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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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이 공직에 오른 사람이 갖춰야 할 처신인지라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함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받은 
 서신을 읽을 때는 관용초를 끄고 개인초를 켜서 읽었다는(p87 율기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 내용은 인상적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개인 전자기기 충전을 금지한다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선 역시 한국인이라 이는 '지나치'긴 하단 내용도 덧붙여져 있어 재밌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어도 공공의 물품을 아끼고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편의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소확횡'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사회 분위기에 반해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깨닫게 된다. 

 여러모로 자극이 되고 생각할 점이 많지만 모든 내용이 교훈적으로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바야흐로 힘써야 하는데 어찌 남을 책망하겠는가? 나를 예로써 규율하고 남을 보통사람으로 기대하는 것이 원망을 사지 않는 길이다. p73 율기 3. 집안을 다스림 " 같은 내용에서 남=백성=사람 들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한정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언뜻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게 대하라는 의미로 보이지만 " 백성들은 조, 쌀, 실, 삼 등을 내어서 위를 섬기는 것을 본분으로 여기기 때문에p120", "백성이란 즐거워도 머물러 있고 괴로워도 떠나지 못한다. 몸이 토지에 박혀 마치 밧줄에 묶여 매를 맞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p69" 같이 애민과 우민의 사이에서 사람에게는 계급이 있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과 소양이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이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의외로 외모에 관해 박하게 평하고 구분짓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 가장 불쌍한 것은 못생긴 수급비이다. p176 / 무릇 사람 보는 법은 본래 위엄 있는 모습에 있다. 무인은 용모와 풍채가 더욱 중요하다. 키가 난쟁이 같고 누추하기가 농사꾼 같으며, 물고기 업에 개 이마를 가져 그 모습이 괴상한 사람은 앞에 나란히 세워서 백성들을 대하기 어렵다. p179 이전 6조 3. 사람 쓰기 " 다른 부분들은 지나치리만큼 공정하게 처신해야 함을 강조하는데 이런 민감한 내용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있는 점이 달라진 시대와 인식을 느끼게 해준다. 

 목민심서를 두고 오랜만에 필사를 시작했다. 한동안 필기구를 잡지 않은 손에서 펜이 헛돌았다. 읽는 중간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손에 힘을 주어 따라 적으면서도 속으로는 더 보기 좋게 쓰고 싶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내 것은 형편없어 보여 공개하고 싶지 않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또 시작한 필사를 금방 그만두게 될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때 "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고 한다. p28 부임 6조 2. 부임하는 행장 꾸리기 " 는 문장을 떠올렸다. 남의 눈에 보기 좋게 꾸며보이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자고, 아무리 꾸며도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눈에도 가치없음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됐다.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는 벗어나고 시대를 넘나들며 관통하는 삶의 지혜에는 감탄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고전 읽기, 필사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목민심서로 시작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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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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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투모로우'에서 이상기온 때문에 뉴욕이 물에 잠기고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주인공 일행이 뉴욕 공립 도서관으로 몸을 피하는 내용이 나온다. 도서관은 튼튼하게 지어졌으며 충분한 대피 공간이 있고 유사시 활용할 땔감(!)들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세상이 망하게 될 만한 상황에서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올린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기록해둔 도서관의 실용성이었다. 새로 생기는 도서관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필수로 봐야할 영화로 투모로우를 꼽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재난이 오면 어쩌면 도서관이 가장 최후까지 남을 공간이 될 것 같아 도서관에 가서 숨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도서관으로 도망가야지, 계획을 세우는 것은 둘째치고 하다하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어왔으니 너네 집은 어떠냐며 호구조사를 좀 해봐도 그렇게 큰 실례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종종 도서관의 책들을 데리고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다시 들여보내는 산책을 함께 해놓고, 지금껏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외려 무심했을지도 모른다.

 배우고 담은 것이 많은 댁이라 그런가 책들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역사는 깊다. 그리고 대부분 오랜 시간을 굵직한 사건들 틈에 자리하고 있어 굴곡있는 여정을 지나왔다. 그토록 역사적인 도서관들은 어김없이 일제의 횡포 아래 명맥이 끊겨 있거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오점을 달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대학도서관을 갖지 못한 이유(p29)"는 소제목만 봐도 또 일본이구나 싶어진다. 책을 펼치고 백여 쪽을 읽는 내내 도서관이 외압과 매국에 시달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쓰고 있는 도서관과 사서라는 단어조차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용어(p394)"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의 수난은 강점기가 지나고 나서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잖는가. 평화로운 미국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배경으로 도서관이 쓰이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가진 우리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피난처이자 싸움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담고 있는 책의 보관처가 아니라, " '투쟁의 현장'으로, '민주화의 무대'로 기능(p255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던 시절)"했다. 이 역사는 다시 기록이 되어 도서관에 남겨져있다.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국가도서관'의 기능과 의의를 꼬집은 내용(p338 한국에 '국가도서관'이 많은 이유?)이다. 대학도서관이 가진 역사와 상징성을 잘 보여주었던 것처럼 국가도서관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 또한 잘 정리했다. 특히나 우리 세금으로 운영이 되는 시설이니(p366) 이용률은 적으면서 '관장' 직위나 문제시 되는 현실을 알게되는 꽤 불만스럽다. 도서관이란 시설은 그 자체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서 그저 역사성이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고 가까운 몇 곳을 직접 방문해보면 좋겠다는 가벼운 기대를 했는데 북한(p368)이나 개신교(p426)와 관련된 내용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북한 도서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니(p384). 책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지만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문화를 조성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어렸을 때 동네 주민센터 이층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 크기 공간 안에 서너줄 쯤 되어 보이는 칸막이 책상들이 있고 사방 벽에 이러저러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침묵이 내려 앉은 작은 도서관은 갑갑했지만 그 안에 있는 책들 아무거나 마음대로 가져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어떤 책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도서관의 분위기만은 아직도 기억 난다.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하러 곧잘 찾아갔지만 더 시간이 지나 주민센터의 이름이 몇 번 바뀌면서 이층의 도서관이 없어지고 휴게공간으로 바뀌었단 소식을 듣고 섭섭했었다. 박완서라는 작가를 탄생시킨 "어린 날의 찬란한 빛(p418)"까지 되지는 않지만, 그 작은 도서관의 존재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점을 남기는데 분명한 도움이 되었다. 요즘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사람들의 마음이 식고 생각이 굳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사유하도록 해야 할 텐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으며 도서관이 어떤 때에 힘든 시기를 지나왔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특히 경복구의 집옥재를 수식하는 '작은 도서관'과 "주인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나라는 어떻게 될까(p275)"는 내용은 요즘의 상황을 연상토록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이용자들이 안타까워하는,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크게 체감하는 작은 도서관들의 고난은 지금 우리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1873년 프랑스 해군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 기록에 따르면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남의 나라에 싸우러 와서 잘도 봤네 싶지만, 인상적인 기록이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이 드물다. 독서가 우리에게 자극을 주기까지 속도가 느리고, 직관적이고 공감각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번거로운 이해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겠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에 대한 열망이 사그러진 것만은 아니다. 도서전에 가는 것을 팝업스토어를 찾는 것처럼 힙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십수년 전에 독서 열풍을 일으킨 독서장려 티비 프로그램 재방영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세계적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관심으로 서점에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읽는다. 도서관이 시대의 굴곡에도 종하지 않고 그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나간 것 처럼, 책을 읽는다는 오래된 행위는 앞으로도 그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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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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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무가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그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흐린 날, 잎을 모두 떨군 채 염주 같은 콩깍지를 매단 회화나무를 만난다면 울컥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p47"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 사는 곳 뒤편으로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공사가 시작됐다. 그동안 흉물이었던 넓은 부지가 정리되어 마침내 아파트와 공공시설에 들어온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올 부지 옆으로는 오래된 이차선 도로가 길게 뻗어 있는데, 그 도로 옆에 난 좁은 인도에는 그만큼이나 오래된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가로수로 서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는 건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공사가 시작된 것을 체감하게 됐던 것은 바로 그 오래된 가로수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부 사라져 버린 일 때문이었다. 사라진 수십 그루의 가로수. 가로수라고 하지만 아주 오래 되어 그 아름이 사람 혼자 양팔로 감을 수 없이 크게 잘 자란 나무였다. 가로수들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어설프게 시멘트로 메워져 있었다. 아까운 나무를 어디 옮겨심었길 바라지만 전에 비용 문제로 사람들이 옮겨심기보다 잘라내고 다시 심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수년간 지나왔던 플라타너스 우거진 불편하고 좁은 길이 사라진 것을 혼자 아쉽게 여겼었다.

" 플라타너스는 매일 이산화탄소 3.6킬로그램을 흡수하고 산소 2.6킬로그램을 방출하는 등 대기 정화 능력이 은행나무의 5.5배, 느티나무의 3.5배에 이른다. 또 활발한 증산작용으로 도심 열섬을 누그러뜨린다. 이런 효용성 때문에 플라타너스는 전 세계 주요 대도시의 숲조성에 널리 쓰이는 나무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등 일부 나라에선 자동차 위주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오래 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찻길을 넓히려면 큰 나무는 방해만 된다. p79 "

책에서도 길을 넓히기 위해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라져가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깊이 공감됐다. 수미터는 됨직히 크고, 잎마저 넓직해 여름이면 우산없이도 비를 피해 걸을 수 있고, 가을에는 떨어져 내리는 큰 잎에 머리며 어깨를 맞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시 걸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전에 반겼던 뒷편의 공사도 함께 들어올 새로운 편의시설도 처음처럼 기껍지 않아졌다.

사지가 절단된 채 쫓겨난 500살 나무 부산 회화나무(P37)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일명 가로수 독살사건이라 불리는 기가 막힌 일이 떠올랐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커피 체인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커피 체인 가게 앞에는 죽어서 썩어가는 가로수가 제거되거나 새로 교체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데, 그 이유가 참 어이없다. 커피가게가 들어오면서 건물 앞에 있던 가로수를 없애고 싶었으나 가로수 다섯 그루 중 두 그루만 제거 허가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허가가 떨어진 두 그루 뿐만 아니라 나머지 나무들도 연이어 죽어버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구청에서 경찰에 수사를 맡기니, 건물주가 나머지 나무도 없애고 싶어 몰래 제초제를 뿌려 죽였음이 드러났다. 범인도 자수를 한 이 사건을 검찰-또!...-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서대문구에서는 개인이 사욕을 위해 가로수에 해를 입힌 "이 안타까운 사실을 기억하고 사회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단다. 그대로 두었다면 커피 가게 2층 창밖으로 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을, 얕은 생각과 부끄러운 이기심만 그대로 드러낸 표지판이 세워진 죽은 나무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우습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릅니다. 10여 년 전부터 천연기념물에 대한 '외과수술'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가로수나 공원 나무, 보호수 등에 대해선 여전히 '외과수술'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 생명체인 나무의 생리에 대해 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사람인 양 '속을 채웠으면...'하고 어긋난 관심을 투영합니다. 참고로 '외과수술'은 조경업체가 하는 일 중에서 이익이 많이 남는 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건강한 나무를 오래 지키고 싶다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72 "

나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훼손되는데, 주로 개발의 이유로 잘리거나 옮겨가게 되기도 하지만 종종 볼 수 있는 나무 안에 속을 채운 '외과수술'들도 보호가 아닌 훼손에 해당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외에도 드러난 뿌리 부분에 흙을 덮는 복토(P63)도 나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니 몰랐다. 특히 오래된 나무들, 보호수들이 사람들의 시선으로 주는 어긋난 관심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도 안타깝다. 그동안 '몰랐다'는 이유로 파괴인줄 인식 못했던 것이 또 있는데 제주 비자림 숲길이다. 몇 번 다녀온 적도 있는데 그 사이를 난 도로를 통해 다녀왔으면서도 그 아름다웠던 길 자체가 숲에는 문제가 되었단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p115) 더불어 제주의 환경을 파괴하는 요인으로 수많은 골프장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서울과 가까운 고양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p203 고양 산황산 : 산 깎고 골프장 지어 자연을 살리겠다는 모순) 골프라는 운동을 긍정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영화 같은 것을 보다보면 잔인한 장면을 거리낌없이 잘 보는데 책을 읽다 마주친 잘라진 나무 사진이 그보다 더 잔인하게 여겨져 눈살이 찌푸려졌다. p144에는 잘라져 밑동만 남은 전주의 버드나무들 사진이 실려 있는데 멀리 다리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도 참혹함을 느낀다. " 전주시는 무슨 명분으로 이 버드나무들을 벌목했을까. 전주시 하천관리과 담당자는 최근 치수 패러다임이 '환경(보호)보다는 인명,재산이 더 중요하다'로 바뀌었다며, 나무는 비가 오면 쓰러질 수 있어 제방 등 하천 시설을 손상할 수 있기에 벌목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p146 " 나무가 훼손되는 대부분의 상황에는 늘 이렇게 사람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여가활동인 등산도 숲을 망치는 주범 중 하나였는데, 답압(*사람들이 밟아 땅이 단단해지면서 황폐해지는 현상 p224)이란 말과 문제점을 배우게 되었다. 건강을 위한 좋은 취미 쯤으로 생각했던 등산이 자연의 건강은 오히려 위협하는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제주도에 갔을 때 일부 오름들은 쉬는 기간을 갖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일정 기간동안은 자연이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 방문을 금하는 것이다. 또 한라산은 등반을 위한 예약을 한다. 그마저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굳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사람 길(P213)'이 더 줄어야겠지만, 다른 산들도 입장객 수 제한과 안식년을 두고 회복 기간을 가진다면 장기적으로 더 좋은 보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산을 타고 있고, 그만큼 '이용압력'은 커지고, 생물다양성은 위협받는다. 특히 오랫동안 인간의 교란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높은 산의 생물들은 위협의 수위가 절멸 수준으로 치솟는다. p225"

등산 뿐 아니라 이용 목적에 따라 심어졌다가 잘리고, 그나마 운이 좋아 뿌리와 가지가 이리저리 잘린 채로 옮겨지고 다시 심기는 등 수백년을 사는 나무들은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시달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이런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정말 책을 읽다보면 '아낌없이 빼앗기는 나무'가 더 맞지 않나 싶어진다. 언제 나무가 주고 싶다고 했나?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 나무에게서 우리가 얻어낸 것들은 받아온 것이 아니라 빼앗아 온 것이나 다름없다. " 나무는 이용할 대상이고, 그것이 나무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이지요. 정말 나무는 인간에게 이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p99" 서울 봉산의 편백 인공림에 대한 부분에서는 깨어진 생태계 균형에 대한 주먹구구식 행정처리 문제와 함께 최근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러브버그 이야기가 등장한다. 너무 많은 개체수의 벌레가 갑자기 온갖 곳에 나타나기 시작해 심지어 사람에게도 붙어서 나도 참 끔찍하게 생각했는데 " 사실 러브버그도 1~2주면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p194 "의 문장을 읽으며 내가 그랬구나 깨달았다. 편의를 우선으로 하고 잠시의 불편이나 지체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를 돌아보았다. 이제 곧 날이 풀리고 한동안 러브버그가 나타나 괴롭겠지만 해충도 아니라던 그 벌레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동안의 불편을 이제는 좀 여유롭게 지나보내게 되겠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나무의 모양을 세세히 보여주는 사진이나 그림이 적어서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자세한 모양은 저와 여러분의 숙제로 남겨두겠습니다. 뒷산에 올라 식물도감을 펴놓고 잎 모양을 비교해보고, 털이 있는지 없는지 만져보고, 수피가 갈라진 걸 느껴보면 어떨까요. 봄에는 고양이 꼬리처럼 폭신한 연노랑 수꽃도 관찰해보고요. 참, 신갈나무는 잎자루 아래쪽에 사람 귀처럼 생긴 작은 잎이 돋아있습니다. 꼭 확인해보세요. 가을에 도토리를 주워다가 키를 재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우리는 참나무의 나라에 살고 있잖아요. P257 " 뒷부분에서 이런 아쉬움을 꼬집은 내용을 만났다. 몇 해 전부터 길을 다닐때 보이는 식물들과 새에 관심이 가서 가능한 사진도 찍고 검색도 해서 이름을 찾아보곤 했는데 아무래도 잘 외워지진 않았다. 특히 보기에 낯설거나 예쁜 것은 여러번 찾아보곤 했는데 익숙하게 보이는 나무의 이름은 알아볼 생각을 못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가 참나무 종이라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도통 머리속으로 그려지지 않아 민망했다.

이제 와 덧붙이건데, 나의 말 못 할 비밀 중 하나는 내가 은행나무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다른 나무들보다 더 아끼는 것도 아닌데 어느새부터 은행나무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특히 가을에는 더더욱 꺼내기도 힘든 말이 되었다. 가을이면 길 여기저기 떨어져 밟히고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가 공공의 적이 된 뒤로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싫어한다, 냄새난다, 다 베어버려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무시무시한 말을 공감하는 척 듣다가 슬쩍 근데 난 은행나무 괜찮던데 하고 두둔한다. 병충해에 강하고 계절마다 예쁘고 달리 가꾸지 않아도 잘자라고 열매도 맛있다고 주절거릴 때면 분위기가 떨떠름 해진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좋아하는 편에 가까운데 별다른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예전에 어느 홍보문에서 은행나무의 장점을 알리는 글을 보고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바닥에 떨어져 으깨진 은행냄새도 그리 싫지 않아졌다. 나같은 무비판수용러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처럼 또 그렇구나, 하고 이해해서 나무와 자연에 대해 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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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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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도발적이고, 내용은 재밌다.
남자에게 친구가 없다고?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우정 아니었나? 여자들은 모르는 진정한 우정을 남자들은 나누고 있던 것 아니었나? 사람이 셋만 되어도 금방 뒷담하고 깨진다는 여자들의 우정은 가짜고 서로 농담-같은 막말-, 넓은 이해-라고 하는 지각, 돈 빌리고 안 갚기-를 바탕으로 한 변치 않는 우정은 남자들의 전유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없다고요? 생각해보니 엄마의 사교모임은 삼백육십오개가 넘어 일년 내내 뭔가가 있고도 부족한데, 아빠의 사교모임은 잘해야 계절이 변하나 싶고 어쩌면 연례행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여성에게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임들이 생기지만 중년남성의 경우는 이와 같은 경우가 드물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사회에 나가서는 공적으로 만난 사람과 사적으로 친밀해지는 것이 어렵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사귀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점차 정리되고, 이 새로운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않으면 결국 친구라 부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줄어들게 된다. 강렬했던 책의 제목도 남자는 친구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점차 없어진다는 것에 가깝고 저자는 그 과도기에 문득 친구가 없어져가는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 무엇을 통해? 결혼식에 부를 신랑 들러리를 찾는 과정에서!

" 우정에는 리듬이 있는데 나는 그 리듬을 잃어버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는 사교생활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멈췄고, 다이어리는 텅 비어 있다. 친구들과 만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 무척 쉬웠다. 항상 혼자서만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고,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친도 있었고, 여친의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여친 가족 행사에도 갔다. 바빴다고! 혼자 있었던 시간이 거의 없어서 고독의 시간이 필요했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홀로 시간을 보내기. 나만의 일을 하고, 책도 읽고, 여친이 싫어해서 평소에 못 보는 넷플릭스를 본 것도 어느 정도 건강한 일이니까. 나는 외롭지 않았고 그냥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p28 "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친구가 많지 않다.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가질만한 유형인 것이다. 그래서 이 내용에 많은 공감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많은 혼자만의 시간동안 무엇을 하냐고 물어오기도 하지만 그 혼자만의 시간은 늘 부족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금새 지나가버린다. 물론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부럽기는 한데 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쓰일 에너지를 조달할 여력이 안된다. 그래서 "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숨기 위해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p331 " 는 내용에 공감했다. 9장 인간관계 금단 증상 중에 '렌트어프렌드p331'와 비슷한 것이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찾을 수 있고, 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단절해도 상관없는 관계. 뭔가를 하기 위해 조율할 필요도 유지를 위해 감정을 더 써서 챙길 필요도 없는 친구관계를 소셜미디어에서 가볍게 만드는 편이 쉽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세계의 관계로 되돌아온다. 코로나 봉쇄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세계의 대면사교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기술의 도움으로 대면사교를 배제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p331 "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책의 대부분이 유쾌하고, 유쾌한 척하는 구린 농담도 있고, 어쨌든 재밌는데 연락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는 것이라 인상적이었다. " 이런 감정의 철회에는 이차적 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권력이다. 남자들이 관계에서 권력을 쥐는 방법 중 하나는 침묵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무관심으로 가장하여 애정쟁취 과정에서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나에 대한 요구사항을 만들고 활동을 계획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맥켈리와 대화를 나누고 며칠 후, 나는 이 역학관계에 대해 철학자 빅터 J. 사이들러가 쓴 에세이를 읽는다. "우리는 내가 혼자서도 충분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유지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어떤 이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존재라고 해도, 우리는 이 점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행동한다." p127 "

이건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관계에서의 연락 문제에 관해서 소탈하며 초월하고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굳이 연락에 신경쓰지 않고, 먼저 연락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들은 시시콜콜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게 피곤하고 불필요하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똑같이 행동한다 해도 연락 주고 받음에 있어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어서 먼저 안부를 묻고 만나자는 연락을 하는 입장에서 이들과의 관계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을텐데 굳이 계속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더불어 이들이 연락이라는 것을 매개로 관계에서의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태도나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왜냐하면 그들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거나 혹은 더 깊이 발전시키고 싶을 땐 연락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사회생활이었다면? 그들은 마땅히 연락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친밀한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사회생활로 유지하는 관계보다 덜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중받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들의 이런 태도가 개인의 성향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관계'에서 " 감정노동은 사랑에 관한 거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깜냥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감정노동은... 관심을 기울여주는 거라고. p144 "라고 했던 나오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관계의 단절에 대해 단순히 친구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고립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로 더 들어가게 되면 고독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 한 인간이 자신의 썩은 악취로만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수준으로 고립되는 이유는 다면적이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미 익숙한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일부 인구집단이 도드라진다. (이 사건은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으로부터 25년여 전에 벌어졌지만, 내겐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클라이넨버그가 사망 통계를 분석한 결과,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 중 73퍼센트가 65세 이상이었고, 연령표준화사망률은 남성이 여성의 두배 이상 높았다. p164 "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인지되고 있는 문제인데 중년 이상의 고립된 사람들 중 특히 남성들의 고독사 비율이 높은 이유가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혼자 밥을 해먹지 못하는 독거노인들 특히 남성은 가져다주는 반찬과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썩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층의 고립된 사람들 문제는 다르다. 이른바 쓰레기집이라 불리는 어려움을 안고 고립된 젊은층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전혀 닮은점이 없어보이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과 젊은 여성들의 고립과 외로움에는 사회생활에서 느낀 압박과 실패가 주변과의 단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처음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남자가 친구가 없다고? 그런데 읽을수록 현대인은 친구가 없다는 것에 가깝다.-남자가 생각하는 범위의 한계가 그렇지 뭐- 세상이 험난해지면서 궁금해졌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심화되는 갈등은 왜 생기는가. 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가. 여성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남성은 오직 남성만을 지적인 사고가 가능한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감정적이고, 논리적 대화가 안되고, 무리로 있을때 성가시고, 우월한-특히 성적 매력이- 동성을 질투해 폄하하는데, 자기들끼리는 확증편향에 갇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를 종종 본다. 물론 남자들 무리는 정확히 이에 반대된다고 주장하면서.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 "역사의 거의 모든 시대에서 친밀한 우정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나와 만난 딕슨 교수는 본인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적어도 우정에 대해 기록을 남긴 남자들에 따르면 그렇지요."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남성은 우정의 달인으로 여겨졌다. 그때까지 여성은 그럴 만한 두뇌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설사 우정을 맺는다고 해도 최고 수준의 우정으로 승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은 멍한 얼굴로 수다를 떨거나, 구름을 보면서 킥킥 웃거나, 손님 대접하기 좋은 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 만큼의 축복을 받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의 소울메이트가 되는 건 가능하다고 여겼을까? 바랄 것을 바라라! 우정은 남성의 것으로 젠더화되었다. p92 "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똘똘 뭉친 남성들의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고독해진다고 한다니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 의아했다. 남성의 것으로 젠더화 된 우정을 인간의 것으로 본다면 결국 우정 문제는 '인간은 왜 친구가 없을까'로 읽힌다.

이 정도 분량이 되는 책을 읽고나면 늘 하는 말이지만 '분량에 비해' 부담없이 잘 읽혔다. 특히 특유의 유머가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웃기기도 했지만, 웃기려고 드는 부분도 없지 않다. 책을 읽고 드는 감상으로 좀 드문데,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웃기는 남자'라는 역할을 자랑스럽게 수행하려고 하는 남자와 맥주 한 잔을 하며 뜻밖의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의외로 대화가 통하고 재미있었는데 다시 또 만나고 싶지는 않은 남자. 위대하고? 야심찬! 제목과 다르게 어쩐지 결말은 사랑에 빠진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새신랑의 자랑글같기도 하고,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결혼식 하객이 부족해서 알바를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인생에 회의가 듭니다. 하는 인터넷 고민 썰을 본 느낌도 든다. 친구가 없다고 여겨지거나, 인간관계에 염증이 느껴지거나, 그냥 제목이 맘에 안들거나, 눈에 띄거나 하면 읽어보자.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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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회의론자 - 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희망의 과학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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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설 2 냉소주의는 안전하다' 모든 신뢰 행위는 사회적 도박이다. 자기 돈이나 비밀, 안녕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면 이들이 우리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남을 신뢰하는 사람 대부분은 어느 시점에 상처를 입는다. 이런 순간이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이면 남을 믿는 모험을 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남을 절대 신뢰하지 않으니 냉소론자는 뭔가 잃을 게 없다.이들은 절대 이길 일도 없다.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는 행위는 포커를 할 때 카드를 읽지도 않고 판을 접는 것과 같다. 냉소주의는 포식자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만 신뢰가 요구되는 협력과 사랑, 공동체를 이룰 기회의 문도 닫아버린다.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해도 기회의 문을 좀 더 열었다면 사귈 수 있었던 친구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다. p17 "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한 태도였다. 상처를 받고 실패를 경험했단 이유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 회의론자, 세상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성적인 체 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책에서처럼 스스로를 냉소적이라고 여기고, 타인은 차갑고 냉정하며 세상이 점점 더 암울하게 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진짜 내가 생각하는 전부였을까? 그렇다면 굳이 '희망찬 회의론자'를 읽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선함을 추구하고 타인에게 친절하며 좋은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이면이 있기 때문에 더이상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400쪽이 넘는 벽돌에 살짝 가까운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보일 듯 하던 출구의 빛이 다시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비슷한 내용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 같았고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길을 걷다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외진 길이 있다. 한 구역 전체가 재개발 예정이 되어 있어 2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지나야 하는 긴 길목 전체가 빈집으로 채워진 길이다. 중간중간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샛길은 철골과 큰 천막으로 막아두었고 빈 집의 닫힌 대문들마다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외진 길은 옆동네로 가는 가장 빠른길이라 삭막하고 불안한 여건이긴 하지만 종종 이용하게 된다. 길을 지날때 대부분은 경찰차가 지나가거나 중간쯤 길 가에 세워져있는 것을 보면 대낮에도 적지 않은 횟수로 순찰을 다니는 듯 하다. 군데군데 빈집의 창문이 깨져있고 스프레이로 알 수 없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기도 한 그 길을 지나면서 악한 사람을 만날까봐 불안한 한 편, 다른 행인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되곤 한다. 불안함은 막연한 것이고 안심은 실재적이다. 맞은편에 나와 같이 걸음을 재촉하는 타인, 나의 존재를 흘끗 확인하고 무관심한듯 평이하게 거리를 두고 지나치는 타인의 모습에서 암묵적인 신뢰와 공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사소한 것이었지만 다시 책의 앞부분에서 보았던 '10달러 투자 게임 P40'을 떠올려보니 5달러만큼 더 마음이 변해있었다.  " 이 외에 '우분투'라는 반투 개념, 즉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철학이 따라 살아가는 이가 수백만 명도 더 된다. 특히 서구 지역 밖의 사람들은 이웃과 조상, 후손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비교해보면 호모이코노미쿠스처럼 사는 삶은 선택적이며 외롭고 비극적이다. 끝없는 탐욕은 우리 안에 고착된 본성이 아니다. 우리는 본래 이 행성의 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자신과 서로를 위하고 또 미래를 돌보는 것은 모두 동일한 일로 간주할 수 할 수 있다. p324 " 나도 상대방도 15달러씩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세상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의심했던 것을 책을 읽으며 확장하고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흔치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되어 즐거웠다.

 " 우리 가족은 이 일을 시작했다. 만약 내가 아이들 앞에서 사람들 불평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한 긍정적인 일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공원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가리키며 불만을 내뱉었다면 공원을 깨끗이 청소하는 많은 자원봉사자 얘기를 해야 하는 식이다. 지난주에는 혼잡한 거리에서 공사장 차량 뒤에 서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옆 차선 차량이 멈춰준 덕에 차선을 바꿀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작은 친절은 바쁜 아침 시간에 그냥 잊어비리기 십상인데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속도를 줄여 멈춰준 덕분에 서로 도움이 됐다고 설명해줬다. 이런 예는 별것 아니게 느껴질지 모르고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날카로운 과학자라 어른의 말을 통해 세상이 어떤 곳인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친절히 협력하는 사람을 찾으면서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세계관을 심어주려 노력하는 와중에 나는 뭔가 색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말하는 습관이 마음의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P115 "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긴 시간동안 치열하게 읽어나갔는데, 이 내용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이 작년의 핵심단어 중 하나인 '럭키비키'였다. 불운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처음엔 희망과 회의론자라는 조합이 있을 수 있나 싶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과 밀접한 생각과 경우를 발견해나가니 생각하려 하지 않았을 뿐 충분히 가능했다는 걸 확인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고백하건데 아주 오랜 시간동안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가졌다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게 과거에는 쿨cool했고, 현재에는 칠chill해보였다. 어리숙하게 남을 믿어서 손해를 보고, 가진 것을 전부 다 투자해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사람들보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자신이 더 낫다고 여겼다. '그것 봐' 사리에 맞게 계산을 잘해서 손해안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내가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이 전부 경험이고 자양분이었다. 그때 해봤어도 될 노력이었고 실패였다. 참 늦게 깨달았다. 아직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런 태도를 바꾸고 싶어졌다.

 '희망찬 회의론자'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미래의 자신을 그리고 싶었다. 삶과 사람의 마음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기대만큼 선명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냉소주의의 터널에서 벗어날 만큼의 빛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회의론자를 위한 희망의 밝기는 이 정도여야 눈이 부시거나 놀라 달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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