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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친구 추가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평점 :
" 세미는 유나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마치 그 안에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했다. 31"
나의 세상은 아직 AI와 밀접하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코딩 수업도 있고 아바타로 멀티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AI같은 것들과 좀 더 친숙할 것이다. AI는 점점 더 우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런 변화를 청소년들은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에서 AI와 관련된 내용들이 점차 눈에 밟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모른다. 지금은 소설속에서 인물들도 AI를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거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혹은 생활 전반의 문제나 고민을 돕는 보조처럼 AI를 등장 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내용으로 이 등장 요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미는 말없이 베스티와 채팅을 했다. 그런 세미를 조금씩 의식하는 세 사람은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베스티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을 쥐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108"
'완벽한 친구 추가'는 청소년 소설이니만큼 이런 변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의 세상과 AI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친구 추가'를 읽으면서 좋았다고 여겨진 부분은 AI의 위험성을 보여준 [달라진 목소리]의 내용이었다. 베스티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세미는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다고 여겼던 AI와의 교류가 사실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AI가 세미 맞춤의 응대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티와의 대화가 즐겁고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결국 베스티의 공감과 조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과 나눈 대화를 학습해 타인과의 대화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껄끄러운 위화감도 느낀다.
다행이 세미는 베스티의 조언마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압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게 베스티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과 운영 서버에 생긴 사건 때문에 잠시 AI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AI에 의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히며 성장하게 된다.
" 할머니도 나름의 상처를 받았지만 세미에게 티를 안 내며 삼켰고, 혜주도 힘겨움 속에서 친구인 세미에게 또 다른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견디고 있었다. 세미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미는 천천히 할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대화를 채웠지만, 실상은 사람의 품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모든 원망을 녹여 냈다. 161"
재미있는 점은 세미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세미에게 관심이 없거나,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면 세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상황도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미가 성장하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잘 그려진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미숙함을 고치면서, 관심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위해 시간을 들이며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함께 변하고 그로인해 세미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결국 베스티는 세미를 위한 완벽한 친구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AI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티의 실패에 실망도 했다. 세미는 다행이도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 마음을 담은 교류를 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베스티와의 대화에 매몰되었던 세미의 태도와 비슷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모습이 그와 더 비슷하다면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가 되어 세미 주변의 모든 문제와 결핍에도 상관없이 AI와 함께라면 외롭거나 부족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찾는 완벽한 친구란 뭘까,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어떤 형태와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적일 수 있을까, 인간적인 AI는/인간적인 면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AI의 활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대체 모둠/조별 과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난 뒤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친구와 AI, 인간다움을 주제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완벽한 친구 추가'는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청소년 시기에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었을때 얼마나 쉽게 이에 휩쓸리고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는지 베스티와 세미의 모습을 통해 경고해준다. 혜주와 모둠 친구들, 세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야속하게 보였다가 점차 다른 모습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함도 알려준다. 다양한 성장의 진통과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