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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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다." 박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가 많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박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럼 이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은 준비가 됐고요?" 나는 박이 말한 준비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맞이할 준비란? 준비를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새 가족을 맞이한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니까. (p.91) "

 

 언제나 궁금한 문제인 것 같다. 부모가 될 입장에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부모도 어떤 자식을 기를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요즘의 과학기술로는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 안의 영혼, 내면까지도 바란대로의 아이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자식 역시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그나마 덜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다만 페인트의 '국가의 아이들'은 두번째 선택이 가능하다. NC센터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 것인지 스스로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소설 속 세계관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은 부러워할까 혹은 거부감을 느낄까.

 

 진지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나는 불운하게 친부모가 바뀐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고 어딘가에 아주 부자인 내 친부모가 있을거라는 생각이나 농담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 워낙 흔하게 나오는 소재고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로 오빠라고 알고 자랐던 사람이 크고보니 송승헌이고 오빠 친구는 원빈이라는 로맨스까지 겯들여져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엄빠에게 '쟤는 누굴 닮아서 저래' 하고 혼날 때 '아휴 모피코트에 다이아반지 낀 내 부자 친엄마가 날 엄청 찾을텐데, 건물주 친아빠가 나만 찾으면 상속해주려고 발을 동동 구를텐데 진짜 아쉽다' 하고는 맞받아치기도 했다. 그럼 '당장 찾아나가라'고 더 혼나지만.

 

 이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이 소재의 영화가 있었다. 제목이 기억 안나서 한참 생각했는데 '마미마켓'이란 영화였다. 혁신적인 내용으로 예전에 아주 재밌고 강렬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참 잔인하게도 엄마가 마음에 안든다고 없애버리고? 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마법을 쓴다는 내용이다. 더 잔인하게도 다양한 스타일의 새엄마들이 선택을 바라며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는 모습이 그때는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괴한 느낌이다. 옛날 영화지만 신선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재밌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질만한 내용이니 구해서 볼 수 있다면 한번쯤 봐볼만 하다. 어쨌든 이 영화가 떠올라 간만에 추억에 잠기며 책을 읽었다. 결말도 말랑말랑하니 파격적 시작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마미마켓' 출신이라 그런지 '페인트'도 재밌었다. 한시간 좀 넘겨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제노같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고, 노아처럼 돌아오는 아이는 더 많을 것 같다. 아키같은 아이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읽을수록 꼭 센터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할까 싶었다. 규율 안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보다 더 규칙적으로 자신을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아이들인데 보조금과 사후 관리가 들어가는 가정 안에서의 삶이 뭐 얼마나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어진다. 친자식도 사춘기를 지나보낼땐 너무 힘들어서 정떨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그 시기쯤의 아이와 그 많은 낯섦과 불편을 이겨낼만한 이유가 서로에게 있을까.

 

 문득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어쩌면 임신에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고 센터의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같다고 느껴졌다. 엄격한 면접 절차가, 특히나 아이들의 의사 결정이 최우선으로 단계가 진행되고 그 전달은 가드들을 통해서 부모 면접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그랬다. 아이를 원해서 갖기를 시도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기관이 존재하고 오로지 생명의 의지로 아이가 그들에게 찾아간다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많은 노력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하는 노력처럼 연상되고,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이겠지만, 문득 떠올랐다. 

 

 아이가 자라는데 있어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부모의 애정같은 것. 분명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가정에서는 필수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페인트'의 센터처럼 국가가 아이를 양육하고 관리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저출생 문제가 좀 더 천천한 속도로 심화될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출산이라는 문제가 여성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양육의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선택에 있어서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테니. 게다가 가정 환경의 문제에서도 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보편을 맞출 수 있겠다. 균등과 보편이 무조건 더 낫다는 것은 아니지만, 메울 수 없는 격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표지가 좀 애매하긴 한데, 고민없이 선택해서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독특한 설정도 앞으로 절대 없을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고, 소설 안의 낯선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았을 뿐더러 어렵지 않게 잘 담아내서 읽기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요즘 읽은 청소년 소설이 연달아 좋은 인상을 남긴 덕에 웬만한 소설보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게 더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외면말고 어른이라도 읽으세요. 읽으면서 아이의 고민, 부모가 되려는 어른의 고민이 모두 드러난 내용이라 생각된 부분을 아래에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지.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문제가 없을까? 나는 내 부모가 누군지 알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누구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느 거야. 내가 만약 우리 부모님 아래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내 기억은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시작하는데, 또렷하지는 않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그때 NC센터가 생각났어. 내가 청소년 시절에 너만 할 때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면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사실 나는 엄마한테서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 물론 나도 온갖 짜증과 심술로 엄마를 힘들게 했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보통일이 아닐 테고. 어쨌든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어."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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