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어느새 나도 나이 들어가고 있고, 한창의 젊음보다 나이듦의 과정에 더 가깝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듦'. 인간으로서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그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의 소멸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기에 그 과정의 결과값이 떠올라 문득 걱정이 앞섰다. 우리의 삶이 지나온 과정들은 그동안 몸집이 더 커지고 기력이 세지고 이치에 밝아지는 미래만을 약속했다. 하지만 젊음의 절정이 지나고 나면 그것들을 서서히 잃게 되는 나의듦이 남는다. 이를테면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다 문득 한참을 느린 걸음으로 계단참에 서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의식하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는 이 계단이 쉬어갈만큼 힘들어질 시기가 인생의 언젠가 올 것이라는 묘하고 씁쓸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이듦을 두려워만 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아쉽다. 거기엔 내가 놓친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만났다. 

 

 책은 기대보다 좁았다.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서 흥미로웠다. 노년의 삶은 가을과 같아서 풍요롭게 무르익은 인생을 추수하는- 같은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좀 상투적인 내용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여성의 정년에 대한 주제가 불쑥 나온다. 여성의 정년이라니, 누가 그런 걸 걱정하지? 지금껏 여성의 일이라면 고용불평등, 임금격차, 유리천장, 출산휴가, 경력단절 같은 것이 문제였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뚫고 나서도 정년마저 걱정하게 된다니. 배신감이 드는 것도 잠시 실제로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50대의 직장 상사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자신이 맡은 업무를 해왔던 그녀지만 조직의 리더가 교체되자 업데이트 되는 업무 프로그램, 달라진 소통방식, 사내 분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은근히 소외되고 결국 노골적인 압박에 퇴사하였다. 무심했던, 잊고있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책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어떻게 입을 것인가,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게 되는 상황, 아줌마이지만 아줌마로 보이기 싫은 마음, 사랑과 결혼생활, 노후준비 같은 실제적인 삶을 집어낸다. 어느새 인터넷으로 옷을 구경할때면 티셔츠, 원피스 같은 키워드가 아닌 20대 30대 같은 연령별 키워드를 구분해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옷차림에 대한 부분도 내가 나도 모르게 사회적 체면이란 것을 의식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책의 기준에서 아직 젊은 축인 나도 이런데 더 나이든 여성들은 얼마나 더 염두에 두고 자신의 차림을 제한하고 있을까. 아마 조금만 기분을 내어 밝은 색감이거나 유행하는 아이템을 착용했을때 너무 젊게 입은 것 아니야? 나 그런건 젊은애들이나 하는거지 같는 말을 한마디쯤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적으로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 된다고들하지만 조금만 튀는 차림을 하면 시선을 모으는 사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압박을 준다.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수긍하게 되는 문제들도 있었지만 어느 부분은 왜 이런 내용까지 나올까 싶은 것도 있다. 문화차이 때문에 더 그런가 싶은데 연애에 대한 내용 대부분이 거부감 들었다. 유명 소설가가 늙은 남자가 어린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글(p.97)을 썼다는 내용을 끌어들여 여성도 나이 상관없이 연애를 꿈꿀 수 있다는 연관을 내리는 것은 의아스럽다. 책에 있는 자세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나이를 한계로 삼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겹고 제정신 아닌 내용이다. 뒤이어 젊은 남자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 정리해놓긴 했지만, 남성들이 꿈꾸기 때문에 여성도 욕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내용이 아니었다. 이런 불편함은 또 발견되는데 여자로서의 가치 등을 말하며 동창회 불륜이나 SNS만남 사이트 등을 언급하는 것도 이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글이기 때문에 실제로 상담받은 사례들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그런데 저자가 실제로 엘리트의 길을 걸었고 그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의 사례는 비교적 쉽게 말하지만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은 방어적으로 구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에 이성과 섹스만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p.131)"고 단언하는 문장 역시 갑자기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여성을 제한하는 시선 변화가 어색했다. 여성의 욕구와 욕망을 인정하는 입장을 강조하던 흐름에서 갑자기 돌출된 문장이라 더욱 그랬다. 그동안의 태도라면 여성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자신과 남자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미묘한 느낌을 주는 점이 있어 솔직히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있는가 짐작하게 만들었다.

 

 좋은 기회가 닿아 출간 전에 미리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라 한 권의 오롯한 책으로 다시 만났을때 계속해서 시선을 끌었었다. 가급적 솔직한 시선으로 책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책의 다양한 면을 가린 것은 아닌가 싶다. 책의 주제가 신선한 면이 좋았지만 불만족스럽거나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좀 이른 책이었을까, 더 나이들고 난 뒤에 그런 것들도 상쇄될만큼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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