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커다란 충격이다. 2003년 생이 지금 몇 살일까 짐작해보았다. 열댓살 되었으려나. 게다가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은 열 네살 때의 데뷔작이란다. 진짜 진심으로 너무나 어리다. 솔직한 마음으로 책을 두르고 있는 작가에 대한 찬사는 믿지 않았다. 뭐라고 쓰여 있냐면 "3년 연속 문학상 대상! 최연소 천재 작가의 경이로운 데뷔작 출간 즉시 10만 부 돌파 일본 아마존 베스트 셀러" 같은 말이다. 홍보하는 입장에서 달아놓은 문구이니 다 믿지 않았다. 어린 작가가 쓴 글이라니 순수한 맛이 있거나 좀 치기어린 성숙함이 보일려나 생각했었다. 타인을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분한 마음과 함께 의심이 들었다. 이런 재능이 일본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쉽고, 스타작가를 만들기 위한 모종의 비밀이 숨겨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읽으면서도 감탄했지만 넘치거나 모자른 것 없이 정말 잘 썼다. 책장을 덮은 순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와 감동이 있다. 동화적인 순수함도 어두운 현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잘 배합해 놓았는지, 이 어린 작가는 그저 타고났다는 수식어말고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이 괴물같은 상금 사냥꾼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다름아닌 돈 때문이라니, 돈이 필요하면 연기가 잘 된다던 윤여정 배우의 명언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하긴 동물원의 곰도 건빵 받아먹으려고 두발로 서고 손도 흔들고 뭣도 하고 다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은 돈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각광받을만한 뭔가를 해낸 적도 없으니 오히려 돈에 대한 말은 겸손이나 다름 없다. 재능과 능력있는 사람들이 유머까지 챙기려는 말인 것이지. 제목이 좀 뻔한 것이 아쉽지 안의 내용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부러워서 어쩔줄을 모르면서도 몇번이나 읽었을 거다. 지금은 부럽다는 마음을 갖지도 못하고 그저 여기저기 책 읽힐 곳을 찾아다닐 뿐이고.

 

 마치코와 하나미의 인물이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점만 빼면 대부분의 인물이 현실적이다. 읽으면서 동화같기도 하고 르포같기도 하다 생각했는데, 마치코와 하나미가 이 책 안에서 동화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모녀가정, 가난하지만 밝고 단란하며 건실하다. 상처도 있지만 긍정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들이 삶의 여러 순간을 마주하는 방식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더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보다 바르고 매력적이다. 특히 뭐든지 대충인 것 같은 엄마가 뱉어버리듯 말하는 인생의 명언들은 마음속에 새겨둘만하다. "남한테 받은 음식은 바로 먹으렴. 돌려달라는 소리를 하기 전에(p.44)" 같은 말은 인생의 실전이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뭔가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p.158)" 나 떨어진 음식을 주울 때 "그 유치원 앞에 떨어져 있다는 건 애를 데리러 온 학부모의 가방에서 떨어졌을 확률이 매우 높아. 그러니까 괜찮아.(p76)" 같은 말도 유용하다.

 

 같은면서도 다른 문화가 중간중간 눈에 띄는 점도 흥미로웠다. 눈부처라는 예전에 들은 적 있는 표현인 '마부타(p.64)'라는 말이 나오거나, '너무 싸서 오히려 무섭다(p.94)'는 표현은 나도 실제로 쓰기 때문에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은행을 자기 나이 이상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소리(p.186)'가 나왔던 편이다. 어릴 적에는 이 말이 참 아쉬웠는데, 지금은 마음껏 은행을 먹어도 괜찮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잠시 기뻤다가 다시금 슬퍼졌다. 대체 은행을 얼마나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인지. 차이를 느꼈던 부분은 떨어진 자판기 잔돈을 줍는 하나미에게 '거스름돈을 훔치다니(p.178)'하고 놀리는 아이들의 말이었다. 일본은 회사에서 핸드폰을 충전해도 전기를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긴다더니, 땅에 떨어진 동전 줍는 것도 훔치는 일로 보는구나 새삼스러웠다. 거기에 '후쿠시마에서 과일을 재배하는 친척(p.88)'이 나오는 부분은 원전 사고가 떠올라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먹어서 응원하자는 캠페인이 의식에 반영된 부분일까. 게키야스당의 물건들이 하나같이 싼 이유가 뭘까. 일본인 작가의 글이긴 하지만 유감스럽다.

 

 이런 살아있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들을 다시 작품안에서 살아있도록 만드는 일이 어린 작가에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하다. 이것도 편견이겠지만 특히나 감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재혼가정에서 크고 있는 딸이 몇년만에 찾아온 아빠를 만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어린아이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으고 싶어 자판기 잔돈을 매일같이 뒤져보는 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폐인처럼 자기 안에 틀어박힌 청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지는 삶에 집착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이 애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어리다고 세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또 이렇게 깊은 눈으로 글 안에 풀어낼 수 있는 통찰이 있기는 어렵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각자 자기만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린다. 남의 재능은 알겠는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나의 재능일 뿐.

 

 마지막이 신야의 이야기로 정리되는 점도 좋았다. 한없이 안타까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나름의 희망도 보이는 마무리였다. 갑자기 신야의 시선이 끼어들면서 좀 만화같은 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재밌는 만화들은 중간이나 끝에 외전으로 이런 전환을 주기도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점에서 다시 보면 또 디테일이 달라지는 맛이 있으니까. 이런 구성까지 다 생각하고 글을 쓴 작가라면 게키야스당의 사장처럼 "내 생각 이상으로 이 사람은 장사꾼이다.(p.143)".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지점을 잡을 줄 아는 장사꾼의 면모까지 갖춘 준비된 인재인 것이다. 제목만 보고 신파 내용일까 싶을 때도 있었는데, 혹시 다음 권은 안나올까 기대하게 되어 버렸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처럼 그 뒤의 이야기가 이어진대도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동화/만화적 감성을 좋아하는 어른까지 모두 읽어볼만하다.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이 몇쪽이나 줄줄이 실려있는데 그게 전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다 읽고나니 이해된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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