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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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출한 김에 커피숍에서 책을 좀 읽어보려 자리를 잡았다. 한낮은 아직도 햇빛이 뜨겁기에 챙겨다니는 1리터 텀블러 가득 벤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음 추가로 주문했다. 책이 어떤 내용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컵에 남은 얼음을 분리대에 쏟아버리는 일이 어쩐지 두려웠다. 이걸 버려도 되나? 혹시 지금 버린 이 얼음이 아쉬워질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카페를 나서며 1리터 가까이 되는 음료를 방금 마시고 난 뒤인데도 입술이 바짝 마른 것 같아 신경쓰였다. 건조해진 날씨 탓에 진짜 말라있긴 했지만 이 건조함이 어쩐지 불편이 아닌 위협으로 느껴진다. 나는 양이다. " 눈앞의 일원을 그대로 따라가는 습성, 어쩌다 조금이라도 길을 잃으면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성향. p.72 " '드라이'는 양에게 충분히 " 무자비한 현실을 일깨 " 운다.

 

 표지의 '워터좀비'라는 단어 때문에 장르를 오해했었다.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물을 마시지 못하면 좀비가 되는 그런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좀비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물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워터좀비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목마름에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혹은 물부족이라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수분이 부족하고 목이 말라 사람이 쓰러진다는 것에 잘 공감하지 못하며 읽었다. 위기 대응 메뉴얼 같은 것을 미리 읽어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변기를 내릴 물이 없어서 겪는 더러움이나, 씻을 수 없는 상황 같은 건 저절로 끔찍해졌다. 구호물품으로 기저귀가 포함되는 장면(334)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 생리 중이었다면, 하고 떠올렸다. 극단적으로 수분이 부족해지면 생리도 멈추려나, 어쨌건 씻어야 할 텐데, 하고.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상처가 생겨서 감염의 위기(149)를 겪거나, 심각한 전염병(219)이 돌아야 한다. 폭도가 되어버린 사람들(130/203) 혹 매춘(268)이나 강간(142/396)같은 상황은 등장할 수도 있겠다. 이런 굵직한 문제들이 함께 등장하면서 '드라이'는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진다.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물부족을 경고해도 정말 물이 전혀 공급되지 않는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물이 나오지 않아도 습관처럼 수도꼭지를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이 이입된다.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번에 주문해뒀던 생수는 몇 개 남아있었지, 물티슈로 샤워를 대신하면 될까. 집에 먹을만한게 얼마나 있었더라, 밖으로 나면 위험할테니 집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총이 흔하니 극단적일 때는 총 한 방으로 끝낼 수 있겠구나.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비현실적으로 해봤다.

 

 전에는 '워터월드'라는 영화를 좋아했었다. 오래된 영환데 온난화로 빙하가 다 녹아 지구상에 땅이 사라진 미래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배 위에서 생활하게 되고 가장 귀한 화폐는 흙이다. 영화에서 인류는 아가미와 물갈퀴가 달리도록 진화된다. 혹은 반대로 '매드맥스'처럼 사막화 될지도 모르겠다. 바닷물이 넘쳐나건, 온세계가 사막화되어 사라지건 마실 수 있는 물이 중요해지는 건 비슷했다. 전에는 물과 관련된 재난이라고 하면 '워터월드'만 생각났었는데 '드라이'를 읽으면서 '매드맥스'가 함께 떠올랐다. 어느 쪽이 앞으로의 미래와 더 가까울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불안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금처럼 풍요롭게 행복하게 잘 지내는 미래를 갖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전에는 이런 재난 영화들이 그저 막연히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해수면이 진짜로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 오니 문득 우리가 그린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전부 다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아보카도가 식재료로 대유행하면서 칠레, 멕시코 등지의 아보카도 재배지역이 물보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몇번이나 봤다. 그 뒤로 아보카도를 먹지 않았지만 여전히 아보카도는 재배지역 땅 속의 물을 빨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모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보카도를 곁들인 신메뉴를 내지 않았던가. 어차피 수입국인 우리나라와 그 쪽의 물부족같은 문제는 큰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니까. 이런 식으로 보고도 지나쳐가는 위험 신호들이 얼마나 많을까. 북극곰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롤리라는 혼종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나 한 사람이 해서 뭘 변화시킬 수 있겠어 하며 지나친 실천들을 떠올려본다. 원인이자 결과인 인간에 대한 인류애가 사라지고 혐오감이 남는다. 나도 인류에 속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금방 잊겠지만.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드라이'의 매력은 깔끔한 마무리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요즘 재난물들은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보다는 연대에 더 초점을 맞추나보다. 관계성이 최근에 재밌게 봤던 영화 '엑시트'를 떠올리게 한다. 엑시트에서 조정석이 윤아를 과거에 짝사랑했던 역으로 나오는데, '드라이'에서도 켈턴은 옆집소녀 얼리사를 짝사랑한다. 때문에 찌질하게 군 적도 있지만, 이들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통해 좀 더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끝이 반드시 헐리웃 영화처럼 간신히 목숨을 구한 두 사람의 진한 키스 장면으로 페이드 아웃되지 않는다. 그 뒤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신뢰가 쌓인 관계를 신중히 발전시키도록 마무리하고 끝난다. 그래서 그 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원래 재난물을 좋아해서 '드라이'를 아주 읽어보고 싶었고, 또 즐겁게 읽었다. 살아남기 시리즈는 어쩐 일인지 늘 매력적이다. 아이들 도서 중에서도 '000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폭발적 인기를 얻었었는데,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건 나이가 상관없는 듯하다. 생존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어서일까 싶다. 재난물을 좋아한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면, 그레타 툰베리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아보카도를 안 먹기로 결심했다면 '드라이'도 읽어본다면 좋겠다. 당신이 궁금해할 미래 물부족 재난에 대한 모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캘리포니아 주의 상황에 대한 모의실험 정도는 만족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남은 요점은,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잘 마시도록 하세요. 그리고 물을 아껴씁니다. 우리 환경을 보호합시다. 계몽적인 독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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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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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이 너무나 커져있어 '국화와 칼'을 읽기 어려웠다. 책을 읽다가도 불쑥, 잠깐 접어두었다가 표지를 보다가 불쑥, 마음속에서 북한 아나운서처럼 '간악한 쪽바리들이...'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 격렬한 반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 선동에 휘둘려서? 백번 양보해 아, 이것이 내 내면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인가 싶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에 대해 일어나는 혐오는 외부에서부터 비롯된다. 대문 옆 명패에 일본 이름을 붙여놓은 한국 정치인을 볼 때 느끼는 불쾌감과 비슷하다.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면 내 그카나?

 

 바로 이런 때야말로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국화와 칼'이 도움이 될 거라는 시선도 있겠지만 국화와 칼이 가리키는 이 이중성이라는 것이 정말 그들에게 혼재해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이면이라 생각하는 어떤 모습들은 본성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p.25 "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문장이 그들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그들 속담처럼 사실이 아닌 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꾸며내려는 습성도 있을 것이다.

 

 영화 '반딧불이의 묘'나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찍은 '진주만에 흩어진 사람'이라는 우익 다큐 같은 것을 보면 일본인의 이해안가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켜놓고 오히려 본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것처럼 군다. 좀 감상적으로 전쟁 때문에 죽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 아플 수 있겠다. 그 정도로는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진짜 피해를 입은 다른 나라에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전쟁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어쩌고 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의 불행이 대단한 상처인마냥 눈물 흘리는 역겨운 셀프 동정을 보면 여기서 정상인은 어리둥절해진다.

 

 특히 저 다큐에서 한 할머니가 미국인을 보면 얄밉다고 이죽거리며 퇴역군인인 미국인 할아버지에게 진주만 공습 때 무엇을 했냐며 당신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쏴서 살해했냐고 책임을 물을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아득해지는 어이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일부' 일본인들의 저런 사고와 태도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추측하려 노력해본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면 안되는 기리문화에 어긋나는 반격을 했기 때문일까.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하는데 미국이 "피라미를 도미로 갚"아서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저 두 영상자료 모두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 혈압 올리는데에 낭비하지 않길 바라며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p.223 "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한건가 싶어졌다.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 비방과 배척으로 일본인이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그때는 이지메라는 말을 몰랐던건가 싶어진다. 그 바로 위에 원수에게 똥을 먹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오는데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수에게 들키지 않도록 교묘하게 좋은 음식 속에 똥을 넣어 대접하고 상대가 알아차리는지 살폈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p223 " 는 부분에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750만의 한국인 관광객이 먹어준다'고 발언한 일본 외무상의 발언이 떠올랐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에 들고 지금이 읽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일까 하고도 생각했다. 때때로 반일정서가 끓어오르는 사건이 터지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불매운동이라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드물다. 나라가 망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시류가 반갑다. 이제 시작인데 불매운동은 아직 잘 진행되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참여해서 습관처럼 되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읽으면서 어떤 객관을 찾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들이 가진 음습함에 대해서는 한번 더 짚어보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분석이 필요치않다. 일본에 대해 몰랐던 서양인들이야 처음 일본이라는 적을 마주하고 이게 대체 뭘까 싶은 당황이 몰려왔겠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그들에 대해 경험으로 쌓아온 내력이 있으니.

 

 쓰고보니 객관적이지 못한 리뷰를 쓴 것 같아서 아쉽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애국심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진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가 좋지 못한 탓이 더 클수도 있지만, 나의 소견이 아니라 이순님 장군님의 피셜로도 "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 " 라고 하셨으니 대부분 팩트에 기초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더 차지게 비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객관성에 있어서는 덜 아쉬운 마음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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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하는 여자들
대니엘 래저린 지음, 김지현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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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을 책들 더미 위에 '반박하는 여자들'이 맨 위로 올려지던날 지나가던 사람이 흘끗 보고 한마디 했다. "반박하는 여자들?" 예상이 가는가? 말꼬리가 미묘히 올라가있었다. 반사적으로 가슴이 선뜩했다. 맨 위에 올려두지 말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짐짓 "왜요?" 하고 물으니 "책 제목이 뭐 그래?" 하고는 가버렸다. 책 제목이나 표지에 페미니즘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가끔 읽을 순서가 되어도 맨 위에 올려놓지 말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페미니즘에 따라붙는 혐오와 공격성이 옮아붙을까 싶었던 것이다. 평소에 놓여진 책들을 슬쩍 훑는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말끝이 올라간 한마디를 들었다. 여자들이 왜 반박을 해서는.

 

 책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 건조하다. 책의 제목을 보고 무서운 페미니즘 전사들이 잔뜩 흥분한채로 고양된 감정을 드러내며 피해의식에 가득한 얘기를 쏘아낼 것이라 생각했을 사람들에게 유감이다. 평범한 소설들로 채워진 소설집일뿐이다.

 

 " 장 뤼크는 미국인은 아니다. 아마도 유부남인 듯하고 나이는 나보다 확실히 많다. 내 평생 처음으로 혼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난 다음 날, 그는 내게 커피를 사주고는 지금쯤 고향에서 샘이 바람피우고 있을 거라고 우긴다. 그는 내가 어리고 순진하며 내 미래는 그가 말하는 진실 그대로 될 거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와 네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된다는 걸 깨닫는다. p.134 "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이런 순간이다. 어디서 마주쳤던 것 같은 사람과 상황들에 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예의발랐을때 나에게도 자신이 옳고 삶은 이런 것이라며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려 드는 꼰대들과의 대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땠었나, 너무 많은 시간을 예의차리며 그 앞에 앉아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된다는' 깨달음이 더 빨리 왔었다면 좋았을텐데.

 

 다른 단편들보다 '풍경 27'이 마음에 들었다. '반박'도 실제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게 보인다는 점이 괜찮았지만 틴에이저의 시선이라 좀 거칠었다. 하지만 '풍경 27'은 금방이라도 무슨 사건이 생길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잘 느껴지는 분위기도 좋았고, 리차드 기어가 나온 '언페이스풀'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는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언페이스풀'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고, 혹시 안봤다면 그냥 '언페이스풀'을 보면 될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영화는 재밌으니까.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던 영화라 '풍경 27'을 읽으며 '언페이스풀'이 연상되는게 좋았다. 생각보다 짧게 마무리되어서 아쉬웠지만 읽는동안 그래서, 그 다음은? 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 그때는 웨슬리를 임신한 지 5개월째였는데, 그 사실을 쉽사리 잊어버렸다. 모든 일의 주도권은 그녀의 몸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녀가 아기를 원하는지, 아기를 잘 돌볼 것인지, 사랑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기는 그녀의 안에서 자라다가 태어날 테고, 그 과정에서 둘 중 하나는 - 특히 그녀가 - 죽을지도 모르며, 그녀 몸의 모든 것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살리고 치유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 임신할 수 있을 테니까. p.315 "

 

 임신이 여자의 몸을 기능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임신과 출산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어주지만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느꼈던 불쾌함은 일의 주도권이 그녀의 몸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문제들이 사실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성은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필연/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더 맞겠다.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성이 너무나 위대해서 모성으로 그것들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게 당연하지 않다.

 

  어느정도 강렬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준비하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묘하다. 제목이 도전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내용은 그림자로 비추는 어른한 형태로 윤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좀 아쉽기도 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읽어왔던 여성들을 주제로한 글들에 비하면, 좀 순한맛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한국적인 소재가 담긴 내용이 더 매운맛에 익숙한 탓도 있겠다. 심심하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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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넘어
박노성.정윤환.조영준 지음 / 성안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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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을 열어 떼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흥미를 조금 느낀 건 ㅎ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였다. 전에 일했던 쪽이 ㅎ회사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었던터라 ㅎ회사의 이름이 가끔 눈에 띄고는 했는데 저자가 ㅎ회사의 마케팅 담당이 돼서 ㅎ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책의 초반에 읽었다. 정말 온전히 저자의 마케팅 능력 때문에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겠지만, 생각해보니 ㅎ회사가 갑자기 광고도 늘고 꽤 유명하게 인지도를 쌓은 일이 떠올랐다. ㅎ회사 이야기를 읽고나니 그저 그런 얘기만 늘어놓는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다보니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영 어색하지는 않았다. 온전히 구매자의 위치에만 있지만 상품 검색 내용별로 노출 순위가 다르게 되어있는 점(59)이나 미끼상품 전략을 쓰는 것, 키워드 공략에 대한 부분에서는 최근에 내가 직접 검색해서 구매했던 핸디형선풍기나 규조토발매트가 (114-119) 예로 나와 놀랄만큼 현실성 있게 책을 봤다. 내가 사고 싶어서 검색해보고 구매한 것인데도 책을 읽다보면 쇼핑몰에서 구매를 유도한대로 내가 끌려가듯이 구매했던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자세했다. 문득 책표지에 "검색에서 쇼핑까지 매출로 이끄는 쇼핑몰 성공 전략서"라는 문구가 써있는게 보였다. 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내가 사려고해서 산게 맞나 갑자기 더 의심된다.

 

 사업에 뜻이 없어서 아쉽게 되었지만 스마트 스토어 판매자 되는 법(75)을 한걸음 한걸음 아주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 책이 꽤 유용할 것 같다. 창업을 글로 배웠어요"하고 이 책 한권만 의지해서 일을 벌려서는 안되겠지만 SNS같은데서 오늘 하루만 00만원을 벌었다며 다단계같은 부업을 유도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는 것보다는 더 양심적이고 유용할 것 같다. 단순히 나의 성공기, 나는 이렇게 창업해서 성공했다, 같은 류의 내용이 아니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하고 뭐가 필요하다는 가이드북이라는 점이 좋았다. 다만 그래서 일부 내용은 쉽게 읽어 넘어가기 어려운 전문적인 부분이라 적당히 스킵하며 읽었다. 쇼핑몰 열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겠다.

 

 우연히 도서를 제공받게 되어 이쪽은 어떤 세계일까 궁금한 마음에 읽어봤는데, 잘 모르던 분야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쇼핑을 하는 건 아주 익숙한데 그 세계에 이렇게 치열한 계산과 전략이 있다는 걸 판매자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보는 건 또 색다른 일이었다. 요즘은 텍스트로 정보를 얻지 않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지만,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열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이 책 한권 정도 투자해서 읽어보는 품은 들여야하지 않겠나싶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도 틀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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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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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는 홍길동같은 것으로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 마법, 멘스, 달거리같은 좀 덜 직접적으로 들리는 우회어로 불려왔다. 어디서 생겨난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첫생리가 시작되면 무려 '파티'를 해주기도 하지만 생리 중인 것이 티나지 않게 비밀스럽게 지나보내야 한다. 피가 새거나 묻는 수치스러운 불상사가 벌어지면 안되고,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예민해지는 것을 티내서도 안된다. 그러면 조심성없어 칠칠맞지 못하다거나 '왜 이래? 오늘 그날이야?' 같은 질책섞인 넝담도 듣게 된다.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지만 귀찮고 불편한 생리를 하는데 당연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안좋은게 뭐 어쩌라고 싶지만 따라오는 오해와 참견은 피하고 싶어진다. 생리대에 대한 광고에서도 생리란 말은 기피되고 생리혈의 색은 파란색 실험용액으로 대체되어 보여진다. 이 밖에도 끄집어내자면 더 많지만, 생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실 생리에 대해 이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생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특별할까 싶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해놓은게 아닐까? 10년쯤 일찍 나왔다면 특별했을려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100명의 여성은 100가지의 생리를 한다'는 소제목처럼 나랑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의 완전 솔직한 생리 이야기는 또 나름 흥미로웠다. PMS시기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하는 기간동안을 담은 생리일기 부분도 재밌게 읽었고 사후피임약, 생리 중 섹스, 생리 공결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부분도 여자집단에서는 종종 올라오는 문제여서 익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보지 긍정'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어색했다. 여성기를 이르는 말 역시 생리처럼 에둘러 표현되는 일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보지라는 단어를 보자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럴때면 나도 아직 멀었구나 싶어진다. 

 

 한 이십여년전에도 생리를 숨기지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생리하는게 티나면 창피한거니까 생리는 숨겨야만 되는 줄 알았던 어린시절 어떤 선생님이 '얘들아, 생리해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쉬어' '생리하는 때에는 생리한다고 말하고 배려받아' 하고 공표한 적 있었다. 그때는 저 선생님이 유난스러우시네, 특이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고 필요한 조언이었다. 창백해진 낯으로 배가 아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생리해서 아프다는 말을 참거나 몰래 속삭이던 때였다. 문득 떠올려보니 아득한 옛날이다. 시대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졌으니 책을 읽을 준비는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이만큼했으면 프로?고 말 많은 페미니즘을 빼고서라도 여자들은 생리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없이 할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 오래전의 선생님보다 내 생각이 덜 트여있는가 싶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색하더라도 긍정하며 읽었는데 생리 중에 수영장을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은 거부감이 들었다. 생리대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생리중인 사람의 수영장 이용을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고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굳이 막을 일은 아니지만 이미 수영장물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생리 중인 내 몸에 안좋을 것 같아서가 더 크다. 맨날 싸움나는 주제라지만 생리기간동안 수영장 이용을 안한다면 한 달 이용 요금을 감면받는 쪽으로 불편을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것도 생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배운대로 따라가듯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생리가 싫다, 생리를 싫어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단순히 불편에서 오는 싫음이 아니라 학습된 미움일까 궁금해졌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겠다.

 

 여자라서 생리에 대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잘 읽히고 금방 읽으니까 가볍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과 관련된 지식에 약하다. 남자라면, 이 책이 읽고 싶을까 궁금하다. 생리휴가나 생리대 무상 지원 같은 문제를 두고는 할말이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생리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등가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몽정과 같은 정액 배출에 대해 책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별 관심을 갖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한달에 일정 기간동안 남자도 계속해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기간이 있다면 어떨까. 생리처럼 통증도 있고 패드를 해서 새고 묻는 것을 막아야하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그렇게 생각하니 관련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볼 정도로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남성독자들도 그 정도의 호기심으로 읽어볼만 하겠다. 하지만 특히 자라나는 소녀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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