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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ㅣ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내용이 공직에 오른 사람이 갖춰야 할 처신인지라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함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받은
서신을 읽을 때는 관용초를 끄고 개인초를 켜서 읽었다는(p87 율기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 내용은 인상적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개인 전자기기 충전을 금지한다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선 역시 한국인이라 이는 '지나치'긴 하단 내용도 덧붙여져 있어 재밌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어도 공공의 물품을 아끼고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편의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소확횡'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사회 분위기에 반해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깨닫게 된다.
여러모로 자극이 되고 생각할 점이 많지만 모든 내용이 교훈적으로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바야흐로 힘써야 하는데 어찌 남을 책망하겠는가? 나를 예로써 규율하고 남을 보통사람으로 기대하는 것이 원망을 사지 않는 길이다. p73 율기 3. 집안을 다스림 " 같은 내용에서 남=백성=사람 들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한정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언뜻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게 대하라는 의미로 보이지만 " 백성들은 조, 쌀, 실, 삼 등을 내어서 위를 섬기는 것을 본분으로 여기기 때문에p120", "백성이란 즐거워도 머물러 있고 괴로워도 떠나지 못한다. 몸이 토지에 박혀 마치 밧줄에 묶여 매를 맞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p69" 같이 애민과 우민의 사이에서 사람에게는 계급이 있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과 소양이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이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의외로 외모에 관해 박하게 평하고 구분짓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 가장 불쌍한 것은 못생긴 수급비이다. p176 / 무릇 사람 보는 법은 본래 위엄 있는 모습에 있다. 무인은 용모와 풍채가 더욱 중요하다. 키가 난쟁이 같고 누추하기가 농사꾼 같으며, 물고기 업에 개 이마를 가져 그 모습이 괴상한 사람은 앞에 나란히 세워서 백성들을 대하기 어렵다. p179 이전 6조 3. 사람 쓰기 " 다른 부분들은 지나치리만큼 공정하게 처신해야 함을 강조하는데 이런 민감한 내용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있는 점이 달라진 시대와 인식을 느끼게 해준다.
목민심서를 두고 오랜만에 필사를 시작했다. 한동안 필기구를 잡지 않은 손에서 펜이 헛돌았다. 읽는 중간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손에 힘을 주어 따라 적으면서도 속으로는 더 보기 좋게 쓰고 싶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내 것은 형편없어 보여 공개하고 싶지 않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또 시작한 필사를 금방 그만두게 될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때 "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고 한다. p28 부임 6조 2. 부임하는 행장 꾸리기 " 는 문장을 떠올렸다. 남의 눈에 보기 좋게 꾸며보이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자고, 아무리 꾸며도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눈에도 가치없음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됐다.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는 벗어나고 시대를 넘나들며 관통하는 삶의 지혜에는 감탄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고전 읽기, 필사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목민심서로 시작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