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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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드폰에도 당근 어플이 깔려있다. 당근을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는데 워낙 이름난 악명에, '그것 조금 아끼자고 중고로 산다고?'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만나기 때문에 당근 어플을 종종 이용한다는 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쓴다. '당근이세요?'의 제목을 보고 내용이 정말 궁금했다. 소설집이니까 당근거래를 매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 기대했는데, 그럼 틀림없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깊은 '문제'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딸꾹질은 묘했다. 아홉살의 지완은 아무리 '엄마 뱃속에서의 태교부터 시작해 몬테소리, 프뢰벨을 거치며 샛별유치원과 지금의 성실초등학교 입학까지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10)'을 거쳐왔다 해도 너무 성숙해보였다. 이것도 아이가 아이다워야 한다는 편견일까. 하지만 자꾸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지완이 충동적으로 캔을 따는 상황도 묘했다. 축구도 지완에게도 이변이 일어나는 순간이어서 그랬나? 사실 트럭을 탄 지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가 더 궁금했는데 갑자기 끊겨 아쉬웠다. 이 이변은 지완이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까, 아이처럼 보이게할까. 

" 보라가 먼저 노래책을 집어 들고 선곡을 한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다. "전국노래자랑 분위기로 가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뜬 나영이의 반문에 보라가 대꾸한다. "우리 엄마 십팔번이야." p77" 갑자기 튀어나온 제목에 놀랐는데 이어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제목이 이어진다. 부모님의 십팔번을 부른단다. 아, 슬프다. 이거 다 아는 곡들이구만. 보라의 아픈 마음처럼 내 마음도 아프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누구보다 자식 교육에 관심이 큰 보라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스물다섯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는 것, 알콜중독이던 아빠는 결국 간암으로 시집온지 10년도 안돼 죽고 혼자 보라를 키워왔다는 것이 한동안 마음에 걸려 남는다. 

"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아주버님 생일날 면회 다녀오시고 며칠 뒤에 있었던 일이었나 봐요. 광주에 투입된 게......' 엄마도 한 번씩 나름의 짐작으로 옛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큰아빠 군 생활 관련 얘기는 짐작과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당사자인 큰아빠가 그 일에 관해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 아니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이건만 정작 큰아빠는 지금껏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p102" 지완이의 이야기에 등장한 근대사의 각종 날짜들을 보며 어느 정도 짐작했는데, '오월의 생일 케이크'에서는 더 깊은 상흔을 드러낸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큰아빠가 등장한다. 지완은 심부름으로 할머니댁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데, 그런 지완의 혼란스러움과 큰아빠의 이야기가 세대를 잇는 이해를 그려낸다. 

네 이야기 모두가 하나씩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개를 보내다'는 읽으면서 특히 피로감을 느꼈다. 가장 일반적이고, 문제의식조차 희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이다. 진서의 생일날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강아지 진주는 유기견 출신이다. 가족의 동의 없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진서의 생일 선물이 된 진주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다른 이야기들은 중간에 갑자기 끊긴듯한 마무리로 궁금함을 자아냈는데 진서의 이야기만은 마지막까지 마무리 지어진 채로 끝나 그 점만은 개운했다. 그 안에서 진서가 많이 성장했음도 느껴졌다. 기대와는 다른 색의 내용을 만나게 됐지만, 아이들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들은 더 핍진성있게 설정되었다면 좋았으리란 아쉬움도 주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어지는 독후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주제를 던진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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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공부 - 최재천과 함께하는 어린이 성장 동화
함주해 그림, 박현숙 글, 최재천.안희경 원작 / 김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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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저 나쁜 놈."p4" 서문의 시작부터 엄청 웃었다. '열심히 키워놨더니 저 혼자 알아서 큰 줄 안다'고 종종 말하는 엄마가 떠올랐다. 아마 때때로 이제 좀 컸다고 잔소리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사사건건 논리 싸움을" 걸어대는 나에게도 부모님은 욱하셨겠지 짐작한다. 얼핏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지 말고 힘을 내서 부모님을 설득하라고 북돋는다. 하고 싶은 공부에는 무조건적인 반항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지를 굳히고 나아가라는 나침반이 들어가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성장 동화여서 깨끗하고 순수한 인물들이 등장해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정우와 건이, 소리가 세트처럼 붙어다니게 된 계기와 미묘한 친구사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선 저절로 잇몸이 드러난다. "'소리는 나와 건이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할까?' 요즘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다. p16" 소리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아줌마는 이런거 좋아해... 이 삼각관계는 두 친구의 경쟁심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며 서로가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 안에서 세 친구 사이의 균형을 위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비밀로 놓아두는 소리의 성숙함도 좋았다. 

동화나 청소년 도서를 읽을 때면 항상 느끼지만 매번 배울점이 있고 감명을 받는 점도 있다. 대상이 어린아이여서 쉽게 말할 뿐 그 안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어보고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순간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것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실패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것 같은 걱정에서 가장 나쁜 것은 실수나 실패보다 걱정하느라 괴로워하는 마음인 것, 도전하면 성공하거나 실패해도 모두 경험이라는 바탕이 되니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도전할 것. 아이들이 봤을때는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 아, 저번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거든.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너, 조금 비만이지? 나는 소장님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며 아랫배를 집어넣었다. 공부를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지? 그래야 오늘처럼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닐 수 있으니까.p107"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건강, 자기관리 역시 중요한 문제이지. 어른도 하고 싶은 공부, 가고 싶은 장소, 살고 싶은 삶을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심지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이 등장하며 이렇게 또 배운다. 

읽던 책을 끝내고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비교적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깊이 있게 읽었다. 끝에 가서는 마음이 미묘해졌는데, 방황하는 수우도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저자는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학부모를 함께 초청하곤 한다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깨닫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열매를 깰 용기를, 어른에게는 마땅히 아이들이 깼어야 할 열매를 귀애한다는 마음에 대신 깨려고 했던 게 아닐지, 자기 몫의 열매가 무엇일지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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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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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른p5'다며 걱정했지만, 고종 황제가 즐겨 먹은 간식이라는 컨셉으로 카페들이 종종 있을만큼 생각보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넘어와 향유되었음은 잘 알려져 어색하지 않다. 책에서 다루는 디저트들은 지금도 즐겨먹는 것들이라 각 장에 맞는 간식을 준비해두고 책을 함께 읽어나가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 두 소설을 고려하면 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음도 알 수 있다. 지금 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시면 커피 맛을 모른다고 눈치를 주겠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세련된 입맛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정제당이 생산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p19"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아메리카노는 소화제이자 뒷맛없는 간식이고 다음날 쓸 체력을 미리 끌어다 쓸 수 있는 현대인의 필수품인데, 거기에 단맛을 넣으면 먹은 것을 싸악 내려주지도 못하고 들쩍지근한 뒷맛이 남으며 쌉싸름히 퍼지는 각성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라떼는 달아도 된다. 재밌는 점은 앵무새설탕이니 머스코바도니 하는 설탕들이 요즘도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는 기호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p54"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바로 저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판다'는 것이 한동안 커피업계의 핵심으로 작용했다. 커피 맛이 일정 수준 이상 보편화되고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기준은 가게의 분위기와 편의성에 더 중점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맛있는 커피를 파는'에도 관심이 나뉘어졌는데, 에스프레소 바는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등장했다가 유행을 타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이상과 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센비키야라는 가게가 지금도 도쿄 긴자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116)된 것을 보니 가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도 센비키야의 메론이 먹고싶다 할 정도의 상징성이 느껴질까. 메론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참외로까지 이어지는데, 한국산 참외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80퍼센트 이상이 일본에서 수입한 개량종 긴센 마쿠와우리를 은천참외라는 이름으로 생산, 개량해나간 것이었다는 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127) 긴센 마쿠와우리가 은천참외가 되었다가 차매라는 이름으로, 코리안멜론으로 다시 외국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을 보면 싫든좋든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요즘 이 메론과 비슷한 위치의 과일이라면 망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간식으로 소개된 만주와 호떡은 묘한 대비를 보인다. 둘다 당시 5전하는 값싼 간식거리인데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만주는 고학생들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는 것, 호떡은 중국인들이 비위생적으로 만들어 좋지 않은 간식거리란 인식이다. 위생이야 지금까지도 유명한 이문설렁탕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서민들 간식거리가 다 비슷했을 텐데, 호떡의 이미지가 유달리 안좋은 것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인상을 부정적으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영향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호떡이 더 잘 팔렸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호떡이 더 친숙하고 좋은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나보다.  

 라무네는 병이 특이해 처음 마셔보기 전까지는 꽤 궁금해했던 것 같은데 막상 마셨을 때는 개봉하기 묘하게 불편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인상이 남지 았았었다. 사이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초콜릿에 대해서는 연인들의 디저트라는 이미지에 대해 재밌게 읽었지만, 하필이면 일본과 이야기가 얽혀 있어 모 기업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우리나라의 제품만 적은 양, 저품질의 성분을 사용하고 그 이유로 '한국인의 입맛엔 저렴한 식물성 유지가 더 잘 어울린다'는 답을 내놓았던 사건만 떠올라 씁쓸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계절 디저트들 고구마와 빙수의 소개는 무난히 읽었다. 일본식 빙수에 대한 인상은 사이다에게 자리를 빼앗긴 라무네와 비슷한데 간 얼음에 시럽을 뿌려 색은 예쁘지만 다양한 토핑의 빙수들에 익숙해진 입맛에는 실망스러운 맛이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디저트들이 아직까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친숙하면서도 새롭게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점점 옛 한글 표기법들도 눈에 익숙해지고 요즘의 디저트 문화와 비교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자료를 찾아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음이 느껴진다. 일부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실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역사박물관이나 군산, 인천 등의 관광지 방문을 즐겨하는 취향의 독자라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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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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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을 읽는 과정은 처음 자유론의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읽기에 익숙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읽어왔지만 읽기만 해도 괜찮았던 여타의 독서들과는 다르게 이해의 과정이 필요했다. 읽으면서 남들 다 자유론 찾아 읽는 대학시절에 뭐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때 안 읽어보고 이제와 초면인 책을 공부하듯 읽어내야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읽는 행위가 이해의 과정으로 소화되지 못하겠다 싶을 때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세번 읽어볼 작정이었으나 한번 읽고나니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은 시점이 지나고 난 뒤였다. 사실 읽으면서 인상깊은 부분을 따로 옮겨적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는데, 책의 대부분을 옮겨적은 것이 아닌가 싶게 많은 분량이었다. 초반에 읽으면서 옮겨적었던 부분들은 사실 그렇게 많은 부분을 기록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지 않아 다시 봤을때 딱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면 서평 내용에서 제외했다. 

자유론을 읽기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언론과 대중의 행태였다. 마침 '들어가는 말'에서 " 하지만 이제 누군가는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에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유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p8"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의문이 가졌던 부분을 짚어주었기에 매력을 느꼈다. 대중의 심판이라는 도마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언행과 삶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일부의 정보만을 가진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가 드러나 상황이 반전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 공중은 비난받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편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선호만을 고려하며 가장 냉담하게 판단을 내리곤 한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어떤 행위를 자신에 대한 피해로 여기고, 이를 자기감정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며 분개한다. p166" 타인의 상황이나 사건의 진실같은 것은 중요치 않고 순간에 끼친 감정과 기분이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간이 된다. 

더불어 자유를 혐오와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 지점이 있는데, " 어떤 것이 행동 규범이 되어야 하는가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장 분명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어떤 두 시대도, 그리고 어떤 두 나라도 같은 결론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 특정 시대, 특정 국가에서 내린 결론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선 놀라운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대나 특정 국가의 인민은 이를 두고 마치 인류가 원래부터 합의해왔던 주제인 양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성취한 규범을 자명하며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여긴다. p26" 부분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였다. 솔직하자면 트렌스젠더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와 같은 입장이 우파 포퓰리즘과 폭력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차별주의와 함께 언급되어 p255 마음이 쓰였다. 이는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와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 젠더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시대로 해석될지 궁금해졌다.  

밀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이 '낮은 계층을 끌어올리고 높은 계층을 끌어내리(p143)'는 교육의 확장과 통신 수단의 발전이 개별성을 위협하고 동질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 모든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방식이나 소수의 방식에 따라 구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이 있다면, 그의 삶을 설계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양과 같지 않다. 심지어 양조차도 서로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게 제작된 것이 아니거나, 창고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지 않은 한, 몸에 꼭 맞는 코트나 신발을 얻을 수 없다. p134"
" 정부가 모든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교육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 일반적인 국가 교육은 사람들을 틀에 넣어 서로 똑같이 찍어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에 불과하다. p206" 등의 내용은 요즘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과거보다 의무 교육 기간이 더 늘어났으며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교육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복지로 여겨진다. 코로나를 겪으며 아주 기본적이라 여겨졌던 사회규범들이 제대로 학습, 훈련, 체득되지 않은 세대의 사례들을 보니 어느 정도 비슷한 기초 교육을 통한 지식과 교양이 '서로 똑같이 찍어내는 과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하나 지금의 관점으로 논쟁적이라 여긴 부분은 " 이와 관련해 우리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단순히 신체를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정신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할 합당한 전망 없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불행한 자녀와 사회에 대한 도덕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p205" 는 내용이다. '가난하면 아이를 낳지말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런 생각은 꽤 확고하여 "생명을 낳는 행위 자체는 인간 삶에서 책임이 가장 큰 행위 중 하나다. 이러한 책임을 맡아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생명을 낳으면서, 그 생명에게 최소한의 바람직한 삶을 누릴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이는 그 생명에 대한 범죄다. 더하여, 인구 과잉이거나 과잉 위협에 처한 국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행위는,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심각한 범죄다. p210" 뒤이어 다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인구절벽 위기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범죄가 되는가? 인구의 과잉이 아닌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는 사회를 밀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앞서 말했던 '특정 시대의 규범을 자명하고 정당하게 여기는 것p26'을 연상시킨다. 

슬프게도 밀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다수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면이 있는데, "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다. (비록 반대할 수 없는 문구는 아니지만) 저급함이나 취향의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중략.. 비록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행동이 그를 어리석거나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개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판단하고 느끼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그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사전에 경고해주는 일은 그를 도와주는 일이다. p153" 현세태를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히 순진한 생각으로 보인다.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무식논란 등에 빗대어 봤을때 요즘 나타나는 양상은 부끄러움이 없다. 도리어 남의 성과/앎을 경멸하고 경고하는 행위들이 대다수에게 일어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뒤로하고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기 보다, 잘난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말을 쓰는지 행위자를 비난한다. 밀도 이런 흐름에서라면 화살을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결이지만 개별성에 대한 내용 중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자기 유형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다른 유형의 우월성에 주목하거나,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하여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끌어내는 첫 번째 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p140"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제법무아가 떠올랐다. 이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자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불교의 용어이지만, 그 '조건' 너와 나의 다름 즉 개별성이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비슷하게 여겨졌다. 앞서 꼽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을 동서양에 공통된 철학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읽는 동시에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생했다. 읽고 난 뒤에 주의깊게 생각하고 앞뒤문장을 살펴 이해의 과정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지적 능력 문제인지 주의력 결핍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혹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 분은 말씀주세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세번 읽었더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가도 더 나은 서평을 쓰는 행위로 이어질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구분짓길래 (인간 대다수는 지적 능력이 중간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성향 역시 중간 수준이다. 그들은 비범한 일을 할 정도로 강한 취향이나 바람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p136) 읽는 와중에 멈칫했는데 다 읽고 나서 재독하는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가지고 살펴봤던 '해제-21세기에 왜 <자유론>을 읽는가? p223'의 내용에서 바로 그는 천재였다는 단언을 보고 깨달았다. 밀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수 없고 그들에게서 느낀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였다. 물론 해제의 내용은 그동안 읽은 내용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였으나, 밀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오가는 회전문 같은 정리였다. 보름 정도를 꼬박 쓴 독서였는데 느슨하면서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휴식형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공산당선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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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사랑니 TURN 4
청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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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우 찾은 이직처였지만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진실로 그러했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했고, 월급은 크게 줄었다. 스트레스는 서로 간에 어찌나 끈끈한지 매번 손을 잡고 단체로 찾아왔다.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 좆같은 세상. 속으로 욕만 할 뿐 꾹 참으며 사는 탓에 좆같은 세상은 매일매일 좆같기만 했다. p43 " 

 처음, 책 두 권이 있었다. '플라스틱 세대'와 '낭만 사랑니' 뭔가 반대 느낌의 두 제목을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낭만은 뭔가 나랑 안 맞을 것 같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플라스틱 세대'부터 읽었다. 사랑니는 이미 다 발치하고 난 뒤라 없기도 했고. '플라스틱 세대'를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어서 '낭만 사랑니'를 읽으려니 영 집중이 안됐다. '플라스틱 세대'는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져서 순식간에 다음 전개로 나가게 만드는데 '낭만 사랑니'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염라와 나한이 나오고, 치위생사의 이름이 천직이면서도 불길하게도 이시린이고. 잠깐 보려다가 다 읽어버린 '플라스틱 세대'와는 다르게 '낭만 사랑니'는 읽어보려고 앉았다가 몇 번 딴짓하게 됐다. 결국에는 이렇게 감동하게 될 줄 모르고. 이 두 책이 동시에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더라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 " 이처럼 우주만물은 상호작용을 하며 인연을 쌓고, 서로를 느끼고, 공명하며, 아름다운 개성을 얻는다. p101"는 것 아닐까. 

 "못난 자들은 자기만큼 못난 자도 견딜 수 없기 마련이라 과장은 오만한 자를 보면 혐오감을 이기지 못해 구역질했고, 지금은 위기 상황이었다. p81 " 아, '낭만 사랑니'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린의 직장생활이 너무 안좋은 방향으로 진짜 같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면 뭔가 떠오른다. 넓지도 않은 한국 땅 어딘가는 두 번 다시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이 있는데 '거지같은 전직장 구역'이다. 밥만은 맨날 갈수있는 한 가장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먹어서 근처 맛집이 어디있는지 잘 꿰고 있지만 그 맛집 두 번 다신 안가도 괜찮을 그곳. 책을 읽다 문득 세상이 왜 이러냐며 성토하고 싶어지는데, 그럴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과거의 어딘가에서 밥벌이를 하다 겪은 일들을 줄줄이 펼쳐놓고 싶은 마음을 잘 갈무리한다. 시린의 일상과 주변인들이 너무 진짜 같아서 답답하고 피곤한데 공감도 됐다. 나와 다른사람 사이의 거리감이나 관계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며 읽었다. 서로에게 칼날같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 안에는 염려, 사랑, 불안, 관심, 슬픔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인물들에게서, 나는 걱정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로 도리어 남에게 생채기를 낸 일들은 없었던가 떠올렸다. 속마음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에는 사방이 암흑이라 본인이 꺼진 줄도 몰랐지만 환하게 타오르는 불을 목격하는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는 조바심이 들었다. '혹시 나만 꺼져 있는 걸까?'하고. 목구멍 언저리가 아릿했다. p35" 청소년소설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 안에 야무지게 공감과 갈등, 극복, 성장같은 것을 넣어놓은 점이 마음에 든다. '낭만 사랑니'는 그 못지 않은 의미들을 꾹꾹 눌러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흔들리는 어른들을 위한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다. 어릴땐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고민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면 속도가 신경쓰인다. 방향은 이미 돌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저마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남들이 가는만큼은 가고 있나 뒤쳐진 건 아닐까 불안해지고 만다. 나란했던 것 같은 사람들의 등만 보이는 것 같고, 내 등을 보고 있을거라 생각되는 사람들보다는 앞서있고 싶은 시기와 교만에 익숙해지는 것을 '어른이 됐다'고 핑계삼는다. 그러지말아야지.
 
 " 그녀는 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고민하며 살았다. 눈앞에 실체 없는 장막을 두고 사는 그녀에겐 앞으로 나아가는 일보다 제자리에 멈춰 있는 일이 편했다. 남들에게는 손끝으로 가벼이 밀어내는 문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부딪칠 엄두가 나지 않는 벽이었다. 시린은 콧잔등을 간질이는 강아지풀 같은 고민 하나로도 온 세상의 파멸을 상상했으니, 매사가 무서웠다. p133 " 주인공 시린의 나약함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망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실수가, 막힌 길이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황, 그 일의 과정이나 결과일뿐 나의 시간은 계속된다. 막상 상황 앞에서는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과정 속에서는 한 순간일뿐이고 내가 나아가고자 하면 나는 망하지도 끝나지도 않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한때는 몰랐다는 걸 곱씹으며 읽었다. 

 아쉬운 것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소개하려면 내용이 너무 많이 드러나게 될까 피해야한다. 처음에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던 시작을 나처럼 어렵게 여기거나 진부하거나 지루한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갈수록 관계와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었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특히 수보리와 나호라의 이야기에서 감동했다. 이 둘의 갈등은 이미 결말을 어느정도 예상했음에도 사건을 풀어내는 말들이 깊이있는 울림을 준다. 언젠가부터 책 선물도 취향이 타는 조심스러운 선택지가 되었지만, 이 감동을 전하고 싶어 친구에게도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벗이여. 그대를 보고 나는 내가 되고, 그대 또한 나를 보아서 그대가 된다네. p222" 읽고나면 떠오르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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