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를 많이 했다. 띠지에 써 있는 문구가 심상찮아 보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막상 읽어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한데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과잉됐다 해야할까, 아 조금 아쉽구나 싶었다. 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라고 되어 있어서 19년도에 어떤 책이 대상을 받았는지 찾아봤는데, 10편의 후보작들 중에서 침입자들이라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참이다. 원래 제목은 달랐던가. 300쪽 조금 넘는 분량인데 금방 읽힌다. 평소에 책을 잘 안 읽는 편이라도 쉽게 읽을 것 같다. 장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고 장르소설 느낌이 좀 난다. 자발적 격리에 들어간 책임감있는 성인들이 한가할 때 읽기에 좋겠다.

 

 책에서 아재느낌이 물씬 났다. 영화 '이퀄라이저'를 감명깊게 본 아저씨가 꿈궈볼만한 내용이랄까. 읽기 전에는 평범한 택배 기사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배정 받아 택배를 배달하며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사건들이란 느낌의 평범한 코믹스릴러나 드라마를 생각했는데, 택배 기사가 너무 능력치 몰빵 작가의 최애캐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읽고보니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띠지의 문구가 좀 불만스러웠다. 행운동 사람들 인생은 택배 오기 전에도 뒤틀려 있었던 거 같은데, 낚인거 아닌가. '이미 뒤틀린 인생, 택배가 끼얹어졌다'고 해도 될만하다.

 

 작가가 사랑한 주인공을 나도 사랑하지는 못했다. 약간 촌스러운 감성이라고 해얄까, C*감성영화 느낌이랄까, 소설이 당년정 배경음악과 함께 석양으로 사라지는 사나이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주인공 일명 행운동 내지는 K는 말도 없고 웬만한 일에는 별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듯한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의문의 사나이로 그려진다. 아는 것도 많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묵묵한, 그러나 할말은 할 줄 알고 필요하다면 주먹도 쓸 수 있으나 자제할 줄 아는 미덕을 가졌다. 보고 있자면 마치 '택배기사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전생했더니 행운동 택배기사였던 건에 대하여*'같은 제목을 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하는 웹소설같아 오히려 아쉬웠다. 멋지라고 만들어 놓은 주인공인데 안 멋져서.

 

 가장 큰 장점인 핑퐁처럼 오가는 대화도 가끔 웃기긴하지만 천재 경제학 교수보다 더 젠체하는 듯한 어조가 부담스러웠다. 바쁘다며 '양 떼(146)'어쩌고 하는 핑계를 대는 것도 현실에서 시전하면 마이클처럼 보일 것이다. 행운동 사람들이 죄 수상했기에 칼잽이 K씨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마음에 들어한 것이지 실제로 누가 저런 식의 화법을 구사한다면 '아 왜 저래'싶을 느낌이었다. 소설인 것을 감안해도 말투가 지나치게 극적이라 항마력 채워가며 읽었다. "양갱을 잘못 먹은 탓이에요(181)" 하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뤘다.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고 침입자들 재밌게 읽었다면, 유머는 조금 부족하겠지만 이퀄라이저 꼭 보길 추천한다. 주인공 설정이 같다. 침입자들은 뭐랄까, 한국판 이퀄라이저 같다.

 

 결핍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필 책을 읽은 날 낮에 천변을 좀 걸어지났다. 우한폐렴 탓에 초등학교 개학이 미뤄진 덕분에 한 5학년 쯤 됐을까싶은 남자애들 다섯이 천변에서 놀고 있었다. 그중 넷은 자전거를 탔는데 하나만 킥보드를 탔다. 정작 애들은 별 생각없이 놀았을지 몰라도,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 보기 곤혹스러웠었다. 자전거 탄 네 명의 속도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그애들과 함께 이동하기 위해 킥보드 소년이 아닌 척 더 열심히 한쪽 발을 굴러야만 하는 모습이 그랬다. 나도 자전거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텐데, 친구들이 속도를 맞춰주는 배려가 때로는 미안했을텐데, 속도를 더 내보려고 발 구르는 것이 힘들텐데 하는 어두운 생각만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 걷던 동행에게 불쑥 십대시절 내가 별스럽지 않게 겪었던 결핍에 대해 얘길 꺼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던 것이다.  

 

 큰 줄기를 잇고 있는 사람들말고 단편적으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에피소드들로만 내용을 연결한다면 연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게꾼 아버지 이야기나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택배 기사 같은 내용은 어디서 본 듯해도 소재로 삼았구나 싶은데, '코카인'이나 대기업, 경찰서로 연결된 내용들은 너무 간 설정처럼 느껴졌었다. 어쨌든, 고독한 아저씨 히어로물을 원한다면 만족스럽게 읽을 것 같다. 히어로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소소한 구원도 구원이겠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