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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 그래서 쉽게도 이 책을 읽어보겠노라고,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한 것처럼 그녀의 문장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우습지 않은가, 누가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서 그 사람도 알 법하다 여기겠는가. 그런데 매번 책을 고르는 일 만큼은 그렇게 사사로운 것들을 계기로 백에서 이백그램정도 할 법하다 여기는 하나의 종이 뭉치를 손에 쥔다.
그녀는 흥미로운 작가이고, 그녀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시각이 책장의 결 안에서 느껴질때면, 그 예리함에 몸 속 어느 부분을 관통 당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 나는 나 자신이 선천적인 권위를 타고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강한 인간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만 나는 교양 있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교양 있는 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여유에 넘쳤다. 그런데 뻔뻔스러운 인간을 만나기가 무섭게 내 그런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 87p ] 하는 구절에서 그동안 사람을 상대하며 말문이 막혔던 그 지독한 이기와 무례함의 감옥에서 - 왜 나는 피하지도 이겨낼 겨를도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깨달아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보다는 더 능숙하고 조리있게 그들의 요구에 응대할 수 있는 교묘한 말재간이나 타당한 이성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상식을 뛰어넘는 파괴적인 무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 무력함 - 사람들 삶의 한순간을 그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한 구절로 응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의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인간이란 자기 행동을 반복하는 존재다.> 시적인데.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걸."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한 번만 하고 말진 않아. 어떤 사람이 어느 날 한 행동은 그 사람의 본질에서 나온거야. 인간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살아가지. 자살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야. 살인자들은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연인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지." ] 강렬했던 부분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오히려 점차 4시부터 6시까지 반복되는 매일의 만남처럼 패턴화되어 눈에 붙어왔는데, 그 중에서 유독 이 대화가 눈에 도드라졌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본질에서 나온다라는 내용은 한편으로는 책의 그 어떤 부분보다 무서웠다. 이웃이 문을 열 때까지 환영받지 않는 방문객이 문을 두드린다거나, 그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이 나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서길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전부터 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는데, 나의 행동이 곧 나의 본질에서 떨어져 나온 증거물로 남는다는 것은 또다른 두려움이요 기대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집 안에서 이런 기묘한 방문자와 그보다 먼저 마주하였던 것만 같단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이 읽은 순서의 시점을 두고 그런 생각을 떠올려서야 안되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정말 독특하다 할 수 있는 주제를 두고 겹쳐지는 인상을 받으니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낯설어야 할 이 생경한 방문자와 이미 통성명을 나눈 사이였던 것 같은 사소한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긴가민가 하는 마음을 그러안고 쥘리에트와 에밀, 그리고 베르나르댕의 만남을 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