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는 홍길동같은 것으로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 마법, 멘스, 달거리같은 좀 덜 직접적으로 들리는 우회어로 불려왔다. 어디서 생겨난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첫생리가 시작되면 무려 '파티'를 해주기도 하지만 생리 중인 것이 티나지 않게 비밀스럽게 지나보내야 한다. 피가 새거나 묻는 수치스러운 불상사가 벌어지면 안되고,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예민해지는 것을 티내서도 안된다. 그러면 조심성없어 칠칠맞지 못하다거나 '왜 이래? 오늘 그날이야?' 같은 질책섞인 넝담도 듣게 된다.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지만 귀찮고 불편한 생리를 하는데 당연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안좋은게 뭐 어쩌라고 싶지만 따라오는 오해와 참견은 피하고 싶어진다. 생리대에 대한 광고에서도 생리란 말은 기피되고 생리혈의 색은 파란색 실험용액으로 대체되어 보여진다. 이 밖에도 끄집어내자면 더 많지만, 생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실 생리에 대해 이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생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특별할까 싶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해놓은게 아닐까? 10년쯤 일찍 나왔다면 특별했을려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100명의 여성은 100가지의 생리를 한다'는 소제목처럼 나랑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의 완전 솔직한 생리 이야기는 또 나름 흥미로웠다. PMS시기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하는 기간동안을 담은 생리일기 부분도 재밌게 읽었고 사후피임약, 생리 중 섹스, 생리 공결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부분도 여자집단에서는 종종 올라오는 문제여서 익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보지 긍정'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어색했다. 여성기를 이르는 말 역시 생리처럼 에둘러 표현되는 일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보지라는 단어를 보자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럴때면 나도 아직 멀었구나 싶어진다. 

 

 한 이십여년전에도 생리를 숨기지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생리하는게 티나면 창피한거니까 생리는 숨겨야만 되는 줄 알았던 어린시절 어떤 선생님이 '얘들아, 생리해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쉬어' '생리하는 때에는 생리한다고 말하고 배려받아' 하고 공표한 적 있었다. 그때는 저 선생님이 유난스러우시네, 특이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고 필요한 조언이었다. 창백해진 낯으로 배가 아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생리해서 아프다는 말을 참거나 몰래 속삭이던 때였다. 문득 떠올려보니 아득한 옛날이다. 시대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졌으니 책을 읽을 준비는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이만큼했으면 프로?고 말 많은 페미니즘을 빼고서라도 여자들은 생리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없이 할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 오래전의 선생님보다 내 생각이 덜 트여있는가 싶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색하더라도 긍정하며 읽었는데 생리 중에 수영장을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은 거부감이 들었다. 생리대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생리중인 사람의 수영장 이용을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고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굳이 막을 일은 아니지만 이미 수영장물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생리 중인 내 몸에 안좋을 것 같아서가 더 크다. 맨날 싸움나는 주제라지만 생리기간동안 수영장 이용을 안한다면 한 달 이용 요금을 감면받는 쪽으로 불편을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것도 생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배운대로 따라가듯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생리가 싫다, 생리를 싫어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단순히 불편에서 오는 싫음이 아니라 학습된 미움일까 궁금해졌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겠다.

 

 여자라서 생리에 대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잘 읽히고 금방 읽으니까 가볍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과 관련된 지식에 약하다. 남자라면, 이 책이 읽고 싶을까 궁금하다. 생리휴가나 생리대 무상 지원 같은 문제를 두고는 할말이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생리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등가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몽정과 같은 정액 배출에 대해 책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별 관심을 갖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한달에 일정 기간동안 남자도 계속해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기간이 있다면 어떨까. 생리처럼 통증도 있고 패드를 해서 새고 묻는 것을 막아야하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그렇게 생각하니 관련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볼 정도로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남성독자들도 그 정도의 호기심으로 읽어볼만 하겠다. 하지만 특히 자라나는 소녀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