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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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잠깐만요." 존이 한 걸음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오늘 그 책에 굉장히 좋은 구절이 있었어요. 무척 마음에 들어서 적어뒀어요." 에이바가 잠자코 기다리는 동안 존이 안주머니에서 예의 그 몰스킨 수첩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한 장을 찢어냈다. "여기요." 그가 말했다. 에이바가 그걸 읽어보고 뭐라 감상을 말하기도 전에 존이 고개를 끄덕하고 인사를 하더니 걸어가버렸다. 에이바는 도서관 문 위에 달린 전등 아래로 걸어가 존이 적은 글귀를 읽었다.

'돌이켜봤을 때 즐거운 과거만 생각하라.'

"존?" 에이바가 캄캄한 허공에 대고 존을 불렀다. 그는 가고 없었다. 에이바는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p.96 2장 1월 에이바"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는 와중에도 기혼자의 삶이란 무엇인가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미용실의 두꺼운 잡지 속의 자극적인 문구처럼 - 혹은 그저 사실 그대로를 옮겨놓은 건조한 글일지라도, 결혼해서 애인 없으면 바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책속의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결혼 생활을 다룬 최근에 접한 모든 책들이 전부 이를테면 불륜- 외도- 바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끔찍함에 몸부림치면서도 이런 반응이 물정 모르는 이의 나이브함으로 비춰질 것인가 염려스러워진다. 촌스럽기는, 내지 남에게 헛된 첨언하길 즐기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마치 '너도 ~나이먹어, 결혼해, 아이낳아 등등~ 봐' 라는 진절머리나는 관용구의 등장이라던지. 

 

 에이바의 삶은 파괴되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정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엄밀히는 부부관계가 파탄난 것이다. 에이바의 남편은 과거 데이트 상대였던 "델리아 린드스트롬, 뜨개 그라피티 작가. 게다가 남편 도둑"과 바람을 폈다. 에이바가 그 사실을 안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며 에이바와는 이혼하고 싶다고 요구한다. 에이바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하고, 아이들 역시 산산조각 난 가정의 모습처럼 제각기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다. 남겨진 에이바의 삶은 파괴되어 버린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혼자남겨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상처입히고 또한 수치스럽게 만든다. 정상적인 삶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친구 케이트를 통해 북클럽에 들어가 책을 읽고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시도한다.

 

 "에이바는 선량하고 친근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남편이 떠난 뒤 새로 얻은 악습인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는 짓도 하지 말아야지. 친구를 사귀어야지, 아니 적어도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p.22 1장 12월 에이바"

 

 그녀의 바람은 소박했으나, 쉽게 무너졌다. 전남편과 그의 새애인이 아직도 그녀가 사는 도시 곳곳에 출몰했고, 오랜 결혼생활 끝에 단단히 얽힌 인간관계가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렌체로 떠났던 그녀의 딸 매기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에이바가 자신의 삶에 버거워하는 동안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한 매기는 낯선 남자를 따라 학교를 자퇴하고 파리로 간다. 나이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 그가 주는 대로 약을 하고 구속된 채 폭력에 노출되는 무분별한 삶에 빠져든다. 에이바와 매기의 위태로운 시간들이 교차되면서 또하나, 에이바의 삶을 뒤흔든 과거의 사건이 드러나게 되는데- 어린시절 여동생과 엄마가 차례로 목숨을 잃은 경험이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갑자기 나타난 행크라는 인물의 등장에 위화감이 드는 점이 있지만 읽으면서는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수많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과거의 사건은 어딘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정신없이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다소 동화같은 결말이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편으로, 좀 더 현실적인 결말이 있었다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모든게 다 좋아지도록 마법처럼 끝맺음이 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전남편 짐이 에이바의 변화를 인지하고- 또 바람핀 *들이 그러하듯, 문득 뒤돌아 본 지나온 자리가 멀리서 보니 또 아름다웠음을 깨달은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는 부분이었다. 이미 에이바는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없다"고 짐에게 말해줄 수 있을만큼 극복했다는 점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가 가면서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에이바를 쳐다봤다. 에이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래전 에이바가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함께 긴 밤을 보내고 나서 헤어질 때 지었던 그런 표정이었다. 아니, 그 후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멀리 가야 하는 바람에 하루 이상 떨어져 지내야 했을 때, 그 이별이 너무 심각하고 견딜 수 없게 느껴졌을 대. 아니면 아이들이 아직 어린 아기들이었을 때 그가 출근하며 단 일분도 아기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때 짓던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었다. 그런 표정은 그가 델리아 린드스트롬을 만나기, 아니지, 에이바가 생각을 수정했다, '다시' 만나기 시작하기 훨씬 전에 사라졌었다. -p.371 9장 9월 에이바"

 

 책속에서 또 다른 책들을 만나며 에이바는 천천히 변화하는데, 사실 다른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때문에 '내 인생 최고의 책'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에 대한 도움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책들은 에이바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작은 장치로 이용되었고 크게는 가상의 책 '클레에서 여기까지'를 극적으로등장시키기 위한 받침이 된다. 이는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더불어 많은 독서가들이 꿈꾸는 듯한 독서모임의 모습을 그려넣듯이 묘사했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다소 씁쓸했다. 에이바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요소들이, 어머니의, 남편의, 딸의 부적절한 관계들이라니. 그리고 그런 부적절함 속에서 에이바는 엄청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생의 죽음에서도 자신의 죄책감을 채 덜지 못했던 어린 소녀가 어머니의 자살-부재를 참아내야 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가정이 남편의 외도 인정과 이혼 요구로 손쓸 새도 없이 망가져야 했고, 그로 인해 딸은 상처받아 괴로워하며 약물에도 손을 댔다. 이들과 전생애적으로 얽힌 에이바가 자신의 중심을 세우려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녀를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이 '풍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준다. 어쩌면 그녀처럼 극복할 수 있고, 최악의 결말을 벗어나 다행히도 잃어버렸던 이들까지 제자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어찌되었든 재미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결말까지도 만족스러울수도 있을 것이니 가을을 맞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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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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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일자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아내가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지만 그렇게 계속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짐짝 같은 테루오, 무능력한 테루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빨갛게 달군 쇠처럼 내게 와닿았다. 부끄러워서 외출도 하지 않았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내 자신이 두려웠다. 형편없는 놈 아닌가? 내 나이 이제 서른 살이다. 숨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p.227 19 테로오의 고백, 2년 만에 귀가"

 

 많은 젊은 세대들이 특히나 이 부분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세대에 한정짓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에 대입하던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실패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돌아오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공감을 살 것이다. '증발자'의 사정을 다 이해하기 어렵고, 다른 체계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 이 차이를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 판단하려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바로 저 단락을 읽으며 약간이나마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증발'은 다름을 이해하지만 인정하기에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회의 또 하나의 이면을 생생한 시선으로 가리킨 책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나쳤던 주위의 인물들로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뉴스와 통계를 보며 실종자와 자살자에 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전까지는 증발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했다. '인간증발'은 자신의 존재를 생활 모든 기반에서 마치 소멸된 것처럼 없애버린 "사라진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낯선 사회 현상과 직면하기 위해 잡은 '인간증발'안에서 오히려 현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10만명의 일본인들과 그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일본 사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공감이자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사라질 한국인들을 향하여' 권하는 조심스러운 경고였다.

 

 "알 수 없는 규칙, 격식, 장벽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일본 사회에서 어두운 부분들을 조사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일본에서는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면 배척을 받는 것 같다. 통역을 구하는 간단한 일도 신경 쓸 일이 많다. 처음 이메일을 교환할 때는 대부분 분위기가 좋다. 통역 비용, 통역 가능 시간, 업무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렇다. 그러다가 '인간증발'이라는 주제를 꺼내면 어김없이 모든 것이 멈춘다. 많은 일본이 통역사들이 장례식 같은 피치 못할 사정을 내세우며 거절한다. 드물지만 솔직하게 할 수 없는 사정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와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 주변에 이 불편한 문제를 질문해야 하는 곤란함 때문이다. -p.101 9 지옥의 캠프"

 

 인간이 증발한다. 매년 스스로 자신을 감추고 사라져가는 10만명의 일본인들에 대해 왜 프랑스인 저자가 주목하여 글을 썼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먼저 의아했다. 그리고 어쩌면 일본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됐다. 문득 윗세대에게 특히 '진리'처럼 통용되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약 10년 정도 앞선 사회문화현상을 보인다는 썰이 떠올랐으므로. 같은 동양 문화권이기 때문에 특히 유사성을 보이는 면도 있겠지만, 저탄생, 고령화 같은 사회문제들이 그러하듯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진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 또한 유사한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증발'은 생각 이상으로 집요했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는 이 르포르타주는 한 존재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넓고도 깊게 따라붙어 보여준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막연히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전'시킨 사람들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 노숙인으로 산다던지, 자신의 생활 기반을 전부 버리고 연락 두절한 채 무연고의 지역에 흘러들어간다던지 하는 자체적 증발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간증발'안에는 자살자, 귀농인, 히키고모리, 가출자, 납북자, 실종자 등등 여러 이유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라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증발 문제는 터부시되고 있지만 연간 자살자 수 3만 3,000명, 즉 매일 집계되는 자살자 수가 90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이라면 새어나가지 않는다. 새어나가는 것은 수도꼭지나 하는 일이다." 재즈 연주자이자 작가였던 보리스 비앙이 했던 농담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보리스 비앙의 철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라진다. -p.128 11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 "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증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던 것에는 자신의 내면에도 관계라는 사회망 안에서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고립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최근의 관심사가 미니멀 라이프와 연관되어 삶을 더욱 단순화하는 것에 있는데, 그 중 한가지 압박이 인간관계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증발'에서도 불현듯 느껴지는 타인과 관계의 무게를 자각한 순간 모든 것을 놓아두고 사라져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아마 이 제목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을 연상했는지에 따라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불안-욕망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판단에는 객관적인 사실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관점도 포함되니까.

 

 관심을 가지기엔 내용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번쯤 읽어두면 좋을 내용이다. 사회 현상과 인터뷰, 사진 등의 구성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부담스럽지 않고, 읽기 편한 글로 쓰여졌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고령화, 고독사와 같은 문제들이 일본의 신간에서 우리의 사회문제로 다가온 것이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간증발'에 대해서도 미리 읽어둔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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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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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고타로의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를 통해 처음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만났다. 일본 작가들에게 붙여지는 '**월드'라는 수식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정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구축되어야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카 고타로 역시 월드라는 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소개가 꽤 흥미로웠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는 중세의 마녀사냥,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업의 구조조정, 거짓말 탐지기 등등 여러 군데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설정이 남다르다. 거기다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이 내용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연막 작용을 한 탓에, 책을 집어들면 겉보기와는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

 

 가장 큰 바탕은 안전지구로 선정된 지역의 평화경찰에 의해 적발된 반사회적 인물들이 처벌당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초반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세의 마녀사냥을 끌어들여 설명된다. 세상의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야기하는 전체의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무작위의 특정인을 지목하여 마녀로 몰고, 절대 입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마녀의 자백을 받기 위해 집행자들은 고문을 하고, 마녀는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여 처형 당하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거나 아니면 끝내 버티다 고문을 당해 죽는다는 선택지밖에 없다. 구조조정과 소설 속 '안전지구'라는 제도는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비슷한 면모를 가졌다.

 

 '지역안전을 지키는 과'와 평화경찰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해당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아우르며 시민들이 스스로를 더욱 자제하고 억압하도록 만들고, 타인을 감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사실 이런 자경활동 혹은 집단의 의심은 어느 시대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던 부조리일 것이다. 특히나 일본 작가를 통해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가혹 행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음을 문득 떠올렸을때, 단지 표현된 문장이 주는 그 이상의 이유있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중간에 헌법 9조의 전수방위에 대해 언급하며 무방비, 아름답고 허무함, 가엾음 같은 표현을 마주하면서부터는 더더욱.

 

 합리적 절차 없이 가학적 성향을 가진 평화경찰에게 주어진 이 기묘한 책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몸집을 불린다. 사람들은 타인의 공개 처형을 광장에서 즐기는 한 편, 고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고, 위험분자일지도 모르는 -어쨌든 돌아오지 못할- 주변인들이 맞이한 가정 방문의 현장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 안전지구에 등장한 진정한 불온세력/위험분자가 나타나며 이사카 고타로의 새 월드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기묘한 차림의 이 히어로는 불안한 세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독자에게 안도와 반가움을 주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한계점을 보여주며 떨치지 못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듯한 이 도발적인 작품은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그리고 토론할 수 있을만큼의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중간중간 독특한 맥락으로 던져지는 미카베의 곤충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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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정도 아닌 -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
이인수.이무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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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새롭게 1승을 올리는 퍼거슨의 명언을 깊게 새겨 소셜네트워크를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플랫폼은 여전히 잘 나간다. 뉴스에서도 빈번히 접하는 소식 중 하나가 SNS에서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위험한 도전을 하거나 자극적인 소재로 빈축을 사는 이들에관한 내용이다. 하루 중 아주 단순한 순간의 조각을 기록해두는 이 행위가 타인이 '좋아'하는 피드백을 만나면, 조각은 마치 이름난 예술작품처럼 변화된다. 수신자들은 열광하고 발신자는 '새로운 명예'를 얻는다. 타인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조각 자체와 조각과 나 사이에 이루어진 감상의 근간은 달라지지 않는데, 왜 제 3의 평가가 신경쓰이고 필요한 것일까. '누구의 인정도 아닌'을 통해 이에 숨겨진 심리와 내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다.

 

 저자는 인정중독의 기인이 개인의 내부가 아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 "가정, 학교, 직장, 종교,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사회적 압력"에서 온다고 한다. 이에 공감한 것이 최근 읽은 가족구성원-특히 자녀-의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에 대한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이기 때문에, 남들은 해주지 못하는 충고라서, 던지는 외모에 대한 지적이 상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어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글 밑으로는 깊은 공감을 한 수많은 경험들이 달려있었다. 그 글을 통해 가까운 사이라서 혹은 도움을 주는 충고라 생각하고 하는 말이 불러오는 상처와 자존감의 상실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있어 '누구의 인정도 아닌'에서 제시한 관점을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압박해가며 타인에게 순응하는 인물상들에 대해 중심적으로 다룬다. 상대방이 자신을 떠날까봐 잘해주려 하거나, 실수하여 실망시킬까봐 더 완벽해지려고 하거나, 희생하고 포기해서 양보하기만 하려고 하거나, 미움이나 불화를 피하기 위해 화내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한없이 착해서 답답하기까지한 이들의 깊은 내면과 불안을 안타깝게 읽다가, 또다른 양태의 인정중독자를 떠올렸다. 이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 책정받기 위해 온갖 진상과 추태, 패악을 부림으로써 만족하는 인정중독자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서비스업계의 블랙리스트에 그 흔적을 깊고도 진하게 남긴다. '고객은 왕', '내가 누군지 알아?', '돈을 냈는데 왜 안돼?', '윗사람 나오라고 해' 등등의 고함으로 자신은 대우받고 있고, 대우 받아야 함을 확인하는 종족들이다. 특히나 이들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타인의 내면을 갉아먹는 행동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여기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었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읽으면서 인정중독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자기검열을 해보다가 인정욕구에 해당하는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컨대, "하나 씨는 좋은 사람이야", "하나 씨는 매력적이야". "하나 씨는 유능해"와 같은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하나 씨는 '인정중독'이다. -p.21 인정에 중독된 사람들" 에서 열거된 것처럼 다양한 욕망들이 인정욕구에 포함된다면,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 중 넓은 의미에서 이것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약간의 과정을 섞은 SNS를 하고, 타인에게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는 우리들 역시 인정중독자인 것일까? 인정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모든 욕구를 거세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당신이 타인의 인정으로 인해 만족/우울/불안을 느끼고, 목적화하여 행동한다면 그것은 중독의 양상을 띄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재미 혹은 우월감, 사회친교적인 배려, 체면을 고려한 행동이라면 안심하라. 당신은 괜찮은 사회인으로 잘 헤쳐나가고 있다. 그것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다들 내색하지 않는 고민과 괴로움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자신을 포함 주위에 지나치게 SNS에 빠져 있거나, 늘 거절을 못해서 돈을 꿔주고도 받지 못하거나, 마음에 드는 바지 한 장 질러보지 못해서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줄만 하다.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해도 공감을 통한 위로와 약간의 개선의지를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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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비밀 높새바람 41
윤숙희 지음, 김미경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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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웅녀가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 아니?"

갑작스런 반야의 질문에 선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알지.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며 햇빛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지냈는데, 호랑이는 못 참고 동굴을 뛰쳐나가고 곰만 사람이 되었잖아. 사람이 된 곰이 바로 웅녀고."

"맞아. 근데 난 가끔 궁금해. 웅녀는 사람이 되어서 행복했을까? 사람이 되기 전에 함께 지냈던 곰 가족이랑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았을까?" - p70 단군사당 "

 

 '반야의 비밀'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동화다. 서울에서 잠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지리산 마을로 오게 된 선재의 입버릇은 "얼른 서울로 가고 싶다!" 이다. 낯선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재가 할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을 오르다 비탈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 선재는 불현듯 나타난 낯선 여자아이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선재는 자신을 도와주고 사라져버린 여자아이에게서 묘한 여운을 느낀다. 부모님의 출장이 길어져 선재는 지리산에서 잠깐 산골 학교를 다니게 된다. 전교생이 30명 밖에 되지 않던 작은 학교에서 선재는 자신을 구해준 '반야'라는 여자아이를 다시 만난다. 반야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선재는 말을 건넬 기회를 잡기위해 반야를 유심히 지켜보다 조금씩 미스터리어스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데...

 

 의문스러운 구석이 매우 많은 지리산 소녀 반야, 지리산에 던져진 도시 소년 선재. '반야의 비밀'은 두 아이가 점차 가까워지며 쌓아가는 풋풋한 우정과 지리산에 숨겨진 비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까지 독자에게 선사해준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한 편의 이 예쁜 동화는 우리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에 있는 웅녀 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 독특한 설정이 주는 몰입감만큼이나 짜임도 탄탄해 동화의 끝의 끝까지 어떤 결말을 선사해줄 것인지 궁금함을 갖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한없이 자연에 가까운 반야를 통해 선재 뿐 아니라 독자들도 지리산과 지리산의 풀, 열매, 계절에 한층 가깝게 다가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돈으로도 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친구를 사귀길 바란다.'는 아빠의 문자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도시와 산촌에 대한 대조적인 설정, 전형적인 인물상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 다소 빠른 전개로 인물간의 연결고리가 탄탄해질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사춘기가 금방 온다는 요즘 초등학생, 열두살 나이의 아이들의 난이도 높은 교우관계를 고려한다면, 한두개의 사건을 더 넣어 선재와 반야가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넉넉히 보여줬다면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반야의 비밀'을 읽으며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순수함이 묻어나는 자연 그대로의 소녀 반야의 안내를 받으며 지리산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곳곳에 놓여진 단군신화의 흔적을 살피며 신비로운 전설의 일부분이 잘 녹아든 미스터리 물을 즐기게 되는데, 모처럼 아련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동화를 만나게 된 듯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고,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볼수도 있을 것 같다. 선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안겨주는 인물이었는데, 선재가 좀 더 용기있는 소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며 독서를 마무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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