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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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은 어피치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음 나오는 짧은 문장들이 한 단락이고 그 뒤로 줄글이 좀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지나도 안나오길래 한번 쭉 훑어봤더니 줄글이 없었다. 작가가 다르니까 구성도 다르구나 시리즈로 나오고 있지만 통일된 구성을 유지하는 건 아니었나보다. 독특했다. 생각해보니 어피치 책은 어피치같은 분위기가, 튜브는 또 튜브같은 분위기가 난다. 튜브라면 아마 긴 글은 안쓸거같다. "요즘 잘 지내니? 잘 지낼까 봐 묻는 거야.(p.13)" 여기서 이미 튜브의 향기가 난다. 까칠하고 삐딱하고 그런.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를 읽게 되면서 이번 작가가 하상욱이라는 걸 알고 좀 애매했다. 순간의 번뜩임이 있는 재치있는 작가라는 건 알지만, 요즘 이런 류의 책들에 따라붙는 차가운 시선이 의식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느끼기에 좀 가벼울 수도 있는 하상욱 작가의 글이 함께한다면 전에 '어피치' 책이 나왔을때 제목에 따라붙은 부정적 시선 못지 않은 쓴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됐었다. 확실히 내용이 가볍긴 하다. 내용이 가볍고, 글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슷한 분위기의 문장들이 25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나 이어져있다는 게 아쉬웠다.

 

 이 책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몇 개의 짧은 문장들이 주는 공감에 잠깐 즐거워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다 읽었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싶었다. 튜브 캐릭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나, 프로필 문구로 해두면 은근히 주변에 있는 진상을 저격할 수 있을만한 문구를 한두개 얻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남는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뭐 꼭 마음 속에 무언가를 남기기위해서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적이고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말들도 '들을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의 독자들은 짧은 문장들로 된 이 책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읽기도 편하고, 재밌고, 최대한 간결하게 남에게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운 말들을 솔직하게 담아냈으니. 카톡 안하고 페메 쓴다는 요즘애들이 아직도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름방학 때 읽을 책 목록에 넣어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요즘 청소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겠는게, 새삼 내가 멀리 지나왔구나 싶어진다. 잘 모르는 상대에게 추천이라니 이상하지만, 그때쯤 이런 삐딱함이 조금씩 마음에서 자라나니까 공감도 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이쯤에서 꺼내보는 문제는, 제이지 책은 언제 내줄 것인가.이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아픈 손가락 같은 제이지라 비인기멤의 행보가 신경쓰인다. 절대 강자 라이언부터 일본에서 더 잘나간다는 어피치에 이제 튜브까지 책이 나왔으니, 앞으로 더 나올 시리즈라면 '제이지 날 안좋아해도 괜찮아' 뭐 이런 제목으로라도 책을 내주길 바래본다. 솔직히 라이언같은 사람이 소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다 '우리는 모두 제이지였다'고 해도 될만하지 않나. 앞으롯의 시리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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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아르테 오리지널 23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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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로 갈수록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이 정말 재밌어질까 의문을 가지며 읽었다. 제법 두꺼운데 어느 정도 분량이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물에 뭐가 있다는건가 싶었다. 재밌게도 물에 뭔가 있다고 하면 상어를 떠올리지 않나 싶은데 바로 그 뭔가를 발견하기 직전에 상어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진짜 상어인가 싶어졌었다. 그리고 그 뒤에 상어같은건 뭐 별로 중요하지 않아졌다. 로또에 아직 당첨되지 못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원할만한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고 난 뒤로는 처음에 느꼈던 딱딱함과 끊어짐도 점점 호흡을 빠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그 전까지는 종종 문장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긴 것보다 나을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할까 골똘히 생각해봤다. 내가 답을 내기는 어려운 주제였지만 '썸씽 인 더 워터'를 읽고나니 좀 생각해보게 된다.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정의, 옳은 것을 좋아할까 아니면 주인공의 승리를 좋아할까. 에린의 행동들이 딱히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궁금해졌다. 에린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에린을 응원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에린이 한 행동이 어떻든 주인공이라 인식한 사람의 행동에 이입하고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 것일까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는 에린이 마음에 들었고, 그녀를 응원하며 책을 읽었다. 어쩌면 나쁜 것도 좋아하고, 주인공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정의와는 상관없이.

 

 솔직히 좀 얕잡아 본 것도 있다. 배우 출신의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뭐 얼마나 대단할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처음에는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었다. 두서없는 것 같은 짧은 문장들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전개될 때. 그런데 확실히 사건이 두각을 드러내고 난 뒤부터는 점점 재밌어졌다. 일반적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걸 아슬아슬하게 극복해가는 과정이 좀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꽤 멋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렇게까지는 머리가 안 돌아갈 것 같다. 씨씨티비 기록을 지우고 뭐 이런 일들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망했다 러시아 마피아라니 나는 죽었구나 하고 말 것이다.

 

 주변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나오는데 이리저리 얽혀서 끝까지 이어지는게 좋았다. 다만 카로의 등장이 뜸해진 건 아쉬웠다. 에린의 삶이 급격하게 변하게 된 것이 이유긴 하지만 처음 마크와 만나게 된 계기나 마크의 실직에 대해 상담할때도 중요하게 나올 것 같았던 매력적인 인물이어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에린과 같이 한숨돌리고, 문득 카로에 대한 언급이 후반부에 없었음이 떠올랐었다. 어쩌면 그게 에린이 이제 선을 넘어서 선 저편에 있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확실히 에디나 알렉사 같이 그녀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그녀의 주위에 더 가깝게 있게 됐으니.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은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할 줄 아는 유일한 수영, 그것도 간신히 떠 있는 수준일 뿐이지만 배영으로는 물 속에 있는 뭔가를 발견해 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쿠버 다이빙은 수영이랑 상관 없을지도 모르지만 뭘 좀 알아야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 아닌가. 최소한 전 주의 로또 당첨번호를 확인해서 이번주에 찍지 않는 성의 정도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번 여름 휴가지로 찾은 곳에서 의문의 가방을 발견했다면, 그런데 그 안에 엄청난 금액의 돈과 보석 등이 들어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썸씽 인 더 워터'를 읽고 휴가를 떠나는 기차, 차, 비행기 등 안에서 상상해본다면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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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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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다." 박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가 많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박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럼 이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은 준비가 됐고요?" 나는 박이 말한 준비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맞이할 준비란? 준비를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새 가족을 맞이한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니까. (p.91) "

 

 언제나 궁금한 문제인 것 같다. 부모가 될 입장에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부모도 어떤 자식을 기를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요즘의 과학기술로는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 안의 영혼, 내면까지도 바란대로의 아이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자식 역시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그나마 덜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다만 페인트의 '국가의 아이들'은 두번째 선택이 가능하다. NC센터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스스로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소설 속 세계관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은 부러워할까 혹은 거부감을 느낄까.

 

 진지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나는 불운하게 친부모가 바뀐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고 어딘가에 아주 부자인 내 친부모가 있을거라는 생각이나 농담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 워낙 흔하게 나오는 소재고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로 오빠라고 알고 자랐던 사람이 크고보니 송승헌이고 오빠 친구는 원빈이라는 로맨스까지 겯들여져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엄빠에게 '쟤는 누굴 닮아서 저래' 하고 혼날 때 '아휴 모피코트에 다이아반지 낀 내 부자 친엄마가 날 엄청 찾을텐데, 건물주 친아빠가 나만 찾으면 상속해주려고 발을 동동 구를텐데 진짜 아쉽다' 하고는 맞받아치기도 했다. 그럼 '당장 찾아나가라'고 더 혼나지만.

 

 이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이 소재의 영화가 있었다. 제목이 기억 안나서 한참 생각했는데 '마미마켓'이란 영화였다. 혁신적인 내용으로 예전에 아주 재밌고 강렬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참 잔인하게도 엄마가 마음에 안든다고 없애버리고? 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마법을 쓴다는 내용이다. 더 잔인하게도 다양한 스타일의 새엄마들이 선택을 바라며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는 모습이 그때는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괴한 느낌이다. 옛날 영화지만 신선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재밌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질만한 내용이니 구해서 볼 수 있다면 한번쯤 봐볼만 하다. 어쨌든 이 영화가 떠올라 간만에 추억에 잠기며 책을 읽었다. 결말도 말랑말랑하니 파격적 시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마미마켓' 출신이라 그런지 '페인트'도 재밌었다. 한시간 좀 넘겨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제노같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고, 노아처럼 돌아오는 아이는 더 많을 것 같다. 아키같은 아이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읽을수록 꼭 센터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할까 싶었다. 규율 안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보다 더 규칙적으로 자신을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아이들인데 보조금과 사후 관리가 들어가는 가정 안에서의 삶이 뭐 얼마나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어진다. 친자식도 사춘기를 지나보낼땐 너무 힘들어서 정떨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그 시기쯤의 아이와 그 많은 낯섦과 불편을 이겨낼만한 이유가 서로에게 있을까.

 

 문득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어쩌면 임신에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고 센터의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같다고 느껴졌다. 엄격한 면접 절차가, 특히나 아이들의 의사 결정이 최우선으로 단계가 진행되고 그 전달은 가드들을 통해서 부모 면접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그랬다. 아이를 원해서 갖기를 시도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기관이 존재하고 오로지 생명의 의지로 아이가 그들에게 찾아간다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많은 노력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하는 노력처럼 연상되고,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이겠지만, 문득 떠올랐다. 

 

 아이가 자라는데 있어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부모의 애정같은 것. 분명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가정에서는 필수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페인트'의 센터처럼 국가가 아이를 양육하고 관리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저출생 문제가 좀 더 천천한 속도로 심화될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출산이라는 문제가 여성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양육의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선택에 있어서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테니. 게다가 가정 환경의 문제에서도 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보편을 맞출 수 있겠다. 균등과 보편이 무조건 더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메울 수 없는 격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표지가 좀 애매하긴 한데, 고민없이 선택해서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독특한 설정도 앞으로 절대 없을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고, 소설 안의 낯선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았을 뿐더러 어렵지 않게 잘 담아내서 읽기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요즘 읽은 청소년 소설이 연달아 좋은 인상을 남긴 덕에 웬만한 소설보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게 더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외면말고 어른이라도 읽으세요. 읽으면서 아이의 고민, 부모가 되려는 어른의 고민이 모두 드러난 내용이라 생각된 부분을 아래에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지.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문제가 없을까? 나는 내 부모가 누군지 알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누구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느 거야. 내가 만약 우리 부모님 아래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내 기억은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시작하는데, 또렷하지는 않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그때 NC센터가 생각났어. 내가 청소년 시절에 너만 할 때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면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사실 나는 엄마한테서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 물론 나도 온갖 짜증과 심술로 엄마를 힘들게 했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보통일이 아닐 테고. 어쨌든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어."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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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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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에 괴로운 책이었다. 곳곳에 전쟁같은 육아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애가 계속 울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거나, 유축 시기를 놓쳐서 블라우스를 버리는 일,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이 오고, 남편과 소원해지고 갈등이 생긴다. 아이 발달이 너무 느리거나 빠르진 않나, 남들보다 못하고 있는 건 없는지, 육아서에 나온 대로 해야하는데 왜 안되는지 게다가 일자별로 오는 '오늘의 조언' 레터는 읽기에도 고역이다. 누가 저런 말투로 하는 조언을 기쁘고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출산 한달만에 완벽한 몸매 관리를 해서 나타난 유명인의 관리 비법 메뉴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게 가능해? 혹은 저게 필요해? 아니면 저게 정상이야? 같은.

 

 엄마란 대체 무엇일까.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뭘까. 아이를 낳으면서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프랜시, 콜레트, 넬, 위니, 스칼렛, 혹은 토큰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이 그들을 엄마가 되도록 쉽게 놓아두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 한 두 달쯤 지난 뒤에 엄마가 아이를 가족이나 혹은 육아도우미에게 맡기고 하루 저녁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외출-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요즘은 엄마에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바로 그 시간에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애 엄마는 어디서 뭘 했대?'하고 엄마의 쉬는 시간이 비난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인이 말했다. "애가 우는 바람에 밥 먹다가 그냥 나왔어/지하철에서 그냥 내렸어" 도시 여성 스릴러'라는 건 바로 그런 점 아닐까.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 말고 도시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스릴러인 것이다. 부른 배를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 하는 것,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는 일, 출산휴가와 복직을 보장받는 것, 공공장소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를 달래야 하는 일. 임신이 벼슬이냐는 시선과 맘충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안에서 마땅히 사회구성원이 될 아기를 낳아 키워야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하물며 뉴욕같은 곳에도 진짜 '맘모임'이 있다고?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었다. 게다가 일명 '조리원 동기'같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 위주로 만난다고 하니 '5월맘' 같은 좀 더 그럴싸한 명칭일 뿐 세상 돌아가는 건 다 비슷한가 보다. 입고 있는 옷, 아이를 태운 유모차같은 것을 비교하는 마음도 그랬다. 비교된다는 압박감에 벗어나고 싶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임신,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터놓고 나눌만한 곳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경험을 한 맘들뿐이라는 점도 공감됐다. 메신저 프로필에 아이 사진을 올려놓고 **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려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며 어색하게 웃던 지인이 떠올랐다.

 

 마이더스가 유괴된 사건도 끔찍하지만, 책 표지에 써있는 "아기를 낳았다고? 축하해! 이제 모든 게 네 잘못이 될 거야." 라는 문구가 더 끔찍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아이를 낳고 첫 외출이라며 커피숍에서 대신 아이를 안아서 달래 재워주는 나에게 '간만에 너무 편하고 좋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애한테 미안'하다고 했었다. 힘들었을텐데 잠깐 쉬면서 그새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빗낱이 조금 떨어지던 그 날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서 누가 '비오는데 애 데리고 저렇게 밖에 나오고 싶을까' 하고 생각하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비가 그쳐서 다행이라고 웃기도 했다.

 

 '퍼펙트 마더'가 도시 여성 스릴러로 꼽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다. 읽기에 피곤한 내용이었고, **맘이나 모임같은 문화에 지쳐있는 까닭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엄마로서의 압박보다는 유괴와 주변인물들의 비밀같은 요소에 더 중심을 잡아서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책도 그렇게 읽는게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책을 무겁게 읽은 탓에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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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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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송진'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렸던 생각은 정신질환은 유전되는가'였다. 아버지에서 이어져 오는 어떤 '낌새'는 환경적인 측면에 의해서 키워지는 것인지 역시 당뇨같은 병력처럼 DNA같은 것에 붙어서 새겨져 내려오는 것인지 생각했다. 정신병력이 유전된다는 말은 얼마나 위험한가. 송진은 한 가족의 네 세대에 걸친 이야기다. 홀데트 섬에 외따로 사는 호더 가문의 옌스는 조용한 아이었다. 그의 아버지 실라스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고 약간의 저장강박도 있었다. 실라스와 옌스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있었는데, 실라스가 관을 만들때면 그 안에 둘이 함께 들어가 누워 여러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딱히 나쁠 일 없는 어찌보면 부자간의 유대가 돈독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깊은 내면을 더 파고들어간 듯한 옌스에게는 딱히 좋은 영향을 주는 시간이 아니었던 듯하다. 실라스가 개미가 들어간 호박을 간직했던 것처럼 옌스도 그만의 호박을 만들게 됐다.

 

 누군가를 잃어버린다는 경험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옌스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자신 주변 사람들을 전부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냈다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딸 리우와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엘세를 죽이게 만들었다. 옌스는 형제는 모웬스와 여러모로 다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의 운명이 불행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옌스를 두고 '결국 미치게 될 거야' 라며 그런 운명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티비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이 떠올랐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FBI 수사관인데 그는 마음속 깊이 자신이 정신분열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에게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 불길한 '낌새'는 유전과 성장 환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대를 이어 이어지는 것일까.  

 

 최근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과학저널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한 13만 가족과 그 구성원인 48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질병간의 유전적 유사성이 환경적 상호관계보다 강하지만 신경정신 질환의 경우 비슷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살아남은 아이, 리우를 떠올렸다. 테디베어를 소중히 끌어안은 소녀의 안에 분명 옌스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홀데트 섬에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어둠만을 달리다 자란 소녀, 리우에게 정상적인-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 부분은 꽤 교묘했다. 리우가 태어나 자라온 환경을 깊숙히 보여주면서도 가끔씩 그 애의 안에 뭔가 다른 것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여지를 주었다. 다른 아이들과 대화해본 적 없는 어린 소녀, 죽은 쌍둥이 남동생과 대화하며 자란 소녀는 한편으로 할머니의 팬케이크를 기쁘게 먹는 소녀이고, 의문을 갖고 생각하며 행동할 줄 아는 소녀였다. 리우도 어둠을 가졌을까, 그 애는 옌스가 모든 것을 담아 키워낸 또 다른 호더 중 하나가 아닐까. 리우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계속해서 바뀐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부분이 다 불쌍한 영혼들이지만, 여기서 가장 나쁜 사람이 있다면 마리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호더 가문의 가장 유일하고 가냘팠던 희망의 존재는 그녀였으리라. 그녀를 사랑하게 됐을때만 해도 옌스의 삶에도 희망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옌스같은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방식 말고 다른 길도 생각했어야 했다. 그저 어린 리우에게 몰래 편지를 좀 쓰는 것 같은 불확실하고 소극적인 방법말고.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어린 아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마리아도 정도와 방향이 다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싶어진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살이 쪘다는 것은, 거기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테니까. 혹은 옌스의 외모는 둘째치더라도 섬에 들어와 그와 사랑에 빠진 일도 그녀 안에 어떤 '낌새'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존속살인같은 심각한 문제들도 있지만, 옌스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인 '저장강박증'은 좀 흔한 문제다.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나오지않는가. 그 특유의 나레이션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안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세상에 어르신, 지내시기는 괜찮으신 거예요?"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병적일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노인층에) 정도만 다를 뿐 흔한 저장강박을 가졌다. 쇼핑백이나 포장종이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것이나, 서랍안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오래된 물건들을 넣어 두는 것처럼, 누구나 조금쯤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호더 가문의 '낌새'로 저장강박을 묘사할 때마다 속으로 '덴마크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이 없나봐' 생각했다. 아마 벌써부터 방송국에서 홀데트 섬으로 찾아갔을텐데 말이다.

 

 "어둡고 악마적인 동시에 사랑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뇌리에 깊이 박히는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평에 혹해서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봤는데 어휴, 너무 더러워서 찾을 수가 없었다. 로엘이 호기심과 또 묘령의 소년을 위해 호더 가문이 살고 있는 그 집에서 버틴 것이- 이층까지 올라갈 결심을 한 것이 대단할 정도로 더럽고 역겨운 환경이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편해영 작가의 '사육장 쪽으로' 라는 책이 떠올랐다. '송진'이 흥미로웠다면 이 책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 같다. 로엘이 혹 아동성애자는 아닐까 의심하는 시간도 있었다. 예민함과 또 생각 이상의 호기심과 관용이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까지 전개되지 않아서 찝찝함을 좀 덜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남아 있지만 때로 시간이 문제인 결말도 있다. 리우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계속해서 염려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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