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망찬 회의론자 - 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희망의 과학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5년 2월
평점 :
" '속설 2 냉소주의는 안전하다' 모든 신뢰 행위는 사회적 도박이다. 자기 돈이나 비밀, 안녕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면 이들이 우리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남을 신뢰하는 사람 대부분은 어느 시점에 상처를 입는다. 이런 순간이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이면 남을 믿는 모험을 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남을 절대 신뢰하지 않으니 냉소론자는 뭔가 잃을 게 없다.이들은 절대 이길 일도 없다.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는 행위는 포커를 할 때 카드를 읽지도 않고 판을 접는 것과 같다. 냉소주의는 포식자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만 신뢰가 요구되는 협력과 사랑, 공동체를 이룰 기회의 문도 닫아버린다.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해도 기회의 문을 좀 더 열었다면 사귈 수 있었던 친구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다. p17 "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한 태도였다. 상처를 받고 실패를 경험했단 이유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 회의론자, 세상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성적인 체 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책에서처럼 스스로를 냉소적이라고 여기고, 타인은 차갑고 냉정하며 세상이 점점 더 암울하게 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진짜 내가 생각하는 전부였을까? 그렇다면 굳이 '희망찬 회의론자'를 읽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선함을 추구하고 타인에게 친절하며 좋은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이면이 있기 때문에 더이상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400쪽이 넘는 벽돌에 살짝 가까운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보일 듯 하던 출구의 빛이 다시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비슷한 내용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 같았고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길을 걷다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외진 길이 있다. 한 구역 전체가 재개발 예정이 되어 있어 2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지나야 하는 긴 길목 전체가 빈집으로 채워진 길이다. 중간중간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샛길은 철골과 큰 천막으로 막아두었고 빈 집의 닫힌 대문들마다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외진 길은 옆동네로 가는 가장 빠른길이라 삭막하고 불안한 여건이긴 하지만 종종 이용하게 된다. 길을 지날때 대부분은 경찰차가 지나가거나 중간쯤 길 가에 세워져있는 것을 보면 대낮에도 적지 않은 횟수로 순찰을 다니는 듯 하다. 군데군데 빈집의 창문이 깨져있고 스프레이로 알 수 없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기도 한 그 길을 지나면서 악한 사람을 만날까봐 불안한 한 편, 다른 행인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되곤 한다. 불안함은 막연한 것이고 안심은 실재적이다. 맞은편에 나와 같이 걸음을 재촉하는 타인, 나의 존재를 흘끗 확인하고 무관심한듯 평이하게 거리를 두고 지나치는 타인의 모습에서 암묵적인 신뢰와 공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사소한 것이었지만 다시 책의 앞부분에서 보았던 '10달러 투자 게임 P40'을 떠올려보니 5달러만큼 더 마음이 변해있었다. " 이 외에 '우분투'라는 반투 개념, 즉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철학이 따라 살아가는 이가 수백만 명도 더 된다. 특히 서구 지역 밖의 사람들은 이웃과 조상, 후손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비교해보면 호모이코노미쿠스처럼 사는 삶은 선택적이며 외롭고 비극적이다. 끝없는 탐욕은 우리 안에 고착된 본성이 아니다. 우리는 본래 이 행성의 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자신과 서로를 위하고 또 미래를 돌보는 것은 모두 동일한 일로 간주할 수 할 수 있다. p324 " 나도 상대방도 15달러씩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세상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의심했던 것을 책을 읽으며 확장하고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흔치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되어 즐거웠다.
" 우리 가족은 이 일을 시작했다. 만약 내가 아이들 앞에서 사람들 불평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한 긍정적인 일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공원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가리키며 불만을 내뱉었다면 공원을 깨끗이 청소하는 많은 자원봉사자 얘기를 해야 하는 식이다. 지난주에는 혼잡한 거리에서 공사장 차량 뒤에 서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옆 차선 차량이 멈춰준 덕에 차선을 바꿀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작은 친절은 바쁜 아침 시간에 그냥 잊어비리기 십상인데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속도를 줄여 멈춰준 덕분에 서로 도움이 됐다고 설명해줬다. 이런 예는 별것 아니게 느껴질지 모르고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날카로운 과학자라 어른의 말을 통해 세상이 어떤 곳인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친절히 협력하는 사람을 찾으면서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세계관을 심어주려 노력하는 와중에 나는 뭔가 색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말하는 습관이 마음의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P115 "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긴 시간동안 치열하게 읽어나갔는데, 이 내용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이 작년의 핵심단어 중 하나인 '럭키비키'였다. 불운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처음엔 희망과 회의론자라는 조합이 있을 수 있나 싶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과 밀접한 생각과 경우를 발견해나가니 생각하려 하지 않았을 뿐 충분히 가능했다는 걸 확인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고백하건데 아주 오랜 시간동안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가졌다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게 과거에는 쿨cool했고, 현재에는 칠chill해보였다. 어리숙하게 남을 믿어서 손해를 보고, 가진 것을 전부 다 투자해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사람들보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자신이 더 낫다고 여겼다. '그것 봐' 사리에 맞게 계산을 잘해서 손해안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내가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이 전부 경험이고 자양분이었다. 그때 해봤어도 될 노력이었고 실패였다. 참 늦게 깨달았다. 아직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런 태도를 바꾸고 싶어졌다.
'희망찬 회의론자'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미래의 자신을 그리고 싶었다. 삶과 사람의 마음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기대만큼 선명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냉소주의의 터널에서 벗어날 만큼의 빛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회의론자를 위한 희망의 밝기는 이 정도여야 눈이 부시거나 놀라 달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