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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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대학 때는 가능하던 그런 관계가 서른이 가까워지면서는 쉽지 않았다. 패턴이라는 것은 관계의 피로를 만들어냈고 여기다 일종의 '사는 문제'가 겹치면서 셋은 전처럼 섞여 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만나면 즐거운 식사를 했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했지만 문득문득 서로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9) "

 

 김금희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기로 한 건, 인터넷에서 몇번이고 마주쳤던 '희소한 영자매'에 대한 영업글 때문이었다. 제목이 '규까스를 먹을래'라는 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읽는 동안 역시나 달콤쌉싸름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친구와는 여행가면 안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도시괴담처럼 퍼져나갔다. 십여년 전만해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 아무런 수식어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인간관계 파탄나는데는 친구와의 여행 특히 해외여행만한 것이 없다는 말들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규까스를 먹을래'에 나오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켜켜이 쌓여간 오래된 친구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왜 더 단단해지기는 커녕 위태로워지는 일이 생기는지 곱씹어보았다. 조건이나 현실같은 것을 모르고 만나 놀 수 있던 어린시절이면 몰라도, 서로 사이에 다른 부분이 나도 모르게 눈에 띄고야마는 어른이 되고나니 나도 모르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생기는걸까. 격없이 친해졌지만 친밀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격을 맞춰 서로를 대하는 것이 더 요령있는 연령이 된 것 같아, 남에게 잘해야지 상처주지 말아야지 자꾸만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이 '규까스를 먹을래' 였지만 다른 단편들도 꽤 괜찮았다. 아주 일상적이고 그래서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어제와 오늘의 풍경들이 잠깐 종이 위에 올려간 듯한 느낌을 준다. " 나 누군지 알지? (54)" 같은 말을 하는 기업 간부급 인물이나 이른 새벽의 노점상들, 회사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점심시간, 출근전에 짬을 내서 어학원을 다니는 직장인들의 일상은 나에게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언젠가 봤었던 듯한 풍경들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나도 스쳐지나보냈던 그것들에 대해 잠깐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나와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장면들이 곳곳에 심어져있었다. 술자리에 붙은 뒷말과 시비나 집안일을 직접하게 되면서 그릇을 따로 잘 쓰지 않게 되는 습관,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알 수 없는 인연들. 얼마 전에 위내시경을 했던 탓인지 '온난한 하루'도 묘한 느낌으로 읽었다. '미국식 홈비디오'는 인기있었던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단편을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을지 궁금해졌다. 자기 안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부분들에 눈길이 머물겠지.

 

 영업을 통해 굳이 읽어보게 된 책인데, 짧은 시간을 소소히 보내기에 좋은 책이었다. 언제든 부담없이 단편 하나쯤 읽을 시간을 들일 수 있을만한 분량이라 좋았다. 누구든 아무렇지 않지만 어쩐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날이, 도드라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묘한 느낌을 잘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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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사람을 읽다 - 소비로 보는 사람, 시간 그리고 공간
BC카드 빅데이터센터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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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데이터로 분석된 소비 패턴은 재미있었다. 이런 비유를 하면 세련된 기술, 분석가들은 이마를 칠지도 모르지만,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 유형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이 가진 소비 패턴을 가지고 이용자들이 어떤 유형인지 분리해놓고 각각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 내 성향을 맞게 분석해놓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오랜 시간동안 허무맹랑하게 이어져온 별자리나 혈액형은 보다보면 다 내 이야기같은 기분이 드는 반면, 빅데이터가 제시한 소비 유형은 어느 것도 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 달랐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하지만 비슷한 소비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확실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된 유형에 속하기는 거부하고, 별자리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직 빅데이터가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BC카드를 안써서 나와 같은 유형의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서일까. 

 

 책의 내용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래프로 옮기고 수치화해놓은 것들이 많지만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돈을 쓴다'는 것은 생활에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내용 하나 관심가지 않는 부분이 없고 대부분의 내용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봤던 경험이 있었다. 다만 막연히 내가 생활하면서 만들어 낸 모든 흔적들이 정보로 수집되어 통계를 이루고 있을 거라는 짐작이 있었지만, 기업에서 실제로 그것을 활용하여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신선했다. 핸드폰으로 검색한 키워드에 관한 광고가 인터넷 페이지의 배너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경험이, 카드사에서 보내주는 할인 안내가 내가 남긴 정보를 통한 상술이자, 정보안내 서비스라니. 그동안 수없이 팔리고 털린 나의 개인정보, 별 생각없이 동의한 각종 사이트 약관들, 이대로 괜찮은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로파일에 관련된 미드를 너무나 재밌게 봤던 경험 때문에 소비자 프로파일링에 대한 부분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각 유형별로 체크리스트도 확인해가며 세세하게 읽었는데 어디에도 딱히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유형 자체가 구분이 좀 애매한 게 아닐까 싶었다. 책에 조금 아쉬움을 느낄 때 쯤 요즘 상권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이름을 날리게 된 이후로 의식적으로라도 을지로 쪽으로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힙을 따라가기 어려울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다는 탓도 있고, 힙이나 분위기같은 것을 체험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맛과 안정을 원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책에서 꼽아놓은 트렌디한 거리들을 가본 일이나 유행을 따라가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니 어느 유형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와 멀어진 삶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책의 유형 구분의 스펙트럼이 좁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내 소비욕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석해놓은 각종 데이터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분류에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현대인은 물질에 의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소비하는 인간(호모 콘스무스)이라 명명될 수 있는 소비인류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운이 좋은 BC카드 사용자라면 데이터를 읽고 요즘의 흐름을 분석해보는 재미와 함께 당신이 속한 소비 유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좀 더 규모에 맞는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나 혹은 기왕 쓰는 거 제대로 돈을 쓸 수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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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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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나은 나'가 되라며 험난한 과제를 안겨주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 과제를 달성하는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도록 몰아붙인다. 험악한 세상이다. 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49) ]

 

 험악한 세상이다. 어김없이 연초는 찾아왔다. 시간의 흐름은 유연한 것인데 거기에 기준을 두어 시작과 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매년의 의식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작심삼일' 새해가 시작한지 삼일이 지났다. 19년의 31일밤부터 20년의 1일의 첫날까지 당신이 세운 올해의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계획은 3일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있는가? '해빗'은 3일째 슬슬 의지가 무너져가고 있는 당신이 또 다른 실패를 기록하지 않도록 도와줄 책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희망을 안겨줄 책일지도 모른다.

 

 삶의 변화, 성공적인 삶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기계발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빗'의 내용이 익숙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은 당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습관'을 활용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행동이 습관으로 형성되면 당신은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의식적 자아(43)'는 목표도 잘 세우고 계획도 잘 잡지만, 특히나 그것이 장기적이고 복잡한 것일수록 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는데도 열심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살을 빼기 위해 식단을 만들고 운동을 하기로 계획표를 짜는 것도 잘하지만, 오늘 야식을 시키고 운동을 빼먹으려는 구실도 잘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화된다면 '비의식적 자아'가 저항을 줄여주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다. 

 

 책에서는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들이 패턴화 된 것이 그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정말일까 싶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는 일이나, 안전벨트를 하는 것, 아이에게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는 일등을 꼽았는데, 습관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들 역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혹은 요구받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 같다. 늦게 일어나 시간이 없거나 양치가 너무 귀찮아도 남들 앞에 그냥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양치를 한다. 안전벨트는 법으로 강제되어 있기도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아이가 원하기 때문과 더불어 자신이 잡은 좋은 부모의 이상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마트에서 늘 먹던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습관적 선택에 가깝다. 또 책을 읽을 때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 앉는 것 같은 버릇처럼 일상의 영역에서 조금 벗어난 특이성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제시된 방법들이 습관 설계라기 보다는 좀 더 오래가는 계획 실행 방법 제시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나오는 많은 예가 다이어트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꿔치기 전략(190)'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우리 뇌는 우리가 다이어트를 위해 열량이 낮은 식단으로 식사를 대체한다면 그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이내 다른 음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가 뇌를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는 습관화로는 이루기 어려운 의지의 문제 가까울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자 희망하는 우리를 매번 좌절하게 했던 그 '의지(170)'.

 

 참 이상한 것이 왜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일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습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육식, 밀가루 음식, 단 음식 먹기, 전혀 운동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기, 다리떨기, 늦잠자기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습관이 된다. 보상이나 바꿔치기 같은 것도 필요없이! 이 때문에 습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습관과는 이미 떨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습관도 이미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노력을 통해 얻은 습관은 지치고 방심한 때에 와해되지 않을까?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습관화 된 행동으로 이루어진 삶이 만족스러울까. 비록 전부 좋은 습관이라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삶을 산다면 완벽할지 몰라도 어쩐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시고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그 앞에서 물을 맞으며 서있는 안좋은 습관없이)씻고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균형잡힌 아침식사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시지 않고 고구마나 과일, 채소스틱으로 간식을 먹고 매일 집청소도 하고 30분 이상 책을 읽고 30분 이상 운동을 하고 2시간 이상 티비를 보지 않고 할일을 미루지 않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고 6시에 저녁을 먹으면 야식을 먹지 않고 스킨케어를 빼먹지 않고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지 않고 12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든다면. 인생이 완벽할지는 몰라도 사는게 즐겁거나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읽으면서 평소의 생활태도와 그동안 목표를 세우고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 책이었다. '습관은 애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에게 들여지지 않은 행동을 습관으로 설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다. 복잡한 생각은 접고 올해의 목표에 집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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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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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사리 '나무에서 갑자기 나무토막'으로 넘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쓰면 읽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읽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도 적었다. 오히려 가끔 생각하길 멈추고 눈으로만 책을 읽어나가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 있었다. 내 '영혼의 부동하는 핵심'을 찾아 '영혼의 평화'를 좀 향해가려는 마음이 오히려 '닦달당하는 영혼'을 채찍질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닦달당하고 있는가? "이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가 좀더 강해져야 하는가? 나를 좀더 '분발시켜야' 하는가?" 세레누스의 질문(54)은 현대사회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시대의 젊은층을 소진시킨 자기계발과 노오력이다. 과도한 경쟁으로 스펙 쌓기에 매몰된 젊은층에게는 여가와 취미까지도 실용성과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인정된다. 실제로는 게임과 핸드폰, 인터넷 같은 것이 전부라도 스펙용 취미를 만들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집중한다.

 

 우리는 이런 노력들이 자신을 뒤쳐지지 않는 제대로 된 길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쌓인 피로의 도피처로 '미니멀, 슬로우 라이프, 워라밸'같은 삶의 방식이 등장하지만 이것이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피로, '닦달 문화'의 근본적인 해결 방인 되어줄 수 없음을 책은 꼬집는다. 그렇다면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무려 '먹고사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생각 좀 해보'자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 명제를 꼽는다. 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삶의 난관은 원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들이 네 가지 명제이다. 언뜻 쉽게 이해가지 않는 내용이지만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의미가 파악된다. 초반부터 2장의 내용까지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이어지는 3장 우정에 대한 내용과 4장의 완벽하지 않은, 그러려니 하는 삶에 대한 내용은 2장에 비하면 좀더 수월하게 읽힌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3장의 우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때로 상대가 나를 무척 실망시키는데도 왜 한 인간에게 쉼 없이 마음을 줘야 하는걸까? (160)" 하는 질문은 친구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데, 왜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희망을 품고 사회를 구성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가 약간의 전환점 같은 내용이 인상적으로 들어왔다.

 

 책에서 '굉장한 절친'이라는 영화(220)에 대해 나오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설경구 조진웅의 '퍼펙트맨'이란 영화랑 비슷한 내용이라 눈길이 갔다. 검색해보니 '언터쳐블 1%의 우정'이란 영화를 '퍼펙트맨'이 리메이크 했다고 나오는데 책에서는 제목이 다르게 나와 있었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연히 엮이며 뜻밖의 케미를 이루는데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인데, 양극단의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이 얽히는 '교차점'과 '순간'을 통해 인생이 주는 묘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퍼펙트맨 말고 언터처블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의 평화를 얻으려고 책을 읽어봤는데, 읽다가 어려워서 정신을 잃었다. 철학은 아직까지도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고, 두번째 읽고 있는 중이지만 한번 읽은 것으로는 전체적인 내용을 훑었을 뿐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크리스마스를 캐빈 대신 철학 학교와 함께하니 아주 기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캐빈과 보냈어야 하는가 싶지만,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를 읽으며 몸대신 마음이 살찌워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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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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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후아나의 꾸무럭한 날씨를 떠올려본다. 테라스 밖으로 멀리 보이던 바다 물결이 빛날때 돌고래가 튀어올랐다고 믿었던 날이, 건조하고 더운 바람, 길거리의 개들, 페인트 칠이 된 건물들, 아주 젊었던 시간에 그 곳이 있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 티후아나를 만나는 건 반가웠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호시탐탐 국경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진 철조망 같은 것, 싱코 이 디에스의 보니따 플라자 같은 것들이 잊고 있었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마음을 때려오는 그리움이 가득 밀려왔다. 언젠가 꼭 한번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읽으면서 반가웠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킨다면, 멕시코는 괜찮은 곳이었다.

 

 티후아나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은 주말이면 긴 줄을 이룬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일이 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빅 엔젤의 가족들이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역사에는 이 국경 사이의 예민함이 드러나 있다. 말뚝과 펜스가 쳐져있던 티후아나의 바닷가에서 '넘어가고 싶으면 수영을 해서 가면 되겠네'하던 물음에 그 생각때문에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빅 엔젤이 자신에게 얼마나 프라이드를 가졌을지 이해가 됐다.

 

 멕시코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처음 멕시코에 갔을 때 시장의 상점에서 가장 많이 본 것들이 해골 모양을 한 장식품들과 피냐타였다. 죽음, 죽은자를 연상시키는 해골 모양의 장식품들과 파티에 빠지지 않는 피냐타 인형이 함께 걸려있는 상점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전혀 어둡거나 엄숙하지 않게 화려하게 장식된 해골들이 참 독특했다. 그곳에서는 삶과 죽음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아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며 참 멕시코스럽다고 생각됐다.(당연하게도!) 장례식과 생일 잔치를 앞 둔 이 가족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죽음, 삶, 가족. 어울리지 않는 저 단어들은 사실 인생이란 테두리 안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 먹을수록 절감한다. 그것은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 가혹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게 나이를 먹고 성숙해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는데, 내가 클수록 자라오며 의지했던 부모님이 점점 불안해지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이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빨리 자라서 그들도 이렇게 빨리 늙어간 것이 아닐까. 책 속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온 빅 엔젤이 늙고 병들어 페를라와 미니에게 몸을 의지하여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다. "미안하다. 다 미안해.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309)" 핸드폰 조작법을 몇번이나 다시 알려드릴때 부모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닐까. 

 

 언젠가 우리에게 모두 마지막 토요일이 올 것이다. 항상 그것이 아주 먼 후의 일이라고 자신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실제로 그 날이 언제일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하느님 제기랄! 주님, 죄송합니다.(150)"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면서 영화 '코코'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죽은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데, 가족을 중요시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특유의 문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내용이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는 이미지나 멕시코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주로 갱단에 관한 무섭고 암울한 내용이 많지만, 멕시코는 아름답고 멋진 나라다. 멕시코에 가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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