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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이력이 독특하다. 2010년에 일본에 더 큰 감동을! 이란 취지로 만들어진 일본감동대상의 1회 대상을 수상한 실화 소설이라고
한다. 때문에 주인공은 바로 곧 작가가 되고, 그녀는 얼굴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경쟁률이 무려 1046:1이었다고 하니 이 책은,
많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준 책 임에 분명하다. 그녀가 필명이자 호스티스의 가명으로 정한 아마리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여분, 나머지를
뜻한다고 한다. 스물아홉 생일에 1년 후 죽기로 결심한 여자에게 남아있는 나머지 삶. 그 여분을 아마리가 전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 울려고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볼 위로 주르륵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안돼!'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한 줄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흐르고 또 흘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스물 아홉 생일을 맞은 아마리는 혼자다. 그녀는 초라한 조각 케익을 앞에 두고 텅 빈 방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녀는 케익 위에 놓인 딸기를 먹으려다 놓치고 만다. 떨어진 딸기가 아까워 더러워진 그것을 주워 씻어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울고 있는 방 안에서 오로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켜져있는 텔레비전 속의
연예인들은 박수를 치며 웃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가운데, 고독하고 슬픈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듯이. 그리고
바로 이 날, 아마리는 이런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딱 1년만 더 살고 서른이 되는 날 죽기로 결심한다. 광고에서 봤던 라스베가스로 떠나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고 인생을 건 도박을 하고 난 다음, 미련없이 죽기로.
아마리에 대한 묘사는 꽤 짧고 의기소침하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서 손에 꼽듯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케익을 먹으려고 할
때 말했듯,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먼저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그 부분을 보면서, 그녀가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인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재빨리 즐길 줄 아는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주 진취적이기도 하고. 최후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놔두는 계획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좀 다른 면이 있고, 그녀의 그런 면모는 그녀가 겪은 좌절로 인해 가려져 있을 뿐 어딘가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딸기를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작은 부분은 그녀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날, 단골손님이 쌍둥이 남자 손님 두 명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정말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했다. 하지만 치카만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요?"하고 말했다. 우리는 놀랐지만 쌍둥이 손님들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지. 그런데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개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군 그래."
치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마리는 라스베가스에 가기 위해 돈을 필사적으로 모으게 되는데 삶에 대한 미련이 없고 대신, 골이 분명한 목표가 생기다보니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게 된다.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자신을 평가했으면서도 놀라운 추진력으로 긴자의 호스티스 자리를 구하게 되거나,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있게 포즈를 취해야 하는 누드모델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구한 직업들만이 아니라, 그녀가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세 역시
달라진다. 일과 자기 관리에 철저해지게 된다. 목표가 생긴 사람들은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겠지.
위의 치카에 대한 언급도 긴자에서 호스티스를 하게 되며 알게 된 동료에 대한 이야기다. 치카는 매우 인기있는 호스티스인데, 그녀가 가진
매력적인 외모나 지적인 면모 외에도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배려,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인정받고
싶어하는 면을 생각하고 바로 그 점을 짚어주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특히 남과 다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저 일화가 더 크게 부각되어 인상에 남는다. 아마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변화라는 것은 정말 이렇게
자신의 한 걸음으로 시작되는 사소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을 새삼 느꼈다.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나 자신이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다. 안정이라는 것이 가장 달콤한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그
열매가 사실은 나를 안정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가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죽게 되듯이. 힘든 일은 도리어 사람을 강하고 굳세게 만드는 것 같다. 반대에 부딛힌
연인들이, 평온한 상태의 연인들보다 더 굳세어지는 것처럼.
아마리는 결국 목표를 이루어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라스베가스에 갔고, 인생을 건 도박을 했다. 그것도 꽤 영리하고 멋지게.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 후를 바라보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아마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의 삶이 멈추지 않기를 기대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희망을 주는 책이기 이전에 희망을 갖고 보게 되는 책이다.