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이력이 독특하다. 2010년에 일본에 더 큰 감동을! 이란 취지로 만들어진 일본감동대상의 1회 대상을 수상한 실화 소설이라고 한다. 때문에 주인공은 바로 곧 작가가 되고, 그녀는 얼굴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경쟁률이 무려 1046:1이었다고 하니 이 책은, 많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준 책 임에 분명하다. 그녀가 필명이자 호스티스의 가명으로 정한 아마리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여분, 나머지를 뜻한다고 한다. 스물아홉 생일에 1년 후 죽기로 결심한 여자에게 남아있는 나머지 삶. 그 여분을 아마리가 전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 울려고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볼 위로 주르륵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안돼!'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한 줄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흐르고 또 흘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스물 아홉 생일을 맞은 아마리는 혼자다. 그녀는 초라한 조각 케익을 앞에 두고 텅 빈 방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녀는 케익 위에 놓인 딸기를 먹으려다 놓치고 만다. 떨어진 딸기가 아까워 더러워진 그것을 주워 씻어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울고 있는 방 안에서 오로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켜져있는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가운데, 고독하고 슬픈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듯이. 그리고 바로 이 날, 아마리는 이런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딱 1년만 더 살고 서른이 되는 날 죽기로 결심한다. 광고에서 봤던 라스베가스로 떠나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고 인생을 건 도박을 하고 난 다음, 미련없이 죽기로.

 

아마리에 대한 묘사는 꽤 짧고 의기소침하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서 손에 꼽듯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케익을 먹으려고 할 때 말했듯,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먼저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그 부분을 보면서, 그녀가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인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재빨리 즐길 줄 아는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주 진취적이기도 하고. 최후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놔두는 계획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좀 다른 면이 있고, 그녀의 그런 면모는 그녀가 겪은 좌절로 인해 가려져 있을 뿐 어딘가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딸기를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작은 부분은 그녀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날, 단골손님이 쌍둥이 남자 손님 두 명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정말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했다. 하지만 치카만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요?"하고 말했다. 우리는 놀랐지만 쌍둥이 손님들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지. 그런데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개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군 그래." 치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마리는 라스베가스에 가기 위해 돈을 필사적으로 모으게 되는데 삶에 대한 미련이 없고 대신, 골이 분명한 목표가 생기다보니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게 된다.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자신을 평가했으면서도 놀라운 추진력으로 긴자의 호스티스 자리를 구하게 되거나,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있게 포즈를 취해야 하는 누드모델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구한 직업들만이 아니라, 그녀가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세 역시 달라진다. 일과 자기 관리에 철저해지게 된다. 목표가 생긴 사람들은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겠지.

 

위의 치카에 대한 언급도 긴자에서 호스티스를 하게 되며 알게 된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치카는 매우 인기있는 호스티스인데, 그녀가 가진 매력적인 외모나 지적인 면모 외에도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배려,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인정받고 싶어하는 면을 생각하고 바로 그 점을 짚어주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특히 남과 다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저 일화가 더 크게 부각되어 인상에 남는다. 아마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변화라는 것은 정말 이렇게 자신의 한 걸음으로 시작되는 사소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을 새삼 느꼈다.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나 자신이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다. 안정이라는 것이 가장 달콤한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그 열매가 사실은 나를 안정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가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죽게 되듯이. 힘든 일은 도리어 사람을 강하고 굳세게 만드는 것 같다. 반대에 부딛힌 연인들이, 평온한 상태의 연인들보다 더 굳세어지는 것처럼.

 

아마리는 결국 목표를 이루어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라스베가스에 갔고, 인생을 건 도박을 했다. 그것도 꽤 영리하고 멋지게.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 후를 바라보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아마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의 삶이 멈추지 않기를 기대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희망을 주는 책이기 이전에 희망을 갖고 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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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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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책이었다. 마르셀, 장, 닥터 정, 마쓰코 네 사람이 연주하는 이야기는 단조가 많은, 음울하면서도 관능적인 곡이었다. 관능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도 잦았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사실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인물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면모를 보인다. 그런 네 사람이 우연인듯이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 얽히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가느다란 실타래가 서서히 얽혀들어가는 매듭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라디오에서 폭탄이 내린다고 했다. 폭탄. 그녀의 귓속으로 또 다른 레퀴엠이 쇳소리를 내며 찌르르 파고들었다. ...중략... 갑자기 웬 눈 폭탄이지! 그리고 그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폭설이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눈에다 폭탄이라는 말을 연결시키는 나라.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고 마음을 놓았다."

 

한국에 온 마르셀이 말하는 한국에 대한 첫 감상,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에는 분단 국가라는 이야기와 북한, 핵, 뭐 이런 얘기들이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폭탄이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언어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이 곁들여진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아 걱정하는게 외국인들이 가진 분단 국가의 이미지인가. 사실 그런 걸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니 새삼스럽다. 더불어, 다소 거친 편이 분명한 우리의 언어 습관도 함께 염려되고.

 

그녀가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르셀이 한국으로 오고, 장을 만나고, 또 닥터 정에게 찾아가게 되고, 닥터 정이 마르셀을 만나게 되면서 마쓰코의 존재가 환기되고, 그들의 연결고리를 따라 장도 닥터 정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들은 다시 마르셀과 마쓰코의 흔적을 찾아 나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서로 앞에 나타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미술품 중개업을 하던 한 프랑스인 부부가 갓 태어난 영아를 연달아 세 번이나 죽이고 앞마당에 묻고는 그것이 발각되자 프랑스로 달아난 일이 있었다. 아빠는 프랑스인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거라 보증하고 슬픔에 빠진 그들을 돌아가게 해줬는데 그들은 그 뒤로 행적을 감춰버렸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 세 구만 덩그러니 남아 그의 책임을 물었다."

 

이 책이 가진 특징 중 하나가 현실과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맞닿아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과거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마치 이 소설이 그 과거 속이 어느 부분으로 존재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는 자칫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 못할 길에 빠지게 된다. 기억에 맞다면 위의 부분과 같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꽤 끔찍한 사건으로 다뤄지면서 충격을 줬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과 마르셀의 아버지 사이에 연관성을 두면서 현실을 끌어들여 묘한 구체성, 현실감을 준다. 진짜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도록.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혹은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처들이 광복이 되자 달라진 처지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자녀도 빼앗기고 남편과 그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일본의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주변의 한국인들로부터도 소외당한 채, 가해자이면서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 전라도 어디와 경상도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경주 어디의 요양시설에 최후의 몇 사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장의 배경도 그렇고 마쓰코도 그렇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묘함에 대해서도 꽤 깊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일본 안에서 자신의 절반쯤이 혹은 그 이상이나 이하의 부분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그게 더 살아가는 것을 쉽게 만들기 때문이고- 또 일제 강점기 이후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 일례를 들어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 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그닥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기 어려운 면이 있다. 좀 껄끄럽다. 아마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작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반대적인 표현으로도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경멸과 깔봄이 있다고 함께 언급했는데, 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야기였다.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있듯이, 이들도 상처를 가진 네명의 남녀들이고, 그들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다른 색을 띄는 감정으로 여겨진다. 보기와는 다른, 다른 것들과도 또 다른,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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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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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이 맞다면, 작가 방미진의 글은 처음 접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미진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아보았는데 작품에 자신만의 색을 분명하게 입히는, 존재감있는 작가인 듯 하다. 젊은 작가인 것 같아서 얼굴도 찾아보니 약간, 미묘. 꽤 쿨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토 준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더 생겼다. 그래서 이번 책의 분위기도 괴괴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용이 고등학생이면서 또 예체능을 하는 여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전설이 된 공포영화 여고괴담도 떠오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고괴담의 여우계단 편과 비슷하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 질투를 못 이겨 여우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던 여학생들. '괴담' 역시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쳐나간 다른 열매이다.

 

 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이 인물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 무리들 사이를 유독 눈에 띄는 여자아이 하나가 걷고 있다. 소녀와 여인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다. 얼굴은 조그맣고 이목구비는 서양 인형처럼 또렷하고 입체적이다. 큰 눈과 대조적으로 작은 입술 때문에 앳된 느낌이 든다. 그에 반해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발육이 좋은 몸은 여성스러움을 넘어 육감적이다. 옆 가르마를 타 얼굴 위로 드리운 긴 생머리는 도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연두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자세한 것 같으면서도 꽤 흔한 묘사의 일부인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다. 인물에 대해 자세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지게끔 묘사를 해두는 것, 그래서 마음껏 이상적인 인물을 그려내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인물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들어간 부분이 꽤 된다. 거기에 인물들의 외모가 범상치 않는 면이 많다. 지연이의 외모에 대한 묘사에서도 '얼음 공주'라 불릴 만한 이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외모임을 부각했고, 치한 역시 혼혈로 오해받을 정도의 다갈색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아이돌과다. 거기에 인주는 같이 다니던 연두나 지연이의 외모에 비해 지나치게 못난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지상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가 우월한 쪽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인 것인지 이런 묘사를 거치고 나면 인주나 보영, 미래 등의 인물보다 확실히 화려함이 더 부각되는 연두나 지연에게로 관심이 더 옮아가게 된다.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 사이의 다툼을 즐기듯한 시점으로. 

 

  하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와 내면에 대한 냉정한 폭로이다. 책 속의 관계는 삼각형을 기본으로 한다. 연두-지연-인주 이 세 프리마돈나의 치열한 경쟁, 보영-치한-미래 세 사람의 트리플 연애, 연두-연지-엄마의 한 가족 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삼각관계 등이 주요 골자를 이룬다. 외모가 빼어난 연두, 집안이 좋은 지연, 재능이 뛰어난 인주 세 사람이 음악 선생 경민에 의해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괴담이 본격적인 유혹의 손길을 뻗기 시작한다. 가장 뛰어난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욕망이 이 아이들을 경쟁하도록 만들고, 결국 인주가 그 첫번째 희생양이 되어 연못의 물 위로 떠오른다.

 보영과 치한, 미래는 커플이 아닌 트리플이란 관계로 그려지는데, 사실 삼각형은 꽤 안정적인 구조를 가진 모습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매우 불균형적인 관계의 구조가 된다. 특히 남녀가 서로 얽혀있을 때는 더욱. 결국 이들도 괴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세사람 만의 관계를 완벽하게 여겼던 보영과, 자신에 대해 생각할수록 보영을 향한 질투를 접을 수 없었던 미래는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심하게 되고 치한을 사이에 둔 두 여자아이는 반짝이는 플래시 불빛과 함께 괴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자매인 연두와 연지 역시 형제자매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경쟁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쁜 연두와 뚱한 태도에 빼어난 점이 없는 연지라는 설정만으로도 두 사람의 갈등이 느껴진다. 거기에 연두에게 집중된 엄마의 관심은, 자매 사이에 드러난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점은 연두와 연지가 동기간에 있을 흔한 애증의 느낌도 잘 드러나지 않게 건조한 사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쌓여있다기 보다는 귀찮음과 무관심, 미움이 더욱 많이 느껴진다. 연두를 보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연두와 닮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는 연지 역시 그런 성향이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이런 점은 닮았다고 느껴지도록.

 

 지막으로, 인물에 대한 설정을 꽤 명확한 개성을 갖도록 한 점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 명확함이 오히려 정형화 된 틀로 보이기도 해서 단점도 된다. 연두에 대한 묘사는 차갑고 이기적인 미소녀의 전형을 보인다.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의식하면서도 그 바탕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점이나, 자신의 장점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지연은 높은 프라이드 안에 가득한 열등감, 부족한 자존감이 돋보이는 아이다. 가진 것이 적지 않으나 부족한 것에 연연하는 태도, 그로인해 자신을 높이고 사랑하는 방법이 굴절된 형태로 나타나는 점이 인상적인 인물이다. 지연에게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주처럼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기 보다 대부분 지연처럼 노력형 인재가 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니. 인주는 외모도 집안도 별로이지만 숨겨진 재능을 가진 아이로 그 안에 나도 꿈을 펼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을 가진, 재능 외에는 보통의 아이로 그려진다.

 보영의 경우 외모보다는 약간 백치미가 느껴질 정도로 순진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눈을 가진 관찰자로 그려진다. 경민은 선생이면서도 굴절된 자기 연민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이란 존재도 남을 질투하는 마음에 앞서 시기하느라 여념없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 캐릭터에 속시원해 할 청소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인기있을 것 같은 인물은 미래. 평범하기로는 이 중에서 제일일듯한데, 그 평범함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숨기려는 태도도 평범하고, 또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자각하고 있는 점이 애처롭기도 하다. 미래가 보영을 질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 너무나 싫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다. 좀 더 어른이 된다면 평범함의 소중함도 알 수 있을텐데. 여기에 치한과 요한 형제도 독특한 인물로 더해진다.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요한,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듯한 치한의 극단성이 독특하다.

 

 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은 오페라 '마술 피리'의 등장이다. 책에서도 언급됐듯이 마술 피리하면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대표적인데, 사실 밤의 여왕은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인 파미나 공주의 엄마로 악역이라는 설명이 들어간다. 하지만 나도 이 오페라를 볼 때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부분만 몇 번이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 '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하는... 밤의 여왕과 파미나의 관계와 함께 연두와 지연의 관계가 묘사되는 부분이 많아 프리마돈나와 세콘다돈나의 자리를 두고 누구의 욕망-아리아-가 더욱 강렬하게 돋보이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는 오페라 '라 보엠'의 '내 이름은 미미'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모르는 작품이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냥 넘어간다. 지식은 얕더라도 넓게 분포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이 부분에서 또다시 얻게 된다.

 

 

 지의 그림도 그렇고, 각 부 사이를 구분하는 장 마다 이렇게 기괴함이 느껴지는 무늬가 들어가있다. 디테일에 충실한 점이 느껴진다. 내용적인 면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점은 167쪽의 5번째 줄에 오자가 있었다는 것. 다음 판 본에서는 수정되어 나오길-

 괴담이라고 하지만 진짜 섬뜩한 것은 괴담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 자리잡은 차갑고도 뜨거운, 끈적한 감정의 소용돌이이다. 다른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고 하는 말처럼. 아마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 역시 읽으면서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색의 감정들을 자각하게 된다면 한결 더 읽기 두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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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편집자 2012-08-0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서평 감사합니다. <괴담>을 진행한 담당편집자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네요. 167페이지 부분은 2쇄 때 꼭 수정하겠습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테일 2012-08-09 09:59   좋아요 0 | URL
책 재미있는데 좋은 평도 많이 받고, 많은 청소년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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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를 다시 만났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하고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바로 그, '냉정과 열정 사이'부터이다. 그 뒤로 그녀의 작품들은 차례로 발표되었고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글은 약간 나른한 느낌이 감도는 감성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좀 다르다. 서늘하고 기괴한 느낌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첫 단편부터 알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되어서 그런지, 수박 향기라는 제목을 압도하는 강렬한 대비의 그림탓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에쿠니 가오리를 만난 기분이다.

 

 첫번째, 수박 향기..

이 단편을 읽으면서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라는 추리 소설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 약혼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종내 미스터리어스한 외딴 곳의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섬에서, 서로 몸이 붙은 채 갖혀있는 남녀를 만나게 된다. 는 스포일러. 그런데 이 책에서도 쁘띠 가출을 하게 된 '나'는 어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미노루와 히로시라는, 샴 쌍둥이 소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이 사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되는데 약간은 생소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세번째, 물의 고리..

매미의 울음소리를, 올 여름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소설은 매미 소리와 관련된 단편으로 매미의 울음소리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우리말로 바뀌면서 그런 식으로 표현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어로도 같은 뜻을 가진 음으로 표현이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야기의 흐름도 별다른 데가 없는데, 달팽이를 죽이면서 느낀 죄책감과 이상한 소문이 난 남자아이, 그리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 단편이었다.

 

 열번째, 하루카..

이 단편은 여자아이의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라는 다소 소녀적이고 공상 가득한 바람이 얼마나 섬뜩하고 무심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같다. 아픈 동생을 망가졌다"고 표현하거나, 지나가던 남자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서도 태연자약하게 사탕의 포장을 묘사하는 점이 그랬다. 어떤 의미로는 이 단편이 가장 '차갑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책과 함께 '함부로 애틋하게'의 일러스트가 담긴 책갈피가 왔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소개를 봤을 때도 느꼈는데 그림이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구들도 하나씩 적혀있었는데 중2스러운 문구도 있어서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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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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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인 정혜윤의 책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이 번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만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책이라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특히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담담하면서 조근한 어투처럼 느껴지는 문체인데, 비슷한 투로는 영화평론계의 아이돌 이동진 기자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한 분야에 조예가 있고, 그것을 일반 대중의 구미에 맞게 변환하여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냥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먹보는 먹보같이 사랑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이기적으로 사랑하고, 계산적인 사람은 계산적으로 사랑하고, 깨끗한 사람은 깨끗하게 사랑하겠구나.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아주 좋아하면 세상만사를 그걸로 설명할 수도 있구나.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돈을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세상이 온통 돈으로 보인다고. 그때 이후로 줄곧 제게 남은 문제는 하나였던 것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책은 인상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 인상적인 부분들이 모여서 읽는 이를 감화시키기에 이른다.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강력한 힘을 가진 말로 바꿀 수 있는 것도 그녀가 가진 하나의 힘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의 형태에 어떤 불만이 있는 사람이 이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먼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인 것이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볼 것인지가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를 많은 소설이 서투름이라고 설명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서툴러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주장하는 개인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 혼자서만 잘해라, 네 힘으로 스스로를 돌봐라, 라는 말을 넘치도록 듣고 살아서입니다. 이제 연인들은 서로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헤어집니다. 어떻게 서로 힘이 될까 생각하기에 우린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너무나 솔직하고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가 서투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나에게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하지만 내가 더 소중해'라고 하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상대방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헤어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슬픈 미담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혜윤은 누가 누구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조차도 개인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완고한 말인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린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죠? 다른 방식의 위로란 것도 있을까요? 고통이 잊을 수 없는 거라면 우린 조금 욕심을 부려야만 합니다. 좋아, 너에게서 내가 의미를 끌어내 보겠다. 너를 승화시켜 보겠다, 너랑 싸워 보겠다,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고통은 없다는 듯이 굴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오만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자신의 고통에도, 타인의 고통에도 상처 받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고통을 받았을 때, 괴로운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것을 외면하는 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오만했다기 보다는 그것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직시할 수 없어서 모른척 덮어두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고통, 슬픔들을 그러안고 있다보니 이제는 어디더라도 익명의 상대에게 털어라도 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고통을 직시하고 맞서 싸울 용기는 없다. 하지만 외면하는 행동만은 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삶을 바꾸는 영향을 끼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상이니, 어느 정도는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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