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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기억이 맞다면, 작가 방미진의 글은 처음 접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미진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아보았는데 작품에 자신만의 색을 분명하게 입히는, 존재감있는 작가인 듯 하다. 젊은 작가인 것 같아서 얼굴도 찾아보니 약간, 미묘. 꽤 쿨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토 준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더 생겼다. 그래서 이번 책의 분위기도 괴괴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용이 고등학생이면서 또 예체능을 하는 여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전설이 된 공포영화 여고괴담도 떠오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고괴담의 여우계단 편과 비슷하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 질투를 못 이겨 여우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던 여학생들. '괴담' 역시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쳐나간 다른 열매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이 인물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 무리들 사이를 유독 눈에 띄는 여자아이 하나가 걷고 있다. 소녀와 여인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다. 얼굴은 조그맣고 이목구비는 서양 인형처럼 또렷하고 입체적이다. 큰 눈과 대조적으로 작은 입술 때문에 앳된 느낌이 든다. 그에 반해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발육이 좋은 몸은 여성스러움을 넘어 육감적이다. 옆 가르마를 타 얼굴 위로 드리운 긴 생머리는 도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연두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자세한 것 같으면서도 꽤 흔한 묘사의 일부인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다. 인물에 대해 자세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지게끔 묘사를 해두는 것, 그래서 마음껏 이상적인 인물을 그려내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인물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들어간 부분이 꽤 된다. 거기에 인물들의 외모가 범상치 않는 면이 많다. 지연이의 외모에 대한 묘사에서도 '얼음 공주'라 불릴 만한 이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외모임을 부각했고, 치한 역시 혼혈로 오해받을 정도의 다갈색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아이돌과다. 거기에 인주는 같이 다니던 연두나 지연이의 외모에 비해 지나치게 못난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지상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가 우월한 쪽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인 것인지 이런 묘사를 거치고 나면 인주나 보영, 미래 등의 인물보다 확실히 화려함이 더 부각되는 연두나 지연에게로 관심이 더 옮아가게 된다.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 사이의 다툼을 즐기듯한 시점으로.
또 하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와 내면에 대한 냉정한 폭로이다. 책 속의 관계는 삼각형을 기본으로 한다. 연두-지연-인주 이 세 프리마돈나의 치열한 경쟁, 보영-치한-미래 세 사람의 트리플 연애, 연두-연지-엄마의 한 가족 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삼각관계 등이 주요 골자를 이룬다. 외모가 빼어난 연두, 집안이 좋은 지연, 재능이 뛰어난 인주 세 사람이 음악 선생 경민에 의해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괴담이 본격적인 유혹의 손길을 뻗기 시작한다. 가장 뛰어난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욕망이 이 아이들을 경쟁하도록 만들고, 결국 인주가 그 첫번째 희생양이 되어 연못의 물 위로 떠오른다.
보영과 치한, 미래는 커플이 아닌 트리플이란 관계로 그려지는데, 사실 삼각형은 꽤 안정적인 구조를 가진 모습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매우 불균형적인 관계의 구조가 된다. 특히 남녀가 서로 얽혀있을 때는 더욱. 결국 이들도 괴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세사람 만의 관계를 완벽하게 여겼던 보영과, 자신에 대해 생각할수록 보영을 향한 질투를 접을 수 없었던 미래는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심하게 되고 치한을 사이에 둔 두 여자아이는 반짝이는 플래시 불빛과 함께 괴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자매인 연두와 연지 역시 형제자매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경쟁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쁜 연두와 뚱한 태도에 빼어난 점이 없는 연지라는 설정만으로도 두 사람의 갈등이 느껴진다. 거기에 연두에게 집중된 엄마의 관심은, 자매 사이에 드러난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점은 연두와 연지가 동기간에 있을 흔한 애증의 느낌도 잘 드러나지 않게 건조한 사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쌓여있다기 보다는 귀찮음과 무관심, 미움이 더욱 많이 느껴진다. 연두를 보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연두와 닮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는 연지 역시 그런 성향이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이런 점은 닮았다고 느껴지도록.
마지막으로, 인물에 대한 설정을 꽤 명확한 개성을 갖도록 한 점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 명확함이 오히려 정형화 된 틀로 보이기도 해서 단점도 된다. 연두에 대한 묘사는 차갑고 이기적인 미소녀의 전형을 보인다.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의식하면서도 그 바탕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점이나, 자신의 장점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지연은 높은 프라이드 안에 가득한 열등감, 부족한 자존감이 돋보이는 아이다. 가진 것이 적지 않으나 부족한 것에 연연하는 태도, 그로인해 자신을 높이고 사랑하는 방법이 굴절된 형태로 나타나는 점이 인상적인 인물이다. 지연에게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주처럼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기 보다 대부분 지연처럼 노력형 인재가 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니. 인주는 외모도 집안도 별로이지만 숨겨진 재능을 가진 아이로 그 안에 나도 꿈을 펼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을 가진, 재능 외에는 보통의 아이로 그려진다.
보영의 경우 외모보다는 약간 백치미가 느껴질 정도로 순진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눈을 가진 관찰자로 그려진다. 경민은 선생이면서도 굴절된 자기 연민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이란 존재도 남을 질투하는 마음에 앞서 시기하느라 여념없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 캐릭터에 속시원해 할 청소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인기있을 것 같은 인물은 미래. 평범하기로는 이 중에서 제일일듯한데, 그 평범함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숨기려는 태도도 평범하고, 또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자각하고 있는 점이 애처롭기도 하다. 미래가 보영을 질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 너무나 싫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좀 더 어른이 된다면 평범함의 소중함도 알 수 있을텐데. 여기에 치한과 요한 형제도 독특한 인물로 더해진다.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요한,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듯한 치한의 극단성이 독특하다.
책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은 오페라 '마술 피리'의 등장이다. 책에서도 언급됐듯이 마술 피리하면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대표적인데, 사실 밤의 여왕은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인 파미나 공주의 엄마로 악역이라는 설명이 들어간다. 하지만 나도 이 오페라를 볼 때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부분만 몇 번이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 '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하는... 밤의 여왕과 파미나의 관계와 함께 연두와 지연의 관계가 묘사되는 부분이 많아 프리마돈나와 세콘다돈나의 자리를 두고 누구의 욕망-아리아-가 더욱 강렬하게 돋보이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는 오페라 '라 보엠'의 '내 이름은 미미'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모르는 작품이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냥 넘어간다. 지식은 얕더라도 넓게 분포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이 부분에서 또다시 얻게 된다.

표지의 그림도 그렇고, 각 부 사이를 구분하는 장 마다 이렇게 기괴함이 느껴지는 무늬가 들어가있다. 디테일에 충실한 점이 느껴진다. 내용적인 면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점은 167쪽의 5번째 줄에 오자가 있었다는 것. 다음 판 본에서는 수정되어 나오길-
괴담이라고 하지만 진짜 섬뜩한 것은 괴담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 자리잡은 차갑고도 뜨거운, 끈적한 감정의 소용돌이이다. 다른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고 하는 말처럼. 아마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 역시 읽으면서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색의 감정들을 자각하게 된다면 한결 더 읽기 두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