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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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들 속사정이야 어떻든 친구와 나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둘러싼 전광판을 보며 '감다뒤'라고 수근거리며 혀를 차기 바쁘다. 특히 시즌을 맞은 이런 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 한때는 전광판이 설치되면 그 앞을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반복되는 화려한 영상을 굳이 감상하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 뒤로 가려진 본점의 고풍스런 외관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계속 광고판을 올려둔다는 결정을 접한 이후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가을의 돌담길을 보란듯이 한번 더 걸으며 낭만이 뭔지 모른다며 실망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의 의미로 존재하곤 한다. 서울의 낮과 밤을 이야기하며 시작한 도시 이야기는 독자를 그림과 풍경 사이로 인도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자연스러우면서 낯선 감각이다.  
 예술과 관련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면 내가 소화해 낼 바탕이 있는지 없는지 셈하기도 전에 일단 들이받듯 읽어보고 싶어진다. 쩔쩔매며 읽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것들을 끌어왔다가 애를 먹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도 자꾸만 손에 들고만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두 작가가 이어지는 지점을 이해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 어떤 부분들은 분절된 채로, 어떤 부분들은 내 방식대로 이어가며 읽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독특한 관람 경험이 된 듯 해 큰 숨이 들어찼다 빠져나가는 뻐근함이 남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가장 먼저 나혜석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림 속 모던걸의 어두움이 저자의 편견을 뒤집었다(106)는 말에, 다시 바라본 그림 속 여성의 얼굴에서 웃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의 웃지 않음, 돌려말하지 않음, 친절하지 않음이 그 안에 있었다. 여성이며 사람인 존재의 초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강렬한 인상이 만족스러운 한편, 대부분 근대의 작품들에 더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 작품과 함께 묶인 작가와의 연결점은 특히 더 그 고리가 약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아이돌>연작에 대한 이재헌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어딘지 모호했다. 아이돌이 되고자하는 연습생들의 열망과 절제된 생활과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홈마의 존재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화상>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만큼 아쉬운 지점이었다. 
 반대로 현대의 미술에 더 시선을 빼앗긴 것은 이어진 서민정 작가의 <너와 나 01>의 소개(126)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함께 소개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본 뒷모습은 과연, 땀에 절은 채 사막에 남겨진 야스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성질을 감당해내야 하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내면을 짐작해보게 만든다. 견뎌내야 하는 사막이 그 안에 있는 듯도 하고, 그 기질적인 예민과 불안을 눌러담은 뒷모습이 익숙한 듯 초연해보이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탓일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본 그림은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202)였다.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2024년 11월의 눈 내린 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2025년의 12월 눈 내린 날에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얀 풍경은 그전까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프랑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의 풍경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눈이 온다는 설렘이 점차 쓸쓸히 덧대여지는 흰 풍경과 함께 흐려지던 긴 저녁이었다. 올해의 겨울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이 함께 생각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의 특별함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있다. 보통은 작가보다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또 자주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가의 인터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신껏 '핑계 대지 말자.(289)'는 답변을 내놓는 강단이나 규칙적인 일과(59)를 강조하는 답변처럼 그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라 잠시나마 시선을 돌려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인터뷰의 존재가 매력적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의 일이라 한동안 병증으로 어깨를 쓰기 어려웠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183)에 투병을 거듭하느라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좋아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병마와 공존하는 삶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환기 시켜주곤 하는 그믐의 대표분이 떠올랐다. 덩달아 모든 이들의 무사안녕을 조용히 바라게 되는 연말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인삼각에 함께 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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