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작은 기록 습관이 바꿔놓는 삶에 대하여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노경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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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나의 일상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작은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숨어있던 나의 빛나는 가치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이 단호하고 분명한 문체를 어디서 본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읽은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의 저자였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해 인정을 하고야 마는 것이, 전부터 제목 하나로 독자를 사로잡는 능력이 대단하다. 일단 이 제목들에 두번이나 홀려 책 앞에 앉게 된 독자가 여기 있다. 

 책은 '자기 역사'라는 키워드로 시작하는데,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기록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자기 역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면 더 잘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자신이 관심있고 재능을 살린 콘텐츠를 이용하면 됐지 그게 꼭 글일 필요는 없는데, SNS를 하거나 브이로그를 찍는 것도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일테다. 다만 글이라는 틀을 가져왔을때 더 좋은점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글로 지은 마음의 집(23)'에서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 주제로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나왔는데 90%가 돈과 집을 꼽았다는 것을 보자, 요즘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대부분 연예인이나 유튜버, 운동선수를 꼽는다는 통계가 생각났다. 가장 흔히 접하고 많은 인기와 수입으로 화려한 생활을 할 것 같은 분야의 사람들을 롤모델로 꼽은 것이다. 전처럼 대통령, 의사, 과학자 일색인 답변이 더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생활과 사유가 필요해보였다. 그게 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자세도 고쳐보기로 했다. 

 소개되는 글들마다 작가의 다양한 개성이 드러나는데 짧기까지 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책을 읽다 '써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는 빈 공간을 보고 당황했었는데, 어느새 압박조차 잊고 술술 다음 장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것을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길게 쓰지 말라는 말을 강조-읽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17), 간결함의 미학(125), 하물며 자기 이야기를(178)-하는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저자의 연배를 고려했을때 고루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시선이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어 균형이 맞았다. " 부고는 적은 분량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을 축약해 보여준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그래서 재미있다.(188)" 어떤 부분은 날카롭다 못해 차갑다. 오직 글에만 빠져있는 저자의 외골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듯 하다. 쓰는 사람의 이런 시선을 책에서 소개된 요시카와 에이지의 글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그의 다섯살, 열한살 시절을 서술한 내용(180)들은 놀랍도록 성숙하고 자극적으로 전개된다. 

 쓰기를 위한 읽기에 대한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잘 쓰기 위해 읽는다는 것은 쓸 것을 생각하며 읽는다는 뜻이다. 보통은 그렇게 읽지 않는다. 61" 그동안 최대한 열심히 꾸준히 읽어나가려고 나름 노력해야왔는데 잠깐 멈춰서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할지, 독서에도 방향이 있어 독자 스스로 그 키를 잡아 방향을 찾아야 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처음엔 책에 있는 주제와 빈 칸이 압박이 되어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것을 직접 쓰는 행위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천천히 책을 읽는 동안 만나게 된 짧은 '자기 역사'들을 보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되고, 처음 책의 빈 공간을 볼 때 느꼈던 부담이 점차 나도 해보고 싶다는 자극으로 달라졌다. 쓰기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글을 쓰는 훈련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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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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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이다. 이제 내가 직접 미술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 보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풀어내 주는 미술을 함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미술관을 직접 가본 경험도 많지 않으면서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으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에 대한 설명과,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좋은지, 작가는 어떤 의도를 품고 표현했는지, 그 시대는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전시회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서성이며 밀려나듯 작품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얼마든지 그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다 보면 쉴 곳은 마땅치 않고, 화장실이라고 가고 싶으면 재입장이 불가해 곤란할 때도 있다. 정신없이 서 있다보면 얼마 시간이 안 지난 것 같은데 다리가 아파올 때가 있다. 하지만, 책은.
 물론 직접 작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기운, 섬세한 색과 선을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감상은 사진으로 접하는 것과는 실제로도 표현적으로도 차원이 다르긴하다. 하지만 보는 눈이 없고 배경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입장에선 감상을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책을 통해 시선이 풍요로워지고 감상의 폭도 넓어지는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두번째 미술사'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책이라면, 문득 책으로 작품을 만나는게 더 잘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설'에 대한 반기는 문학 수업 시간에 처음 접했다. 하나를 입력하면 하나를 기억하는 학생에게 일제강점기 문학 작품을 수업하던 선생님이 던지신 질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비유적으로 해석해서 무조건 답으로 고르던 해방과 억압의 이미지들이 정말 작가의 의도가 맞을까,하고 물어오셨었는데 그런 의표를 찌르면서도 시험 볼 때는 그동안 배운대로 답을 적어내야 한다고 말을 마치셨었다. 그때 처음으로 작가의 의도와 대중의 해석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미술사'도 그런 책이었다. 고정된 시선과 주입된 생각을 깨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목을 베는 유디트(152)>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화가인 "젠틸레스키 자신의 삶-젊은 시절 당한 성폭행과 그에 따른 재판-이 투영된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고 해석해왔다.(152)"는 소개를 읽다가, 최근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던 오래 전 판례가 재심을 통해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된 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 작품이 그동안 여성의 원한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단순한 복수가 아닌 "권력의 전복과 연대의 상징(154)"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책에서 기대한 반전들은 이렇게 강렬한 것들이긴 했지만 가끔은 "달리의 개미핥기 산책(4)"같은 내용이 재미와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이미 나와있는 제품의 이미지를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워홀의 작품인 <캠벨 수프 캔>이 사실은 밑그림을 떠서 손으로 일일이 색 칠한 것(212)이란 사실도 의외였다. 그동안 편견과 오해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바로 그런 눈의 장막을 걷기 위해 '두 번째 미술관'이 열렸구나 싶었다. 또, 현재 전시 중인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과 관련된 오랑주리 미술관(238)에 대한 내용도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작품만이 아니라 확장된 공간까지 담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도 좋았다. 

 미술관에 가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 어느 하나를 고를만큼 예술 앞에서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둘 다 가능한 많이 접할수록 좋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에 대해서 언급한 이유도 예매해두고 아직 방문을 미룬 게으름 때문이기도 한데, 책을 읽고 나니 더 가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 미술관'을 접한 다른 분들도 올해가 가기 전에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래본다. 기왕이면 책에서 만나고 지금 진행 중인 전시를 찾아본다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까. 기대했던만큼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주는 책이었다. 


*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25-09-20 ~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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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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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면 그 반대의 것이 온다는 것. 희망을 원하면 절망이 찾아오고 부를 원하면 가난이 닥쳐올지어다. 사랑을 갈구하면 할수록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게 될 지어다. 아이들 앞에 선 아버지 선생님은 영적 의지의 시험대였다. 218" 

 '파사주'를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모르겠다,였다. 그 뒤를 가장 자주 쫓아나온 것은 만약 내가 종교가 있었다면,과 이 둘은 정말 길을 떠나고 있는 게 맞나,였다.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듬더듬 읽어나가다보니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읽은 책이 되었다. 사실 다 읽고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는 감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조금 말을 부풀려서 표현하자면 '파사주'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이 책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해지는 책은 또 없을 것이다. 

하나의말씀
 '신의 군대(61)'. 무려 일곱곳이나 된다는 벽돌집의 조직적인 체계와 사회 여러 계층의 비리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하나원의 모습은 단순한 사이비같은 종교시설을 넘어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종교시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비밀스러운 공간들이 있고 거기서 사람들은 계약서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접대한다. 해수와 유림의 불분명한 시선과 대화로 그 안에서 벌어지던 불온이 언뜻 들춰지다 감춰진다. 그 둘의 존재마저도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순간 그들의 증언도 함께 점멸한다. 정말 뒤뜰을 지켜보다 보면 사라진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는지, 계단 아래에 있는 것은 연구소인지 수련당인지 혹은 감옥인지(230) 보고도 알 수 없고, 알아도 말할 수 없고, 알려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더욱더 생생해지는 것은 " 사람 하나 죽고 사는 게 말씀과 관련 있어, 없어? 사람 하나 다치고 상하는 게 말씀과 관련 있어, 없어? " 을러대던 소리였다. 

가인과 아벨(17)
 (81)*'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카인은 자신의 첫 수확 농작물을 아벨은 자신의 가축 중 가장 처음 난 새끼를 제물로 바쳤다. 자신의 것이 아닌 아벨의 제물만 반겨하자 이를 시기한 카인은 아벨을 불러내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로인해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 땅에서 버려져 유랑하며 살게 된다. [창세기 4:1-16]'
 가인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해서 명확한 비유와 설명이 나오는데도 해수가 당당히 스스로를 가인이라고 부르는 통에 카인으로 대표되는 '악, 폭력, 탐욕'같은 키워드들이 흐려졌다. 해수가 가인이라면 대체 아이들을 착취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때리며 학대하고, 비리와 향락에 취한 벽돌집 안의 사람들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의미가 더 있을지도 몰라 의심하며 읽었다. 역할은 누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뒤바뀌는 것이었다. 가인의 불신과 유랑은 해수와 유림으로 인해 긍정으로 바뀐다. 

길을 떠나는 아이들
 어디선가 아이들은 끊임없이 흘러들고, 자라나던 아이들이 소리없이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소리를 내려고, 모두가 아벨인 그 공간 안에서 스스로 가인의 이름을 가져온 아이들은 유랑 길에 오른다. 길과 벽돌집이, 과거와 현재가 어지러이 뒤섞이는 동안 그 안에서 믿음도 합쳐지고(122), 생존자(166)는 착취자가 되었다. 아이들의 여정이 현실감없는 환상처럼 보여져 산 자의 탈출인지 이미 죽은 자의 황천길을 따르는 것인지 헷갈렸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방향도 불분명한 길 위에서 해수와 유림은 못마땅히 건네진 사과를 받아든다.(21) 아마 이들은 더이상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에 이 과실을 먹어보라는 유혹 없이 오히려 마땅치 않다는 듯한 태도로 건네진 것이 아니었을까. 

파사주
 게임(200)이자 통로 그리고 궁합. 파사주라는 단어를 두고 사실 대형 쇼핑몰 같은 공간을 먼저 떠올렸다. 가장 일상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때문에 '파사주'의 내용을 좀 더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배경일 것이라 잘못 짐작했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게임으로 풀어냈지만 나중에 읽어보니 사주팔자를 깨뜨린다는 뜻의 破四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운명을 풀어보는 궁합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인 유림과 물인 해수가 만나 함께 자신들의 운명에 저항해 생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관계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제목이었다. 읽기 전보다 읽고 난 뒤에 훨씬 제목이 더 마음에 들어왔다. 

 " - 우리 지-지금 어디로 가?
유림이 물었지만 해수는 묵묵히 걷기만 했다. 뒤를 돌아봐도 앞쪽과 똑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고 불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건 이 길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보일 터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걷다 보면 환한 빛을 마주하리라는 작은 희망이 유림의 발걸음을 앞으로 이끌었다. 171" 

 어둡고 질척이는 통로를 헤매는 것 같은 소설이었지만 그 안에 희망이 있어 그 희미한 것을 붙들고 같이 헤매며 읽어 내려간 기분이었다. 이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독자라면 아마 좀 더 수월하게 읽고 많은 것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을 여는 소설로 사람 사이의 관계과 운명을, 세상의 굴레와 저항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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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알로하 하와이 - 스무 번의 하와이, 천천히 느리게 머무는 곳
박성혜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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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는 어쩐지 쉽게 떠나기 어렵단 인상을 주는 여행지였다. 일단 여행객들이 너무 많이 가서 오버 투어리즘 때문에 관광객 혐오가 생겨나고 있다는 나라나, 경기도 무슨무슨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서 외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나라나, 한번 입국하려면 손가락 지문이며 자잘한 정보를 다 내놔야 한다는 나라같이 가까운 곳들보다 멀다. 멀다는 것은 곧 비용의 문제를 더한다. 항공료도 더 비싼 것이 당연하고, 물가도 근처 나라들보다 높다. 교통이나 간단한 안내문 같은 것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편의성도 확연히 달라진다. 신혼 여행이니 휴양지니 해서 아무리 하와이를 많이 찾는다고 해도 여러모로 조금 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인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 '해피 알로하 하와이'의 표지를 보다가 저긴 좀 멀어, 하다가도 어느새 몽글하고 마음이 들뜬다. 옅고 아름다운 물빛을 띄는 잔잔한 바다와 따뜻한 볕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했을 것 같은 야자수, 발 밑에서 곱게 뭉그러질 것 같은 모래사장은 이미 지나가버린 지독했던 여름의 더위도 생생한 활기로 기억 보정을 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머네, 어렵네 조건을 두드려보던 계산기를 치우고 언젠가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긴 했지, 하고 거기도 모히또를 잘 말아주나 꿈꾸듯 바라게 한다. 

 '해피 알로하 하와이'는 마치 밀당을 하듯 하와이와 여행과 독자 사이를 조율한다. 그만큼 솔직하단 뜻이기도 하다. 표지만으로도 하와이를 떠올리는 마음이 솔톤으로 올라갔다가 입국심사에서 세컨더리룸으로 끌려(?)가고, 세관에 걸리는 내용이 나오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와이를 많이 가고 잘 아는 작가 조차도 긴장하게 만드는 입국절차는 '내 돈 내고 여행을 즐기러' 가겠다는 사람의 마음에 불필요한 긴장과 불안을 주는 걸림돌이긴 했다. 하지만 막상 어딘지 여유로워 보이는 하와이 사람들의 모습이나 오렌지재스민 향기가 바람에 실려 퍼져나간다는 말에 또 마음이 들뜨고, 따뜻한 나라답게 벌레가 많다고 하면 금새 마음이 식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쯤 되면 우선 책으로 만나는 하와이부터 즐기고 보자,고 생각하게 된다. 

 보기만해도 이 모든 곳을 다녀온 작가가 부러워지는 곳들이 있었다. 오르는 과정은 살벌하다는 코코헤드 트레일의 사진이나, 커다란 바다거북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 여기저기 누워있는 몽크씰들, 아니라곤 하지만 정말 [쥐라기 공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의 마노아 폴스의 풍경이 그랬다. 언젠가 하와이에 간다면 꼭 알로하 프라이데이 파이어 워크, 금요일밤을 끼워서 가겠다고 적어두었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앞 카하나모쿠 비치에서 단 4분동안 한다는 이 불꽃놀이는 6월부터 9월까지는 저녁 8시, 그 외에는 저녁 7시 45분에 한대서 그걸 놓치고 허탈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관광객이 되지 않아야지, 힐튼에 있지 못하더라도 꼭 쉐라톤 쿠히오 비치말고 최소한 아웃리거 리프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 앞에서 이 짧은 낭만을 누려야지 다짐했다. 이 모든 것이 참 한국인의 여행계획스럽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책에서 만난 카페 'pai(배)'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읽었던 [설탕 전쟁]이라는 책에서 본 하와이 이주 노동과 관련된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아픈 역사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피 알로하 하와이'의 끝부분에도 진주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비로소 하와이가 여행지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이어져 온 생활터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 안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그 곳에서의 삶을 나눠받을 수 있기에 여행이 의미있는 체험이 된다는 것도 상기됐다. '하와이'를 두고 추억과 이상, 마음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매력으로 가득 차 하와이를 다녀온 사람과 가보고 싶은 사람 모두의 마음에 들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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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 제5회 살림청소년문학상 대상, 2015 문학나눔 우수문학 도서 선정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2
박하령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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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파괴해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고로 나의 삐뚤어짐은 성장의 전조이다. 과거의 삐뚤어짐이 엇나감이었다면 이제 나의 삐뚤어짐은 존재의 외침에 부응하는 건강한 파격이다. 난 삐뚤어져야 한다! 그게 마땅한 일이다. 107"

 이상하게도 '의자 뺏기'를 읽으면서 전에 봤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101개의 자리가 순서대로 놓여져 있던 그 세트장. 처음엔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101개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없어지는 자리와 같이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알리려고 애쓰던 참가자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을 뿐인 누군가의 절박함을 바라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생존 경쟁 방식으로 된 티비 프로그램을 일부러 안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의자 뺏기'를 읽다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전에는 그저 끝끝내 자리를 지켜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기쁨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와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었던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처음 은오는 왜 지오가 리포트를 숨긴게 아니라고, 희수의 책상에서 시연이가 뭔가를 빼가는 것을 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승미가 무섭더라도, 자신이 본 결정적인 장면을 밝혔다면 상황이 뒤집어질 수 있었을텐데 누구보다 가까운 편이 되어줄 지오를 두고 다른데서 자리를 찾으려고 눈치보는 은오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러다 하나씩 왜 은오와 지오 사이에 거리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되면서 은오를 지켜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의자를 뺏기거나 양보해야 했던 은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변이 하나같이 어렵기만 했다. 누구든 은오에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솔직히 말해주었어야 했다. 은오 곁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자만을 좇아 제멋대로 사라져버릴 때마다 안타까웠다. 부산에서 만난 아주머니보다 그 애의 마음을 들여봐주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평생을 두고 은오는 앉아본 적 없는 의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은오가 시달린 것에 비해서 풀어가는 과정은 오히려 짧고 아쉬웠다. 이마만큼의 큰 상처가 겨우 이런 순간들로 풀리고 덮일 수 있을까. 은오가 여전히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삐뚤어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괴 속에서 청소년 소설다운 성장의 여지를 남기며 끝을 맺었지만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은오는 정말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그래도 괜찮을지 한참을 가만히 생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젠가 앉아보고 싶었는데, 나만 앉지 못한 채 서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의자 뺏기'안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의자를 뺏는데에만 익숙해보여서 은오보다도 내가 더 미워했다. 누구 하나만 힘들면 나머지가 편할 수 있다는 말을 어린애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말을 어린애가 이해해서도 안됐다.

 앉아보고 싶었던 자리, 앉을 자리가 없어서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아야 했던 때를 떠올리며 '의자 뺏기'를 읽는 사람들이 이 결말에서 희망만을 골라 가져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뒤돌아보다 다시 앞을 봤을 때 내가 앉을 수 있었던 자리도 있었음을, 때로는 그 의자의 비좁은 자리에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서 나눌 수도 있었음을, 앉지 못한 의자 대신 새로운 의자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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