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층 너머로 꿈꾸는돌 44
은이결 지음 / 돌베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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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은 따개비 한두 개가 붙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등이 무거워져서 그것들의 존재가 명확해졌을 때에도 평소처럼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으리라. 내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떨치지 못하는 것들. 한동안은 그것들이 왜 자신에게 붙었을까를 고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자책했을까? 나처럼. 97" 

 영원한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무겁고 무섭다. 언제쯤이면 이별에도 익숙해지는 때가 오기는 올까,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알 수 없다. 정해진 이별을 받아들이면서도 밀려드는 그리움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는 날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어리고 예민한 시기의 아진은 더더욱 무력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진이 제 몫의 이별들을 소화시키는 날들이 복잡하고 거칠고 힘든 것은 당연했다. 가끔 어떤 인물의 날카로움이나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이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는데 아진의 것은 오히려 너무 오래도록 참아왔다 싶었다. 얼마나 참아왔으면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안쓰러웠다. 

 이렇게 괴로운 시작이 있어도 괜찮은지 염려되었다. 세나가 어디에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희처럼 끝까지 모르고 싶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면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알았더라면 싶기도 했다. 찾은 것과 발견된 것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이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어린 독자에게 깊고 무거울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의 끝무렵 전해진 소식이 극복보다 고통만을 더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세상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악의마저 품고 있으니 선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 이해해 줄 걸, 더 잘해줄 걸, 더 살펴볼 걸 하는 후회가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쌓여 어느새 눈에 보일만큼 전해져왔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는 동안 더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아진을 괴롭혀왔구나. 어떤 날엔 자기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었던 때도 있지만 밤새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상실을 앓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더 못해주었다는 괴로움을 해미 언니를 도우면서 누군가를 구하는데에는 주변의 세심한 관찰과 그보다 더 주의깊은 배려가 깃들어야 함을 알게 되면서 풀어가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것들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서 괴로운 마음을 구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어 좋았다. 

 " 그제야 알았다. 오늘 교실에서 빈 책상을 보지 못했다는 걸. 세나가 빠진 자리는 이미 채워져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세나는 내가 잃어버린 친구다. 잃은 후에야 친구가 된. 그게 1년 전 일이다. 29" 

 그때는 꼭 점심을 같이 먹고, 무리를 이루고, 나란히 하교를 하는 친구만을 가깝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득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나눈 누군가가 더 빈번히 떠오르곤 한다. 우연히 한 계절 앞뒤로 앉아 심심하다며 읽고 있던 책을 빌려보았던 친구나 같은 청소구역을 담당해 청소시간에만 달라붙어 청소를 땡땡이 치자며 작당을 하곤 했던 친구처럼, 늘상 어울려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다 나눈 적도 없고 반이 달라지고 나서는 마주치던 복도나 운동장에서 가벼운 인사만 나누던 것이 전부였는데 함께 했던 짧은 순간들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세나와 아진이의 순간들을 보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친구가 되고 이별도 하는 관계도 있다. 

 무신경해 보이는 은제나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 동우, 얄미워보이는 현주 씨, 무책임해보이는 아빠가 어느 순간 달라보이는 때에 다른 사람을 더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아진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어도 같은 생각일 수 없다는 것, 솔직한 표현을 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것, 외면하지 않아야 할 순간에 용기를 내는 성숙한 모습같은 것들이 복잡한 면면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진규를 의심하면서도 진규에 대한 아진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의외였고, 그래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심각한 얼굴로 읽어가는 동안에도 진짜가 섞여있는 웃음(134)이 있었다. 

 아진의 사춘기를 보는 동안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꺼내보듯 지나보냈던 사춘기가 다시 생각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같은 펜으로 적어내렸던 일기를 어느날 아무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찢어 소각장에 버려버리기도 했다. 저녁이면 조용히 집밖으로 나와 인적이 끊긴 골목에서 가만히 아무나 기다리듯 서성이는 날도 있었다. 그때의 이유들을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2.5층 너머로>를 읽는 동안 터널같은 시간들을 통과하는 중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지금 마음이 복잡하고 그런데도 어디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다면 아진이네 집 2.5층 계단 한 칸을 빌려보아도 좋겠다. 거기서 양파를 까는 너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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