것 같다. 다만 앞으로 몇몇 노래들을 우연히 들으면 아마 유행했던 그 춤동작들과 함께 까만 단발머리의 깡마른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좀 아쉽지만, 그녀의 남은 삶이 앞으로 아쉬운 부분들을 더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난 뒤에 어쩌면 또 다른 에세이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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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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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고, 홍보는 요란했지만 결말을 빤한 스릴러물을 읽는다. 그런 다음 뒷문 앞에 서서 잡초가 우거진 뒤뜰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운다. (p.34) "

 

 이 문장이 처음에는 유쾌하게 웃겼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자조적으로 느껴졌다. 어디가 문제일까 좀 생각해봤다. 어딘가에 이 책을 아쉽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이것 때문이라고 딱 집을 수는 없지만 뭔가 있었다. 공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려나,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현실성과 모호함이 '애니가 돌아왔다'를 아쉽게 만들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그렇듯 핵심적인 사건을 손에 쥐고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고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밀당같이 중요한 요소이긴한데 한 450 페이지 정도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엔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줄리아와 벤이 살았던 집에서 느껴지는 오싹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대한 묘사나 과거의 사건을 알듯말듯 묘사만하다가 마는 부분들만 걷어내도 30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다면 꽉 준 손을 펼쳤을 때 나온 게 별다른 사건이 아니더라도 좀 덜 실망하고 좀 더 속도감있게 전개됐다는 장점을 얻었을거다.

 

 과거와 현재를 한 사건을 중심으로 오가지만 그 사건이 무엇이고, 어땠는지에 대한 전개와 묘사가 아쉬웠다. 글이 아닌 영상물로 만들어졌다면 이 비현실성이 그리고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장소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애니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다는 걸까. 그 장소가 보여지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뭘까. 그 장소에서 애니가 무엇으로 변해서 돌아온 것일까. 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설명이 요구되는 설정들을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부분 생략할 수 있는 영상물로 제작되었더라면 더 나았겠다 싶었다.

 

 워낙 잔인한 컨텐츠와 현실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던 탓인지 '애니가 돌아왔다'는 딱정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장면 말고는 평범했다. 돌아온 아이들이 전과 다르게 이상해져서 냄새가 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건 그냥 애들이 좀비가 된건가 아니면 귀신이라도 씌였나 싶어진다. 해골이 쌓여있는 장소도 눈이 하나 빠진 인형도 낮에 보면 햇빛에 가려 오히려 간밤의 무서웠던 점들이 안보이게 되는 것처럼(203) 금방 그러려니 하는데, 벌레들은 밤이나 낮이나 징그럽다. 수많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달려들다니, 바퀴벌레가 떠오르면서 이 책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강렬한 장면이다.

 

 거기에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 설정인가 싶은 친구들 구성도 관계성이 약했다. 과거 친구- 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무리였던 다섯명은 스티븐이 닉과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크리스와 조를 무리로 끌어들인 건 아무리 그들이 유용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매했다.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커플이 속해있는 그룹은 크리스와 조같은 부류를 이용하고 갈취하고 무시하고 폭력을 쓸 수 있지만 의견을 들어주고 함께 다니지 않는다. 굳이 친구처럼 보이게 그들을 엮어놓았을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더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로 드러냈다면 더 납득이 쉬웠을 것 같다.

 

 다만 주인공 조 손은 독특하다. 과거 그의 어린시절을 보면 미국 틴무비같은 데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찌질이다. 운동을 좋아하거나 대단히 똑똑하지 않다. 대신 조용하고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을 좋아하지만 말 걸 용기도 없다. 제일 편한 놀이 상대는 나이차 나는 여동생인, 하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기는 부끄러워하는.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온 조 손의 모습은 다른 사람같다.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밑바닥 인생을 살고 거짓말을 숨쉬듯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무모해보인다.

 

 조가 인생의 밑바닥까지 치고 온 주인공이라 성깔도 있고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고 툭하면 남한테 시비나 털리는 입을 가진 캐릭터라 재밌었다. 본인은 문제를 피해가고 싶다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돌아와서 한 대 치고 싶게 만드는 말재주를 가진게 좋다. 그리고 그래서 엮인 팻맨과의 사건이 '애니가 돌아왔다' 중에서는 의외로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안힐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들, 거기에 얽힌 사람들은 베스 말고는 대부분 별론데, 별일 아닌듯 심어놓은 노름빚이라는 장치와 거기에 얽힌 인물들이 이 책에 무작정 실망하지만은 않도록 해준다.

 

 여름이 너무 더워서 이 정도로는 더위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차라리 애니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평범한 스릴러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혹은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장점이 더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자꾸 영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싶었는데 글을 읽고 어떤 장면이 될지 바로 구체화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본 것처럼. 독자가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묘사는 좋았던 것 같다. 언젠가 '애니가 돌아왔다'를 영화관에서 영화로 만나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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