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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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투모로우'에서 이상기온 때문에 뉴욕이 물에 잠기고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주인공 일행이 뉴욕 공립 도서관으로 몸을 피하는 내용이 나온다. 도서관은 튼튼하게 지어졌으며 충분한 대피 공간이 있고 유사시 활용할 땔감(!)들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세상이 망하게 될 만한 상황에서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올린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기록해둔 도서관의 실용성이었다. 새로 생기는 도서관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필수로 봐야할 영화로 투모로우를 꼽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재난이 오면 어쩌면 도서관이 가장 최후까지 남을 공간이 될 것 같아 도서관에 가서 숨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도서관으로 도망가야지, 계획을 세우는 것은 둘째치고 하다하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어왔으니 너네 집은 어떠냐며 호구조사를 좀 해봐도 그렇게 큰 실례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종종 도서관의 책들을 데리고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다시 들여보내는 산책을 함께 해놓고, 지금껏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외려 무심했을지도 모른다.

 배우고 담은 것이 많은 댁이라 그런가 책들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역사는 깊다. 그리고 대부분 오랜 시간을 굵직한 사건들 틈에 자리하고 있어 굴곡있는 여정을 지나왔다. 그토록 역사적인 도서관들은 어김없이 일제의 횡포 아래 명맥이 끊겨 있거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오점을 달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대학도서관을 갖지 못한 이유(p29)"는 소제목만 봐도 또 일본이구나 싶어진다. 책을 펼치고 백여 쪽을 읽는 내내 도서관이 외압과 매국에 시달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쓰고 있는 도서관과 사서라는 단어조차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용어(p394)"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의 수난은 강점기가 지나고 나서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잖는가. 평화로운 미국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배경으로 도서관이 쓰이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가진 우리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피난처이자 싸움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담고 있는 책의 보관처가 아니라, " '투쟁의 현장'으로, '민주화의 무대'로 기능(p255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던 시절)"했다. 이 역사는 다시 기록이 되어 도서관에 남겨져있다.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국가도서관'의 기능과 의의를 꼬집은 내용(p338 한국에 '국가도서관'이 많은 이유?)이다. 대학도서관이 가진 역사와 상징성을 잘 보여주었던 것처럼 국가도서관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 또한 잘 정리했다. 특히나 우리 세금으로 운영이 되는 시설이니(p366) 이용률은 적으면서 '관장' 직위나 문제시 되는 현실을 알게되는 꽤 불만스럽다. 도서관이란 시설은 그 자체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서 그저 역사성이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고 가까운 몇 곳을 직접 방문해보면 좋겠다는 가벼운 기대를 했는데 북한(p368)이나 개신교(p426)와 관련된 내용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북한 도서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니(p384). 책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지만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문화를 조성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어렸을 때 동네 주민센터 이층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 크기 공간 안에 서너줄 쯤 되어 보이는 칸막이 책상들이 있고 사방 벽에 이러저러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침묵이 내려 앉은 작은 도서관은 갑갑했지만 그 안에 있는 책들 아무거나 마음대로 가져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어떤 책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도서관의 분위기만은 아직도 기억 난다.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하러 곧잘 찾아갔지만 더 시간이 지나 주민센터의 이름이 몇 번 바뀌면서 이층의 도서관이 없어지고 휴게공간으로 바뀌었단 소식을 듣고 섭섭했었다. 박완서라는 작가를 탄생시킨 "어린 날의 찬란한 빛(p418)"까지 되지는 않지만, 그 작은 도서관의 존재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점을 남기는데 분명한 도움이 되었다. 요즘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사람들의 마음이 식고 생각이 굳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사유하도록 해야 할 텐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으며 도서관이 어떤 때에 힘든 시기를 지나왔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특히 경복구의 집옥재를 수식하는 '작은 도서관'과 "주인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나라는 어떻게 될까(p275)"는 내용은 요즘의 상황을 연상토록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이용자들이 안타까워하는,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크게 체감하는 작은 도서관들의 고난은 지금 우리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1873년 프랑스 해군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 기록에 따르면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남의 나라에 싸우러 와서 잘도 봤네 싶지만, 인상적인 기록이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이 드물다. 독서가 우리에게 자극을 주기까지 속도가 느리고, 직관적이고 공감각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번거로운 이해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겠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에 대한 열망이 사그러진 것만은 아니다. 도서전에 가는 것을 팝업스토어를 찾는 것처럼 힙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십수년 전에 독서 열풍을 일으킨 독서장려 티비 프로그램 재방영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세계적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관심으로 서점에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읽는다. 도서관이 시대의 굴곡에도 종하지 않고 그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나간 것 처럼, 책을 읽는다는 오래된 행위는 앞으로도 그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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