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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들은 좀 더 넓었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상처주는 것들을 이성애적인-동성애를 포함하여- 의미의 것으로만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읽기 전에 제목과 그 옆에 붙은 짧은 문구에 비추어 더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진짜 내가 관심과 마음을 주는 것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반사되어 온 것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전해준, 혹은 그들을 통해 바라본 관계 안에서의 상처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책 안의 내용은 오로지 나르시시즘에 빠진 남녀의 불행한 관계에 대한 것 뿐이었다. 소냐의 전 생애를 두고 정리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어떤 식으로 관계맺기에서 그 그늘을 뻗어오는지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공감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직 단 한 번, 내가 실제적으로 아는 사람이 데이트폭력의 피해자가 된 적 있었다. 뉴스나 이래저래 건너오는 말들로는 더 많이 다양한 피해를 들은 적 있지만 내가 진짜 아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그 사람이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관계에서 벗어나게 됐을 때는 이미 나와는 연락이 끊긴 뒤였기 때문에 공통의 지인에게서 그간의 일을 전해들었었다. 흔한 얘기였다. 과도한 흥분과 분노가 한번의 폭력으로 이어지고, 헤어질 결심을 하자 울며 반성하고 몇배는 더 잘해준다. 한번의 실수로 용서해주기로 하고 계속 만난다. 그 다음 다툼의 상황에서 또 폭력을 쓴다. 헤어지려하면 애원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관계를 이어간다. 그 다음, 다음 폭력은 더욱 커지고 책임을 전가하고 협박하고 지배하려 든다.
이보다 더 간결하거나 길게 설명하려 해도 결국은 이런 구조였다. 책속의 소냐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그때 미숙했던 나를 놀래켰던 것은 피해자가 매우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확고한 성향의 사람-으로 보였던-이었던 것이다. 발견되면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지뢰 중에 도박, 폭력, 바람이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 이는 정언명령과 다름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똑똑하고 강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번 자신을 때린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만났을까.는 의문이 머리속에 남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연락이 끊어진 이유도 그 관계 탓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상처입으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결국 큰 사건을 겪어야했던 과정이 책의 내용과 꽤 흡사했고, 그때의 그 사람을 이해해보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다. 진심을 가진 순수한 사람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인터넷 커플 매칭 사이트 같은데서 진실한 사랑을 할 상대를 구한다는 것부터 손절하게 된다. 잘못된 장소에서 심지어 기혼인 상태, 잘못된 상황의 사람이 어떤 정답-행복한 연애와 결혼이 반드시 정답일수는 없지만-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저런 곳에서 진실한 만남과 사랑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누군가를 만나든 지뢰밟을 확률은 분명히 있지만, 번화가에서 밟을 확률보다 지뢰밭에서 지뢰밟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당연한데도. 애초에 사랑, 연애, 결혼에 의탁하거나 갈망하거나 자신에게서 비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이 책이 전세계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의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사실이 암담했다. 관계에 실패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적어도 그만큼은 있다는 것이니. 인터넷 열심히 하는 어느 누군가의 현명한 말처럼 '안정이 필요하면 결혼말고 클래식을' 듣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과거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다면 심리/정신상담을 받고, 애정을 쏟고 받을 대상이 필요하면 덕질을 하거나 반려동물을 들이세요. 생각하기에 사랑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리스크도 크고, 무엇보다 나조차도 누군가의 제대로 된 상대가 되어주기 힘든데 똑같이 불안정한 타인에게 기대야 하는 부분도 있다. 실패 확률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거기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된다해도 결국 인간은 외롭다.
관계 안에서 고통받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상황을 일깨울 수 있는 예를 보여주고 직접적인 도움을 제시하는 내용은 좋지만 끝은 어쩐지 아쉽다. 책이 모두를 구할 수는 없지만 지뢰에 발을 얹은 사람이 다치지않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지뢰밭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도록 경고와 교육을 해야했다. 어떤 부분이 아쉬운가 생각해봤는데, 그가 여전히 그 지뢰밭 안에서 길을 헤매게 둔 느낌이었다. 지뢰밭에서는 몇걸음 지나지 않아 또다른 지뢰를 밟을텐데. 연인과의 연애중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면 혹은 주변인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찾게 되는 일이 없어야 더 좋겠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