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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연말이기도 하고 곧 새해가 되니까, 전부터 집에 가득 쌓인 옷들의 대부분을 잘 입지 않게 되어서, 미니멀라이프 비우는 삶을 실천하고 싶어서, 청소와 정리가 힘들어서 갖가지 이유를 대고 아무렇게나 사서 입고 넣어두기를 반복했던 옷장 정리를 하려고 마음 먹었던 참이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은 마음만 비우면 간단하다. 이 옷을 언젠가 또 입을 일이 있을까 싶은 망설임이 가장 큰 어려움일뿐, 정리하겠다 마음 먹고 나면 복잡하게 분리하고 챙길 것 없이 꺼내들어 가까운 헌옷수거함에 넣어두면 끝이니까. 그 뒤의 일은 빈 옷장 구석의 묵은 먼지를 치우고 시간이 지나면 비우겠다던 다짐을 또 잊어버리고 입을 옷이 없다며 새 옷을 사서 채워넣는 일의 반복이다. 수거함으로 들어간 옷의 그 다음은 나의 관심사 밖이다.
밖이었다. '헌 옷 추적기'는 나, 내 옷장, 나의 소비에서 사회, 지구, 환경으로 관심을 옮겨가도록 만든다. 수거함에 넣어버리는 것으로 내가 외면했던 것, 은연 중에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떠넘긴 가책과 부채를 눈 앞으로 펼쳐낸다. 이 추운 계절에 차가운 것을 정수리부터 쏟아맞은 참담함이 들도록, 매서운 것에 정신이 내려쳐진 깨우침을 준다. 어떨 때엔 그만 읽고 싶었다. 세상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큰 흐름 안에서 내가 하는 얼마만큼의 노력같은건 그리 유의미한 저항이 되지 않을 거라는 핑계를 꺼내서 소중히 바라보았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레기를 뒤져 씹는 소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낯선 나라의 해변을 가득히 채운 옷더미들 사진을 보고, 헌 옷이 도착하는 나라의 이름에서 엿보이는 빈곤을 떠올리고 내가 그런 옳지 않은 소비에 무심히 가담한 가해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지만.
세상의 발전은 과잉과 해이를 낳는 동시에 단서도 남겨놓았다. 기술낙관주의에 대해 시기상조(75)라고 했지만 헌 옷이 어디로 가는가를 추적하기 위해 갤럭시의 위치 추적이 가능한 스마트태그(18)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획기적이었다. 이를 일일이 바느질로 부착해야 했던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양심이) '죽은 한국인의 옷'을 찾기 위한 추적기 설치와 의류 폐기 작업(26)"의 과정은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업사이클은 들어봤어도 *다운사이클링(94)은 처음 알게 된 스스로가 어이없게 여겨졌다. 헌 옷의 재가공을 위한 표백 작업(120)에서 노동자를 위한 보호 장구는 없다. 인도의 파니파트, 타이의 쓰레기 산을 보면 외국에서 난데없이 만나게 되는 한글이 적힌 옷이 주는 의외성이 더는 반가움이나 웃음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헌 옷 추적기'에서는 차라리 한국에서 태우는 게 친환경적일 것(168)이라며 폐기물 기반 에너지 회수방안이나 옷을 수출하는 행위로 인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방안을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의류수거함의 정체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한국의 추위를 대비하지 못했던 외국인 유학생이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한동안 화제가 되며 알려졌다. 결국 태우거나 버려지는 이 옷들도 그 값을 받고 외국으로 떠넘겨 버려지기 위한 경제의 논리 안에 있는 셈이다. 이 수거함을 통해 실제로 필요한 사람이 재활용을 하려고 하는 시도는 손해를 끼치는 행위인 것이다.
이 구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문득 솟구치는 의문이 있다. 이런 과잉을 야기하는 것은 결국 패션산업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색, 새로운 유행이라며 새 옷을 하고 금방 다시 버리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논리는 오직 돈이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만큼이나 이 과잉에 대해 책임이나 가책을 느끼고 있기는 할까. 그동안 환경에 대해 경고할 때마다 더 크고 근본적인 책임과 규제가 필요한 기업들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쓸려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향한 성토와 호소가 주를 이루었던 행태가 이제는 지겨울 지경이다. 생산을 줄이고, 환경에 대한 세금을 물리고, 파괴에 대한 복구를 실천하도록 규제해야 이 흐름이 더뎌지지 않을까. 기업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받고 팔아버리고 나면 결국 돈은 없이 뒷감당만이 남은 소비자가 성찰과 개선을 골몰하게 된다.
이런 불만에 대한 대응으로 중고의류 수거 정책을 내세운 기업들이 있지만 3부에서 나오듯 그들의 수거함도 결국 외국으로 이동해 그 경로가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그나마 눈치라도 봤다는 점에서 더 낫다고 쳐주는 것에서(193) 머리가 아파오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이내 수긍하고 만다. 삼성의 갤럭시의 위치추적 기능을 통해 헌 옷을 추적했지만 삼성물산의 '검은 그린워싱(215)'은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물론 삼성물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이 희소성같은 것을 이유로 잉여 제품을 폐기(234)해버리는 방법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어느 하나를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관행인 셈이다.
'헌 옷 추적기'를 읽는 것은 솔직히 즐겁지 않다.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서 눈치를 보며 읽게 된다. 표지를 몇 번 다시 보다보니 책이 아니라 분리수거장에 서있던 의류 수거함으로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 마음먹었던 옷장정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분명 옷장 정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구매하고 버리려고 했던 옷들을 줄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던 스스로를 지우기로 해본다. 다운사이클링 되고 있는지도 몰랐던 양심을 업사이클링 할 때도 되었다.
* 사용하지 않는 물걸을 원재료보다 낮은 품질의 물건으로 바꾸는 것
옷은 주로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 2016년 몽골인 유학생 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